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팀빌딩
| 관계 |
구성원이 평등한 동료로서 감각을 느낄 때 함께 목표를 세우고 신뢰와 책임을 기초로 협동을 해나간다. 그러한 관계성을 기획하는 사람이 있다. 코디네이터는 활동 현장에서 ‘팀빌딩’이라는 이름으로 관계를 설계한다.
관계는 만남 속에서 대화로 형성되고, 깊어진다. 아직 가족이 아닌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이 낯선 10대 청소년이 무리를 짓는 사회적 존재가 되어가는 방법을 익히는 곳이 학교였다. 물론 학교가 모두에게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인권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차별과 혐오를 배척하기 위한 자성의 노력이 조금씩 학교에 변화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무려 3년이나 교육 현장에서 만남과 대화가 멈췄다. 유독 학교는 더욱 강력하게 만남과 대화를 차단했다. 학교가 거의 유일한 관계의 창구였던 청소년은 관계를 잃었다. 청소년은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보다 화면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익숙해졌다. 반복되는 일상에 비해 화면 속 세상은 편리하고 재미있다. 비슷한 취향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선택해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철저히 개인화되어 외부의 개입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그 결과 자극적인 소재와 내용이 여과 없이 학습자에게 전달되었다. 온라인 콘텐츠를 공급하는 무수한 크리에이터, 커뮤니티, 플랫폼 대기업들은 막대한 이윤을 챙겼고, 그 자본은 코로나가 종식된 지금도 여전히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스미싱 범죄 등 비대면 환경을 이용한 온라인 범죄도 청소년의 삶을 벼랑으로 내몰았다. 학습자와 직접 관계를 맺으며 진로와 삶을 함께 고민하는 교육 활동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학습 도구인 관계와 대화를 잃어버렸다. 지금은 교육 현장에서 맺어지는 모든 관계성을 회복하고 청소년이 온-오프라인 세계에서 주체적이고 사회적인 존재로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배움터에 속한 모든 구성원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끊임없는 문답해야 한다. 교육과정을 고민하는 코디네이터, 자치를 상상하는 학습자들,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전문가가 함께 어울리는 학습 공동체는 배움터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효능감을 부여한다. 학습자들 사이에 호혜적인 관계가 형성되고 코디네이터와도 유대감을 쌓이면 학습자가 학습활동에 더 수월하게 빠져드는 요인이 된다. 학습자가 교육과정에 몰입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효능감을 주고받는 관계임은 코디네이터와 학습자 모두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관계를 맺는 것이 단순히 ‘친해지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프로젝트 활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함께 상상하여 결정하고 그것을 해내는 일이다. 각자 할 일을 잘한다고 프로젝트 활동이 잘 될 수 없다. 모든 학습 구성원은 동료가 되어야 한다. 상상하고 해내는 일이 나의 일, 나아가 우리의 일이 되어야 활동에 재미가 붙는다. 교육 활동 속에서 학습자들은 친구가 아닌 동료로서 서로를 인식해야 한다. 학습자가 주도하는 교육과정에서 관계의 지형도를 살피고 또 조직하는 것이 코디네이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코디네이터가 학습자 사이에 관계의 새로운 성질, 형태를 만든다. 친분을 나누는 것은 일상에서 가능하며, 일상적인 관계는 쉬는 시간에 쌓인다. 서로를 아랑곳하는 질문들, 일상을 궁금해하는 환대의 질문들이 쉬는 시간에 오가며 공감이 이루어진다. 일에 집중하는 시간, 교육활동 시간에 친분은 쌓기가 어렵다. 대신 쉬는 시간이나 일상에서 만들어진 친밀한 관계가 교육활동 공간에 영향을 준다.
2018년 몽실학교에서 중학생 6명과 영화 제작 프로젝트를 맡았었다. 처음 영화 촬영 주제를 선정하고 시나리오를 쓸 아이디어가 잘 잡히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말하는 것조차 꺼렸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초보 코디네이터였던 나는 구성원 사이에 어색한 관계를 어쩔 줄을 몰라했다. 빨리 청소년들이 서로 친해져야 활동이 잘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초창기 활동 시간에 노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아이스브레이킹 놀이’도 찾아서 여러 시도를 해봤다.
그렇게 두어 달이 흐르니, 어느 순간 갑자기 프로젝트 구성원들이 급격하게 친해져 있었다. 내가 활동이 끝날 시간에 맞춰 당시 몽실학교 안에 있는 노래방을 직접 예약해주고, 자리를 비켜준 일이 있었는데, 그날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친해진 이들의 새로운 관계성은 프로젝트 활동을 집어삼켰다. 물론 이전보다 활기를 띠고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지만, 프로젝트의 목표였던 영화 촬영은 늘 후순위,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다. 처음 어떻게 학습자들이 친해지게 할지 고민했던 나는 갑자기 친해진 학습자들이 활동에 집중할 방법을 찾아가야 했다. 학습자들의 관계성에 휘둘려 코디네이터로서 만족스럽게 활동하지 못해 아쉬움이 크게 남는 프로젝트였다.
구성원이 서로를 동료로 인지하게 만드는 팀빌딩 방법은 시작부터 끝까지 대화다. 대화가 유일하다. 처음 활동이 시작될 때 코디네이터는 빨리 어색한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활동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빨리 친해져야 한다고 느낀다. 그래야 코디네이터가 진행하기 ‘편’하다. 그 편한 상황을 만드는 방법을 ‘아이스브레이킹’이라 부른다. 아이스브레이킹은 어색한 관계를 의도적으로 깨는 행위다. 가벼운 움직임과 스킨십으로 구성원들이 관계를 튼다. 재미난 놀이를 함으로써 경직된 마음을 의도적으로 유연하게 만든다. 아이스브레이킹 프로그램을 하면 분명 분위기가 누그러진다. 하지만 과연 그 풀어진 분위기를 학습자들이 편하게 느끼는지 자세히 고민해 봐야 한다. 교사나 코디네이터가 진행하기 편한 상황이 조성된 것이지, 구성원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아이스브레이킹과 다른 접근 방법을 부르는 용어가 ‘아이스워밍’이다. 어색한 관계에 직접 관여하기보다 주변 환경을 조정하면서 천천히 관계를 만든다. 코디네이터는 학습자가 자신의 취향과 욕구, 경험, 성향을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면 핸드폰 사진첩에 있는 사진 중 공유할 수 있는 것을 나눠본다. 대화를 돕는 카드를 활용해 자신을 소개한다. 대답하기 어렵거나 잘 모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과 관심 있는 것을 먼저 나눈다.
나의 선배는 좋아하는 것을 나누면 공감이 시작되고, 공감은 신뢰를 부르며, 신뢰가 토의와 토론처럼 깊은 대화를 이끄는 힘이 된다고 했다. 그 시작은 코디네이터도 솔직하게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코디네이터가 먼저 솔직하게 자신의 상태와 감정, 또 경험을 전하는 것이 진짜 관계의 시작이다. 대화가 꽃펴야 관계가 뿌리내린다. 취향, 관심사를 나누던 대화가 익숙해지면 자연스레 프로젝트 활동을 해내기 위한 토의로 이어진다.
나는 프로젝트 활동을 시작하면 대화를 만든다.
1) 처음에는 카드나 도구를 활용해서 각을 잡고 대화를 이끈다.
2) 프로젝트와 어울리는 간단한 작업을 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예를 들면 그림을 그리거나 손쉬운 공예를 해보거나 간단한 요리를 해먹는다.
3)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곳을 선정해 탐방하러 간다. 프로젝트 활동이 대화 주제로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4) 본격적인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과정을 기획하면서 나아갈 방향을 토의한다.
5) 활동을 진행하면서 진행과정에 대해 평가하고 성찰한다. 이 과정은 활동을 더 발전시키는 토론이다. 연습이 필요한 수준 높은, 어려운 대화다.
학습자들은 관계를 넘나든다. 활동에 참여하고 있을 때는 동료로, 활동이 끝나 일상에서는 친구가 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활동 이후에는 각자의 일상으로 흩어지기도 한다. 다가치학교에서 3년째 같은 프로젝트 활동을 하는 꾸리들이 있는데, 그들은 늘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동료 관계를 맺는다. 사뭇 진지하면서도 상대를 존중하는 그들의 모습이 멋있어 보일 때가 많다. 이처럼 학습공원에서 학습자들은 상황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는 다면적인 관계를 맺는다.
외부의 도움으로 물꼬가 트이지 않는다면 좁은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배움터를 지을 때, 다양한 관계가 소용돌이치는 역동적인 현장을 만들고자 했다. 그 복잡한 관계의 소용돌이 안에서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가치학교는 활동이 아니면 만나지 못했을 낯선 사람들, 특별한 분야의 전문가(솜씨), 내가 사는 동네에 함께 살아가는 이웃, 서로 다른 나이의 학습 동료 등과의 예상할 수 없는 만남을 주선한다. 코디네이터는 학습자가 다양한 관계를 안전하게 마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그 방법은 모든 관계에 특별한 성질을 부여해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나이, 성별, 성정체성, 장애, 국적, 직업 등에 의한 차별을 소거해나가면서 평등한 관계성을 지향해야 한다. 학습작 온전한 ‘나’를 드러내면서도 타인과 융녀하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추구하는 것이 관계를 설게하는 코디네이터의 팀빌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