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 경험을 짓는 사람들

새로운 교육주체, 코디네이터의 등장

by 얼룩
| 경험 |
흘러 지나가는 수많은 상황 중 의미를 찾아 성찰하고 정리한다. 그것이 스스로에게, 혹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때 사건은 비로소 경험이 된다. 학습자의 경험에 가치를 더하고 해석하여 새로운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이 교육자의 역할이라 본다.


배움터에 있다 보면 어떤 분야를 처음 접한 학습자가 활동하면서 어느샌가 그 분야에 꽤 능통해진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잘 가르치는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서 그런 걸까? 아니면 우연히 본인의 재능을 발견한 것일까? 이 두 가지 가설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학습자 주도 교육과정은 이런 개별적이고 우연한 상황을 전제로 내용을 구성하지 않는다. 코디네이터는 학습자가 교육과정에서 쉽게 알고, 쉽게 그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을 단호히 막아선다.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에 도전해서 기어코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상황을 겪게끔 만든다.

이렇게 활동으로 경험한 것들은 단순히 잘 아는 것을 넘어 나만의 이야기가 된다. 특히 더 품을 내었던 경험, 의미 있었던 경험은 두고두고 나의 삶을 소개하고 구성하는 자양분이 되곤 한다. 그렇다고 사람이 겪는 모든 상황을 경험이라 부르진 않는다. 흘려보낼 수도 있는 일을 해석하고 성찰하여 나만의 의미를 찾을 때, 그것은 비로소 경험이 되고, 삶에 남는다.



교육은 경험을 다룬다.

근본적으로 교육은 경험을 다룬다. 아주 오래 전부터 축적되어 온 방대한 양의 경험을 분류하고 정리하여 만든 체계를 지식, 정보, 기술이라 부른다. 교육자가 이 체계를 시대적 관점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편집하여 알려주는 방법이 수업이다. 지식과 정보, 기술을 학습자가 직접 활용해보고, 응용하면서 자신의 경험으로 전환하는 작업은 활동에서 일어난다. 즉, 수업과 활동은 모두 경험에 기인하고 있으며 교육자와 학습자 중 경험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수업과 활동의 차이를 만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업과 활동은 분리되거나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수업과 활동을 완전히 분리시켜 놓았다. 수업은 교(강)사의 역할, 활동은 청소년 지도사가 맡으라는 식이다. 담당 행정 기관도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로 갈라져 있고 법이나 조례도 마찬가지다. 학습자의 앎을 추구하는 수업과 학습자가 삶에서 경험하며 성장하게끔 만드는 활동이 균형을 이루어야 할 테지만, 입시와 경쟁은 그 균형의 추를 한쪽으로 몰아버렸다. 이제라도 그 균형을 맞추어야 할 때. 학습자가 얼마나 많이, 잘 알고 있는지 만큼이나 그들이 어떤 경험을 해내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2015, 2022 개정교육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 이제 더이상 잘 가르치는 것만이 교사의 역할이 아니게 되었다. 교육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 정책은 앎과 삶을 연결하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 결과 교사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늘어났고, 한 사람의 교사가 그 모두를 감당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장의 상황과는 동떨어진 채 이상적인 페르소나만 논의될 뿐이다.

교육활동을 하는 사람, 교육자의 모습을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에게 떠넘기듯 추가로 역할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교육자가 현장에 등장해야 한다. 학습자의 배움에 관여하는 사람을 교육자라 통칭하였을때, 교육자를 수행해야 할 역할과 가져야할 역량을 기준 삼아 4가지 형태로 구분해보았다. 교(강)사, 코디네이터, 리더, 매니저. 이중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역할은 없다.


학습자의 배움에 관여하는 존재

교(강)사는 특정 분야에서 남들보다 많이 알고 있는 전문가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쌓인 지식과 정보, 기술들을 학습자들이 잘 이해하고 습득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어왔다. 그들은 체계적으로 정리된 선(先) 경험을 현시대에 맞게 조합하면서 삶을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하는 지식과 정보, 그리고 가치를 학습자들이 잘 익힐 수 있는 현장, 즉 수업을 만든다. 보통의 앎을 책임져 상식의 기준과 평균을 형성해 왔고, 무리를 이끌어갈 리더를 키워냈다.

교사들은 나아가 학습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고민한다. 교사는 정의로운 세상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시대에 필요한 정의를 보편의 앎으로 만드는 것이 교사다. 교사뿐만 아니라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강사, 교수들도 현재 세상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가치 등을 사람들에게 선보인다. 기존에 쌓인 경험을 조합하고 새로운 사례를 발굴, 연구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여 사람들에게 알린다.


세상엔 존경할 만한 스승이 참 많다. 인생에서 한 명이라도 평생 귀감이 되는 스승을 만날 수 있다면 축복 받은 삶이다. 그런 멘토는 수업이나 교육 현장에서 만나기는 어렵다. 종종 선배나 선생님과 일상에서 개인적인 관계가 맺어질 때가 있는데, 대화를 나누고 어려움을 겪을 때 조언을 구하면서 개인적인 친분이 쌓인다. 그 관계가 시간이 지나 조금씩 깊어지면 특별한 관계, 멘토-멘티 관계가 된다.

우린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정보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 등을 배운다. 우린 멘토가 살아온 경험, 그가 쌓아온 전문성과 기술 등을 흡수한다. 또 우린 스스로 누군가의 멘토가 되기도 한다. 꼭 교육 전문가가 멘토가 되는 것도 아니다. 멘토-멘티 관계는 교육자와 학습자의 위치를 뛰어넘는다. 서로의 인생에 든든한 지지대가 된다. 따뜻한 오지랖과 조언, 응원으로 멘토는 한 사람(멘티)의 삶이 바로 설 수 있는 버팀목이 되길 자처한다.


교(강)사와 멘토가 가르치는 존재라면 이제부터 소개할 리더와 코디네이터는 학습자 들의 실제 경험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제 학습자가 해내야 할 학습의 범주가 확연히 넓어졌다. 학습자는 정해진 교육과정을 성실하게 따라가는 것 외에 직접 과정을 짜고 또 궁리하며 성취를 이루는 경험도 해내야 한다.

이 어려운 과정에 나서서 동료들을 이끌고 나아갈 방향을 제안하고 배움을 주도하는 사람이 리더다. 활동에 몰입하고 남들보다 애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을 모두 리더라 부른다. 다가치학교에서는 프로젝트 팀별로 팀장이 리더 역할을 맡는다. 이 자리는 우수한 학습자를 임명하거나 선발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든 스스로 마음을 먹을 때, 리더를 자처한다. 어떤 프로젝트는 총구성원이 다섯 명인데, 팀장도 다섯 명이다. 처음 한 명이었던 팀장이 시간이 지나 셋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리더는 동료 학습자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어 팀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사람들은 흔히 착각하곤 한다. 리더의 자리는 정해져 있다고. 그래서 교육과정 초반에 적극적인 학습자를 리더로 뽑는다. 그렇게 선출된 리더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학습자들은 활동하다보면 배움에 동기가 생겨 스스로 몰입하는 순간이 찾아오고, 그때 학습 과정 자체에 애정을 품는다. 주도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게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학습자마다 차이가 있는데, 속도가 다르더라도 모두가 리더가 되어볼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교육은 모든 학습자가 리더가 되는 현장일 것이다.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목표를 향해 협력하는 주도적인 학습 리더. 리더는 반장이나 팀장처럼 직책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실은 얼마나 이 활동에 진심을 다하여 참여하고 있는지가 리더의 자질이지 않는가. 또 그의 존재가 다른 학습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때, 우리는 리더십이 있다고 칭찬해오지 않았는가. 소수의 리더를 뽑아야 하는 구조를 지양하고 참여하는 모든 학습자가 자신의 배움에서, 또 스스로 지어나갈 자신의 경험에서 리더가 될 수 있도록 현장을 설계하고 교육과정을 폭넓게 짓는 사람들을 코디네이터라 부른다.



코디네이터, 경험을 짓는 사람

코디네이터는 본격적으로 학습자들의 경험을 짓는 사람이다. 다가치학교에서 코디네이터는 어떤 활동이든 학습자와 함께한다. 코디네이터는 학습자가 주도적으로 경험을 쌓아가고 탁월함을 발휘하는 현장을 짓는다. 형식적인 말로만 짓는 것이 아니라 코디네이터는 학습자들의 진짜 학습 경험을 짓는다.

가장 먼저 프로젝트 활동에 참여하는 학습자들이 서로를 동료로 인지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관계를 새롭게 설정한다. 그것을 ‘팀 빌딩 Team Building’이라 한다. 친분을 쌓고, 또 동료로서 역할을 나눠 맡아 서로를 돕도록 관계의 형태를 새롭게 짓는다. 리더 학습자가 충분히 활동을 이끌어갈 수 있게 판을 깔면서도 지나치게 앞서 나가 구성원들의 경험을 본인 중심으로 휘어잡으려는 태도를 경계한다. 반면에 아직 활동에 몰입하지 못한 학습자들이 각자의 동기가 현재 관심사와 연결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다리를 놓는다. 코디네이터의 생각을 당연하듯 강요하거나 무엇을 하게 시키기보다 질문을 던진다. 당장 실행에 집중하고 있을 학습자들보다 한 발 앞에서 그들의 다음 단계를 위한 판을 고민해야 한다. 활동 어려움을 겪을 때는 단호히 프로젝트 재구성을 제안해 보거나 활로를 찾기 위해 온 세상의 자원들을 샅샅이 뒤진다.

그러한 코디네이터의 교육활동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청소년 학습자들이 직접 해냈다며 프로젝트 활동의 성과와 모든 공을 학습자들에게 모든 공을 돌린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더라도 코디네이터가 그 현장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품고 여러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었을지 학습자들은 안다. 학습자들의 비일상적인 특별한 경험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그들이 애를 썼는지 말이다.

학습자 주도 교육과정이 중요해졌다는 것이 교육자의 역할도 코디네이터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배움에서는 앎과 깨달음을 선사하는 교(강)사도, 본보기가 되는 멘토도, 학습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도 필요하다. 학습자들이 스스로 경험을 만들어가도록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나아갈 활동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깊은 학습 관계를 맺는 코디네이터가 그 역할들 사이의 빈틈을 메꾼다. 앞으로 몇 장에 거쳐 학습자가 경험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방법과 프로젝트 활동을 진행하는 데 있어 코디네이터가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들을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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