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공동체 | 홀로 감당하지 않는다

상보적인 교육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

by 얼룩


| 교육공동체 (크루) |
크루는 개별 선원들을 묶어 하나의 공동체로 부르는 말로, 교육 현장에서는 교육과정이 목표한 목적지에 잘 도달하도록 교육자들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상보적 공동체를 의미한다.


“프로젝트 활동이 생각처럼 잘 진행되지 않을 때 코디네이터로서 어떻게 개입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프로젝트 활동 구성원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 두 질문은 학습자 주도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겪고 있을 고질적인 난관이다. 나에게도 이 두 가지는 늘 따라다니는 문제였고, 프로젝트 활동이 한번 갈피를 잃으면 코디네이터로써 무엇을 시도해도 꿈쩍하지 않는 꽉 막힌 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프로젝트 구성원 사이 관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처음 어색한 관계가 좀처럼 풀리지 않으면 프로젝트 활동하는 시간 전체가 고통스러웠다.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다.

교(강)사는 수업에 전권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책임도 무겁다. 혹여 수업 내용에 대한 문제 제기를 받거나, 수업이 예상보다 교육적 효과가 미미하면 그 책임은 그 수업을 진행한 사람이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수업은 정채진 교과서나 교육과정을 따르는 안전하고 보수적인 방식으로 운여되는 경우가 많다. 외부의 영향을 최대한 배제하고 통제된 상태에서 정해진 매뉴얼을 따라가는 수업이 가장 ‘안전한’ 교육활동이었다. 하지만 학습자가 살아가는 생활 환경은 물론이고 학습자들 사이의 관계, 학습 동기, 경쟁을 중심으로 한 사회 구조와 입시제도 등 무수한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장에서 애초에 진공 상태는 불가능하다. 외부 환경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통제하더라도 교사는 지나치게 많은 역할, 책임, 업무 등으로 학습자가 맺고 있는 관계, 성취도를 하나하나 살피기가 어렵다. 문제가 발생하면 결국 담당하는 교육자의 책임이 되는 구조다.

교육자가 그러한 현장에서 발생하는 상황들을 홀로 감당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거대한 배가 망망대해를 거쳐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이유는 배에 탄 모든 선원들이 하나의 크루가 되기 때문이다.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분리하되, 긴밀히 협력하고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동료로 인지해야 한다. 다가치학교의 교육자인 코디네이터의 교육활동 수행 전략을 고민할 때 가장 중점에 두었던 것은 코디네이터를 하나의 동료 집단으로, 상보적인 배움의 공동체로 구성해 나가는 일이었다. 다가치학교라는 거대한 배를 함께 나아가게 하는 크루. 매년 20명 씩 구성되는 코디네이터들을 ‘코디네이터 크루’라 부른다.


코디네이터 크루

코디네이터들은 처음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순간부터 공유하고 평가하는 마지막까지 모든 과정을 공유한다. 매 활동 일지를 적어 복도에 있는 ‘프로젝트 일지 게시판’에 붙인다. 어떤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은 무엇인지를 공유하고, 혹시 다른 프로젝트팀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홍보할 것이 있다면 이 게시판을 활용한다. 게시판에 공개하기 어려운 코디네이터의 교육과정이나 구성원 사이의 관계 고민은 코디네이터 관리를 총괄하고 있는 담당자와 깊이 토론하며 해결책을 찾는다.

또 한 달에 한 번 전체 코디네이터가 참여하는 회의가 열린다. 주말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다가치학교의 거의 모든 코디네이터가 자리를 채운다. 회의에 참여하는 것은 다가치학교에서 코디네이터를 하기 위한 필수 의무이기도 하다. 이 회의에서 다가치학교 운영 상황 전반을 공유하고, 각 프로젝트가 겪고 있는 상황을 점검한다. 코디네이터들은 서로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아랑곳하면서 활동이 더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머리를 모은다. 서로의 활동을 평가하거나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토의하고 구체적인 조치와 방법을 토론한다. 이 회의로도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은 다가치학교 운영단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지원한다.

2022년에 음악 팀 코디네이터 하늘은 고민이 많았다. 10명으로 이루어진 음악 팀에는 같은 중학생 8명과 다른 학교 2명이 섞였다. 이미 친한 사이의 구성원이 다수다보니 처음에는 어떤 노래를 연습해 볼지, 어떻게 음악을 주제로 다양한 시도를 해볼지 논의하지 못하고 장난만 치다가 활동이 끝나버렸다. 그 관계성 속에서 다른 학교 두 명은 겉돌았고, 코디네이터는 활동을 진행하기 위해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마침, 그때 지역 선배의 소개로 공연이 고픈(?) 아저씨 밴드를 알게 되었다. 직장인 밴드 〈문깐〉과 음악 프로젝트가 만났고, 콘서트를 제대로 열어보기로 했다. 늘 낮에만 공연해야 한다는 청소년 음악 무대의 편견을 깨고 제대로 된 음향 장비와 조명을 사용한 저녁 공연을 해보자는 결의로 음악 프로젝트 구성원들은 눈이 반짝였다. 음악 프로젝트는 본인들의 무대도 준비해야 했지만 2시간 콘서트를 채우기 위해 다양한 공연자들을 직접 섭외하고 홍보해야 했다. 그리하여 옆 학교의 난타 동아리, 밴드 동아리, 다가치학교에서 활동하는 춤꾼 꾸리들을 섭외했다. 다른 프로젝트들을 섭외하여 공연, 부스를 함께 만들었다. 그날 프로젝트 활동이 끝난 꾸리들이 대부분 콘서트를 즐기기 위해 저녁까지 기다렸다. 콘서트에는 무려 200명의 관객이 들어섰고, 모두 끝까지 콘서트를 만끽했다.

이 콘서트를 준비하는 기간부터 음악 프로젝트는 제대로 갈피를 잡고 활동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음악 프로젝트는 그 이후 핼러윈 파티에서 버스킹 무대를 선보였고 크리스마스 파티에서는 보이는 라디오를 진행했다. 지역 청소년 축제에도 초청받아 무대에 섰다. 마지막에는 갑자기 창작 뮤지컬을 기획하더니 음악 프로젝트 활동 8개월 서사를 담은 뮤지컬을 선보였다. 이제 가을 음악 축제는 할로윈 파티이자 청소년 기후 위기 록 페스티벌, 〈못살령〉이 되었고, 다가치학교에서 열리는 성대한 파티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이 당시 음악 프로젝트 구성원들은 여전히 다가치학교 프로젝트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하나의 프로젝트, 코디네이터가 겪었던 난관이 무색하리만큼 프로젝트가 동력을 얻었다.



교육 기획, ‘판’

코디네이터는 판을 벌인다. 가을 음악 콘서트처럼 큰 파티 행사를 여는 기획 외에도 코디네이터 크루의 작당 모의는 다채롭게 펼쳐진다. 지금의 난관을 해결해 줄 전문가를 같이 찾아보고 섭외하거나 직접 전문가나 기관, 점포, 사람을 찾아 탐방을 떠난다. 혹은 좋은 강좌를 학습자들과 직접 기획해서 공개강좌를 열어보고, 서로 다른 두 프로젝트가 연합으로 활동해 보면서 좋은 시너지가 일어난다. 코디네이터가 벌리는 판은 그 안의 학습자들이 다채로운 만남을 기획하고 당면한 과제와 문제를 해결하면서 최종 목표로 나아갈 동력을 얻는다.

판을 잘 깔기 위해 코디네이터들은 서로 개별 프로젝트 상황을 일상적으로 공유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매월 한 번 이상 열리는 회의에서 깊은 토론으로 이루어진다. 의무이긴 하지만 강제하기 어려운 회의임에도 모든 코디네이터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상보적이고 기능적인 코디네이터 크루가 이 회의를 기반으로 구성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크루는 현장에 효력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코디네이터 크루는 선언문이라는 이름으로 코디네이터의 역할과 존재를 직접 정의했다. 그리고 멋지게 뽑아서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다. 이 멋진 문구들에 코디네이터의 교육활동 매뉴얼, 가치, 태도가 모두 담겨있다.


• 코디네이터와 꾸리는 동료다.

• 꾸리에게 ‘팽’ 당하지 않게 늘 노력하는 사람이다.

• 다가치의 문화 그 자체이자 그것을 만들어가는 주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 코디네이터도 두려움 없이 다가치를 즐기자.

• 내가 가진 색깔이 코디네이터의 역량이다. 자신감을 갖자.

• 다가치학교에는 정답이 없다. 침묵과 실패를 충분히 경험해 보자, 다 잘될 거다!

• 지독하게 부대끼고 함께 고민하자.

•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모두에게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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