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트를 아지트답게 만드는 비법
| 환대 |
환영은 서비스의 시작이고, 환대는 관계의 시작이다.
최고의 대접은, 안녕을 묻는 다정한 마음이고, 삶을 나누는 대화다.
“공사 때문에 오류중학교 학생들이 받은 피해가 커요. 급식실 가는 복도에 먼지가 너무 많았고, 소음도 심했어요. 다가치학교에는 학생, 어른 구분 없이 누구나 올 수 있다던데 이상한 외부인이 출입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
처음 다가치학교에 출근한 날, 오류중학교 학생회장에게 들은 말이다.
다가치학교는 오류중학교의 2층짜리 정보관 건물을 통째로 리모델링하여 조성됐다. 심지어 리모델링 설계도를 그릴 때, 오류중학교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도 거쳤다고 했다. 그런데도 지지부진한 공사로 다가치학교는 학생들에게 이미 미운털이 박혀있었다. 뻔한 일상이 굴러가는 학교에 갑자기 정체 모를 사람들이 찾아와 잘 지내보자고 인사를 하니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교직원들도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화요일부터 토요일은 저녁 9시까지 문을 열고, 일요일에도 학교 문을 열어 외부인을 학교 내부로 초대한다니, 그것도 적극적으로! 상식을 벗어난 낯선 존재의 등장이었다. 혹여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지, 자신에게 피해가 오진 않을지 경계하는 웅성거림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사무실 문부터 활짝 열어놨다.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놓고 오류중학교 선생님께 간단한 보드게임 몇 개를 빌렸다. 활짝 열린 문 앞에 줄을 서서 급식 순서를 기다리던 학생들은 기웃기웃 쳐다보기만 했다. 외부와 소통이 없던 원시 부족에 뚝 떨어진 외지인의 첫날이 딱 이 꼴이었을 거다.
이튿날 용기 있는 선구자 3명이 찾아와 당당하게 간식을 요구했고, 우린 점심시간 내내 보드게임을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다음 날은 그 3명이 4명을 끌고 왔고, 이내 작은 사무실이 꽉 들어 찰 만큼 학생들이 놀러 왔다. 나는 투어 가이드를 자처하여 아직 완성되지 않은 1층 공사 현장을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1층 공사가 끝나고 다가치학교가 번듯한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서도 문은 계속 활짝 열어 놓았다. 사물함에 있던 간식은 채우기 바쁘게 청소년들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청소년들은 쉬는 시간, 점심시간, 하굣길,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에 가는 길에도 왔다. 그때마다 우리는 안부를 묻고 한참 수다를 떨면서 다가치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미난 작당을 소개했다. 친구 따라오거나 우연히 지나가다가 들렀거나 SNS 게시글을 보고 호기심에 이끌려 온 청소년들에게도 일단 간식부터 권하고 대화를 시작했다. 간식을 먹고 싶다면, 관심이 가는 활동이 있다면, 마땅히 할 게 없어 심심하다면, 언제든 와도 된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우리 옆에서는 이미 활동하고 있던 청소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씩 거들곤 했다. 그렇게 우연히 처음 놀러 온 청소년은 사무실에서 우리와 수다를 떨다가 정신 차리면 어느새 그날 벌어지고 있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부지기수, 활동이 끝난 뒤에도, 예전에 활동했던 청소년, 지금도 활동하는 청소년, 그날 처음 온 청소년, 코디네이터 가릴 것 없이 눌러앉아 떠들썩하게 수다를 이어가고 간식 파티를 벌이다가 결국 사무실 직원들의 퇴근 시간인 9시가 되어 다 같이 퇴근하는 풍경은, 이제 다가치학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은 9시에 정문을 닫는 우리를 향해 이런 인사를 건넨다.
“내일 봐요!”
다가치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시작은, 입구 바로 앞, 문이 활짝 열린 사무실부터다. 간식으로 인사를 건네고, 대화로 일상을 나눈다. 함께 할 거리를 찾고 바로 실천에 옮긴다.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이들도 코디네이터를 안전한 징검다리 삼아 대화의 물꼬를 튼다. 당장 활동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할 게 없을 때, 그냥 수다만을 위해 오는 청소년도 많다. 환대하는 이 문화야말로 다가치학교를 지탱하는 가장 튼튼한 기둥이자 특별한 곳으로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환대의 시작인 사무실 이름을 〈어서오삶실〉로 지었다.
공간의 성격은, 공간과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서비스를 위한 필요의 관계인가, 특별한 시간과 사건을 경험하는 탈일상적 관계인가. 사람들은 전자로 삶을 이어가고, 후자로 삶의 질을 높인다.
몽실학교와 다가치학교는 모두 공공기관으로, 교육활동 시설이다. 청소년들은 활동하기 위해 이곳에 온다. 굳이 따지자면 목적을 가지고 찾는 곳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활동을 마치고도 집에 가지 않는 청소년들이 많다. 코디네이터들도 마찬가지다. 〈어서오삶실〉에 아예 자리를 잡아 앉고, 도와줄 것이 없냐며 오지랖을 부린다. 복도가 떠나가라 노래를 부르고 땅이 울릴 정도로 춤을 춘다. 연습실이 떡하니 있는데도 굳이 카페에서. 라면을 사 와서 다 같이 끓여 먹기도 하고,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굉장한 수다 판이 열리기도 한다. 이들 〈자치배움터〉가 비록 공공기관, 즉 목적성은 띤 공간이긴 하지만, 이들 공간이 사람과 관계 맺는 방식이 후자에 해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목적을 다 해도 머무를 수 있는 곳,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나의 가장 편안한 모습이 자연스레 나오는 곳, 우리는 그런 공간을 아지트 삼게 된다. 그런 아지트가 생기면, 누군가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하고픈 마음이 차오른다. 동시에 나만 알고 싶은 기분도 동시에 드는데, 그래서 아지트는 가깝고 친한 관계 사이에서만 공유된다. 이런 관계는 시간이 쌓여야 생긴다. 마침내 가까워지고 신뢰하게 된 누군가를 아지트로 초대하고, 그가 그곳에 첫발을 내딛는 그 순간의 설렘을, 누구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어떤 공간을 아지트 삼고 이용하는 데에는 어쩔 수 없이 비용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비용을 댈 자원이 없는 청소년은 어떻게 아지트를 마련할 수 있을까? 청소년 시설은 대개 아지트라는 이름으로 게임기와 당구대, 보드게임 등을 두고 공간을 조성해 놓는다. 하지만 태생부터 ‘아지트가 되겠어!’라고 외치며 만들어진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아지트가 되기는 매우 어렵다. 자칫 잘못하면 콘텐츠만 즐기고 휙 떠나버릴 이용자들만 늘어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아지트를 만들려면 전략이 필요하다. 아지트를 아지트답게 하는 건 갖춰진 시설이 전부가 아니다. 특별한 경험, 쌓여가는 추억, 거기서 피어나는 관계 사이에서 공간은 자연스럽게 아지트가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첫 걸음은 열띤 환대이다.
나는 어떤 공간에 가든지 주 출입구에 붙어있는 글을 아주 자세하게 읽는 편이다. 공간이 지향하는 목표, 그 공간이 사용하는 핵심 단어에서 문화를 엿보기 위함이다. 학교마다 주 출입구에는 교훈, 비전과 목표가 잘 정리되어 걸려 있다. 하지만 늘 어렵게 읽어내고, 너무 쉽게 까먹는다. 구성원의 생각과 관계 없이 기관에서 일방적으로 내세운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몽실학교와 다가치학교는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정의하는 작업을 거쳤다. 그리고 그 내용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다.
몽실학교 꿈터 약속
• 먼저 다가갑니다(친한 사람보다는 처음 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갑니다).
• 모두가 평등합니다(나이, 성별, 학력, 직업, 장애 등으로 차별받지 않습니다).
• 자신이 사용한 곳은 스스로 정리합니다.
• 내 생각을 주장하기 전에 먼저 듣겠습니다.
• 느리고 더딤을 기다리며 함께 만들어 갑니다.
•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찾고 함께 배움을 만들어 갑니다.
• 모든 일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나의 선택과 참여에 책임을 지겠습니다.
― 몽실학교 공동체 약속
다 같이, 다가치 하자!
• 다가치학교에서만큼은 걱정 없이 즐기기
•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기
• 지금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하고 싶은지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이야기하기
• 스스로 주인이 될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기
• 모두의 안전을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기
• 나를 존중하지 않는 말, 상황, 행동에 불편하다고 말하기
• 먼저 인사하고 새로운 사람을 환대하기
― 다가치학교 선언
공간이 지향하는 문화를 한 문장에 담는 작업은 어렵다. 또 잘 담아내어 슬로건을 멋지게 짓더라도 슬로건의 존재를 잊은 양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다. 몽실학교의 슬로건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것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자!’였고, 다가치학교 슬로건은 ‘다 같이, 다가치하자!’다. 이 한 문장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가 납득하고 공감하며 실천해야 한다. 공간 운영이란 결국 이 한 문장이 살아있는 문장이 되도록 유지하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간을 정의했다면, 이제 그곳의 구성원들을 매력적으로 호명할 차례다. 그 공간에서만 효과를 발휘하는 언어, 즉 은어처럼 통용되는 언어는, 단단한 소속감과 유대감을 만들어 준다. 〈티티섬〉은 성남에 위치한 청소년 도서관이다. 그곳에서는 온갖 환대로 청소년을 맞이한다. 학생, 청소년 같은 호칭을 떼고 모두 ‘용자’가 된다. 이용자를 줄여 용자라 하는데, 이름에 걸맞게 이 용자들은 ‘용자(용기 있는 자)’가 되어 공간을 휘젓는다. 용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고, 공연도 열고, 굿즈를 만들어 팔기도 하는데, 그들의 옆에는 늘 ‘영자’, 운영자들이 함께 있다. 용자들은 아지트에 제대로 놀러 간다.
다가치학교에서도 청소년을 부르는 호칭이 있다. 그리고 호칭부터 자신들이 직접 정했다. 그렇게 불리겠노라고. 공간의 환대하는 문화를 직접 꾸려간다는 의미를 지닌, 꾸리. 꾸리는 환대를 받는 귀한 존재이자, 아지트의 주인장으로서 서로를 환대하는 문화를 만들어 간다. 나이나 직업에 따라 호명되는 방식이 아닌, 공간의 특성에 맞는 호칭으로 불림으로써 그들은 공간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호명되는 말이 사람들의 행위와 태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나아가 꾸리와 코디네이터는 각자 스스로 불릴 이름, 별명도 정한다. 스스로 짓는 이름에는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무엇, 혹은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담긴다. 이곳은 동식물과 괴물, 음식과 자연, 외계인이 공존하는 이상한 곳이다.
공간을 정의하고 소속감으로 서로를 호명했으니, 행동 양식은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공간과 사람 사이에서 시간이 흐르고 이야기가 쌓이면서 문화가 된다. 그리고 그 문화와 행동 양식을 드러낼 수 있는 우리만의 표현도 생긴다.
2024년, 다가치학교는 신입 직원을 채용했다. 그의 별명은 와락. 인생 첫 직장을 다가치학교로 오게 된 그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난관에 봉착했다. 일을 하면서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은어가 하나 있다는 거였다. 그는 어려움을 토로하며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다가치스럽다는 게 뭐죠?”
이미지와 감각, 느낌으로 남아있는 이 말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나조차도 말문이 턱 막혔다. 다가치스러운 건 다가치스러운거다. ‘다가치스러움’은 구성원 모두 자주 쓰는 말이었고, 특별히 번역할 필요를 못 느꼈던 말이다.
시간이 조금 흘러 와락과 회의를 하다가 와락이 먼저 이런 말을 했다.
“이건 좀 다가치스럽지 않은데요?”
나는 와락도 비로소 우리의 문화에 스며들었다는 걸 눈치 채고, 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은어에 호탕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스럽다’를 굳이 깔끔하게 정의하지 않더라도 그 의미는 공간 안에 살아있다. ‘다가치스럽다’처럼 자리 잡은 말은 ‘다가치하러 간다’다. 다가치학교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꾸리들이 보호자와 연락을 취할 때, “나 오류중(학교)에 있어.”라고 말했다. 이 공간의 문화가 아직 자리 잡기 전이었다.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 꾸리들의 언어는 “다가치하러 왔어.”로 바뀌어 있었다. ‘다가치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것은 꾸리 당사자의 몫이다.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또 설득해 내어 아지트로 발을 들여온 꾸리들의 용기와 노력이 지금의 다가치학교를 만들었다.
정부, 지자체에서는 종종 청소년 당사자들과 청소년 정책 수립 아이디어를 모으는 공론의 자리를 마련한다.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정책 중에는 항상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 마련하자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각 지자체에서도 다양한 청소년 공간과 시설을 동네마다 만들어 놓았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청소년 시설, 활동 공간이 고질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가 있었으니, 정작 찾는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물리적인 시설이 조성되었더라도 사람과 공간이 ‘진짜’ 관계를 맺어야 사람이 흐른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환영은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고객을 유치하지만, 정성스레 관계를 쌓아가는 환대는 문화와 소속감을 만든다. 공간에 들어서며 진짜라는 감각이 느껴질 때, 공간을 떠나면서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몰라 아쉽다라는 생각이 들 때, 특별히 아지트라 부르지 않아도 그곳은 이미 아지트가 되어 있는 셈이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내가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 되어야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인 공간이 된다. 이 당연한 명제를 잊은 곳은, 그저 겉만 번지르르한 시설에 불과하다.
[학교에서 교육활동이 끝나는 방과 후와 주말, 학교는 나이와 지역 상관없이 모든 청소년의 아지트가 된다.]
다가치학교를 소개하는 아주 간단한 이 소개 한 줄이 담고 있는 가능성은, 그 어떤 정책보다 청소년의 삶을 확실하게 바꿀 힘을 지녔다. 청소년들은 학교라는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가장 비일상적인 특별한 경험을 한다. 그 비일상적인 경험이 일상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하고 풍족한 삶이 있을까.
다가치학교에서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 있다. 문을 나서는 꾸리들이 뒤를 돌아보며 웃으며 건네는 말.
“얼룩! 내일도 올 거예요. 내일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