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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세기 소녀"

나도 그 시절에 20세기 단발의 소년을 만났다

by 경이


2022년 개봉

감독 방우리

출연 김유정, 변우석, 박정우, 노윤서



앗! 하마터면 잃어버리고 살뻔했다. 20세기 시절.

20대 초반이었던 나, 그리고 21세기로 넘어가는 그 묘한 불안과 설렘,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이었던 삐삐와 공중전화와 첫사랑을.....


“20세기 소녀”는 90년대의 소녀와 소년의 첫사랑에 관한 풋풋하고 예쁜 이야기다.

털털하고 착하고 발차기도 끝내주게 하고 게다가 예쁘기까지 한 ‘보라’와 키 크고 어깨 넓고 친절하고 게다가 예쁘기까지 한 소년 ‘운호’가 사랑하게 되는.

저렇듯 하자 없는(?) 아이들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제대로 된 사랑한 번 못해보고 어쩌다가 한 결혼에 실패한 40대 중반이 되니 첫사랑의 이야긴 마냥 좋고 흐뭇하지많은 않다.

달달한 첫사랑 이야기에 가슴 한켠이 아리달까? 왜?

첫사랑 풋풋함은 이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40대에는 절대 할 수 없는 사랑이니까. 그리고 내가 놓쳐버린 수많았던 순간들이 떠오르니까!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친구의 소개로 나간 소개팅에서 만난 한 남자아이를 만났었다.

곧 군대에 갈거라 머리를 길러보기로 했다며 단발 기장의 머리를 질끈 묶고 소개팅에 나왔던 꽤 멋졌던 아이.

형 이야기를 하며 존경하고 자랑스럽다고 말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친형을 존경한다는 그 아이의 멘트가 신선하고 멋졌던 거 같다.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길거리 음식도 먹으면서 분위기도 좋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었는데. 아.. 문제는 내가 너무도 순진하고 앞 뒤가 꽉 막혀있었다. 뭐 지금도 뚫려있는 건 아니다. 아무튼!

다시 만나자는 그 아이의 말에 “나 유학 가는데”라고 왜 말을 했을까. 그럴 거면 왜 소개팅을 나간 건데!! 이런 멍청하고 답답한!!!

그 시절 내가 그렇게 노답만 아니었다면 나도 어쩌면 “20세기 소녀”를 찍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단발머리를 한 그 남자애와.


그 당시 흔하지 않던 단발머리 때문이었는지, 어쩌면.. 이란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나의 20세기말에는 딱 한번 만난 그 남자애가 항상 서 있었다. 떡볶이 코트를 입고 단발머리를 단정하게 묶었던 그 아이가.


그게 이 영화가 주는 설렘이다. 시간여행. 만약 그도 이 영화를 봤다면 20세기말에 만난 내숭 만땅이었던 날 떠올렸을까? 아니면 그만의 다른 20세기 소녀를 떠올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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