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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 kwangsu Oct 23. 2018

그 사막에서 나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걸음을 멈추었다




때때로 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도 메마른 낙엽 위를 홀로 걷는 계절처럼 쓸쓸했다. 때때로 나는 당신이 곁에 있음에도 종일 당신을 그리워했다. 어떤 때는 이 낯익은 세상이 너무 낯설었고 나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타인이자 초대받지 못한 이방인으로 느껴졌다. 가끔은 매일 걷는 그 익숙한 길조차 아득하고 낯설어 나는 걸음마다 있는 힘껏 체중을 실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풍선처럼 두둥실 떠올라 끝없는 허공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내가 딛고 서있는 이 땅에서 한없이 먼 곳으로.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이 무자비한 거리감을 참을 수 없어서 나는 그 끝도 없이 광대한 사막에다 내게 익숙한 식물들을 심었다. 그렇게나마 이 한없는 거리감이 내게 주는 쓸쓸함, 외로움, 그리움, 낯섦을 다 달래고자 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사막의 삭막함을 견디지 못했고 그 어디에도 나와 세상의 간격을 좁힐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는 생각한다. 아직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적에 내 세상은 어떤 틈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작고 안락했으리라. 무엇보다 나와 타인을 연결했던 어머니의 탯줄 덕분에 나와 세상 사이에는 어떤 거리감조차 들어올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 세상은 타인의 세상의 일부이자 동시에 타인의 세상은 내 세상의 일부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런 탯줄이 떼어지면서 배 한가운데에 배꼽이 자리하듯 이제 세상을 홀로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에게는 배꼽과 같이 지울 수 없는 상실의 흔적이, 낯익고도 낯선 거리감이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그렇게 그 어떤 거리감도 없었던 모태의 세상을 영영 그리워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렇게 태어난 이상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상 사이의 거리를 없애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나는 사는 동안 배꼽의 존재를 쉽게 잊곤 했지만, 문득 그 존재감이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면 찬찬히 배꼽을 들여다보며 그제서야 배꼽이 항상 그곳에 있었구나 깨닫곤 하는 것이다. 그처럼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거리감도 늘 그곳에 있었다. 



오르텅스 블루의 사막이라는 시는 인간의 외로움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사막은 나와 먼 곳에 있지 않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사막을 지닌 채 살아간다. 마치 배꼽이 내 몸의 일부이듯 그렇게 평생 어떤 외로움, 그리움, 낯섦을 다 지닌 채 살아간다. 그 사막은 태생부터 존재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사막이 낯설고 막막하여 종종 걸음을 멈추곤 한다. 그곳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한없이 외롭고 아득하다. 사람은 누구나 그처럼 한없는 거리감을 견디며 걷다 서다를 반복한다. 견디다 못해 때로는 쓰러지고, 때로는 실없는 농담을 건네고, 때로는 누군가를 바스러질 정도로 세게 껴안는다. 일체의 거리감도 없었던 최초의 본향, 모태의 세상을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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