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자 주도성 | 프로젝트 로드맵 설계

청소년 주도 교육과정 구성 방법

by 얼룩
| 학습자 주도성 |
주도성은 활동이 나의 일이라 느꼈을 때, 그리고 나아가 성취하는 과정 안에 나의 지분이 있다고 느낄 때 깨어난다. 학습자가 다양한 요소들을 직접 가공하고 조합하여 새로운 형태로 만드는 기획과 이를 실현해 보는 효능감이 주도성을 일으킨다.


프로젝트 활동은 가르치는 것이 익숙한 교육자에 낯선 방식이고, 학습자에게도 어렵다. 선생님에게 “어떻게 해볼까?”, “뭐 해볼래?”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학습자의 사고는 정답을 찾아야 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리곤 영혼 없는 대답을 하거나 혹여나 정답과 어긋난 답을 말하게 될까 입을 닫는다.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 익숙한 학습자들은 이렇게 본인의 생각을 말하기도 어려운데, 다른 학습자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또 협력해서 나아가야 하는 프로젝트 활동은 어색하고 힘들 것이다.

기다리기는 교육자의 역할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는 청소년 주도 교육과정에서 교육자의 역할은 학습자가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라고들 이야기한다. 학습자가 생각을 꺼내놓을 수 있는 시간, 활동에 몰입하기 위한 각자의 시간을 교육자는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학습자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으니, 교육자는 본인이 생각하는 답을 알려주기보다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방치와 기다림은 한 끗 차이다. 기다림의 효과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것이 교육자의 역할로 볼 수는 없다. 자칫하면 방치가 될 수 있다. 코디네이터, 학습자 주도 교육과정을 진행하는 교육자의 침묵과 기다림은 오히려 학습자의 행위를 강제하기도 한다. 시간은 정해져 있기에 충분히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것을 코디네이터는 물론 학습자도 알기 때문이다. 결국 오묘한 눈치 싸움은 기다림을 견디지 못한 사람이 끝을 낸다. 결과물을 만들어야 할 시기가 다가오면 결국 코디네이터가 나서서 학습자들을 보채는 경우를 많이 봤다. 학습자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지 않아 활동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말로 핑계를 대지만, 이는 코디네이터가 책임을 학습자에게 전가한 것일 뿐이다.

절충안처럼 언급되는 것이 교육과정 초반에는 코디네이터가 프로젝트를 이끌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때 학습자에게 주도권을 넘긴다는 전략이다. 이 말처럼 필요할 때 코디네이터가 학습자들과 주도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실제로 존재하면 좋겠다. 경력이 쌓이고, 아무리 많은 프로젝트에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았어도 늘 어려운 것이 학습자가 주도성을 발휘하도록 판을 까는 일이니 말이다. 확실한 것은 학습자의 주도성은 기계적으로 주고 받는 역할, 혹은 절차나 방법론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코디네이터가 역할을 잃어야 학습자들의 주도성이 커진다고 착각한다. 코디네이터, 교사, 강사 등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마다 청소년 활동에 얼마나 개입해야 하는지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다. 학습자들이 입을 닫고 있어 활동이 진척되지 않을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혹은 소수 적극적인 학습자, 소위 빅마우스(발언권을 독점하려는 태도를 가진 사람)로 인해 다수의 구성원이 생각할 기회와 주도해 보는 경험을 얻지 못하는 사례도 많았다. 학습자들이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끌어가더라도 내용을 수정하고 방향성을 조정해야 할 때도 있다. 많은 코디네이터가 교육과정, 활동에 얼마나 개입해야 하는지 묻지만, 그것은 코디네이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묻는 말이다. 적어도 코디네이터는 기다림이 역할인 존재,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개입하는 존재는 아니다. 학습자의 주도성을 끌어내야 하는 교육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정작 코디네이터가 수동적인 존재를 자처하는 것은 너무나 역설적이다.

코디네이터의 주도성이 학습자의 주도성으로

코디네이터의 주도성이 학습자의 주도성을 키운다. 코디네이터와 학습자의 주도성은 서로 상호 보완적이다. 교실과 수업에서 중요한 것은 수업 내용(What)이다. 교사가 학습자에게 전달하려는 지식과 기술, 가치를 배우는 수업 현장에서는 당연히 교사가 주도권을 쥔다. 하지만 목표를 향해 도달하는 다양한 경우의수(How)을 찾고 또 시도해 보는 과정이 중요한 학습 공원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이때 학습자들의 주도성을 이끌어 배움으로 전환하는 것이 코디네이터다. 학습자가 프로젝트로 느낀 성취의 경험을 학습자의 학습 의지와 태도로 승화시킨다. 코디네이터가 주도적으로 역할과 책임을 다할수록 학습자는 탄력을 받아 목표 달성을 향해 나아간다.

코디네이터는 학습자들이 더 많은 가능성을 상상하고 시도하게끔 판을 짠다. 그 기회근 우리가 알고 있는 교육과정과는 다르다. 효율적으로 학습 목표에 도달하는 최적의 길을 놔두고, 헤매고 미루고 새로 갈아엎는 등 숱한 시행착오를 겪는다. 코디네이터는 학습자들이 밟아나갈 길을 알려주기는 커녕 같이 목표에 도달할 방법을 알아보면서 같이 길을 찾는다. 차시별 정해진 계획을 세우는 대신 코디네이터는 학습자의 경험 로드맵을 기획한다. 학습자들과 활동이 나아갈 다음 단계에 다양한 가능성을 점검하고 펼쳐놓는다. 학습자가 나아갈 방향이 너무 막연하지 않도록, 혹은 너무 단순하고 단편적으로 매몰되지 않도록 말이다. Co-ordinate. 주변 상황과 요소를 조정한다는 뜻을 가진 코디네이터가 교육활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도 학습자가 스스로 나아가는 방향 위에서 그들의 성장과 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을 조정하는 기획을 하기 때문이다.



학습자 주도 교육과정 설계 방법

프로젝트 활동,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방법 중 과정이 유연하게 이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춰 교육과정의 로드맵을 기획하는 방법이 있다. STAR(Software Technology for Action and Reflection) Legacy Model, 학습자의 행위와 성찰을 기반으로 구성된 순환 모델이다. 이 교육과정은 벨기에의 ‘학습 및 재설계를 위한 연구실’에서 연구, 정립되었다. (『러닝 퍼실리테이션』정강욱 저, 플랜비디자인 2019)

STAR REGACY 프로세스

학습자 중심 설계 모델은 총 7개 단계로 이어진다.

미리보기 단계는 학습자가 앞으로 이어질 배움의 과정을 이해하는 단계다. 활동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알고, 기초적인 기술과 지식을 이해한다. 교육과정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학습자의 역할과 태도는 무엇인지를 직접 정의하면서 앞으로 주도해 나갈 배움의 길을 닦는다. 코디네이터는 이때 학습자의 욕구와 관심사, 성향 등을 관찰하여 파악한다.

그다음은 도전 과제를 선정하는 것이다. 그동안 시도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선정하는 일이다. 목표라고도 부른다. 코디네이터와 교육과정의 도움이 없다면 쉽게 도전해 보기 어려운 목표를 찾기도 하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가설을 정한다. 학습자가 직접 본인이 도달해야 하는 목표 지점을 선정하기란 정말 어렵다. 평소 사고의 틀을 뛰어넘고 자신의 상식 그 너머를 생각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코디네이터는 그 과정에서 다양한 질문과 사례,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학습자가 본인이 학습을 통해 도달할 미지의 목표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목표가 정해지면 목표로 도달하는 다양한 방법을 상상할 수 있다. 아이디어 생성 단계에서는 최대한 많은 가능성을 펼친다. 브레인스토밍이라 부르는 이 단계에서 학습자들은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내고 조합하면서 현재 놓인 상황과 도달할 목표 사이에 여러 징검다리를 놓는다. 그리고 다양한 관점 단계를 거치면서 조금씩 경우의 수를 줄여간다. 막연했던 목표가 눈에 보인다. 전문가를 찾아가기도 하고 정보를 찾거나 직접 인터뷰나 설문조사를 해보기도 한다. 간단한 실험과 작업을 해보면서 경험을 쌓아간다. 다양한 관점 단계는 목표를 향해 선정한 루트가 적합한지를 점검하고 직접 여러 상황을 경험해 보면서 활동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미리보기 단계부터 다양한 관점 단계까지를 궁리하는 시간이라 본다. 궁리하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시간이 있어야 이 활동이 ’나의 일‘이 된다. 또 서로 다른 사람이 모여 프로젝트를 하는 만큼 목표와 방향을 합의하고 합을 맞추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궁리를 거쳐 뚜렷해진 목표, 그를 향한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순간부터 학습자들은 놀라운 상상력과 몰입력을 보여준다.

연구와 수정 단계는 최종 목표로 나아가는 길을 갈고 닦는 일이다. 앞서서 다양한 관점으로 알아보고 여러 시도를 하면서 깨닳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처음 선정한 목표로 가는 최적의 방법을 찾는다. 만약 처음 선정한 목표가 수정될 필요가 있다면 목표를 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향으로 만든다. 이 작업을 마치면 본격적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활동이 비로소 시작된다. 앞선 단계를 겪으면서 선정한 최종 목표, 가설을 실제로 구현하는 단계가 바로 검증과 피드백이다. 학습자들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종장에 돌입한다. 이 과정이 검증과 피드백이라 불리는 것은 단지 가설을 활동이나 실험으로 검증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부 요소들과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내부 구성원 간의 교류를 넘어 외부의 타인과 소통하면서 프로젝트 활동이 미치는 영향을 확대해 나간다. 자신들의 학습 공원으로 다양한 존재들을 초대한다. 이 과정을 정리하고 기록하여 사람들에게 학습 과정의 성취를 공유한다. 발표와 공유의 형태는 다양하다. 발표, 전시나 공연, 작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방법은 다양하다. 프로젝트 활동에서 겪었던 일련의 과정과 맥락을 직접 기록하고 정리하면서 성찰로 이어진다. 지나간 사건이 성취감으로 바뀌어 경험에 남는다.

코디네이터는 당장 활동에 집중하면서도 프로젝트가 이 학습자 주도 교육과정의 판 위에서 단계를 밟아 갈 수 있도록 다음을 내다본다. STAR LEGACY MODEL는 정해진 기간이나 구체적인 방법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프로젝트별로 상황에 따라 특정 단계가 길어질 수도 있고 궁리의 단계가 짧게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활동에 일찍 돌입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이 정답인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프로젝트 활동은 이 7개 단계를 거쳐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져야 한다. 프로젝트의 감독이 되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유연한 시놉시스, 스토리보드라 생각하면 되겠다.

다시한번 강조하자면, 코디네이터의 주도성은 학습자의 경험을 만든다. 경험에 서사를 불어넣는다. 스스로, 함께 해냈다는 성취감이 학습자의 몫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지도록 만든다. 그러니 코디네이터는 학습자가 행동하길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다. 학습자가 움직이도록, 더 넓은 세상을 만나도록, 더 깊이 몰입하도록 학습 현장의 판을 짜는 주체적인 행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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