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교육을 바라보는 새로운 페러다임
| 진로 |
진로는 다양한 경험과 관계 속에서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과정이다. 삶을 주도적으로 이어가는 행위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을 꼽으라면 열 명 중 절반은 루브르 박물관을 떠올릴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왜 유명할까? 38만 점의 유물과 작품 중, 사람들은 특히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에 간다. 미술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의 걸작, 〈모나리자〉는 안다. 그럼, 왜 사람들은 모두 〈모나리자〉를 알고 있을까? 단지 눈썹이 없다는 그림의 상징만으로는 그 유명세를 설명해 주진 못한다. 정답은 간단하다. 전 세계인이, 모든 미디어와 미술, 역사 수업에서 〈모나리자〉가 위대한 그림이라고 배우기 때문이다. 유명하다고 하니 유명한 거다.
바로 그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은 몰려들었고,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루브르 박물관로 들어가는 입구에 줄을 선다. 나도 그 줄에 섰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입구가 여러 곳이 있는데, 어디로 들어가든 〈모나리자〉가 있는 방까지 단번에 찾아갈 수 있다. 곳곳에 ‘모나리자 보러 가는 길’이라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나리자〉가 있는 방에 들어가도 관람은 쉽지 않다. 그 인파를 뚫고 기다려야 먼 발치에서나 겨우 볼 수 있다. 작품 보호를 위해 거리를 두고 관람해야 하기 때문에 눈썹이며, 신비한 눈동자며, 잘 보이지도 않는다.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루브르 박물관까지 가서 오랜 기다림 끝에 마주한 〈모나리자〉는 그 값비싼 노력에 충분한 보상이 되지는 못했다.
(심지어 어떤 예술 평론가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제일 재미있는 포인트는, 〈모나리자〉를 보고 실망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이라며 핀잔을 늘어놓았다. 그런가 하면, 그림도 쉴 시간이 필요하기에, 도난당한 전적이 있기에, 그 유명한 그림이 늘 진품으로 전시되지는 않는다는 공공연한 루머가 떠돌기도 한다.)
진로는 ‘모나리자를 보러 가는 길’과 비슷하다. 청소년은 좋은 대학을 모나리자 삼아 고된 학업 길에 오른다. 좋은 대학이란 막연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내가 갈 수 있는 대학교(전공 학과)를 일컫는다. 진로와 입시 상담을 받으면 대학교 리스트를 펼쳐두고 목표로 한 대학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목표 성적을 알려준다. 당장 대학 진학 외에 대안이 없다면 포기해선 안 된다. 특별한 기술을 배우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거나 학교 제도를 벗어나는 청소년도 많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모나리자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온 세상이 묻는다. ‘남들은 다 모나리자 보러 가는 비행기에 타는데 넌 포기할 거니?’ 다양한 가능성을 향한 용기가, 곧 유일한 최적 루트를 포기하는 것이라 단정하며 묻는 말에 해명해야 하고, 스스로 증명해 내야 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진로 체험 프로그램이나 행사가 많아졌다. 수많은 직업인이 학교와 박람회장으로 초대되어 본인이 가진 직업의 장단점, 그리고 어떻게 그 직업이 될 수 있는지를 소개해 준다. 그들은 어떤 대학, 학과에 진학해야 하는지, 어떤 자격증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되도록 그 준비를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고 조언한다. 이러한 강의형, 체험형, 정보 제공형 진로 교육의 한계는 누구보다 청소년이 잘 알고 있다. 필요한 정보는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나는 매년 청소년이 직접 해결하고 싶은 사회, 교육 문제를 찾아내어 정책이나 캠페인의 형태로 해결 방안을 제안하는 활동을 여러 곳에서 진행하는데, 그때마다 가장 해결하고 싶은 문제로 뽑히는 것이 바로 단기 진로 체험 프로그램이다. 내가 만난 청소년들은 자신이 직접 관심 있는 주제를 탐구해 보고 해당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해 보는 활동이 훨씬 효능감이 높은 진로 교육이라 말했다. 많은 청소년 활동 기관, 교육 프로그램 기획자 역시 현장에서 청소년이 더 넓고 깊게 진로를 상상할 수 있도록 활동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진로를 향해 나아가는 길목에서 상대평가 중심의 입시 제도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주의가 이 모든 노력을 무색하게 만든다. 청소년들은 점수로 매겨지는 시험 성적을 조금이라도 올려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기록으로 남지 않는 다양한 활동과 경험에 온전히 몰입하기 어렵다. 공부해야만 한다는 조바심과, 그럼에도 다양한 활동을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을 탓하는 청소년들의 죄책감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그들이 시험 점수를 보고 (인생) 망했다고 자신을 스스로 저주하는 건, 그 시험 성적 한번 한번이 나의 진로,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관문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번에 떨어진 성적은 즉시 다음에 만회해야 하는 점수이자 압박으로 돌아온다. 그 주기가 겨우 3개월. 성인이 되면 무엇을 제대로 배워볼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어떤 삶을 살지 고민할 시간과 기회가 턱없이 부족하다.
청소년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아직 못 정했어요.”, 조금은 냉소적으로는 “없는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올 때가 있다. 그렇게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움츠러든 마음도 모르고 너무 쉽게 “요즘 청소년들은 꿈이 없어, 꿈이.”라고 혀를 끌끌 차는 어른들이 너무나 많다. 참, 이 못난 세상은 꿈을 묻는 단순히 말뿐인 질문에도 청소년을 주눅 들게 만들어 왔다.
진로는 나아가는(進) 길(路)이다. 이때 길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다. 사람의 길은 갈림길에서 선택을 강요한다. 구불길과 직선도로, 또 오르막과 내리막 등등. 길이 만들어진 대로 따라가기만 하는 것은 진로가 아니다. 나아간다는 의미의 진(進)은 천천히 걷는다는 부수와 새(隹)가 결합했다. 즉 새가 날아가는 길이다. 진로는 여러 갈림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날아갈 방향을 고르고, 길을 직접 만드는 새의 비행, 새가 나아가는 길을 뜻한다.
나는 다양한 활동으로 진로를 찾아가는 멋진 청소년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을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겠다. 모험가, 덕후, 오지라퍼(남의 일에 지나치게 상관하는 사람)다.
모험가는 해보지 않았던 도전에 기꺼이 뛰어드는 사람이다. 호기심이 많다 보니 교육활동에 적극적인 태도로 참여한다. 학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현장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들은 스스로 확신을 가진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 몰두하고 뛰어든다. 또 성적이나 점수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교육 활동의 성취를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놀라운 유, 무형의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모험가들은 학습 동료들이 함께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돕고, 격려하며 무리를 이끈다.
두 번째는 덕후들이다. 이들의 진로는 사소하지만 특별한 계기로 인해 시작된다. 예를 들면 학교 동아리에 푹 빠지거나,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인정받고 싶거나, 우연히 시작한 활동이나 취미에 꽂히는 경우다. 그들의 몰입도와 전문성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다. 다만 본인이 하고 싶은 것, 관심 있는 주제에 완전히 빠져서 그 외 것들에는 흥미가 쉽게 생기지 않고 참여도 인색하다.
마지막으로 오지라퍼다. 무엇이든 함께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주변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들이 오지랖, 아랑곳을 마음껏 부릴 수 있는 공간, 공동체를 만나면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그는 그가 속한 곳을 거점으로 네트워크를 쌓아가며 경험을 하는 것에 편식 없이 흡수하고 삶을 주도한다. 경험 자체에 몰두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를 고민하고 또 실행에 옮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세 가지 유형의 공통점은 경험이다. 어떤 경험을 했는가. 지금 무엇에 진심으로 몰입하고 있는가. 또 그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다음 단계로 이어가는가.
다가치학교에도 단순히 모범생이라고만 소개하기 아까운 멋진 학습자들이 서로 어울린다. 의미 있는 활동을 찾아온 모험가들은 이곳에서 관계를 배운다. 덕후들은 나만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의 재미를 알아간다. 오지라퍼들은 가장 많은 시간을 다가치학교에서 보내며 구체적인 자신의 취향을 발견한다. 아직 선뜻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청소년도 많다. 우리의 전략은 이들을 일단 단골로 만드는 거다.
진로, 진학 체험 박람회 현장으로 가보자. 청소년들은 많은 부스 중 관심 있는 부스에 방문한다. 간단한 직업 체험을 해보고 이야기를 듣고, 홍보 전단을 받아온다. 그중 인상 깊이 남은 부스의 홍보 전단들은 책상 위에 있다가 이내 자취를 감추고 점점 그 기억이 흐려질 것이다. 단순히, 체험은 일시적이고, 경험이 장기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누가 주도하는가’가 경험과 체험을 나눈다. 상황을 기획하고, 주도하며 해석을 통해 성취감이나 성찰로 이어지는 것이 경험이다. 하나의 이벤트로 마주하는 체험은 진행자의 기획 의도를 열린 마음으로 잘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체험은 결국 조금씩 기억에서 흐려지기 마련이다. 체험을 경험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교육의 몫이다.
‘진로 진학 체험 박람회’가 전체 교육활동의 과정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학생들이 찾아오는 직업인, 혹은 학과에 대해 연구도 해보고, 중요한 현안도 조사하면서 대화거리를 만들어서 박람회에 간다면 그 현장은 완전히 다른 판이 된다. 부스에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가 오가며 짧지만 관계가 생긴다. 박람회에서 겪은 일과 나눈 대화를 함께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때 비로소 학생 개개인에게 경험으로 남는다.
교육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체험을 학습자 개개인의 경험으로 발전시키는 일이다. 학습 경험이 쌓이면 그것은 나 다움을 찾아가는 날개짓에 필요한 근육이 된다. 그리고 우린 그 근육을 진로 역량이라 부른다. 수많은 청소년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쫓기듯 시간을 쓴다. 반면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 어디를 향해 나아갈지 충분히 고민해보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쌓인 역량은 이내 스스로 정한 진로로 나아갈 추진력이 된다. 뿐만 아니라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대안을 찾아내는 탄력적인 삶의 태도도 이 진로 역량에서 만들어진다.
진로 역량은 자신의 경험을 직접 글로 적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글에는 다른 사람이 대신 써줄 수 없는 살아있는 경험이 담겨있다. 온 마음을 쏟고,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고,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려 애 써온 그 모든 서사가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학습자가 경험하게 만드는 교육활동은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어려운 일이다. 공급자도, 학습자도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는 간단한 체험만으로는 설득력 있는, 아니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없다.
여기 자신의 경험이 진하게 우러난 글들을 몇 개 소개한다. 다가치학교에는 특별한 관례가 하나 있는데, 외부 손님이 가장 많이 오는 축제에서 ‘올해의 꾸리(학습자)’가 손님들을 환대하는 인사를 올린다. 1년 동안 다가치학교에 애정을 제일 많이 쏟았다고 모두의 인정을 받는 꾸리가 환영사를 맡아왔다. 지금까지 연단에 올랐던 총 5명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사실 저는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을 어려워했어요. 사람이 많거나 시끌벅적한 곳을 싫어했죠. 다가치학교를 하면서 가장 먼저 성격이 바뀐 것 같아요. 활동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하는 상황에 놓이니 먼저 말을 걸 수밖에 없더라고요. 서로 알아갈 수 있게 되니 더 많은 친구도 생겼어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관계를 맺다 보니 저도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 같아요.
하다보니 (다가치)자치회 대표까지 맡아서 앞에서 다가치학교를 대표해서 환영사도 하고 있고요. 저는 원래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다가치학교가 생기면서 학교가 놀 수 있는 곳,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곳, 머물고 싶은 곳이 되었어요.
― 2022.07.20. <다-활짝 개소식> 환대 인사 중 일부, 당시 15세 삐딱이
제가 다가치학교에서 다양한 주제의 활동을 하면서 관점들이 많이 바꼈어요. 연애뿐 아니라 우리가 같이 살아가는 이 공동체도 사랑이라는 것이죠! 이것 외에도 정말 많은 것들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솔직히 예전에는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는데 이젠 다가치학교에서 가족 이외에 사랑과 응원들을 정말 많이 받아서 공연도 많이 해보고 지금은 이렇게 꾸리 대표로 다가치학교를 말씀 드릴 수 있는 기회도 생겼습니다.
…
다가치학교에서 받은 사랑과 응원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걸 찾음과 동시에 혐오가 아닌 존중을, 개인의 이익만이 아닌 공동체의 중요성을,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대신 나다움을 찾을 수 있는 청소년들이 많이 생기기를 바라요.
― 2023.02.25. 〈다-축제〉 환대 인사 중 일부, 당시 17세 베베
이제 다가치학교와 인간 미학자의 유기적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게요. 사실 이 얘기가 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올라온 감도 없잖아 있거든요.
저는 다가치학교를 제 마음의 고향. 홈타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가 집 근처기도 하고 본인이 오류중학교를 졸업하기도 했지만, 지리적인 사유 때문은 아닙니다. 아마 정겨운 공간에서 나를 기억해 주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모르는 사람들도 많긴 합니다. 그래도 다가치학교가 아니면 제가 어디서 이렇게 다양하고도 낯선 사람들을 만나보나 싶기도 하고요. 다가치학교는 나눔과 공유가 정말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곳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개인으로 존재하기보다 공동체라는 의식이 좀 더 강력히 확립되기도 합니다. 어쩐지 가족 같기도 하네요. 타인들과 나누는 것이 많아지니, 더 이상 다른 사람이 아니라 금세 아는 사람, 친구로 관계가 변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참 좋은데, 워낙 내향적인 사람인 제게 다가치학교에서 친구가 많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 2023.08.26. 〈대-박람회〉 환대 인사 중 일부, 당시 17세 미학자
다가치학교가 아닌 곳에서는 주로 프로그램 활동을 많이 해보았는데 다가치학교에서 프로젝트 활동을 하면서 저와 팀원들이 원하는 다양한 활동을 제한되지 않고 해볼 수 있었다는 것이 좋았어요.
물론 프로젝트 활동을 하고 다가치학교의 행사들을 준비하면서 팀원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맞추는 것 등 힘들고 어려웠던 부분도 있었지만 우리가 함께 이야기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그만큼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을 때 뿌듯했어요! (중략)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든든하고 편안한 공간인 다가치 덕분에 이곳에서 제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갈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저희가 이런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다가치학교와 다가치학교 같은 공간들이 많이 많이 생기고 오래오래 있었으면 좋겠어요!
― 2024.01.27. 〈다-축제〉 환대 인사 중 일부, 당시 13세 로즈
제가 다가치에 느낀 매력은 바로 응원과 환대입니다. 꿈을 꾸는 청소년들에게 어쩌면 절실하게 필요한 가치 중 하나이니까요. (중략)
괜찮으시다면 다들 고개를 바짝 들어서 천장을 바라봐 주실 수 있을까요? 드실 수 있는 만큼 들고 힘드실 때 다시 내려주시면 됩니다. 가장 먼저 내리시는 분을 기준으로 얼마나 버티시는지 보겠습니다. 생각보다 힘드시죠? 저는 꿈을 꾸는 게 이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높은 나무나 하늘을 보듯이, 고개를 치켜드는 것. 잠깐 고개를 드는 것은 너무나 쉽고 누구나 수십 번 수백 번을 들었다 내렸다 하지만, 그 고개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들고 있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자, 그럼 이번엔 한 손으로 목을 지탱해 주시고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어주시겠어요? 어떤가요? 훨씬 견딜 만하지 않으신가요? 저는 다가치의 응원과 환대가 마치 그 목을 지탱해 준 한 손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고, 여전히 내가 보고 있는 나무에 손을 뻗는 것, 오르는 것, 견디는 것은 나의 몫이지만 있을 때와 없을 때가 확연하게 다르죠.
― 2025.01.25. 〈다-축제〉 환대 인사 중 일부, 당시 19세 코난
모두 자기만의 언어로 다가치학교에서 찾아가고 있는 ‘나다움’을 소개하고 있다. 환영 인사를 꾸리에게 부탁하면서 다가치학교 하면 떠오르는 것, 이곳에서 배우고 얻은 것을 솔직하게 소개하면 된다고 했다. 현장에서 그 말을 함께 듣고 있는 모든 구성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밝은 눈과 뜨거운 박수로 공감하는 마음을 보낸다. 그리고 코디네이터들은 활동을 함께 마무리한 꾸리들에게 수료장을 건넨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었다.
‘다 같이, 다가치 하자!’
〈다-움 프로젝트〉에서 우리가 이뤄낸 것은 함께 도전해 본 경험입니다.그 과정에서 발견한 ‘나다움’ 한 조각이 당신의 일상을 지지하는 단단한 기둥이 되기를 바랍니다.
― 〈다가치학교-남부〉 활동 수료증 발췌
사실 내가 루브르 박물관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모나리자〉 때문이 아니었다. 우연히 들은 팟캐스트에서 소개한 그림이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바글바글 몰려있는 모나리자 방 안에는 당연히 다른 그림들도 수십 점이 전시되어 있다. 어쩌면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가장 처연한 그림은 〈모나리자〉 맞은 편에 자리잡은 그림일테다. 수많은 작품들이 즐비하고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현장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지만, 〈모나리자〉를 마주보고 있는 이 그림은 루브르 박물관 소장 작품 중 크기가 가장 크다. 가로 약 7m, 세로 10m를 자랑하는 이 작품은 바로, 화가 파올로 베로네세가 그린 〈가나의 혼인 잔치〉다. 모나리자 방에 도착하자마자 〈가나의 혼인 잔치〉를 봤다. 이 엄청난 크기의 그림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모두 실제 사람 크기로 보였다. 건너편에 있는 〈모나리자〉보다 색감도 화려했다. 둘러보니 놀랍게도 그 공간 대부분은 베로네세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도 우린 그곳을 모나리자 방이라 부른다.
누구라도 모나리자를 향해 가는 길을 거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신 10대 청소년이 진로를 고민하고 탐색할 때, 답을 강요하지 말고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하도록 해보자는 거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주변을 돌아볼 시간과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야 한다. 〈모나리자〉를 보러 가는 길에 놓인 수만 점의 작품들 앞에서 잠시 멈춰 서 보다 보면, 나만의 최애(가장 사랑하는) 작품을 찾을 수도 있을 거다. 또 루브르 박물관에 방문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마주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모나리자〉를 만난 이후다. 루브르 박물관보다 더 넓은 세상이 펼쳐질 테니 말이다. 입시 이후에도 배움과 삶은 이어진다. 정해진 루트만을 따라가기엔 세상엔 많은 가능성이 펼쳐져있다.
진로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마음에 꽂힌 것을 후회 없이 몰두해 보고, 또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다 보면, 마음에 근육이 붙는다. 진로 역량이자 삶의 주체성, 자립이라 불릴 날개로 커질 근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