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를 어떻게 알릴까?#메타버스#힐링게임
*글을 읽기 전에 아래 링크를 클릭하여 게임을 플레이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지난 3월 29일, 올어바웃이 기획/제작한 <이름 없는 땅>이 오픈했습니다. DMZ를 배경으로 만든 최초의 메타버스 콘텐츠이죠. DMZ와 로컬 스토리 발굴이야 올어바웃의 전문분야이지만, 메타버스라니. 참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발 벗고 나서 주었기에 <이름 없는 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밤낮없이 고생한 결과일까요. 오픈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고 계셔서 기획자로서 뿌듯해지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름 없는 땅>의 기획기를 들려드릴까 해요. 비하인드가 더 재미있는 법 아니겠어요? 물론, 앞으로 강원도 고성과 경기도 연천에 오프라인 부스인 <DMZ 포털>, 해설과 아카이빙 영상 등 공개될 콘텐츠가 많지만요. 혹시 아나요. 누군가에게 올어바웃의 기획기가 작은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비하인드를 들으면 몰랐던 것들을 발견할 수도 있죠.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꼭 위의 링크를 먼저 클릭해보세요. 그럼 <이름 없는 땅> 파란만장 기획기, 시작합니다!
<이름 없는 땅>의 시작은 2020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생각보다 너무 시작이 가깝다고요? 맞습니다. 이번 기획과 제작은 참 짧고도 강렬했습니다.
여러분은 'DMZ'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철창으로 가로막혀 있는 땅, 군인, 전쟁의 이미지가 강할 거예요. DMZ의 관광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과거 '안보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DMZ관광은 분단과 냉전의 상징물들을 돌아보고, 전쟁의 비극과 슬픔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요. 2018년부터 안보관광은 생태, 역사, 문화자원 등 비무장지대가 갖고 있는 여러 가치들을 활용하는 평화관광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이름 없는 땅> 또한 DMZ 평화관광을 운영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의 주도로 시작되었습니다. 올어바웃이 받은 미션은 DMZ에 대한 경험이나 기억이 거의 없는 MZ세대에게 DMZ와 평화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었죠.
올어바웃은 모든 프로젝트에서 "미션 설정 - 개념 규정 - 방식 도출"이라는 순서로 초기 기획을 잡습니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는 정부과제이기 때문에 정해진 방식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정부과제가 그렇죠.) 크라우드 펀딩과 상징물 설치가 그것이었어요. 하지만 방식이 정해져 있다고 해서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기획이란 미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치열한 고민 끝에 가장 좋은 해결책을 찾는 일이니까요. 올어바웃은 DMZ라는 공간, MZ세대, 크라우드펀딩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DMZ
닫힌 공간 - 급기야 동물들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는 곳
시간이 멈춘 공간 - 70년이 넘게 우리의 기억에 없는 곳
신비로운 공간 - 누구도 완벽하게 알지 못하는 곳
MZ세대
디지털(Digital) - 모바일, PC 등이 가장 익숙한 사람들
컬처(Culture) - 문화예술을 즐기며 자신만의 해석을 즐기는 사람들
소셜(Social) -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참여에 적극적인 사람들
크라우드펀딩
금전적 지원이 아닌, 다수 개인의 지지와 참여
개념 정리(Notion)를 거쳐 'DMZ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참여형 디지털 문화예술 프로젝트'라는 방식(Method)을 도출했습니다.
올어바웃은 기획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합니다. 아무리 DMZ에 대해 6년이 넘는 연구를 하고, 문화기획 분야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올어바웃이라고 해도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일 수는 없죠.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작업을 해오던 조현서 작가를 예술감독으로, 자신만의 색과 생각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이랑 가수를 음악감독으로, 항상 장소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조신형 감독을 영상감독으로 모셨습니다. 감독진만 하더라도 총 5명에 달하죠.(총감독과 스토리 감독은 올어바웃 멤버입니다) 어떤가요? 든든하지 않나요? 프로젝트의 기획의 50% 이상이 인력의 적절한 배치와 소통에 있는 것 같아요. 각기 다른 분야의 협업은 꽤 어렵거든요. 하지만, 그 결과는 놀라울 거라 생각해요.
감독진을 구성한 다음에는 'DMZ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참여형 디지털 문화예술 프로젝트'라는 러프한 방식을 구체화하는 작업에 돌입했어요.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를 건 없지만, 당시에는 코로나 19의 유행이 극심하던 시기였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로 비대면을 꼽던 때였죠. DMZ 평화관광 프로젝트이니 당연히 여행을 중심에 두어야 할 텐데, 오프라인은 위험도가 있으니 랜선 여행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랜선 여행의 일반적인 방식을 떠올려 봤을 때,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참여자는 모니터를 보고만 있고 가이드가 현장을 다니며 설명을 해주는 식이었으니까요. 글쎄요. 갈 수 없는 곳을 여행한다는 건 너무 멋진 일입니다. 하지만 일방적인 설명을 기반으로 한 랜선 여행의 모습을 답습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조금 다른 DMZ 랜선 여행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사실 DMZ는 코로나 이전에도 갈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DMZ 평화의 길이 열리긴 했지만, 정해진 시간에 코스대로만 가야 하고 무엇보다 사진도 마음대로 못 찍죠. 그런데 언제든지 DMZ에 접속할 수 있고, 그곳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되면 어떨까요? 우리가 꿈꾸는 DMZ 평화관광이 그런 것 아닐까요?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지는 공간을 우리는 알고 있지요. 바로 '가상공간'입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힐링 게임의 형식을 빌리기로 했어요.
힐링 게임은 '아름다운 풍경(그래픽)과 음악으로 가득한 공간을 거니는 것만으로 힐링이 된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장르입니다. 힐링 게임은 메시지가 담긴 하나의 스토리를 따라가거나, 아기자기한 게임 속 풍경을 즐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보니, 복잡한 조작이나 퀘스트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힐링 게임 유저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게임 해석을 공유하는 문화를 갖고 있더라고요. 마치 영화 해석을 올리는 것처럼요. 그러다 보니 이런 플레이 방식을 선호하는 유저들 사이에서 탄탄한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었어요. 버프 스튜디오에서 출시된 <마이 오아시스>는 발매된 지 1년 만에 5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고, 다음 해 1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습니다. 자이언트 스퀴드가 제작한 <압주> 또한 이 게임을 단독 주제로 한 수많은 유튜브 영상이 생산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죠.
정리하자면 힐링 게임은 스토리를 담을 수 있는 좋은 틀이자, 유저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MZ세대에게 익숙한 포맷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어떤 상자에 담을지 정했다면, 무엇을 담을지도 정해야겠죠. 총감독, 스토리 감독, 예술감독은 매일같이 스토리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비교적 DMZ에 익숙한 저희와 달리 조현서 예술감독은 DMZ를 처음 접한 MZ세대였는데요. 어느 날, 조현서 예술감독이 유튜브에서 본 DMZ 유해발굴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어요. 군번줄이 없는 유해는 가족을 찾지 못하고 한꺼번에 제사를 지낸다고요. 그 순간, 우리는 '이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한 구절이죠. 이름이란 단순히 명칭을 넘어서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존재를 완성시키는 마침표라고 할까요. 유해발굴사업에서도 그렇습니다. 군번줄이 없어 이름을 찾아주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 DMZ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마치 DMZ를 둘러싼 철책이 그곳에 사는 동물들도 옴짝달싹 못하게 가둬놓은 것처럼요.
DMZ의 가장 유명한 수식어는 '천혜의 자연환경'이죠. 하지만 이 수식어를 들을 때마다 어쩐지 슬퍼집니다. 지금의 아름다운 자연이 외부와의 끈을 끊는 철책 덕분에 가능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의 DMZ 여행은 이들을 만나 위로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름을 불러주어, 꽃이 되도록 말이죠.
'이름을 찾아주자'라는 스토리에, 윤승용 스토리 감독은 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DMZ라는 이름은 지명이 아니라 군사용어입니다. 폭 4km, 길이 248km의 넓고 긴 땅도 전쟁을 거치며 이름을 잃어버린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땅의 기억을 쫒아가기로 했습니다.
기억이란 뚜렷하지 않고 가끔은 뒤섞이기도 합니다. <이름 없는 땅>은 DMZ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기보단 DMZ의 기억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서에서 동. 바다에서 바다로 이어지지만, 모든 것이 실제와 딱 들어맞지는 않거든요. 말 그대로 메타버스, Meta(가공, 추상)-Verse(세계)죠.
<이름 없는 땅>에는 크게 4개의 공간이 등장합니다. 서해, 평야, 숲, 동해가 그것이죠. 플레이해보셔서 아시겠지만, 게임에는 이곳에 묶여 있는 영혼들이 빛나는 동물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정말 DMZ의 동물일 수도 있고, 이곳에서 목숨을 다했던 군인일 수도, 혹은 이 땅 자체일 수도 있습니다.
플레이하실 때 꼭 빛나는 동물의 속도에 맞춰 따라가지 않아도 됩니다. <이름 없는 땅> 곳곳에는 DMZ의 기억들이 숨어있기 때문이지요.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철길이 끊어져있는 곳까지 걸어가 보고, 폐허의 안을 살펴보면서 나만의 DMZ 기억을 만들어 보시기를 바랐습니다. 또 여행을 마친 뒤 그 기억을 주변인들과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여행을 다녀온 뒤 늘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이름 없는 땅>의 여행 끝에 만나는 '사진 갤러리'입니다. 갤러리에는 <이름 없는 땅>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모두 담겨있어요. 선택하여 다운로드하여 소장할 수도 있고 공유할 수도 있죠. <이름 없는 땅>을 거닌 사람이라면, 이제 DMZ와 기억을 나눈 사이인 거죠.
<이름 없는 땅>은 총감독을 맡은 저에게도 큰 도전이었습니다. 그동안 DMZ를 다루면서 몇몇 문화기획을 진행해왔지만, 메타버스와 미디어 아트에 깊숙이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거든요. 협업 프로젝트라면 자신 있는 올어바웃도 공간, 스토리, 예술, IT, 음악, 영상, 마케팅, 행정까지 수많은 전문가들과 함께 하모니를 맞추려다 보니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매일 고개를 하나하나 넘어가는 중이고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글은 <이름 없는 땅>의 비하인드 스토리이기도 하지만, 올어바웃이 어떻게 기획을 하고 실행해 옮기는지에 대한 하나의 예시이기도 합니다. 올어바웃은 공간을 다양한 콘텐츠로 전달하는 로컬 엔터테인먼트 그룹입니다. 저희는 '지역'을 중심으로 경계 없는 작업을 기획하고 실행하죠.
올어바웃이 보여드리고 싶은 건, 편견을 걷어낸 DMZ의 진짜 모습이에요. 그를 위해 매년 DMZ 접경지역 한 곳을 깊게 들여다보는 매거진 <ABOUT DMZ>를 발간하고 있고, 어바웃디엠지(@aboutdmz)라는 이름의 SNS 계정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또 DMZ에 관한 전시, 축제 등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철원 평화마을 캠핑장을 운영할 계획이고요. <이름 없는 땅> 프로젝트도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조금 더 친근한 모습의 DMZ를 보여드리기 위한 활동 중 하나입니다. 아직은 다른 지역에 비해 덜 주목받고 있지만, 여러분이 많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또 지켜봐 주시면 묻혀 있던 이야기들이 세상 밖으로 퍼져나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럴 수 있도록 올어바웃도 열심히 뛰겠습니다!
그럼 뮤지션 이랑님과 함께한 <이름 없는 땅> OST, '어떤 이름을 가진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본다'가 삽입된 메인 트레일러와 함께 이만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음 포스팅은 <이름 없는 땅>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들, 지물들, 동물들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담을 예정이니 궁금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글. 박한솔 _<이름 없는 땅> 총감독, 올어바웃 대표
편집. 조가은 _올어바웃 연구기획팀 에디터
감수. 윤승용 _<이름 없는 땅> 스토리 감독, 올어바웃 연구기획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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