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 기획에 상상을 더하면?

디자인띵킹으로 구조적인 교육과정 설계

by 얼룩
| 상상 |
함께 생각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토의하고 깊이 토론하는 작업, 더 나아가 활동으로 각자가 인지하는 세계를 넓혀 간다. 그것이 상상이다.


아주 오래 전, 한 승려가 불국토, 인도로 유학을 떠났다. 언제 도착할지 모를 긴 여정에 오른 그는 고향에서 보지 못한 신기한 것들을 보고, 듣고 또 느꼈다. 그가 그중 가장 놀란 것은 단연 집채만한 신비한 동물이었다. 그렇다, 코끼리다.

유학을 마치고 승려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승려는 가족들, 친구들과 새로운 세상에서 경험한 것들을 들려주면서 코끼리도 소개했다. ‘코는 뱀처럼 길고, 귀는 연잎처럼 넓으며, 피부는 돌처럼 단단하다. 다리는 하마랑 비슷하지만, 꼬리는 사자의 꼬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덩치는 집채만 하더라.’ 사람들에게 그는 친절하게 어떻게 코끼리가 생겼는지 자세하게 묘사했다.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은 직접 코끼리의 모습을 그렸고, 승려는 사람들이 그린 그림을 조금씩 수정하고 설명하면서 코끼리 형상을 알려주었다.

형상과 모양을 뜻하는 상(像)자의 어원은 코끼리를 직접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코끼리의 형상을 떠올리는 행위에서 비롯되었다. 우린 말이나 글로 묘사된 것을 참고하여 머릿속에서 모양을 그린다. 쉽게 머릿속에 떠올려지지 않는 복잡한 모습이라면, 우린 그림으로 먼저 형태를 잡는다. 보지 못했던 것, 경험하지 못했던 형태와 모양은 아무리 비상한 천재더라도 알 수 없다. 코끼리를 친절하게 묘사한 승려가 없었다면, 이 사람들의 세계에서 코끼리는 단 한 톨도 존재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상상의 의미

상상(想像)은 그동안 나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형상(像)이나 모습을 생각한다(想)는 뜻이다. 이때 생각은 홀로 골똘히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相) 마음을 나누는 토의와 토론, 대화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이 아직 경험한 적 없는 것을 이해하고 익히기 위해 함께 궁리하고, 직접 행동으로 나서도록 촉진하는 것이 상상이다. 상상력이라 하면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이라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상상력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능력이다. 이 상상력을 토대로 프로젝트가 만들어지고, 또 이루어진다.

다가치학교에서는 맨 처음에 <프로젝트 기획워크숍>을 통해 학습자들이 직접 자신이 활동할 프로젝트를 만든다. 그렇게 매년 20여 개 프로젝트 활동이 기획된다. 해마다 프로젝트로 반복적으로 만들어지는 인기있는 주제와 분야가 꽤 있는데, 프로그램과 동아리, 프로젝트 구분 없이 청소년 활동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요리, 사진, 영화, 음악, 카페 운영, 글쓰기 등등 겉으로 보면 비슷한 주제로 프로젝트가 구성된다. 또 다른 청소년 기관의 프로그램이나 동아리와 크게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같은 주제더라도 각각의 활동 안에 담긴 이야기는 매번, 매해 새롭다.

일례로 사진을 주제로 만들어진 다가치학교의 프로젝트들을 살펴보자. 2022년에 사진관 프로젝트는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을 위한 증명사진관을 오픈했다. 2023년 공유 프로젝트는 외부로 나가 예술 사진, 풍경 사진을 찍었다. 불과 1년 전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활기찼던 사진관을 차분한 분위기의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또 그다음 사진 프로젝트는 특수 사진에 관심을 기울였다. 특수효과, 포토샵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사진을 다양하게 연출해 보는 시도를 했다. 특수 사진반 프로젝트는 그해 활동한 14개 프로젝트의 프로필을 찍어주었다. 한 팀씩 미팅하고, 하나하나 고민해서 그 팀에 맞게 촬영 장소를 정해 포즈나 소품 등을 연출하고 특수효과도 넣었다.

다른 주제의 프로젝트들도 마찬가지다. 조금은 뻔한 주제에서 시작했더라도 각각의 프로젝트가 하는 상상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진 관련 프로젝트는 모두 다가치학교에 청소년이 운영하느 사진관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구성원이 달라지고, 주변 환경과 욕구가 매해 다르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형상,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어렵지만 대화와 회의를 통해 활동의 방향을 정하고 계획을 세운다. 프로젝트 동료들과 어떻게 헤쳐나갈지 궁리하고 여러 시도를 해보면서 상상을 펼친다. 우리만의 공동목표를 이뤄가는 활동 과정에 몰입하기 시작하면 프로젝트는 구성원들의 상상력이 담겨 고유해진다. 특별한 구석이 생긴다. 비로소 특별한, 우리만의 코끼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디자인 씽킹

기획에 상상을 더하는 것을 우린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이라고 부른다. 생각에만 존재하던 아이디어가 상상하는 행위, 토의와 작당 모의로 눈에 보이는 활동이 된다. 학습자들의 생각이 확장될 수 있게끔 만드는 구조적인 전략이 디자인 씽킹이다. 처음 무엇을 어떻게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했을 때, 나아갈 방향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 구체적인 활동을 계획한다. 이는 일상적인 사유를 넘어서 공동의 목표를 선정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이끌어내기 위한 토론이며, 상상을 촉진하는 방법이다.

다가치학교는 학습자를 모집할 때, 그들이 짜여진 과목(과정)을 선택하게 만들지 않는다. 약 70명 내외의 청소년들과 〈기획워크숍〉이라는 이름으로 3회차의 거대한 대화의 장을 연다. 그곳에서 청소년들은 다가치학교 공동체의 구성원(꾸리)이 되고, 취향과 관심사를 반영한 주제를 발견하며, 팀을 구성해 간단한 계획을 세운다. 3차시의 과정은 아래 표와 같다.


청소년 주도 프로젝트 활동 <기획워크숍>


디자인 씽킹은 그 자체로 구조적인 질문이다. 단순히 말로 건네는 질문이 아니라, 토의와 상상을 촉진하는 전략이다. 다양한 학습 도구를 활용하고, 단계별로 구체적인 코디네이터는 다양한 학습 도구를 활용하여 학습자들과 질문을 온몸으로 주고받는다. 함께 나아갈 과정과 결과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두고 마음껏 대화하고 토론하는 장이다. 코디네이터는 마치 사람들이 본 적 없는 코끼리를 그릴 수 있게 필요한 정보를 주고 상상을 촉진하는 질문을 던지는 옛 승려와 같은 존재다. 학습자들이 관심사, 욕구, 취향을 근거로 새로운 활동의 주체적인 이미지를 직접 그리도록 돕는다.

디자인 씽킹의 프로세스는 공감 - 정의 - 아이디어(의미화) - 시각화 - 실행이다. 3차시의 〈기획워크숍〉은 공감부터 시각화 단계까지 3주, 총 7시간에 걸쳐 이어진다. 첫 주에는 코디네이터와 이전 기수 꾸리들이 나서서 새로운 꾸리들, 배움터 문을 두드린 존재들을 환대하며 맞이한다. 코디네이터가 직접 가이드가 되어 사람 책, 공간, 활동 체험 프로그램을 이끌기도 하고 꾸리들이 직접 간단한 놀이, 미션 프로그램을 짜서 다가치학교의 공동체 문화를 소개하기도 한다. 공간, 활동, 사람, 그리고 다가치학교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문화를 이해하고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게 될지 기대감을 품을 수 있도록 정성스러운 하루를 준비한다.

2차시부터는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상상해 본다. 매해 형식은 다르지만, 학습자들은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거대한 주제를 선택한다. 2022년에는 공간이 큰 테마였다. 다가치학교 안에 있는 실별로 모여서 이 공간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상상을 펼쳐가며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상을 그려갔다. 2023년에는 돌잡이처럼 입구에 프로젝트를 상상할 수 있는 물건 10가지를 두었다. 예를 들면 돋보기, 마이크, 붓, 실, 망치, 커피 머신 기계 따위를 깔아두고 그 물건에서부터 상상을 펼쳐나간다. 그 이후에는 서술어를 제안했다. 프로젝트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서술어를 학습자가 선택하여 막연해 보이는 활동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제시한 서술어는 ‘바꾸다’, ‘만들다’, ‘파고들다’, ‘표현하다’, ‘알리다’, ‘가꾸다’ 등이다.

이때 코디네이터는 학습자들의 욕구와 관심사 등을 진단하고, 다양한 학습 도구를 활용해 꼬리를 무는 질문과 대화를 이어간다. 장장 2시간을 떠들다보면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온다. 코디네이터들은 2차시 활동이 끝나면 다 같이 모여서 모든 내용을 공유하고 프로젝트로 발전시킬 수 있는 주제를 조합한다. 너무 뭉뚱그려지지 않도록, 학습자들의 고유한 생각과 의견이 사라지지 않도록 최종 프로젝트로 이어질 주제들을 만든다. 그리고 3주 차가 되면 학습자들은 세부 주제들을 보고 본인의 아이디어가 담긴 주제, 관심있는 주제에 들어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학습자 동료, 코디네이터와 프로젝트 계획을 세운다. 프로젝트 계획을 세울 때 논의하는 세부 항목은 아래와 같다.


프로젝트 목표(비전)

상반기 프로젝트 목표(1차 미션)

이 프로젝트에서 함께 해보고 싶은 활동 아이디어(What)

상반기 프로젝트 활동 추진 계획(주차, 월별 계획 How)

팀장, 꾸리 학습자, 코디네이터의 역할

팀별 공동체 약속

예산 계획

프로젝트 활동 모임 시간과 장소

프로젝트 이름

위의 내용이 담긴 팀별 상징물(깃발) 제작 + 전시


〈기획워크숍〉은 정말 어렵다. 처음 낯선 공간에 들어선 청소년 학습자들과 앞으로 8개월간 해볼 프로젝트를 짜기란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 않는다. 그래서 〈기획워크숍〉 만큼은 통일된 방법으로 구체적인 과정을 따라야 한다. 코디네이터는 디자인띵킹 전략을 세우고 방법을 공유하며 익힌다. 모두가 같은 방법으로 활동을 상상하고 주제를 직접 선정하면서 다가치학교만의 청소년 주도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매년 가지각색 20여 개의 프로젝트가 이 기획워크숍을 통해 만들어졌다.



기획과 상상의 시작, 대화

기획과 상상의 시작은 마음을 연 대화다. 코디네이터는 학습자가 마음을 열고,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 질문을 설계해야 하다. 그것은 말로 하는 질문을 넘어 대화를 촉진하는 도구를 연구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해 사유가 끊이지 않도록 유도하는 디자인씽킹이다. 잘 짜여진 판에서 코디네이터는 학습자의 상황과 니즈에 공감하고, 아이디어를 분류하여 학습, 활동 목표를 세울 수 있다. 그리고 실행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다양하게 상상해보고 직접 해본다.

학습자들과 터놓고 대화하길 두려워해서는 학습자가 주도하는 기획과 상상은 결코 불가능하다. 막연히 텅 빈 도화지를 주고 상상해 보라, 기획해 보라 시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코디네이터가 학습자의 손을 잡고 생각과 아이디어의 소용돌이로 들어가야 한다. 코디네이터는 생각과 대화, 관계와 사건들이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서 판을 짜야 한다. 혼자 골몰하지 않고, 학습자들과 함께 궁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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