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과 사교육의 틈에서 스스로 삶을 동기부여하는 활동
| 여가 |
여가는 틈이다. 일과 일 사이 벌어진 틈.
일과 삶에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멋진 딴짓.
“중1 이렇게나 공부를 안 하다니 정말 환장하겠어요“
운영 초기,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다가치학교’를 검색하면 최상단에 노출되는 인터넷 게시글 제목이었다. 이 글에는 중학교 1학년으로 진학한 청소년이 학원 시험 성적이 낮아 고민하는 보호자의 하소연이 잔뜩 담겨있었다. 이 글의 주인공은 집과 지근거리에 새롭게 조성된 다가치학교를 접하고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귀가 시간이 늦어졌던가 보다. 댓글을 보니 작성자의 글에 공감하면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보호자들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에는 시키는 공부 잘 따르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달라졌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 글이 게시된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 이름은 ‘상위 1%카페’, 당시 약 8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입시, 사교육 정보 공유 커뮤니티였다.
교육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비슷한 민원을 상대해 왔다. 여러 활동한다고 학원(약속한 공부 시간)을 빼먹는다고. 청소년의 다양한 경험을 지원하는 수많은 교육활동이 많은 보호자들의 애먼 걱정을 키우고 있는 것 같았다.
초등학생 때는 활동의 기회가 많이 열려있다. 이 시기에는 보호자들도 자녀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스케줄을 짠다. 학교에서도 질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각종 청소년 기관들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프로그램들을 설계하여 선보인다. 보호자들은 평일, 주말 상관없이 좋은 활동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자녀들을 보낸다. 좋다고 소문난 활동에는 대기 번호를 받을 정도로 신청자가 몰리기도 한다. 사교육도 입시보다는 여러 분야로의 경험에 비중을 둔다. 지자체 역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초등학생들에게도 기회가 닿을 수 있도록 여러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활동에서 만난 초등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들의 경험 스펙트럼은 놀라울 정도다. 코딩, 드론부터 게임 개발, 악기 하나쯤은 기본이다. 폭넓은 놀이 활동으로 협동에 대한 이해도 높다. 해보고 싶은 것은 뭐가 그리 많은지, 아이디어를 신나게 쏟아낸다.
그러나 그랬던 이들이 청소년(14세 이후)이 된 순간부터, 이들 앞에 놓인 시험과 성적, 입시는 그 풍부했던 경험을 서서히 휘발시킨다. 중학생을 거쳐 고등학생이 된 그들의 퀭한 눈은 언제나 피로로 가득하다. 가슴속에는 울화가 가득 차고 마음은 무기력하다. 나는 이 참담한 현상을 ‘학업에 조져진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청소년은 얼마나 학업(業)을 하고 있을까? 2024년 기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학교 수업 외 하루 3시간 이상 공부를 하는 비율이 고등학생의 경우엔 43.9%, 중학생은 40.4%이다. 놀라운 것은 초등학생의 40%도 그만큼 공부한다. 1주일에 평균 7.6시간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사교육에 참여하는 비율은 80%에 달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아동청소년인권실태조사」, 초(4~6)·중·고등학생 대상 학습시간 / 통계청, 「초중고 사교육비조사」, 사교육 참여율 및 참여시간)
학업은 정해진 매뉴얼(교육과정)에 따라 철저한 성과 지표(성적)로 평가된다. 개개인의 성과는 줄이 세워져 우열이 가려진다. 그리고 그에 따른 보상은 미래에 담보를 잡아놓는다. ‘지금 고생하면 나중에 좋은 직장 얻는다’, ‘지금 좋은 성적을 받아야 나중에 가고 싶은 대학에 갈 수 있다’ 등 불확실한 희망으로 점철된 불안만 어른거릴 뿐이다. 학원에 다니지 않거나 예술, 기술을 배우는 청소년도 많아졌다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하루가 여유롭다거나 학업에서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학업이라는 정도에서 벗어났으니 그만큼, 이니 더 열심히 해야한다는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슬프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의 학업 구조 자체를 단번에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선거 철마다 입시 정책이 바뀌고 어떤 경쟁이 나은 경쟁인지 갑론을박이 펼쳐지지만, 어떤 정책이 시행되든 간에 청소년은 비슷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고, 사교육은 학교 교사와 청소년 활동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극복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만드는 활동 현장이 청소년 개개인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청소년의 여가 활동 시간을 통계 낸 데이터에 주목했다. 하루에 1~3시간 미만의 여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청소년의 비율은 약 50%, 주말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 시간은 훨씬 늘어난다. 시간을 가장 많이 할애하는 항목은 게임과 인터넷 검색(SNS), TV 시청 순으로, 우리는 이 시간을 공략해보기로 했다. (*2024 여성가족부 「청소년 통계」, 여가)
성인들은 여가를 재충전의 시간으로 삼는다. 워라벨, 일과 삶의 균형은 일상을 풍족하게 만들어 다시금 업(業)을 행할 동력과 동기를 북돋는다. 금전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나라는 존재를 채우기 위해 온 마음과 열정을 다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가, 즉 딴짓이야말로 진짜 나다운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주체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이 활동은, 일상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적극적인 행위로 이어지기도 한다. 친한 동료 중 한 명은 틈만 나면 뜨개질을 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늘 주변 사람들은 위한 선물이 된다. 나의 애인은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보람을 얻는다. 한 선배는 동호회 사람들과 탱고를 추고, 나의 아버지는 텃밭을 가꿔 작물들을 지인들과 나눈다. 이렇듯, 여가는 재충전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공동체와 연결되는 길이기도 하며, 여기서의 관계 맺기란, 단지 의도치 않게 어쩔 수 없이 맺어지게 된 관계에 그치지 않고, 좋아하는 걸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사적 관계로의 확장이기도 하다. 우리가 여가를 ‘활동’이라 부르는 이유다.
대부분의 청소년이 향유하는 여가를 과연 여가라고 자신있게 부를 수 있을까? 청소년의 여가라 하면 노래방, 게임, 아이돌 덕질(무언가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행위), 그림 그리기 등으로 일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활동으로 한계 지어진 이유는, 이들에게 온전히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기회가 없다보니, 자신만의 작은 방구석과 좁은 관계망, 한정된 자원 안에서 그나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행여, 여가 활동, 소위 딴짓을 하려고 하면 본업에 매진하지 않는 학생으로 낙인찍히거나 학업에 방해된다는 반대에 부딪혀, 진심으로 몰두하고 탐구할 시간과 기회를 잃는다. 그나마 덕질과 동아리 활동 정도가 겨우 숨 쉴 틈을 만들어준다.
그런가 하면, 학교(일터)에서 맺고 있는 관계가 그대로 여가로 이어진다.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트기 어렵고, 무엇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 가능하다. 큰 이변 없이 비슷한 시나리오가 반복된다. 그러다 보니 딱히 확장되는 관계도 없고, 여가 활동의 핵심인 삶의 활력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익명의 사람들과 맺는 느슨한 비대면 관계가 현실에서 맺은 관계보다 더 단단한 유대감을 맺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청소년 일(학업)의 끝은, 하교가 기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들의 과업은 잠들기 전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학교 종이 치고 나면 학교는, 교육은 제 역할을 다 했다는 듯 문을 닫는다. 청소년들은 돌봄을 담당하는 지자체 시설로, 가정으로, 학원으로 향한다. 의정부에서 청소년과 보호자 그리고 교육활동가 들은 학교 종이 친 이후의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2015년 토론회를 열었고, 청소년들은 스스로 삶을 돌볼 권리, 함께 딴짓을 할 권리를 외치며 텅 빈 경기도교육청 구 청사를 점거해 전국 첫 번째 〈자치배움터〉를 세웠다. 딴짓을 〈청소년 주도 프로젝트 활동〉이라 불렀고, 이를 교육활동으로 발전시켰다. 학업에 책임이 있는 교육청은 청소년의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활동 역시 교육의 일환이라 받아들였고, 이 공간의 이름을 공모를 통해 ‘몽실학교’라 이름 짓고 예산을 편성해 직접 지원했다. 그 후로 전국 곳곳, 공공기관이 이전한 건물, 폐교된 학교 등지에서 〈자치배움터〉가 생겨났다.
다가치학교는 서울시교육청의 주도로 국공립학교 내 〈자치배움터〉가 자리 잡은 첫 번째 사례다(*총 4개소가 있으며 내가 속한 〈다가치학교-남부〉는 서울시 오류중학교 안에 있다). 그렇게, 더욱 밀접하게 청소년의 일상에 자리를 잡았다. 이전의 〈자치배움터〉가 학교 외 별도의 공간에서 청소년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었다면, 다가치학교는 학교 안에서의 도전이자 실험이다. 학교의 단단한 울타리를 허물어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활동할 수 있도록 현장을 마련하고, 매년 200여 명의 청소년이 이곳에서 프로젝트 활동에 참여한다. 여기서 청소년들은 주도적인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방과 후, 그리고 주말과 방학이라는 틈을 여가로 채워가고 있다. 딴짓으로 치부되어 온 청소년 주도 프로젝트가 언젠가는 ‘배우는 일’, ‘학업’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오류중학교의 교육 가족인 다가치학교가 시도하고 있는 지금의 교육활동이 그 상상을 실현하는 데에 실마리가 되기를 바라며.
아무래도 학교 안에 있다 보니 일과 시간에는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 소리를 매일같이 듣는다. 오후 4시 30분에는 학교의 하루를 마치는 종이 마지막으로 울리는데, 오류중학교에서는 학교 일과를 마무리짓는 4시 30분의 종소리가 마치 다가치학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학교는 끝났지만, 청소년들은 학교에 머문다. 종이 치지 않는 주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학교는 사라지고 이곳은 10대들의 아지트가 된다. 언젠가 학교 종으로 구분되는 교육활동의 벽은 부서지리라. 아니, 학교 종이 치면 교육은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판을 깨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