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공포, 공황발작에 대한 단상
공황발작.
단어 그 자체로도 두려워지는 말이다.
발작이라니,, 꼭 길거리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 경련이라도 해야 해당될 것 같은 지칭이다.
공황발작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갑자기 엄습하는 강렬한 불안.
나는 종종 특정 상황에서 갑작스레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다.
그 처음은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 정문에 있었던 빽빽한 계단을 오를 때였는데
내려갈 때는 전혀 무서움을 느끼지도 않고 뛰듯이 잘도 내려가면서, 올라가려고만 하면 뒤로 떨어질 것 같다는 공포가 몰려왔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그냥, 높은 게 무서워서 그런 기분이 드는 거겠지 하고 넘길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게 더 심해졌음을 느낀 건 22살, 편입 후에 대학교 도서관 계단을 오를 때였다.
누가 민 것도 아닌데 금방이라도 뒤로 떨어질 것 같다는 극심한 공포가 밀려왔다.
20여 년 동안 잘만 해왔던 숨 쉬기를 한순간 어떻게 하는지 잊어버리기라도 한 양, 호흡 조절이 안되고 질식할 것 같았다.
간신히 계단 중턱 평평한 구간에 멈춰 서서야 숨을 고르며 진정할 수 있었다.
과호흡이라는 용어도 그때 처음 알았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며 받은 스트레스에 의해 잠시 그런 거라 여겼다.
아니면 원래 있었던 고소공포증이 심해졌다거나.
그로부터 2년이 더 흐르고
작년 들어 비행기를 탈 일이 많아졌다.
비행기를 오래 탈 때면 컨디션이 안 좋아진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불안함과 공포스러운 마음이,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숨이 안 쉬어지는 답답함이
22살, 도서관 계단을 오르던 나의 심정과 똑같다는 건 이번에 새로이 깨달았다.
이대로 계속 몸을 가만히 두면 죽을 것 같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고
이 상황이 계속될 것이고 나는 여기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그 좌절감이 끝도 없이 나를 끌어내렸다.
고소공포증인가? 아니면 폐쇄 공포증인 건가?
고소공포증이라고 하기엔 딱히 떨어져서 죽을 것 같다는 무서움도 없었고
폐쇄 공포증이라고 하기엔 비좁은 엘리베이터도 별생각 없이 잘만 탔기에
둘 다 해당사항은 없었다.
무수한 의문만 품은 채 또 시간이 흘러
최근에 헝가리 오페라하우스에서 오페라를 관람할 기회가 생겼고
한참 집중해서 오페라 2막을 보던 나는
계단을 오르던 22살의 나, 비행기를 타던 24살 나의 심정을 고스란히 또 한 번 느껴야 했다.
몸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죽을 것 같고, 뛰쳐나가고 싶고, 숨이 안 쉬어지고 식은땀이 나는.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낯익은 공포감이 다시 나를 덮쳤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겪은 건 공황이었다는 걸.
공황장애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갑자기 엄습하는 강렬한 불안, 즉 공황발작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장애.
몇 번의 공황발작을 경험하고서, 쉽게 스스로를 공황장애라고 단정 짓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 중 실제 공황장애로 판정 나는 이들은 생각보다 더 적다고.
자가 진단했을 때 나는 공황장애는 아니다.
공황발작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그저 특정 상황에서 발생하는 공황발작에 미리 두려움을 느끼는 예기불안이 있는 것뿐.
한때 우울증, 공황발작, 공황장애는 약자의 표상이라 생각했다.
자기 내면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나약한 이들의 값싼 변명거리라 여겼다.
그렇기에 한 번도 내가 겪은 것들에 그런 명칭을 가져다 대려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스스로를 그렇다고 인정한다는 건, 별것도 아닌 일들에 패배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더 힘든 일들이 많을 텐데
세상엔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들 투성이인데 그건 또 어떻게 감당하려고?
우리네 부모님 세대에서는 나약함이 용납되지 않았다.
속이 곪아 터지더라도 어떻게든 1인분 그 이상을 해내는 게 당연하던 세대였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나 역시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비슷한 의무감을 이고 자랐다.
항상 스스로를 감당 못할 상황에 빠트리고서 끊임없이 시험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간신히 살아 나오면
아 그래, 나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야- 라며 자위하곤 했다.
실은 그렇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지금에야 와 깨닫는 것들은
우울증과 공황발작은 언제라도, 누구에게라도 올 수 있다는 것.
그렇다고 그 증세와 병명에 기다렸다는 듯 기대어 잠식될 이유는 없지만,
또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불안을 느끼는 스스로를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건 더더욱 삼가야 할 일이라는 것을.
공황발작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꼭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지금 느끼는 그 공포는 곧 사라질 허상이라는 것이다.
이걸로는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상 위에 놓인 달력에, 늘 챙겨 다니는 체크카드에 써 놓고 항상 되뇌는 말이 있다.
THIS TOO SHALL PASS
이 또한 지나가리
다 지나갔다. 이것도 지나간다. 앞으로도 지나갈 거다.
인생은 고해라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빠져 죽을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