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 교실을 나와 공원에서 배운다

프로젝트가 이루어지는 학습 공원 설계하기

by 얼룩
| 학습 |
세상을 이해하고,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 학습이다.
교육은 학습이 왕성하게 일어나 개인의 경험으로 쌓일 수 있도록 판을 깔고 가르치는 일이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 했다. 단단한 껍질 속에서 성장한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어미 닭이 밖에서 함께 알을 쪼아야 한다. 자력으로 키우는 역량과 외부 환경, 새로운 자극을 주는 요소가 합이 맞아 조화를 이룰 때 마침내 틀을 깨고 새로운 창조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알이 움찔거릴 때 어미 닭이 알을 쪼는 것처럼 내부의 변화가 외부의 행위를 이끈다. 학생들의 주도적인 배움을 추구한 무수한 시도들이 쌓여 학교 교육은 역량을 키워 왔고 이제 단단한 벽을 함께 쪼아줄 외부 요소가 필요하다. 몽실학교와 다가치학교, 그리고 전국 코디네이터들의 활동이 공교육의 변화에 힘입어 경직된 형식과 제도에서 또 다른 역량을 쌓아왔다. 이젠 완전히 새로운 전환을 위하여 줄탁동시 할 때. 교육에서 가장 단단한 틀을 함께 힘껏 두드리자.


교실이라는 단단한 틀

그 단단한 틀은 바로 교실(Class Room)이다. 교육은 가장 기본 단위를 교실로 삼아 이루어졌다. 교실은 단지 물리적인 형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물리적인 형태보다 작동하는 방식이 교실을 교실답게 만든다. 교실의 작동 방식은 아주 간단하다. 가르치는 방, 말 그대로 잘 가르치는 방을 만들면 된다.

교실의 핵심은 바로 고정된 기준이다. 교실 안에는 두 존재가 고정되어 있다. 교수자거나 학생이거나. 대부분의 학교 교실은 학생이 고정되어 있고 수업마다 교수자가 바뀐다. 학교 안 특별한 기능을 가진 과학실, 음악실 같은 프로그램실에서는 교수자가 고정되고 학생들이 바뀐다. 따라서 교실의 구성 형태에 따라 기능도 정해져 있다. 교수자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가졌다고 인정받는 사람이고, 배우는 사람들은 교육기관의 기준에 따라 편성된다. 학교는 학년 별로, 별도의 프로그램은 신청자로 구성되어 교육과정이 마무리될 때까지 외부 요소의 개입은 최소한으로 제한한다.

마지막으로 시간이 정해져 있다. 무릇 최고의 수업은 할당받은 시간보다 5분 일찍 끝내는 것이다. 충분히 목표한 바를 이루어도 시간이 채워지지 않으면 교육을 종료할 수 없다. 일찍 교육이 끝나면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는 누명을 쓰곤 한다. 반대로,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해도 시간이 채워지면 교육을 끝내야 하는 것이 교실이다. 그러니 주어진 시간에 딱 맞게 교육과정을 구성해야 좋은 교수자가 될 수 있다.

가르치는 행위와 이를 배우는 행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이 지금까지 모든 교육의 무대였다. 새로운 배움터는 그 고정관념을 깨는 것을 시도해 본다. 늘 똑같은 교실에 변주를 준다. 달라진 리듬과 형식으로 배우는 행위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배우는 사람이 가르치는 것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학생(Student)을 넘어서서 직접 탐구하고 활동으로 이어지는 학습자(Learner)가 될 수 있다.


배움의 무대, 배움터는 학습 공원

‘학습 공원Learning Park’은 벨기에의 학습 및 재설계를 위한 연구실에서 개념화하였고 세계 곳곳에서 2030년 학교 모델로서 연구하고 실행하고 있다. 전통적인 학교를 탈피하고 새로운 학교 모델로 주목받는다. 『몽실학교 이야기』(꿈이룸출판 저, 에듀니티 출판사 2018), 「미래학교 체제 연구: 학습자 주도성을 중심으로」(조윤정, 2017)와 이찬승 선생님의 칼럼을 보면 학습 공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담겨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학습 공원은 교수자와 교실 중심의 형식적 교육을 벗어나 삶과 배움을 연결하는 교육 현장이다. 그 안에서 학습자 한 사람 한 사람은 주체적인 존재로 탐구하고 실천하며 또 다양한 존재들과 연결되는 활동이 이루어진다.

먼저 학습이라는 말을 요목조목 따져보자. 학습은 배우다(學)와 익히다(習)가 합쳐진 단어다. 이때 익히다를 의미하는 습(習)은 새의 날갯짓에서 따온 글자다. 새는 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어미 새, 다른 새들의 모습을 보면서 날갯짓을 익힌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날갯짓을 찾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본다. 살아감에 필요한 행위, 가치를 배우는 것이 바로 학습이다. 앞선 장에서 진로는 새처럼 나아가는 길이라 했다. 평생에 걸쳐 진로를 찾아가는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을 직접 익히고 삶에 적용하는 것이 바로 학습인 것이다. 청소년이 처음으로 진로를 향해 나아갈 날갯짓을 배우는 곳이 바로 교육 현장이다. 그 현장은 지금까지 틀에 박혀 있었다. 그 틀을 벗어나 마음껏 배우고 시도해 볼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들어보자.

2023년 9월, 다가치학교로 전화 한 통이 왔다. 다가치학교 주변에 있는 오류고등학교 사회 교과 선생님이었다. 오류고등학교 학생들과 〈지역사회 연계〉를 목표로 학생들이 주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보자는 제안했다. 학생들이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 동네의 문제를 발견하고 직접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가는 사회참여 교육 활동이었다.


오류고등학교와 함께한 〈지역사회 연계〉 교육과정은 8, 9월에서 11월 초까지 5개 단계로 진행했다.

1) 문제를 발굴하고 연구 계획을 수립하는 워크숍

2) 연구 가설을 증명하는 탐구활동

3) 연구 중간 평가

4) 정책 설계, 제안서 작성

5) 정책 제안서 보고회

2023 오류고등학교×다가치학교 지역연계 프로젝트


첫 번째 단계, 문제를 발견하는 과정은 ‘감각 지도’를 그렸다. 감각 지도는 우리 동네, 학교 근처를 상상하며 보고, 듣고, 직접 경험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나열하여 작성한다. 그때 학습자 개개인이 크게 공감하는 문제 상황을 주제로 잡아 팀을 구성하고 계획을 세웠다.

감각 지도에서 모든 청소년이 공감한 문제는 학교 근처 인도, 골목길의 안전한 보행권 확보였다. 그 동네에는 4개의 학교가 모여 있는데, 특히 오류고등학교 앞에 있는 정류장과 인도가 좁아서 불편하다고 이야기했다. 정류장 바로 앞에 큰 마트가 있어 늘 상품들이 인도까지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삶에서 느끼고 있는 문제와 불편함을 연구 주제로 삼아 학습자들은 연구와 정책 개발을 시작했다. 그리고 안전하게 거리를 걷기 어려운 수많은 존재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학교 앞 도로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자 한 스.오.파. 팀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직접 길을 걸으며 현장을 분석했다. 불편한 대중교통 노선도를 바꾸고자 한 스쿨 skrrr~ 팀은 주변을 다니는 모든 버스 노선도를 찾아보고 지도에 표시해 대중교통의 사각지대를 찾아냈다. 휠체어 이동권을 고민하던 휠쏘굿 은 지하철역에 집중했다. 이들은 구로구에 있는 모든 지하철역에 가서 휠체어 전용 엘리베이터와 동선을 직접 따라다니며 휠체어 이용자가 겪는 상황을 직접 느꼈다. 마지막으로 디.오.해. 팀은 노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 주변에 있는 사회복지관에 방문해 어르신 키오스크 체험기기를 보고 어떻게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체험했다. 키오스크가 있는 카페 직원, 사회복지관 실무자, 복지관 이용 어르신을 직접 인터뷰했다.

현장으로 나가기 전에는 기사, 논문, 관련 조례 등을 찾아 분석했고 직접 현장에 나갔을 때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요목조목 따져보며 신중하게 조사했다. 인터뷰, 설문 조사, 현장 조사 등 다양한 검토를 마치고 그 내용을 종합하여 각 팀은 정책의 초안을 작성한다. 근거 자료를 바탕으로 정책이 시행되었을 때 예상 시나리오와 정책에 필요한 예산까지도 직접 책정했다.

그리고 대망의 정책을 발표하는 마지막 날. 스.오.파 팀은 주변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의 동선을 고려해 새로운 버스정류장 스팟을 소개했고 실제 조례 개정안도 제안했다. 스쿨 skrrr~ 팀은 기존 2개 마을버스의 노선도를 효율적으로 바꿔 보면서도 통학버스 제도가 현실적으로 타당한지도 따져보았다. 휠쏘굿 팀은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기능이 필수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사업 제안서를 들고나왔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역을 기준으로 지도 애플리케이션의 프로토타입 버전을 직접 그리고 만들어서 선보였다. 디.오.해 팀은 전국 디지털 리터러시 박람회를 오류고등학교와 사회복지기관, 지자체가 힘을 합쳐 구로에서 개최하자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정책 발표를 마치고 공론장를 열었다. 정책별로 테이블을 잡아 참여한 사람들, 오류고등학교 교사와 보호자들이 직접 정책 제안서에 구체적인 피드백을 나누면서 정책 제안서를 발전시키는 워크숍 형태였다. 모두가 아주 진지한 태도로 정책 제안 내용의 사각지대에 대해 질의하고 정책 제안자, 학습자들은 질문에 답변하고 제안은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정책이 풍성해졌다. 이 마지막 행사에는 구청 공무원, 구의원, 지역의 정당인, 활동가, 관련된 기관 실무자 등이 초대되어 함께 의견을 나눴다.

오류고등학교와 함께한 프로젝트는 다가치학교의 학습자 주도 교육과정, 〈다-움 프로젝트〉를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해 본 사례다. 비록 방과 후, 주말에 진행된 정규 수업 외 활동이었고 모든 팀이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학생들은 교실을 나와 공원에서 배웠다. 학생들은 직접 현장에 나가보고, 전문가를 만나 현안과 이슈를 파악하고,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까지도 고안하는 경험을 해본다. 프로젝트 구성원들이 같이 고안한 정책과 사업을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또 제안해 보면서 피드백을 받아본다. 그 자리에서 학생들의 제안이 실현되는 물꼬가 트이는 유의미한 성과가 만들이지기도 한다. 다가치학교와 함께하는 오류고등학교의 <지역사회 연계> 프로젝트는 매년 이어지고 있다.




학습 공원의 핵심은 만남

학습자는 공원을 거닐며 다양한 할 거리와 주제를 만난다. 비슷한 관심사, 취향을 가진 동료들과 팀이 꾸려지고 작당 모의를 시작한다. 지식과 정보를 모으고 기술을 익힌다. 막힘이 있을 때는 필요한 전문가를 찾아 조언을 구하거나 방향을 수정하기도 한다. 자연스레 그들은 무언가를 짓기 시작한다. 직접 주최자가 되어 다수의 사람들을 그들의 학습 장소로 초대한다. 마치 공원에서 자주 열리는 축제, 거리 공연, 전시, 팝업 부스, 참여형 프로그램처럼 말이다. 학습자는 그때만큼은 배운 분야의 탁월한 전문가가 되어 멋지게 등장한다. 그들은 하나의 과정이 끝나면 새로운 작당 모의, 활동을 위해 또다시 공원에서 무리를 짓는다.

교실은 효과적으로 잘 가르치기 위해 설계되었다. 공원은 자연스럽게 만남과 소통이 이뤄지도록 설계된다. 공원이 자연스럽게 생겼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공원은 교실만큼이나 공원 안에 있는 사람의 행위를 섬세하게 디자인하고 기획한 공간이다. 이를 소위 ‘판을 깐다’고 한다. 사람들이 잘 설계된 판 위에서 만나 작당을 모의해 활동을 이어간다. 그 사례들이 쌓여 학습 공원의 문화가 되고, 자유로우면서도 교육과정으로서 체계가 잡힌다. 학습 공원 판을 짜고, 학습자들의 다양한 만남을 주선하며 활동으로 발전하도록 매개가 되는 존재. 경험이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존재. 그것이 코디네이터이자 학습 공원에서 교육자의 역할이다.

다가치학교는 학습 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기준을 세웠다.

• 학습자의 나이, 학업 성취 수준이 아닌 주제에 대한 본인의 동기를 기준으로 활동의 기본 단위(팀)를 구성한다.

• 목표로 한 전체 회차는 정해놓지 만, 상황에 따라 필요시 추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

• 〈기획워크숍〉으로 학습자가 직접 교육과정 설계에 참여한다.

• 모든 활동 팀에는 코디네이터를 1인 이상 필수로 배치하며 코디네이터 없이 학습자끼리만 활동할 수는 없다.

• 매월 1회 이상 열리는 정기 회의에 코디네이터는 필수로 참여해야 한다.

• 적극적으로 프로젝트 외 사람들과의 협업, 만남, 소통을 추구한다.

• 학습자들이 현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모든 것을 실행해 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몽실학교와 다가치학교와 같은 청소년 자치 활동 기관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청소년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학습 공원을 설계한다. 반면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더 깊은 배움을 추구하도록 프로젝트 활동이 가능한 공원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오류고등학교와 함께 진행하는 <지역사회 연계> 프로젝트처럼 진로 체험, 동아리처럼 수업 외 활동 말고 교과 연계, 정규 교육과정 속에 학습 공원을 조성해 보는 거다.

일주일에 3~4일은 교과 수업을 들으며 교실에서 배우고, 하루이틀은 활동에 온전히 집중해 보는 시간이 마련된 교육과정을 상상해 본다. 그날만큼은 교사들도 본인의 교과목을 떠나서 코디네이터가 되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거다. 학교 안에 학습 공원을 조성하는 전문적인 코디네이터들이 상주하며 함께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방법도 있다.

학습 공원 모델을 이야기하는 교육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한 가지를 주장한다. 학습 공원에서 학습자는 개인으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고. 학업 성취감과 효능감, 동기부여를 충만하게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소수 몇몇 우등생이 아니라 구성원들 모두가 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모델이라고 한다.

“오늘 뭘 배웠어?”

학생들이 받는 자주 받는 이 질문에 답변은 참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다. 배운 지식, 익힌 기술을 나열하는 식이다. 이 질문에 마땅히 답할 말을 찾기도 어렵다. 질문이 바뀌려면 학교의 틀을 교실에서 공원으로 크게 넓히는 방법뿐이다. 공원에서는 질문을 다채롭게 바꾸는게 가능하다.

“이번에는 누구랑 무엇을 해보기로 했어?”

“오늘은 누구를 만났어?”

“오늘 무슨 일이 벌어졌어?”

“넌 이번에 뭘 해냈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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