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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없는 노동 : 아동 노동과 착취

그 보다 더 큰 가난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

by 사야

장면 하나


시내로 접어들기 전 골목에 우리가 ‘일만(10,000) 식당’이라 부르는 식당이 있었다. 현지화 10,000리엘(약 2.5달러)면 모든 메뉴를 시킬 수 있다고 해서 현지 직원들이 붙인 별칭이었다. 외국인의 까다로운 혀뿐만 아니라 취약한 위장도 만족시킨 덕분에 자주 갔었다. 그날도 라니의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평소에 못 보던 아이 두 명이 테이블 사이를 바삐 오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 고학년이나 이제 막 중학생이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데 마음이 쓰였다. 힐긋 훔쳐보다가, 옆에 있는 라니에게 말했다. ‘저 아이는 너무 어려 보이는데 일을 하네? 몇 살인지 물어봐도 괜찮으려나?’ 라니의 얼굴에 곤란한 기색이 어렴풋이 스쳐갔지만, 아이들이 다가왔을 때 기어코 나 대신 대화의 물꼬를 터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12, 13살이라고 했다. 한국 아이라면 7-8살 몸집의 아이들이 어색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이 일을 하라고 해서 그나마 시내인 이곳에 나와 몇 푼을 버는 거라고 했다. 사업 모니터링을 다닐 때 보았던 경험으로 중학교 수는 초등학교 수에 비해 현저히 적고, 거리도 통학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농촌 지역 많은 부모들이 농사 시기 동안은 집을 비우고 자녀들을 논에 데려가 돕게 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더라’라며 뭉쳐지고 희석된 현장의 가난 이야기가 아닌 내 옆에 있는 아이의 살아있는 이야기가 되었을 때,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이 더 무겁게 따라왔다. 그 고민은 미간에 찌푸려진 인상으로 밖에 표현될 수 없었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그 식당에서 아이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많은 생각 내려두고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물어보지 않은 게 두고두고 생각이 났다.




장면 둘


방글라데시 어느 골목. 마치 동물 사체에 화학 염료를 부은 듯한 냄새가 코를 찔러 숨을 골라 쉬며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업 기획 조사 중 만난 그 아이는 쓰레기장에서 쓰레기를 뒤지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알록달록 색깔도 다양하고 쓰레기 속에서 세상을 배운다고 했다. 지금 쓰레기를 줍는 자기의 삶도 괜찮다는 건 애써 현실을 부정하는 왜곡된 반응인 것인지, 그 아이의 세상은 정말 쓰레기장뿐이어서 꾸밈없이 허탈한 진심을 밝힌 건지 그 깊은 속을 가볍게 짐작하고 싶지 않았다. 옆에서 자기 말할 순서를 기다리던 다른 아이는 자기도 학교를 가봤다고 했다. 그런데 도움이 되는 건 없었다고 했다. 교사들은 자기에게 무관심했고, 동급생들은 가난의 냄새를 이유 삼아 괴롭혔다고 했다. 마치 어른들이 손쉽게 제시하고 싶어 하는 정답을 눈치챈 것처럼 선수 치며 말했다. 말하는 내내 땅바닥과 허공을 가로지르던 아이들의 시선은 끝내 한 지점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아이들이 일하는 환경과 살아가는 터전을 들여다본 후 머리가 지끈했다. 물론 교육이나 보건 같은 분야도 문제와 원인이 너무나 거대해 우리의 개입이 강물의 물방울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빈곤, 도시개발, 직업훈련, 교육, 아동보호에 걸쳐 종으로 횡으로 서비스와 옹호가 절실히 필요한 아동 노동 이슈의 복잡다단한 실체를 마주하자 개입 모델을 개발하기도 전에 가난의 무게에 압도되었다.


쓰레기를 주우며 담담하게 말했던 아이에게 학교라 게 과연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었을까. 아이들이 소외와 폭력을 감지한 학교라는 공간에 공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밀어 넣어야만 하는 걸까. 그렇다고 최소한의 선택지도 없이 땅바닥만 보며 살게 하는 게 최선인가. 이 아이들에게 기초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보다 삶의 기술을 배우는 게 지금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아이들이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유해한 노동에 대해서도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고민이 쌓여갔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아동 노동을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아동이 하는 모든 노동을 근절해야 할 아동노동으로 분류해서는 안 됩니다. 취업할 수 있는 최소 연령 이상의 아동 또는 청소년이 건강과 개인 발달에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학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업무에 참여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여기에는 가족 사업을 돕거나 학교 시간 외 및 방학 동안 용돈을 버는 것과 같은 활동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활동은 아동의 발달과 가족의 복지에 기여합니다. 아동에게 기술과 경험을 제공하고, 성인으로 성장하는 동안 생산적인 사회 구성원이 되도록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아동 노동”이라는 용어는 종종 아동의 어린 시절, 잠재력 및 존엄성을 박탈하고 신체적, 정신적 발달에 해로운 경우로 정의합니다.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또는 도덕적으로 아동에게 위험하고 유해하거나,

아동의 학교 교육을 방해하는 경우

특정 형태의 “노동”을 “아동 노동”이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는 아동의 연령, 수행되는 노동의 유형 및 시간, 수행되는 조건 및 각 국가에서 추구하는 목표에 따라 다릅니다.


가혹한 형태의 아동 노동 (The worst forms of child labour)

가혹한 형태의 아동 노동은 아이들이 노예가 되고, 가족과 분리되고, 심각한 위험과 질병에 노출되거나, 대도시 거리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방치되는 것입니다.

무력 충돌에 이용하기 위해 아동을 강제로 모집하는 것 포함, 아동 인신매매, 부채 속박 및 농노제, 강제 노동 같은 모든 형태의 노예 또는 노예와 유사한 관행,

매춘, 음란물 제작 또는 음란물 공연을 위해 아동을 사용, 조달 또는 제공하는 행위,

특히 관련 국제 조약에 명시된 약물의 생산 및 밀매를 위한 불법 활동을 위해 아동을 이용, 조달 또는 제공하는 행위,

그 성격 또는 수행되는 상황에 따라 아동의 건강, 안전 또는 도덕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작업


유해한 아동 노동 (Hazardous child labour)

유해 노동은 앞서 언급된 가혹한 형태의 노동 중 하나로, 노동의 성격이나 수행되는 상황에 따라 아동의 건강, 안전 또는 도덕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작업입니다.

아동을 신체적, 정신적 또는 성적 학대에 노출시키는 작업:

지하, 수중, 위험한 높이 또는 제한된 공간에서의 작업

위험한 기계, 장비나 도구로 작업하거나 무거운 하중을 수동으로 취급하거나 운반하는 작업

아동을 유해 물질, 작용제 또는 공정에 노출시키거나 건강에 해를 끼치는 온도, 소음 수준 또는 진동에 노출시킬 수 있는 건강에 해로운 환경에서의 작업

장시간 근무 또는 야간 근무와 같이 특히 어려운 조건에서 근무하거나 아동이 고용주의 구내에 부당하게 갇힌 근무

아동 노동 국제 평가 기준(Measurement framework for the global estimation of child labour)


지금은 꽤 명확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당장 바뀔 수 없는 환경에서 한 아이가 적정한 노동을 해야만 한다면, 노동뿐만 아니라 그 어떤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지금 그 아이의 최상의 이익’이 무엇인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마찬가지로 ’현지 최상의 이익‘을 이루어가는 과정이야말로 유일하게 붙잡아야 할 가치라는 걸 되돌아보게 된다. 맥락에 반응Responsive하고 상황을 민감하게Sensitive 인식하는 창의력과 적용력이 필요할 뿐, 효과적인 모델(기획)과 성공 사례(성과)에만 집착하고 선례를 신화처럼 여기는 건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용할 뿐이다.




장면 둘, 그 변주


현장학습 차 현지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찾아갈 기회가 있었다. 섹스 관광의 목적지라 불리며 아동 성 착취가 성행하는 지역에서 일하는 프렌즈 인터내셔널Friends international이라는 기관이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두 남자 직원은 늘 하는 일이라는 듯 우리를 앉혀두고 기관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기관의 주요 협력 파트너는 관광거리에서 식당이나 상점을 운영하는 비즈니스 사업자들이었다. 가게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성매매 경고 포스터를 부착하고, 의심스러운 상황을 보면 신고할 수 있도록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아동들이 돈 때문에 불법적인 일에 연루되지 않도록 해당 사업장에서 정식으로 직업 훈련을 받아 자립할 수 있게 연계해 주었다. 전형적인 방식으로 피해 아동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연결을 통해 환경을 바꾸는 것을 보고 고개가 연신 끄덕여졌다. 사업자와 고용주를 주요한 의무이행자로 참여시키는 것. 피해 아동을 구제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아동을 둘러싼 어른들을 변화시키고 이해관계자의 두터운 안전망을 흔들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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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셋


에티오피아 수많은 소녀들은 지금도 국경 너머 “부자나라”로 일 하러 간다. 1년만 벌어도 집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변 어른들의 부추김에 불법 중개인들도 활개를 친다. 중개인을 통해 국경을 넘고 사막을 건너 중동으로 간 아이는 4년 동안 가정부로 일했다고 했다.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병든 몸과 고작 1년 치 임금만 남아 있었다. 각종 학대도 모자라 불법 이주 신분으로 갈취당한 노동의 대가는 법적으로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돌아온 건 잃어버린 건강과 불법 이주민이라는 딱지. 가난은 이렇게 존엄을 무너뜨리곤 한다.


하지만, 언제나, 완전히 그렇지만은 않다. 그날은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지역 대화 모임이 열린 날이었다. 어려운 시절 욱여 담고 고향에 돌아와 자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뱉어내며 불법 중개인을 처벌하자고 눈에 빛을 내며 강한 어조로 말하는 청년들을 만났다. 그 순간 수많은 현장에서 지속되고 있는 변주의 선율이 어쩌면 힘을 잃고 사그라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 회로가 작동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짜 변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그들에게야 말로 믿음을 더해볼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 한 학교에 그려진 아동 노동 인식개선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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