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in kwangsu Nov 20. 2018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어요

일상적인 행위를 공유하는 것의 의미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어요."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길에 누군가 내게 말했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그의 말에 나는 조금 묘한 감정을 느꼈다. 밥을 같이 먹자는 말.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결코 모를 말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우스웠다. 물론 나도 그 말이 정말 나와 밥을 먹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어색함을 무마하며, 기분 좋게 헤어지기 위한 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잘 가'라는 말 대신 쓰이는 '다음에 봐'라는 인사말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상대가 마음에도 없는 빈말을 한다고 서운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빈말처럼 느껴지는 그 말에 나는 대뜸 "좋아요. 그럼 언제 먹을까요?"라고 답하고 말았다. 순간 상대방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는 인사치레로 한마디 했을 뿐인데 졸지에 생각도 못했던 약속을 잡아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대에게 나는 한 번 더 물었다. "저는 다음 주가 좋은데, 언제가 편하세요?"



나는 밥 한번 먹자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그저 듣기 좋은 인사말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내 말은 문자 그대로 함께 밥을 먹자는 뜻이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신을 알고 싶다는 뜻이다. 사실 나는 친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어색함을 깨기 위해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하는 그런 자리가 불편하고 어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그 과정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거나 과장된 리액션을 하는 것도 싫다. 가벼운 안부 정도는 문자나 전화를 이용해도 충분하고, 사업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을 나누더라도 메일을 주고받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굳이 어색한 사람들끼리 얼굴을 마주 봐야 하는 불편함을 피할 수 있고, 대화 내용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효율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구체적인 시간까지 제시해가며 약속을 잡는 이유는 함께 밥을 먹는 행위가 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과 사귐에 있어 밥을 먹는 행위가 중요함을 어느 중견기업의 대표이사로부터 배웠다.  그와 나는 어찌 보면 단순히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의 관계였다. 예전에 그분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디자인했던 패턴이 폴로 랄프로렌 바이어들에게 채택되어 일본 백화점에 입고되었다. 내게 그 소식을 전하면서 사장님은 "우리 밥 한번 먹을까요? 혹시 다음 주 월요일 점심 어떠세요?"라며 구체적인 시간을 제안하셨다. 이런 말을 듣고 그냥 듣기 좋은 빈말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사장님은 "혹시 한정식집 어떠세요? 제가 자주 가는 곳이 있는데 괜찮으시면 거기서 식사하시죠."라며 그날 방문할 식당까지 일사천리로 결정하셨다. 말씀하셨던 음식점은 생각보다 고급스러웠고, 우리는 넓고 호젓한 방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서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아직 학생이었던 나로서는 한상에 몇 십만 원이나 하는 식사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분은 자신이 대접하는 것이니 개의치 말라고 하셨다. 




사실 나는 사장님과 식사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었기에 무슨 말을 하더라도 어색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식사 자리에서 오고 갔던 내용은 지극히 평범했다. 그분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겪는 어려움이나 일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몇 년 동안 고생했던 경험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진로 문제에 대한 고민이나 어려웠던 형편 때문에 고생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하셨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군가의 어머니이며 누군가의 아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떤 의도도 없는 그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비로소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클라이언트가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체온을 지닌 한 사람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만약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한 식사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이렇게까지 진솔한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떤 목적도 없이 그저 함께 밥을 먹으며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또 그렇게 해서 서로를 알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값진 시간이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의미가 있다.  누군가와 밥을 먹고 나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땅속 깊은 곳에서 그저 씨앗으로 머물던 관계에 푸른 싹이 트고 있음을 깨닫곤 한다. 어쩌면 영영 씨앗으로 남아있었을지도 모를 관계가 비로소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다. 돌아보면 내 곁에는 그렇게 피어난 관계들이 많았다. 밥을 먹는다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지만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언제든 특별한 일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아직 불편하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라해도 그런 일상적인 행위를 공유함으로써 조금 더 편안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동안 멀게만 느껴지던 상대에게서 익숙하고 친근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비로소 그 사람이 지닌 어떠함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게 극히 일부분이라고 할지라도 사소한 무엇을 함께 공유하는 행위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친밀함을 선사한다. 그러니 내가 당신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말한다면 그것은 내가 당신을 어색하게 여긴다는 뜻이 아니라 당신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의 선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