짝사랑하듯 기대를 한다

기대가 크다면 그만큼 진심이라는 것

by 꼬마거인

"기대하면 무조건 실망하니까 나는 처음부터 기대를 안 해."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습관처럼 내뱉던 말이다.
이 격언처럼 굳어진 문장을 그때부터 나는 유독 싫어했다.

정확한 까닭은 모르겠다.
단순히 그 말을 반박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는지,
아니면 그 말이 습관이 되게 만든 친구의 배경이 마음 아파서였는지.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싫었고, 그 애가 내뱉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항상 그 친구에게 기대하라고 말하곤 했다.

오늘 점심 뭐게 기대해~
내가 뭐 가져왔게 기대해~
너 생일선물 뭐게 기대해~

내가 기대하라고 말했던 수많은 것들은 사실 별 볼일 없는 것들이었다.
그 애 생일날 반 친구들을 닦달해서 만들어 준 대형롤링페이퍼는 조금은 별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게 그 친구의 기대에 미쳤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알려주고 싶었다.
기대라는 게 꼭 네가 두려워하는 것만큼 큰 상처만 주는 건 아닐 거라고.

기대에 대한 대가로 네가 받았던 상처를 나는 영영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별 볼일 없는 실망들이 하나씩 쌓이다 보면 네 두려움이 조금은 가실지도 모르니까.

사실 나 또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 친구 이외에 다른 이들에게 뭘 해줄 때면 늘 그들에게 기대하지 말라고 얘기하곤 한다.
누군가의 기대에 책임을 지는 것만큼 부담스러운 일은 없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무언가에게 또 누군가에게 항상 기대한다.
다만 그 기대가 이뤄질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여행지에 직접 가는 것보다는 가기 전 그곳을 상상할 때가 가장 설레고
무언가를 먹을 때보다 먹기 전 그 음식을 떠올릴 때 가장 군침이 돈다.
실제로 마주하게 되면 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 결과에 연연하진 않는다.
내가 하는 기대는 이미 기대하는 과정에서 충족되기에.

온갖 것들이 나를 실망시킬 수는 있어도 내 기대까지 어찌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늘 기대하지만 기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루어지지 못할 걸 알면서도 누군가를 좋아하고
보이지 않는 희망에 기대어 복권을 사고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내년 휴가 계획을 세운다.
인생은 바란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비로소 독특해진다.
어쩌면 기대는 기대하는 자체로 그 역할을 다 하는지 모른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친구는 여전히 기대하면 실망한다고 여기고
나는 그런 친구에게 매번 실없는 장난을 친다.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가끔은 너 역시 짝사랑하듯 무언가를 기대하길 바라본다.
실망하는 게 무서워 진심이기를 포기하기엔
아직 네 앞에 반짝거릴 것들이 너무도 많이 남았으니까.

그러다 보면 아주 가끔은 기대를 뛰어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지.
내가 그런 마음으로 너를 좋아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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