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 | 자치는 행동하는 애정

배움터에서는 자치의 형식이 아닌 본질을 겪어야 한다.

by 얼룩
| 자치 |
참여하는 것을 넘어서 내가 가진 것을 내어주고 곁을 나누는 행위가 익숙한 문화로 자리 잡은 상태. 그것이 잘 이어지게끔 설계된 구조다.


자치라는 말이 교육에서 통용된 지 꽤 오래됐지만, 현장에 자치가 실현되기까지 가야할 길이 멀다. 나는 이름에 자치가 붙은 영역에서 일을 해왔다. 청소년 자치 배움터, 학생 자치, 교육 자치, 마을 자치, 문화 자치, 시민 자치 등등. ‘구성원이 스스로, 직접 다스린다.’ 별다른 해석의 여지도 없이 명쾌한 뜻을 가진 이 단어가 가장 익숙하면서도 손에 닿지 않는 신기루처럼 얄궂다. 사람들은 자치를 특정한 사업의 형식이나 조직의 형태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자치는 그자체만으로 사업이나 조직이 추구해야할 목표이자 철학이 되어야 한다. 자치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교육 현장에서 현재 자치가 다뤄지는 방식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자치의 모습은 집단이나 공동체의 대표를 뽑아 책임과 역할, 그리고 권한을 주고 그들의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다. 학교를 예로 들면 교실마다 반장과 부반장을 뽑고, 그들 중에서 학년별로 대표 학생이 선출된다. 그리고 전체 학생을 대표하는 총학생회장도 있다. 보통 적극적인 사람들이 대표로 선출되고 그들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에 참여할 수 있다. 집단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대리할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 중요한 의무이고, 선출된 대표가 맡은 책임과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지원하면서도 감시한다. 선거, 추천, 공동체의 합의 등의 방법으로 선출된 이들은 집단 안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부당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업이다. 이 간단한 대의제 방식을 활용하여 국가와 지방행정 체계부터 학교나 아파트, 그리고 동호회처럼 작은 단위의 공동체까지 내부에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기 어려운 규모의 집단에서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자치가 가능하도록 제도와 형식이 발전해 온 것이다.

대표를 선출한 형식을 갖춘 자치조직은 공동체를 위한 일을 한다. 일을 하기 위한 집단을 만든다. 학교의 학생회처럼 선출된 대표는 아니지만 공동체가 잘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도록 구성원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규모가 큰 조직에서는 임금을 주고 채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치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당사자들은 자발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다. 청소년이 활동하는 기관에는 대부분 그들이 당사자로 참여하는 자치회를 구성하고 운영한다. 다가치학교에서는 이들을 <꾸리회>라 부른다. 몽실학교에서는 자치회 청소년들이 매번 노란 조끼를 입고 활동한다고 해서 스스로를 <노쪼>라 불렀다. 공동체와 집단을 위한 자치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주도성과 자발성은 놀라울 정도다. 구성원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와 행사를 기획하고 직접 운영한다. 또 직접 기관을 홍보하겠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만들어 동영상을 촬영하고, 라디오를 녹음해서 올린다. 공동체에 이득이 되는 방법, 구성원들을 위한 일을 먼저 고민하고 실행으로 옮긴다.

구성원을 대표하는 리더를 뽑아 조직을 만들며 그들은 효율적으로 전체를 대변하여 의사를 결정하고, 전체 공동체를 위한 사업을 하는 것이 자치가 작동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공동체를 위한 자치 활동은 대표, 혹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역할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치는 그 조직이 작던 크던 간에 모든 구성원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적인 구조를 상상해볼 수 있어야 한다. 자치의 방법, 형식에만 집중하면 학교나 청소년 기관처럼 직접 민주주의를 상상해 봄 직한 규모의 집단에서도 복잡한 조직과 사업만 남는 괴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한 인구의 범위를 학자마다 다르게 산정하고 있지만, 그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참여하는 사람의 태도일 것이다. 작은 단위부터 자치를 고민해야 한다. 학급의 자치를 고민하지 않은 채 학교 자치를 실현할 수 없다. 또 학습자가 자치로운 공동체와 자신의 역할을 상상하지 못하면 학생 자치 활동은 모두 형식적인 틀만 가질 뿐이다. 그러니 자치는 학습 활동에서부터 고민해야 한다. 자치의 기본 단위는 집단이 아니라 학습자 개인임을 잊어선 안 된다. 개별 학습자가 자치 역량을 키우는 것이 모든 형태의 자치 활동이 추구해야 할 목적이겠다.


00다움을 찾아서

사람들은 본인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커질수록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을 갖는다. 자치 활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단지 관심이 늘어나는 것을 넘어 관여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즉, 아랑곳이다. 애정은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자 할 때, 그에 응답하는 공동체의 태도에 달려있다. 개인과 공동체, 어느 한 쪽만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면 효과는 미미하다. 각자의 애정이 쌍방향으로 호응한다면, 개인과 공동체는 서로를 존중하는 신뢰를 기반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자치의 근간은 다양한 의견을 가진 구성원들이 조율하고 타협하여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구성원의 의견, 소수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궁리하는 태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문화가 공동체 내에 신뢰를 만든다. 공동체와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관계에서 신뢰가 무너지면 애정, 마음을 쓰는 것도 꺼리게 된다. 그 결과 조금만 머리를 맞대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개개인의 이기적인 선택이 엇갈려 갈등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해결해주기를 바라며 불평과 불만만 쏟아내기도 한다. 그리고 직접 본인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도 주변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시대가 변했다는 말로, 개인주의가 만연해졌다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우리 사회, 공동체에 신뢰가 무너진 현상을 설명하고 포장할 수 있을까? 특정 집단을 혐오하는 날 선 태도, 타인과 얽히기 싫다며 관계를 차단하려는 모습, 나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상관없다는 무심한 말들이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고 말았다.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 그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청소년기에 다양한 공동체 속에서 경험하는 자치는 성인이 되어서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해내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 연습이다. 자치 역량은 사람들과 아랑곳하며 자립할 수 있는 삶의 기술이다. 학교, 배움터라는 비교적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직접 민주주의로 효용감을 느껴보아야 한다. 활동에서 나아갈 길을 잡아주고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조정해줄 수 있는 교육자와 함께 공동체를 직접 만들어보고 경험은 그 무엇보다 가치있다.

자치 활동에서 지향해야 하는 공동체의 형상은 포용적인 소속감이다. 포용적인 소속감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어울릴 수 있는 문화를 의미하며, 그 문화는 구성원들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자치활동은 일률적인 형태를 가진 의사결정 조직이 아니라 유연하게 변화하고 역동적으로 활동하는 공동체에서 가능하다. 하나의 프로젝트팀부터 전체 배움터 구성원을 아우르는 집단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동적인 자치활동을 나는 우리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부른다. 그리고 우리다움을 좇는 학습자 개개인은 그 과정에서 진짜 나다움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무리 안으로 깊이 들어가 보기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구조가 조직, 공동체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지하는 것을 넘어 그 조직과 공동체를 살아있게 만들기 위해서, 제대로 자치하는 곳이 되기 위해서는 공동체를 대하는 구성원들의 진심 어린 애정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 다가치학교는 학습자의 애정이 움틀 때, 조금 더 깊은 활동에 대해 호기심이 생길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운다. 매년 프로젝트 활동이 시작되면 참여하고 있는 학습자들을 다가치학교의 문화를 만드는 청소년 자치회, 〈꾸리회〉로 초대한다. 인원수 제한이 없어서 프로젝트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면 언제든 〈꾸리회〉에 들어올 수 있다. 공동체 깊숙하게 들어온 청소년은 공간을 가꾸고 직접 이벤트와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연다. 모든 구성원이 다가치학교만의 ‘우리다움’을 만들어가기 위한 규칙도 세운다. 모든 구성원이 이 아지트에 애정을 키워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그래서 다가치학교에서는 자치활동을 행동하는 애정이라 부른다. 공간에 마음을 붙이는 것, 서로에게 아랑곳하며 오지랖을 부리는 것이 시작이다. 존중받고 환대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확인하면 공동체와 더욱 돈독해지며 그 안에 배제되는 구성원이 없도록 정의롭게 행동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이처럼 처음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도전해 보는 작은 용기에서 시작해 시간이 지날수록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주어가 바뀐다. 나에서 우리로, 그리고 같이 살아가는 세상으로. 지금도 누군가의 깊은 애정과 헌신으로 각자가 속한 공동체와 조직은 살아있으며, 자치를 이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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