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교육을 넘어서 공동체 교육으로
| 마을 |
이제 마을은 자연스레 주어지지 않는다.
사는 동네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관계가 마을이다.
신뢰하는 동료, 이웃과 단골이 늘어날수록 내가 살아가는 마을은 단단해지고 이 단단한 유대는 삶을 지탱한다.
21명의 또래 동료들은 인터뷰한 작업에서 가장 모호하게 사용하고 있는 단어는 마을이었다. 다들 스스로 마을교육공동체에 관련되어 있다고 소개했고, 교육활동을 하면서 마을을 느꼈다고도 했다. 그들만큼이나 나도 마을이라는 단어가 붙은 사업과 정책을 따라다녔다. 그러나 정작 마을이 무엇인지 제대로 짚고 넘어가려 할 때마다 대화는 갈피를 잃었다. 나 역시 마을이 무엇인지 제대로 짚고 넘어간 적이 없었다. 같은 행정 구역을 의미하는지, 행정 구역이 다르더라도 생활에 교집합이 생기는 곳인지,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동료 집단을 부르는 말인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 넘어가기 일쑤였다. 사전에서는 ‘여럿이 모여 사는 것’이라고 정의하지만 우리는 그 단어가 품고 있는 행동 양식과 이미지를 의미 삼아 쓴다. 모두 비슷한 이미지를 그리고 있어 또렷하진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해석할 수 있었다. 왠지 따뜻하고, 정겹고 복닥거리는 분위기. 마을은 좋은 것. 딱 그 정도로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잠깐. 그나저나 마을을 느낀다는 건 또 무슨 말일까?
홍동마을에 마을교육공동체를 배우러 탐방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교육활동가는 방금 농사를 마치고 온 듯한 복장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그분은 마을교육공동체 정책과 사업을 ‘교육이 지역성을 지향하면서, 지역의 교육력을 높이는 것’이라 설명했고, 그것이 얼마나 명쾌했으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이 또렷이 기억난다. 말하자면, 학교는 마을에 대해 가르치고, 마을 주민들은 교육 역량을 키워 마을 콘텐츠를 개발해 교육 현장으로 들어가는 순환. 그 과정에서 청소년은 마을과 지역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역에서 자립할 힘을 키운다. 주민들의 역량이 커지면 자발적으로 단체, 협동조합 등의 형태로 뭉쳐 마을교육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의 주요 골자다.
마을활동가들, 즉 무리 짓기의 장인들은 함께 사는 삶을 지향하며 살아 왔다. 그들의 노력으로 마을은 존속해왔다. 지역, 조금 작은 범위로는 동네에 살거나 생활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일상을 지지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왔다. 이렇게 맺어진 공동체는, 지역에 문제가 생기면 연대하여 힘을 모았고, 구성원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서로를 돌보는 안전망이 되었다. 마을에 자리를 잡은 공동체는 자연스레 그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동, 청소년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공동 육아, 서로 돌봄 등의 방법으로 함께 아이를 키웠다. 활동가들은 생활 터전 가까이에 주민들과 청소년들이 편하게 머무를 수 있는 아지트를 만들었다. 그 역사와 힘이 뻗어나가 동네, 지역, 그리고 한국에 사는 모든 아동, 청소년이 잘 배우고 잘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커졌다. 그것이 마을교육이었고, 교육 운동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구조의 학교는 교사가 아닌 교육활동가들의 전문성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 학교와 마을이 머리를 맞대고 교육과정을 고민하며 실행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자유학기제, 방과후 수업, 교육과정 중 일부분, 체험 활동 정도가 대부분이다. 그마저도 고등학교에선 거의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는다. 결국 교사들이 직접 교육과정을 구성하게 되는데, 교사들은 일정 주기마다 학교를 옮겨야 하니 학교가 위치한 마을을 제대로 알 방법도 시간도 없다. 결국 마을의 교육활동가들은 공모 사업 등을 통해 학교와 분리된 채 별도의 교육과정을 설계해서 운영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교육과정에 참여할 청소년 모집에 큰 난항을 겪는다. 마을교육 활동가들이 좋은 교육 과정을 개발해서 학교의 문을 두드려도 쉽게 협력할 수 없고, 결국 서로의 오해는 쌓여 소통할 창구는 점점 더 닫혀간다. 그러니 앞에 마을이 붙은 정책과 사업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애매하고 모호한 사업으로 전락했다.
의외로 행정에서는 명확한 기준이 있었다. 몽실학교의 전신은 의정부교육지원청에서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의 일환으로 지원받은 〈꿈이룸학교〉로, 초기 몽실학교의 기틀을 다졌다. 그때 당시 의정부가 아닌 양주나 동두천에 사는 청소년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왜 다른 지역 청소년이 의정부에서 활동하느냐며, 교육청이 트집을 잡았다. 2년 뒤, 몽실학교가 경기도교육청 업무로 이관되면서 양주 청소년은 몽실학교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땐 또 서울에서 몽실학교로 활동하러 오는 청소년들을 문제 삼았다. 아, 부질없어라. 더군다나 가장 큰 모순은 청소년의 삶에 남겨졌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캐치프레이즈를 써온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지금 청소년들은 자신이 사는 마을에 관한 내용을 배우고, 마을을 주제로 활동도 한다. 그러나 당장 청소년들에게 마을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물으면, 갸우뚱, 물음표가 돌아온다. 본인도 마을에서 자랐을 텐데, 마을이 무엇인지는 알면서도 정작 그 실체에는 다가가지 못하는 웃픈(웃기고도 슬픈) 아이러니다.
전국 곳곳에서 마을이라는 이름의 공동체를 만들어온 활동가들의 노력이 사회적 인정을 받아 체계가 생기고 지자체와 교육청은 공공예산을 편성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을은 정책이자 사업이었고, 공공서비스였다. 그리고 이때의 ‘온 마을’이란, 정책과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마을의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또 그들에게 마을에 대해 가르쳤다. 하지만 빠르면 초등학교 고학년, 적어도 고등학생이 되면 아이들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입시를 준비하는 현장으로 바뀐다. 상위권 대학, 성적에 맞는 대학을 찾아 지역을 떠날 준비를 시작한다. 그러니 청소년의 삶에 마을의 의미가 가닿지 않을 수밖에 없다. 청소년은 결국 자신이 살아온 마을을 떠나야 하는 교육을 받게 되니까.
다가치학교에서 1년이 지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 했을 때, 교육청에서 전화가 왔다. 이제부터 ‘마을결합형’ 〈청소년자치배움터〉가 아니라 ‘지역연계형’ 〈청소년자치배움터〉로 수정해야 한다고. 마을에서 지역으로, 단어만 바뀌었다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이유는 뻔했다. 한국 교육에서 ‘마을’은 정치성을 강하게 띠는 단어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지자체장, 교육감의 진보, 보수 성향에 따라 이름에 ‘마을’이 붙은 사업의 존폐가 결정되어 왔다.
늦었지만 마을의 말그릇을 다시 빚어야 한다. 예전 마을에서는 사람 냄새가 났다고 한다. 조금 과한 표현으로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알 정도로 이웃과 가까웠다. 지나가는 청소년을 보면 어느 집 자식인지 알 수 있었다. 소문이 원체 빠르니 연애 소식은 숨길 수 없었다고…….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자녀들을 맡길 믿음직한 이웃이 있었다. 함께 김장하고, 일부러 음식을 많이 해서 나눠 먹었다. 아득한 향수를 탐험하는 듯한 선배들의 마을 이야기는 참 살갑고 정겹다. 안타깝지만, 난 그런 마을에 살아본 적이 없다.
이웃들과의 대화로 소식을 전해 듣던 때와 다르게 세상의 갖가지 정보가 손안에 쥐어져 있다. 품앗이의 자리에는 상품과 서비스, 복지가 들어서고,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지다 보니 자는 곳과 일하는 곳, 노는 곳이 모두 달라졌다. 빈번하게 이사를 한다. 더 살기 좋은 환경에 살고 싶어서, 바뀐 일터 때문에, 때로는 불안정한 주거 계약 문제 등의 이유로 살던 곳을 쉽게 떠난다. 금방 떠날 수도 있는 이웃들과는 정을 붙이기보다 서로에게 피해나 주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아쉽지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모습이다.
청소년은 가족과 친구, 선생님과 주로 일상을 보낸다. 겨울방학이 되면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어야 한다며, 혹은 같은 반이 되기 싫은 이들과 떨어지고 싶다며 간절히 기도한다. 새로운 학교로 진학하게 되면 부디 잘 맞는 친구가 같은 반에 있기를 바라고, 또 밥은 혼자 먹지 않을까 걱정을 한아름 털어놓는다. 자신과 잘 맞는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으로 배정되길 기대한다. 새 학년을 맞이한 3월, 〈어서오삶실〉로 들어오는 꾸리들의 표정만 봐도 그들의 기도발(?)의 효험(?)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친해진 친구들과는 쉬는 시간, 점심시간을 함께 보내고 방과후나 주말 할 것 없이 같이 논다. 그런 관계가 틀어지는 순간, 학교는 곧바로 지옥이 된다. 이건, 틀 지어지고 임의로 조성된 관계가 지닌 한계다. 청소년에게도 관계를 직접 꾸려갈 수 있는 현장이 필요한 이유다.
다가치학교가 강조하는 청소년 사이의 관계는 동료다. 서로 존중하며 존대로 관계를 시작하고 별명으로 서로를 호명한다. 활동하는 중간에 새로운 동료가 유입되기도 한다. 비슷한 관심사와 취향을 가지고 있지만,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나이, 지역, 학교의 청소년을 만나 함께 과정을 헤쳐 나가며 무엇인가를 이뤄가기 위해 힘쓴다. 친구였던 사이가, 활동할 때에는 동료로 변한다. 활동이 끝나면 친구가 되기도 하고 깔끔하게 관계가 끊어지기도 한다.
또 청소년은 활동을 통해 솜씨가 좋은 사람들, 소위 전문가들과 연결된다. 2023년 겨울방학, 카페 팀은 ‘라떼아트’를 제대로 해보기 위해 모였다. 여러 시도를 해보다가 난관에 부딪히자 라떼아트 기본 제조법을 배우고자 가르쳐줄 전문가를 찾았다. 주변을 수소문해서 유능한 바리스타 강사를 섭외할 수 있었지만, 코디네이터 앙꼬는 청소년에게 이런 편리한 방법을 제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추운 겨울 그들과 함계 밖으로 나섰다. 다가치학교 주변 카페를 일일이 방문해 직접 취지를 설명하고, 대뜸 물었다.
“사장님 라떼아트 할 줄 아세요?”
여러 곳을 방문하던 중 커피에 진심인 사장님 한 분을 만났고, 그는 라떼아트 고수였다. 그를 장인으로 모셔 와 카페 팀은 라떼아트를 배웠다. 사장님은 한 번도 누군가를 가르쳐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가치학교에서의 경험이 아마 처음었으리라. 사장님만의 비결을 전수해 주었고, 좋은 원두를 추천해 주었다. 커피 머신을 다루는 법도 가르쳐주었다. 커피를 내릴 때 진심을 다해야 맛 좋은 커피가 나온다고도 덧붙였다. 사장님은 그후 두어 번 다가치학교에 방문해 기계 상태를 점검해 주셨다. 비록 사장님이 운영하시던 카페는 이전하여 그 자리에는 없지만, 우린 여전히 사장님의 커피, ‘에이스 카페’를 그리워한다.
다가치학교에서 청소년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솜씨, 장인을 만난다. 직업 체험 프로그램에서 만나는 멋진 직업인이 아니라 지근거리에서 활동하는 장인들을 초대하고 그들이 서툴게 선보이는 진심을 본다. 솜씨에게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듣는다. 솜씨의 도움으로 프로젝트 활동은 한 단계 나아간다. 비록 한 번 내지 두 번의 짧은 만남이지만 청소년들은 이를 통해 솜씨들이 짓고 있는 무언가를 잠시 들여다보는 경험을 한다.
다가치학교는 ‘나를 둘러싼 관계’를 다양하게 하는 데에 집중한다. 나를 둘러싼 관계, 그것이 곧 마을이고, 네트워크다. 네트워크는 연결되어 작동한다. 우리는 겹겹이 쌓인 관계의 소용돌이 안에 있다. 한 사람이 얽힌 관계는 상당히 복잡하며 계속해서 변한다. 이전 장에서 썼듯, 사람뿐만 아니라 공간과도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인간은 관계 속에서 배운다. 관계로 힘을 얻기도 하고 좌절도 겪는다. 인생에 새로운 길을 걷게 만드는 계기도 관계에서 움튼다.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 역시 결국은 관계 안에서 생겨난다. 만나는 세계가 넓어질수록 관계는 다양해지고, 관계와 경험이 다양해질수록 그 안의 나는 더욱 또렷이 드러난다.
선배들의 기억 속 마을, 공동체 운동으로써의 마을, 주체적 관계를 쌓아가는 행위로써의 마을. 이 세가지 마을은 의미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으니 마을이 갖추어야 할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는 점이다.
첫째는 아랑곳이다. 우리는 종종 아랑곳하지 말고 뭐든 해보라며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사람을 응원한다. 이때 아랑곳은 ‘나서서 참견하거나 관심을 두는 일’이라는 뜻인데 쉽게 말해 오지랖이다. 잘 생각해보면 관계를 시작하고 이어가고 또 깊어지며 넓어지기까지 가장 중요한 건, 의외로 오지랖이다. 단,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살가운 오지랖. 아랑곳하는 마음이 쌓이면 그게 마을이고 네트워크다.
두 번째 조건, 파티, 축제의 존재다. 파티는 구성원들의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이벤트다. 마을의 구성원들이 모두 힘을 모아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대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안녕을 확인한다. 마을의 구성원 각자가 작은 역할이라도 하나씩 맡아 파티를 채운다. 몽실학교와 다가치학교 역시 파티와 축제에 진심이다. 거의 매달 한 번씩 파티를 연다. 핼러윈 파티, 크리스마스 파티부터 방 탈출 파티, 덕질 파티 등 예상치 못한 파티들도 매년 튀어나온다. 또 지역에서 벌어지는 축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생태공원에서 벌어지는 주민 축제, 동주민센터에서 여는 마을 축제, 구청에서 성대하게 여는 청소년 축제까지. 매년 축제, 파티 스케줄만 보면 다가치학교는 교육활동 기관이 아니라 축제 기획사는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체험 부스를 열고, 음식을 만들고, 공연을 올리고. 특별한 하루를 준비하기 위해 다 같이 노력을 쏟고, 즐기다 보면 다른 활동을 하는 동료들과도 자연스레 연결된다. 눈에 잘 보이지 않던 서로를 연결하는 관계의 매듭이 비로소 손에 닿는다. 그렇게 우리가 관계로 엮여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 우리들이 곧 마을이란 걸 깨닫게 된다.
다가치학교를 시작하면서 정한 목표다. 단골은 단단한 유대감의 증거다. 이용자는 친절한 환대로 아지트에 발을 들여 그곳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유대감을 쌓는다. 관계가 깊어져 단골이 되면 늘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고 마치 주인장처럼 또 다른 이용자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인다. 무엇보다 방문에 특별한 목적을 갖다 붙이지 않고도 찾게 된다. 그냥 가는 거다. 신뢰하고 특별한 관계가 넘치는 나의 단골집으로.
꾸리들은 성인이 되면, 다가치학교에 청소년의 자격으로는 더 이상 공간에 머물 수 없다. 이들은 성인이 되면 코디네이터가 될 거라고 다짐한다. 새로운 역할로 이곳에 머무르겠다고 선언한다. 코디네이터를 하지 않아도 지금처럼 편하게 올 수 있는지 묻는다. 이런 단골이 100명만 있다면 다가치학교는 백년대계 교육기관(?)이 될 수 있을 거다!
마을에서 배운다는 것. 마을을 배운다는 것. 그것은 청소년이 마을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또한, 주어진 관계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는 경험이기도 하다. 비록 시대의 특성상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삶을 살게 되겠지만, 옮기는 자리마다 계속해서 동료를 사귀며 아랑곳할 네트워크와 마을을 만들고, 삶을 지지할 무리를 지어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 가능성을 실험하고 자신만의 마을을 만드는 공동체 역량인 ‘마을력’을 키우는 배움터가 바로 우리가 지으려는 마을이다.
학교를 포함한 지역의 교육 네트워크는 청소년들에게 복닥거리는 마을의 따뜻하고 살가운 감각을 일깨우고, 지역의 풍부한 인프라를 통해 청소년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마음껏 다양한 관계를 만들어보고 더 깊이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교육활동 현장을 만들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이 문장에서조차 청소년은 수동적인 존재다. 청소년에게 조성된 관계를 계속해서 쥐어주기만 할 것인가.
청소년 스스로 네트워크로, 마을로 뻗어나갈 교두보, 거점이 되자.
고로, 사람이 잘 살아가는 데에는 자신만의 마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