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 | 딴짓에 진심일 때

학습자의 삶에 전환점을 만드는 교육의 딴짓

by 얼룩
| 딴짓 |

잘 지은 딴짓으로 얻은 경험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딴짓만큼 주도적인 행위도 없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세상에서 딴짓만큼은 직접 선택하고 시도해 볼 수 있다. 딴짓할 때면 잠들어 있던 창조력과 열정이 깨어난다. 나는 청소년들이 딴짓에 애정을 쏟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늘 감탄해 왔다. 단순히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넘어 직접 창작하고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전문가가 되어가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장인 정신까지 느껴질 정도다.

딴짓은 해야 하는 일, ‘업’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쉬는 것과는 다르다. 사람들이 업에 지쳐 피곤하더라도 딴짓에 몰두하는 이유는 딴짓이 현재 나를 구성하고 삶을 주도적으로 빚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 나은 나의 모습을 찾아가기 위해, 내면의 욕구에 스스로 응답하기 위해 비용을 지출하고, 에너지를 쓴다. 내면의 욕구는 시기에 따라 바뀐다. 취미로 시작한 활동이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로 이어지고 그와 관련된 경험이 쌓이면서 그 사람은 준전문가가 되어간다. 어떤 딴짓은 해보다가 나와 맞지 않아서,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지 않아서 금방 다른 활동으로 옮겨 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투자한 시간이나 비용이 아까운 것은 아니다. 직접 해보고 알게 된 취향이니까. 딴짓은 누군가 성과를 평가하지 않는다. 물론 대회에 나가 경쟁하여 순위를 받기도 하지만, 그 성적이 먹고 사는 ‘업’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 대신 사람들은 딴짓으로 성취감을 얻고 일상에 활력이 되는 동기를 얻는다. 또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딴짓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일터 밖에서도 직무 역량을 높이기 위해 배움을 이어간다. 친한 디자이너 동료는 퇴근 이후에 디자인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새로운 디자인 툴과 트렌드를 배운다. 다른 디자이너들과 교류하는 커뮤니티에서 각자의 작업물을 공유하고 영감받는다고 한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작은 전시회도 열고 디자인 상품도 만들어서 박람회에 출품도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일터에서도 일상에서도 그 일에 몰두한다. 그는 본인의 역량이 성장하면서 전문 디자이너가 되어가는 감각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청소년 중에서도 유독 특정 과목에 푹 빠져서 논문과 전문 학술지까지 섭렵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선생님들과 신나게 토론하고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면서 굉장한 희열을 느끼는 듯했다.

일상에서 몰두하고 있는 딴짓이 깊어지다 보면, 새로운 진로가 되기도 한다. 퇴근 후 매일 헬스장에서 열심히 운동한 지인은 결국 하던 일을 그만두고 헬스 트레이너가 되었다. 여행이 좋아 수많은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블로그에 기록을 남겨온 선배는 여행 작가, 크리에이터로 직업을 바꿨다. 기후 위기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된 후 일상에서 작은 실천을 이어온 동료들은 기어이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창업했다.



딴짓이라는 활력

딴짓은 우리의 삶에 동기라는 이름으로 활력을 불어넣는다.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동기는 누군가 시키는 것을 따라가기만 해서는 생기지 않는다. 스스로 내면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들어보고 그 요구에 응답하다 보면, 그제서야 동기의 싹이 튼다.

2022년 다가치학교에 패션 디자인 프로젝트가 만들어졌다. 프로젝트를 만든 청소년들은 총 6명이었는데, 그중 두 명은 패션 디자인에 특화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학교에서 디자인 수업을 듣고 직접 바느질과 재봉틀을 사용하면서 옷을 여러 벌 만들어 봤다고 했다. 나머지 이들은 옷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중학생들로 구성되었다. 이 팀은 오랜 회의 끝에 오래된 옷들을 수선해서 새로운 옷으로 탄생시키기로 목표를 세웠다. F.O.P 리폼, 열정 가득한 패션 리폼(Fashion of Passion)으로 이름을 지었다. 패션 전문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사람이 팀원들에게 재봉틀 사용법, 옷 디자인하는 법을 가르쳐줬고 부족한 것들은 인터넷을 참고했다. 그들은 가장 먼저 커다란 냉장고 상자를 개조해서 헌 옷 수거함을 만들었다. 당시에 옷감으로 쓸 헌 옷을 모은다고 꽤 대대적으로 홍보했는데, 며칠 안에 커다란 상자가 쓸만한 헌 옷들로 가득 찼다. 리폼에 활용할 옷들을 분류하고, 상태가 좋지 않은 옷들로 바느질과 재봉틀을 연습했다. 본격적으로 옷을 만들 때는 세 시간 내내 아무 말 없이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옷이 조금씩 완성되자 패션쇼를 성대하게 열자고 마음을 모았다. 직접 모델로 무대에 서기가 부담스러웠는지 그들은 모델을 찾았다. 무대에 설 수 있는 담력을 가진 청소년을 다가치학교에서 수소문했고, 그들과 만나 옷 사이즈를 조정했다. 마지막 한 달 동안 F.O.P. 리폼 팀은 패션쇼를 기획하고, 직접 지은 옷들을 소개하는 책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패션쇼 당일, 수많은 인파 사이를 모델들이 멋진 리폼 옷을 입고 가로질렀다. 모델들과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디자이너들이 패션쇼 맨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올랐다.

프로젝트가 다 끝나고 전체 과정을 돌아보며 이 활동이 자신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패션 전문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사람은 학교 수업에서 익힌 기술을 시험하는 옷만 만들어 왔다. 그들은 만들어 보고 싶은 옷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만들어 사람들에게 소개해 본 경험이 처음이라고 했다. 진짜 디자이너가 되어본 경험이 패션 분야 진로를 기대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었다. 소심했던 중학생은 직접 만든 옷을 입고 용기를 내 모델이 되어 무대에 섰다. 그는 무대에 서보고 싶다, 모델이 되어보고 싶다는 작은 내면의 욕구에 직접 응답했다. 프로젝트의 구성원들은 같은 활동에 각자 다른 이유로 몰입했고, 해냈다는 성취감을 함께 느꼈다.


하고 싶은 활동이 되기 위한 조건

누군가 시키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 딴짓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궁리하는 시간이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소소한 딴짓이라도, 그 딴짓을 해내기 위해 사람들은 꽤 많은 시간을 들여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단기간 체험해 보거나 먼저 그 딴짓을 하고 있는 지인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확신을 가질 때까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기더라도 바로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이리저리 재고 따지면서 궁리하는 시간이 생각만 하던 것을 마침내 마음을 먹고 실천하도록 바꾼다. 학습자 주도 교육과정에서도 막연한 목표와 주제를 학습자들이 구체적인 활동으로 상상하고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충분히 궁리해야 한다.

다가치학교에는 천장에 조명이 달린 텅 빈 방이 있어 매년 사진 관련 프로젝트가 그곳을 사진관으로 만든다. 2022년 다가치 사진관 프로젝트의 첫 목표는 사진관에 스티커 사진 인쇄가 가능한 사진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신나게 계획을 세우고 활동을 시작했지만, 참여한 학습자들은 막상 사진관을 만들자는 주제 자체에 몰입하지 못했다. 코디네이터는 그들과 필름 전문 현상소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카메라를 들고 근처 공원으로 출사를 나가기도 해봤다. 그리고 다 같이 둘러앉아 사진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와 각자 가지고 있는 경험을 나눴다.

모두가 사진과 관련해 공유하고 있는 공통의 이미지는 증명사진이었다. 증명사진은 모든 청소년이 매년 찍어야 하지만 정작 마음에 드는 사진을 받아본 적이 없다. 사진관 사장님은 휙 찍고, 보정은 과하거나 부족했다. 가격도 청소년에게는 부담이다. 이렇게 서로 공통점을 발견하고 나니, 우리가 직접 청소년의 마음에 쏙 드는 증명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을 만들어보자고 목표를 바꿨다. 그때부터 다가치 사진관 팀은 인물사진에 대해 제대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전문 사진작가를 초청해서 인물사진 촬영 기술을 배웠다. 텅 빈 공간을 청소년 전용 사진관으로 문을 열 준비를 했다. 마침내 사진관이 문을 열었고, 그때가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5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수많은 청소년의 증명사진을 찍어줬고, 평가도 좋았다. 만족해하는 사람들의 반응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연출을 가미한 사진도 찍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사진관 프로젝트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징이 잘 드러난 연출 사진들과 모든 구성원이 함께 행복한 얼굴로 다양한 포즈를 취한 사진들이 멋진 액자에 걸렸다.

2018년 몽실학교에서는 자전거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모여 몽실바이크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자전거를 더 많이 타고 싶어 프로젝트를 만든 이들은 프로젝트 활동 초반에는 자전거를 탈 때만 흥이 났었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자전거를 주제로 구체적인 활동 목표를 찾아내기란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렇게 오랜 궁리를 거쳐 ‘직접 몽실학교 공용 자전거를 만들어보자!’로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버려진 자전거들을 허락받고 수거해서 쓸 만한 부품들을 모아 새로운 자전거 두 대를 만들었다. 자전거를 타러 나가고 싶어 하던 청소년들이 기름때를 묻혀가며 자전거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공방을 세웠다. 공용 자전거는 이후 몇 년간 몽실학교 청소년들이 급하게 볼 일이 있을 때 이용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이 되어주었다.

몽실학교에서는 청소년이 직접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어 공공 정책을 만들고. 사업으로 시행할 수 있는 어른들에게 제안하는 〈청소년 정책마켓〉 을 매년 열었다. 그때 몽실바이크 팀도 정책을 제안했다. 통학로에 자전거도로를 확보하는 정책, 잘 정비되지 않아 장애물이 많은 자전거도로를 상시 점검하고 보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책이었다. 관련 법령도 찾아보고 자료도 빼곡히 준비했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던 청소년들이 자전거를 잘 타기 위한 안전한 환경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젝트 활동은 프로그램처럼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모든 구성원이 의지가 강하고 서로 마음이 잘 맞아 바로 활동에 몰입할 수 있길 바라지만, 실제 프로젝트 활동에서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프로젝트 활동 초기에는 모두가 지지부진한 상황을 겪는다. 학습자들이 입을 닫고, 눈치를 살핀다. 프로젝트 활동에 몰입할 만한 본인만의 동기를 찾지 못한 상태다. 이 시간을 견디고 또 함께 궁리할 수 있도록 코디네이터가 나서야 한다. 프로젝트 활동에 충분한 시간이 전제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궁리하는 시간에 공을 들여야 진짜 주도적인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딴짓이 만드는 변화

딴짓에 진심일 때, 눈빛은 살아난다. 학습자가 자신만의 동기를 발견해 몰입하기 시작하면 변화 조짐이 보인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활동에 진심을 다하면 기대를 웃도는 변화가 일어난다. 배움터, 지역, 주변 사람 등 여러 변화가 일어나겠지만,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자신에게 나타난다. ‘사소한 딴짓’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눈에 띄는 성장이 일어난다.

한번 해볼까? 내면의 작은 질문에 긍정적으로 응답하다 보면 성취하는 경험도 함께 쌓인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괜찮다. 함께 궁리하며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난 목표에 집중해본다. 그 목표는 이루고 싶은 것이 되고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 동기이자 나의 일상을 고무하고 격려하는 힘, 추동력이 된다. 이 경험이 반복되어 차곡차곡 쌓이면 주체적인 태도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언젠가 좌절하는 일을 겪더라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힘을 비축해 놓을 수도 있겠다. 해야만 하는 일이 해내고 싶은 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살아갈 방향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아무리 인생이 마음먹기 나름이라지만, 마음을 먹고 행동에 나서기 위해서는 연습과 경험이 필요하다. 그 시기는 안전한 배움터에서 교육공동체와 함께 할 수 있는 10대에 이루어지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청소년이 딴짓하기 정말 어렵다. 시키는 일을 해치우느라 정작 해보고 싶은 것은 생각만 하고 끝난다. 어른들은 나중에 성인이 되면 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해왔다. 청소년기, ‘나’에 대해 궁리해 보는 충분한 시간, 함께 궁리해 줄 다정한 코디네이터와 동료들, 해보고 싶은 것을 해내고자 몰입한 자기 자신, 또 동료들과 함께 성취감을 느껴본 경험까지. 이것들을 위해 드는 그 어떤 비용도, 시간도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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