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자 주도 교육과정에서의 평가 방법
| 성과와 성취 |
성과와 성취는 학습자의 성장을 평가한다. 평가자가 만든 지표가 기준이 되는 것이 성과, 학습자가 직접 성찰하여 느끼는 것이 성취다.
“실패해도 괜찮아!”
청소년의 다양한 도전을 응원하는 이 말은 청소년이 활동하는 현장에 있다면 쉽게 접할 수 있다. 얼핏 들으면 참 낭만적이지만, 난 모두가 습관처럼 쓰는 이 문장이 어느 순간부터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이 문장의 앞에는 ‘여기에서만큼은’이라는 조건이 숨겨져 있다. 활동 현장은 성과를 평가하지 않기에 성과를 내지 못해도 되지만, 곧 냉혹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처럼 들렸다.
청소년이 살아가는 세상은 실패해선 안 된다는 불안감을 안고 걸어가야 하는 살얼음판 위에 놓여있다. 그래서 청소년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그들은 이 사회가 성과를 내지 못한 구성원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우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안 된다. 실패는 정말 괜찮지가 않다.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즉 성적 상위권 대학에 가지 못하면 이 냉혹한 사회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며 청소년과 그들의 보호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과 주변을 돌보는 활동은 언제나 변두리, 뒷전으로 밀려났다. 당장 삶을 짓는 경험이 부수적인 일로 치부되어 온 셈이다. 주도적으로 살아갈 힘, 자립심을 키우도록 성장할 기회는 성인이 된 이후에 찾아도 괜찮다며 개인의 몫으로, 그리고 나중으로 미뤄왔다.
우리는 성장이라는 말을 모호하게 사용해 왔다. 인격적으로 성숙하거나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학습자의 긍정적인 변화를 단순히 성장했다고 뭉뚱그리는 경향이 있다. 교육활동에서 목표로 삼은 학습자의 성장은 어떤 의미인지, 그것을 어떤 기준에서 확인할 수 있는지 짚어야 한다. 그동안 교육 공학자, 교사들은 다양한 평가 방식을 개발하였고, 평가로 산출된 지표에 근거하여 개별 학습자의 학업 성취도를 파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왔다. 앞으로 청소년 활동이 교육 과정으로써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활동을 통해 청소년 개개인의 역량이 성장하는 이미지가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마치 학교 교육 같은 체계적인 구조에서는 결과를 우선시하고 비교적 자유로운 활동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편견이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평가에 대한 논의는 결과가 중요한지, 과정이 중요한지를 논하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과정이 생략된 결과는 솔직하지 못하고,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과정은 설득력을 잃는다. 교육자는 학습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학습 경험이 기승전결을 가진 이야기가 되도록 논리적인 맥락을 갖도록 구조를 짠다. 그런 의미에서 평가는 점수를 내서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과 결과, 즉 학습자의 성장이 연결되는 다리 역할을 맡는다.
성과는 ‘이뤄낸 결실’, 성취는 ‘목적한 바를 이루다’라는 뜻이다. 평가하는 사람이 주체가 되는 성과는 학습자 모두에게 같은 기준으로 적용된다. 대체로 시험, 퀴즈, 서술과 발표 등으로 학습자들은 본인들의 학업 성과를 증명한다. 평가할 권한을 가진 사람은 공정한 기준에 맞춰 학습자들을 평가한다. 정리해 보자면, 성과는 교육 과정을 설계한 사람이 선정한 목표와 기준으로 학습자의 수준을 판단한다. 이는 향후 이어질 수업의 방향, 방법, 난이도 등을 조정하는 데 참고할 자료가 된다. 반면 성취는 학습자가 직접 자신의 배움을 확인하고 교육활동의 목표에 얼마나 잘 도달하고 있는지 진단해 보는 거다. 이때 교육 활동에 참여하는 모두가 평가할 권한을 가지고 팀, 그리고 개인의 성취도를 평가한다. 개개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또 각자 무엇에 성취감을 느꼈으며, 얼마나 활동에 주도성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활동을 진행하는 코디네이터는 물론이거니와 학습자들도 같이 성찰하고 점검한다.
지금까지 평가는 공정한 기준에 의해 성과를 측정해 왔다. 공정성을 지나치게 추구해 온 탓에 최대한 교육자, 학습자의 의견은 평가에서 배제되었다. 하지만 모든 교육 활동에서는 학습자의 다양한 성취가 일어난다. 학습자가 스스로 목표로 삼은 기준을 넘어섰을 수도 있고, 우연한 계기로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동료들과 함께 협동해서 과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달성한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모든 성취감이 한 사람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니 학습자의 성취도를 판단하고 확인하는 구체적인 전략과 방법이 있어야 한다. 평가는 객관적이어야 하고, 등수를 매겨야 한다는 강력한 편견을 깨고, 상당히 주관적이면서, 주도적인 평가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평가는 기본적으로 형성 평가, 진단 평가, 총괄 평가로 이어진다.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학습자의 수준을 파악하여 큰 교육과정의 골격을 잡는 형성 평가. 교육 과정 중간에 학습자들이 교육 목표에 잘 따라오고 있는지 점검하는 진단 평가. 교육 활동이 다 끝나고, 최종 목표를 학습자가 얼마나 달성하였는지 확인하는 총괄 평가. 이렇듯 크게 3개 단계로 이어지는 교육 과정 평가 체계를 학습자 주도 교육과정에 접목했다.
다가치학교의 청소년 주도 〈다-움 프로젝트〉 교육활동은 학습자들의 성취도를 높이는 것에 집중하여 과정을 설계했다. 청소년들은 다가치학교에 처음 발을 들이면, 3회에 걸쳐 〈기획워크숍〉에 참여한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 주제를 직접 선정하여 프로젝트의 초안을 만든다. 진단 평가에 해당하는 단계로서 활동에 참여하는 학습자들이 자신의 취향과 욕구를 드러낸다. 이 과정을 거쳐 프로젝트의 공동 목표를 세우고 개개인의 성취 과제도 정한다. 매년 프로젝트 〈기획워크숍〉으로 20여 개의 프로젝트가 태어난다. 적으면 4인, 많게는 15인으로 구성되어 서로 다른 개인의 욕구와 취향이 반영되고, 각자의 고유한 특성이 잘 드러난 프로젝트가 만들어진다.
평소 자신의 취향과 욕구를 제대로 드러내 본 적이 없는 청소년과 장기 프로젝트 계획을 세우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다가치학교에서는 이 3주간 워크숍 과정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 워크숍 진행 교구와 양식을 개발했고 매년 이를 수정, 보완하는 연구를 해왔다. 사전에 코디네이터는 16시간 교육받아야 하고, 실전 연습도 여러 번 해봐야 〈기획워크숍〉, 코디네이터로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기획워크숍〉 이후 팀별 활동이 시작되고 9월에 중간 점검하는 파티를 열면서 평가도 함께 진행한다. 이때 학업 평가에서의 형성평가와 같은 중간 성취도 평가를 한다. 이름하여 ‘벌써 반이나 흘렀다’ 워크숍이다.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현재 이뤄낸 것을 정리한다. 나의 변화도 함께. 그리고 남은 기간 활동의 계획을 보완하고 수정한다. 그 기록을 기반으로 남은 활동이 이어진다.
마지막은 역시 축제다. 〈다-축제〉로 8개월간의 〈다-움 프로젝트〉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프로젝트별로 세운 목표와 성과, 성취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8개월간 다가치학교에서 함께 지었던 꾸리들의 성장과 변화가 드러난다. 각각의 프로젝트 활동의 결과물은 물론 훌륭하지만, 그 안에 녹아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서사가, 학습자들의 성장이 감초가 되어 축제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꾸리 빈대떡이 그랬다. 언제나 시큰둥한 표정과 태도가 그의 트레이드마크. 첫해에는 카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때 음악 프로젝트의 무대를 보고 직접 무대에 서고 싶은 욕구가 생겼는지 그다음 해에 음악 프로젝트 조이인조이를 직접 기획했다. 그러나 노래에 대한 열정과 적극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빈대떡의 무대는 늘 불안했다. 그는 정작 무대에 서면 완곡을 해내지 못했다. 너무 긴장해서 가사를 까먹고, 고음 파트에서 음 이탈이 나고, 자칫 실수하면 그때부터 입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무대를 끝내면 눈시울을 붉게 물들이며 좌절한 채 홀연히 집으로 갔다. 그런데도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고, 무대에 오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2024년 마지막 행사 〈다-축제〉, 나는 무대 조명을 맡고 있어 리허설 때부터 빈대떡의 무대를 보았다. 역시 빈대떡은 리허설에서도 노래를 완곡하지 못했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풀이 죽었다. 늘 그를 북돋아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는 힘을 주는 코디네이터 두두와 민트는 어김없이 그를 다독였다. 마지막인 만큼 가사를 틀리더라도, 음 이탈이 나더라도 끝까지 부르자고 말이다. 본 무대가 시작되고, 고음 파트를 맡은 빈대떡의 차례가 다가오자, 나 역시도 긴장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마침내, 곡의 하이라이트에서 빈대떡은 높은 고음을 쏘아 올렸고, 무대도 무사히 끝냈다. 그의 첫 번째 완곡! 나를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꾸리들, 코디네이터들은 빈대떡이 고음을 불렀을 때, 모두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모두가 쾌재를 불렀고, 같이 기뻐했다. 무대 맨 앞 가운데에서 그들을 가장 열렬히 응원하던 코디네이터들도 얼싸안고 그 순간을 즐겼다.
조이인조이는 한 번도 무대에 서본 적 없는 꾸리들이 모여 만든 오합지졸 음악 팀이었다. 그런 이들이 연습에 연습, 퍼포먼스를 짜고 마지막에는 보컬 트레이닝까지 받았다. 거기에 신중한 선곡까지. 이 모든 과정을 다가치학교 구성원들이 함께 지켜봤다. 빈대떡과 함께 무대에 오른 꾸리들도 그가 무대에 익숙해지는 시간 동안 기다려주었다. 다가치학교의 구성원들은 빈대떡이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빈대떡은 동료들과 노래 한 곡을 완창 했다. 그날 빈대떡은 웃으며 집으로 갔다. 그날 이후 빈대떡의 시큰둥한 태도에서는 묘한 자신감이 묻어 나왔다.
〈다-움 프로젝트〉 팀별 피드백워크숍〈다-축제〉가 모두 마무리되면 마지막 평가 워크숍을 진행한다. 모든 프로젝트팀은 그래프를 그린다. 시기별로 프로젝트가 겪은 사건들을 기입하고 프로젝트의 ‘성취’를 그래프에 기록한다. 성취가 있다면 상승 선, 성취가 기대보다 좋지 않으면 하강 선. 정해진 기준은 없지만, 프로젝트 구성원들이 함께 당시를 기억하고 그때의 상황을 평가하면서 지점을 신중하게 찍는다. 그리고 그 지점마다 코멘트, 기록을 남긴다.
이 그래프는 축적되어 교육 활동 전략을 수립하는 데 활용된다. 성취도 상승 포인트를 높이고 하락 포인트의 낙차를 감소시키는 것, 최종적으로는 우상향 곡선 그래프가 만들어지도록 전략을 세운다. 이 기록들을 토대로 〈다-움 프로젝트〉가 끝나면 꾸리 대표들과 코디네이터 중 희망자들이 모여 그다음 해 〈다-움 프로젝트〉 교육활동 과정을 함께 토론하고 연구하면서 만든다.
프로젝트 팀으로써 성취도를 분석했다면 그다음은 ‘개개인의 성취’다. 그래프 위에 개개인의 성취감을 추가로 작성한다. 질문은 4가지. 활동으로 만족스러운 것, 이루지 못해 아쉬웠던 것, 다음 단계로 해보고 싶은 것, 마지막은 의외의 발견이다. 매년 개인의 성취감도 기록으로 남겨 정리해 비교, 분석한다. 이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앞의 세 가지는 팀의 성취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가장 집중해서 분석해야 하는 질문이 ‘의외의 발견’ 부분이다. 8개월간의 활동을 경험하면서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한 생각의 변화, 깨달음, 관계가 넓어진 경험을 서술한다. 학습자가 ‘자신의 성장’을 기록해 놓았다. 사진 프로젝트의 꾸리는 ‘내가 사진 찍는 것보다 사람들의 포즈, 장면을 연출하는 것을 더 재미있어하네?’라 적었다. 반면에 ‘요리해 보니 내 성격이랑 안 맞는다.’라고 적은 내용도 보인다. 활동을 해 보니 자신의 취향과 진로를 구체적이고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 많았다. 프로젝트 활동에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은 자신을 칭찬한 꾸리도 있다. 이 꾸리의 목표는 활동할 때 코디네이터보다 먼저 다가치학교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이 이상하고 정성스러운 콘셉트을 1년 내내 유지하고 지켜냈다. 도전 자체에 용기와 성취감을 얻었다는 메시지도 많았다.
가장 많은 의외의 발견 기록은 동료와 쌓은 관계였다. 동료라는 새로운 감각을 느껴본 것이다. 나이, 학교, 지역에 상관없이 활동에서 만난 또래와 쌓은 멤버십은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완주하고 해냈을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관계다. 코디네이터라는 특별한 존재도 이해했다.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활동하는 어른의 존재가 얼마나 귀했는지 적혔다.
마지막은 새로운 취향과 관심이었다.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려운 것들이다. 프로젝트 활동을 하면서 직접 경험한 분야별 노하우가 가득했다. 동물 생명 프로젝트는 새에 대해 탐구했는데, 새가 살아가기 힘든 도시의 환경을 알게 됐다고 한다. 한 걸음 나아가 차별과 혐오 표현부터 지켜야 하는 인권에 대한 감수성, 사회 문제에 나름의 관점이 생겼다. 이 카테고리 안에는 다가치학교에 긍정적인 이미지도 함께 적혀있었다. 새로운 학교, 배움에 대한 가능성을 청소년들은 직접 겪어본 것이다.
학습자가 이뤄낸 성과를 평가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루고 있는 목표를 스스로 성찰하며 공동의 배움을 함께 돌아보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자신의 긍정적인 변화를 포착하고 성장하고 있는 과정을 직접 확인하는 작업도 교육 과정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여야 한다. 감상만 짧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경험을 평가하는 방식이 일정한 틀로 설계가 되면 그것은 한 사람의 성장이 담긴 기록이 될 것이다.
성과를 평가하는 방법은 많다. 반면, 성취와 성장을 평가하는 방법은 아직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꼭 모든 평가가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데이터, 점수로 환산되어야 할까? 그 자료는 진정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이라 할 수 있을까? 점수로 줄을 세우기 위한 평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성장을 여러 관점으로 바라보는 방식이 필요하다. 학습자가 직접 자신의 변화와 성취를 기록하고 성찰하는 다가치학교의 평가도 이제 막 시도해 본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앞으로 보완하고 나아갈 길이 까마득하지만, 새롭게 정의한 성장이라는 말그릇에는 성과와 성취, 그리고 그로 인한 학습자의 변화까지 구체적이면서 다양한 모습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학습자의 진면모를 발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로 치열하게 점수 경쟁을 해야 하는 교육의 현실을 가리지 말자. 고작 10대 때부터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다. 성공과 실패로 나뉘는 이분법을 하루빨리 무너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