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생에는 돌멩이로 태어나고 싶다.
.....
악몽을 꿨다.
꿈 속에서 하염없이 울었더니
자고 일어났는데도 잔 것 같지가 않다.
꿈에서 엄마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
아빠가 다 나 때문이라고 했다.
소름 끼치게 현실 같았다.
깼는데도 토할 것 같은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가라앉히려 글을 쓴다.
엄마에게 자식으로서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
그 빚이 점점 늘어나는 게 너무 무섭고
영영 다 갚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너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자식의 존재가 부모의 인생을 서서히 완전히 망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엄마이자 아내의 역할은 당연한 희생인건가.
쉽게 무시하고 원망을 돌릴 수 있는 만만한 대상.
뭐든 저질러놓으면 책임져주고 뒤처리해 주는 대상.
더 역겨운 건
언제부터인가 엄마에게 똑같이 그러려는 나 자신.
이런 걸 배우고 싶었던 게 아니었는데.
그게 부모이자 배우자의 역할이라면
나는 하고 싶지가 않다.
당신과 같은 선택을 한다면
당신처럼 살지 않을 자신이 없다.
당신이 한 단 하나의 어리석은 선택.
이 굴레를 끊어내고 싶다.
사회인으로서 너무 멋있고 존경받는 사람.
그래서 더 대비되는 우리 엄마로서의 당신.
당신의 괴로움은 누가 알아주나.
외로운 당신에겐 누가 위로가 되어주나.
누군가를 지켜 주기엔 내가 너무 나약하다.
나만이 가져야 할 책임감과 미안함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나 말고는 아무도 가지지 않는 걸 어떡하나
내 유년시절이 행복했다면
그건 당신이 행복해서이다.
내 유년시절이 불행했다면
그 또한 당신이 불행해서이다.
퇴근해서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가족들 밥을 차리고
자식 셋을 키우던 그녀는
어린 내 눈에 자주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어릴적 내 세상의 전부는 엄마의 웃음, 엄마의 행복.
아빠는 종종 엄마에게 너무 웃음소리가 크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엄마의 분명한 웃음소리가 좋았다.
적어도 엄마가 당장은 확실히 행복하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녀의 행복을 나의 행복보다 앞서 바란다.
내가 그리는 엄마의 행복에는 우리가 없다.
그녀가 빛날 때는
누구의 엄마라고 불릴 때도 아니고
누구네 아내라고 불릴 때도 아니고
누군가의 며느리로 불릴 때도 아니고
오롯이 자기 이름 세 글자일 때 비로소 빛난다.
누구나 생애의 절반쯤 살았을 때
딱 한 번 자신이 했던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그럼 엄마에게 뒤도 보지 말고 얼른 돌아가라고 할 텐데.
우리를 안타깝게 여기기에는 그녀의 인생이 가장 안타깝다.
한 번뿐인 인생에
수정할 기회조차 없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어쩌면 삶 자체가 모순.
좋지 않았던 시간이 이젠 좋았던 시간이 되고
좋았던 사람이 더는 좋지 않은 사람이 되고
악한 사람의 이면엔 불쌍한 아이가 들어 있고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증오하는 나날들.
그런 삶 속에서
사랑하는 건 너무 괴롭고
살아있는 건 너무 아프다.
...
바람이 불어
윤동주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