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발가벗고 수영하던 언론이 있다

2026년 3월 첫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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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투자 대가 워런 버핏은 말했습니다.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이번 주는 그 말이 그대로 통한 시기였습니다. 그야말로 '누가 발가벗고 수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죠.


그런데 그거 아셨나요? 사실 언론이 발가벗고 수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요.



전쟁 → 코스피 악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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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의 미친 짓.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주말부터 뉴스 속보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핵 협상 결렬이 이유였지만, 실제론 미국이 그동안 아니꼽게 본 이란에 대한 야욕을 그대로 드러낸 셈이죠.


전쟁 이야기를 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하루빨리 사태가 진정되고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다만, 그 이슈가 우리에게 다가온 방식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타격은 주식 시장이었습니다.


주식이 무섭게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누군가는 전세보증금을 하이닉스에 넣어뒀다가 고점에 물렸다고 했고, 또 누구는 결혼자금 90%를 삼하현(삼성전자, 하이닉스, 현대차)에 몰빵 했다가 예신(예비신부) 얼굴을 못 보겠다는 사연이 올라왔습니다. 블라인드에는 삼성전자를 21만 원에 480주 샀다가 환불을 해달라는 주린이도 등장했습니다.


언론은 이런 이야기들을 신나게 써댔죠. 옳다구나, 너 잘 걸렸다 하는 심정이었을까요.


검은 화요일, 검은 수요일이라고 불린 이번 주. 코스피가 최정점 6200에서 쭉쭉 빠졌습니다. 하루 만에 -12.06% 하락했습니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코스피가 12.02% 하락했는데, 그 기록을 뛰어넘었습니다.


그야말로 역대 최악의 하락이었던 셈입니다. 단 이틀 만에 1150p 빠진 코스피. 그야말로 5000선을 겨우 지켜냈습니다. 단일 종목이 아니라 전체 지수가 1000p가 빠진다는 건 (개인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한 종목이 하루에 10% 빠져도 KRX 한국증권거래소에서 '거래 주의' 표시를 띄우는데, 지수 전체 지표가 10% 넘게 빠진다니요. 이건 사실상 코스피 모든 종목이 모두 10%씩 빠졌다는 뜻입니다. 사이드카를 넘어 서킷 브레이커 발동이라니. 전례 없는 충격이 휘몰아친 겁니다.



5천 무너진대? 누가 그래? 어? 누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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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코스피가 5000 밑으로 내려가지는 않았습니다. 이 사실은 명확합니다. 그런데 언론이 이 문제를 이렇게 다루기 시작합니다.


20260306 MBN <개미들도 얼어붙었다…"패닉 금물" 전망에도 5천 붕괴 우려>

20260304 충청매일신문 <'검은 수요일' 코스피 12% 폭락…5000선 붕괴 위기>

20260304 이코노미사이언스 <코스피 12% 급락, 5000선 붕괴 위기…중동 전쟁·환율·변동성 ‘3중 충격’>


이건 마치 5천 선이 무너지기를 바라는 태도이지 않습니까?


애국심으로 코스피를 지켜달라는 호소가 아닙니다. 5천 선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주장에는 반드시 그 근거를 내놔야 할 겁니다. 그래서 제가 해당 기사를 일일이 꼼꼼하게 살펴봤습니다.


없습니다. 말만 있고, 근거가 없습니다.


먼저 MBN 기사입니다.

5천이 깨져도 이상할 게 없다는 반응입니다. 김세희 기자입니다. (중략) 시장에선 경제 체력에 비해 지나치게 급락했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 인터뷰(☎) : 신승진 /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 "글로벌 지정학적 이슈로 단기 낙폭이 컸기 때문에 현시점에서는 반등을 염두에 두고 매수 혹은 보유로 대응하시는 게…."


여기 5천 선이 깨질 것이라는 근거가 어디에 있나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이 기세면 5천도 무너질 수 있어~"라고 말했어요!'라는 말이라도 써놨어야죠. 그런 건 아예 찾아볼 수 없습니다.


충청매일신문 마찬가지이고요.

코스피가 4일 12% 폭락하며 역사상 최대폭 하락률을 기록, 5천 선마저 위협하고 있다. 국내 증시는 그간 주요국 증시 대비 오름폭이 컸던 데 따른 고점 부담이 누적된 상태인 데다, 중동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아 국제 유가 급등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었다.


이코노미사이언스 역시 똑같습니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5088.84로 전 거래일 대비 12.14% 하락했다. 장중 한때 5059.45까지 밀리며 5000선이 무너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최근 이어졌던 상승 흐름이 지정학적 충격과 맞물리며 단기간에 크게 흔들린 것이다.


그 어디에도 5천도 깨질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없습니다. 그냥 쓰는 겁니다. 무너질 수도 있다, 붕괴가 우려된다, 큰일 날 것 같만 같다..라고.



몰랐거나 나쁘거나 발가벗었던 언론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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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가 있습니다. 언론은 자극적인 내용을 추구합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도 먹고살아야죠. 그런데 최소한 주장-근거라는 논리체계는 구성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조차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우려는 하는데 누가 우려하는지는 모르고, 붕괴될 것만 같은데 누가 붕괴한다고 말한지 알 수 없는 내용을 어떻게 기사라고 버젓이 쓰고 있습니까.


실제로 이번주 증권가는 코스피가 아무리 많이 떨어져도 5천은 지킬 것이라고 봤습니다. 5천은 절대 안 무너질 거라고 예측했습니다.


20260304 헤럴드경제 <예측불가 ‘카오스 증시’…코스피 이틀간 15% 폭락 [중동 위기 확산]> 기사입니다.


당분간 국내 증시는 극심한 변동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증권가는 코스피 지수 하단으로 5000~5300선을 제시하고 있다.


20260304 한국경제 <코스피 6000시대 대응법…"7000 간다 vs 하방 경계"> 기사에서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

대신증권과 유안타증권은 코스피지수 하단을 5000으로 올려 잡으며 ‘오천피’를 지지선으로 봤다.


20260306 이투데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여전히 저평가…"코스피 5000선, 강력한 지지선" [찐코노미]> 기사도 마찬가지이고요.

이창환 iM증권 영업이사는 5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이투데이TV '찐코노미'(연출 이은지)에 출연해 "코스피 5000선은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 8배 수준에 해당한다"며 "이는 과거 위기 때마다 강력한 지지선 역할을 했던 구간"이라고 설명했다.


자극을 추구하다가 사실을 호도해버리는 기사가 나와버린 겁니다. 증권가의 전망은 '최소한 코스피 5천까지 버틴다'였습니다. 그런데 붕괴, 우려, 걱정, 폭락을 읊어대던 언론이 이제는 아예 그 전망까지 무시해버린 겁니다.


최소한 증권가 관계자 전화 한번만 해봤어도 알 수 있었을 텐데요. 무지했거나 나쁘거나 둘 중 하나겠네요. 무엇을 선택하든 변명의 여지는 없습니다. 지금은 발가벗고 수영을 하던 채로 발견된 상태이니까요.


이번주 많은 사람들이 우울해합니다. 최소한, 언론이 기름을 붓지는 맙시다. 그건 상도가 아닙니다.



PS. 20260303 미디어오늘 <붕괴, 붕괴, 붕괴…코스피 다루는 언론의 '붕괴' 사용법>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코스피 붕괴'는 틀린 표현이다.

붕괴는 '아파트가 붕괴했다' 혹은 '공산주의가 붕괴했다'처럼 복구가 어려울 정도로 무너져 내렸을 때 쓰는 말이다.

코스피는 매일 등락을 거듭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주식시장에 쌓여오던 악재가 한 번에 터져 한동안 주가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는 '붕괴'를 쓸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상승세가 이어질 때는 표현이 더욱 어색할 수밖에 없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책 보고서를 쓸 때는 '하회했다', '밑돌았다' 등의 용어를 쓴다. '붕괴'는 게임 혹은 스포츠에 어울리는 표현"이라며 "(언론이) 관행적으로 쓰는 것 같은데 너무 반복해서 쓰다 보니 일부 독자들은 언론이 분위기를 주도해서 주가 하락을 유도하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고 말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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