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둘째 주
어렸을 때, 학원 가기가 싫어서 땡땡이를 친 적 있습니다. 학원 선생님이 출석을 안 했다고 전화하기 전까지, 친구들과 놀러 다녔죠.
여기까지만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제가 나쁜 아이 같아 보이시나요?
이렇게 얘기해 볼게요. 부모님은 제가 듣고 싶지 않은 영재 교육반을 강제로 듣게 했습니다. 레벨테스트도 떨어졌지만 부모님이 억지로 밀어 넣었죠. 선생님 역시 난색을 표하다가 마뜩잖게 반에 들어오게 한 거죠. 매번 수업은 저를 건너뛰고 넘어갔고, 부모님께는 못하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먹히지 않았죠.
이러면 나쁜 아이라는 해석이 옳은 가요? 여전히 나쁜 아이일 수도, 힘들어 도피한 아이일 수도 있죠.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해 수업료를 내기 위해 식비마저 줄여야 하는 경제상황이었다면요? 그 수업만 잘 들으면 좋은 고등학교, 대학교를 갈 수 있는 미래가 보장됐었다면요?
자, 우리는 똑같은 사안을 두고도 다양한 해석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주어진 팩트와 생각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죠.
그걸 절감할 수 있는 사안이 이번 주에 하나 있었습니다.
2025년 사교육비(쉽게 말해 학원비)가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교육부와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명확한 통계자료입니다.
12일 교육부와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겠습니다.
초·중·고교 사교육비 총액은 지난해 27조 5천억이었습니다. 2024년 대비 5.7% 감소한 결과입니다.
여기까지는 팩트입니다. 원래 사교육비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다른 건 다 줄여도, 학원비만큼은 줄이질 않죠. 그만큼 대한민국의 교육열이 높다는 뜻이겠죠.
그래서 사교육비가 줄었단 팩트는 우리 모두의 관심거리입니다.
자,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흥미롭게도, 언론사들은 각각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놨습니다.
먼저, 한국경제는 2020년 이후 처음으로 떨어졌다는 해석을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팩트에 기반해 깔끔하게 쳐냈습니다. 20260312 한국경제 <5년 만에 꺾인 사교육비 지출> 기사를 보죠.
2020년 19조4000억원이던 사교육비 총액은 학령인구 감소에도 매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 2024년 29조2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이 같은 상승세가 5년 만에 꺾인 것이다.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전년 대비 3.5% 줄어든 45만8000원으로 집계됐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게 매일경제입니다. 20260312 매일경제 <5년 만에 꺾인 사교육비…고물가에 학원비마저 졸라맸다> 기사입니다. 똑같이 5년 만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고물가를 끌어들였죠.
지난해 초중고교생을 위한 총 사교육비가 27조5000억원을 기록해 전년보다 5.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이후 5년만에 감소세 전환이다. 물가 부담에 사교육비를 줄인데다, 공교육의 질이 다소 높아진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 경기가 어려워서 학원비를 줄였다는 말이 막 아프게 다가옵니다. 우리네들의 삶은 이렇게 돈에 허덕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뉴시스가 바라본 시각은 조금 다릅니다. 단순하게 5년 만에 하락, 고물가를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주목한 포인트가 서로 달랐습니다.
20260312 뉴시스 <1인당 사교육비 역대 최고…"물가 상승 감안 시 크게 안 늘어"> 기사입니다.
지난해 전체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비 지출은 전년 대비 감소한 반면, 사교육 참여 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사상 처음으로 60만원대를 돌파했다. 가구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사교육비 지출이 많은 가운데 월평균 지출금액 분포에서 양극단 구간만 전년 대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양극화' 고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사교육에 참여하는 고등학생의 지출이 전년 대비 2.6% 늘어, 대학 입시를 겨냥한 사교육 수요는 여전히 견고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뉴시스의 해석은 어떤가요? 전체 사교육비를 사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수로 나누니까 역대 최고 값이 나온다라는 주장입니다. 고물가여서 사교육비가 꺾였다는 주장이 갑자기 다르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 뉴시스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 지점을 짚어낸 기자, 이걸 승인해 준 부장에게 짝짝짝.
또 다른 언론, 경향신문입니다. 경향신문은 기간도, 고물가도, 1인당도 아닌 '고소득자'에 주목했습니다.
20260312 경향신문 <지난해 사교육비 지출 5년 만에 꺾였지만···고소득자 사교육비는 더 늘어> 기사를 보시죠.
지난해 학생 사교육비가 2020년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사교육을 받는 학생만 놓고 보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처음 60만원을 돌파해 여전히 증가세를 보였고, 한달에 100만원 넘게 쓴다는 비율도 늘어 ‘사교육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향신문이 주목한 포인트는 '양극화'입니다. 학원비 줄어든 거? 고속득자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거죠.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은 학원비를 신경 쓰지 않는 현실. 즉, 학원비가 양극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딱 한 언론사, 조선일보만 빼고요. 조선일보는 뜬금없이 윤석열 전 대통령 이야기를 합니다.
20260312 조선일보 최인준 기자(pen@chosun.com) <늘봄 학교 효과?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 27조5351억원, 전년 대비 5.7% 줄어> 기사입니다.
교육계에선 윤석열 정부 때 도입된 초등 늘봄학교의 효과가 나타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늘봄학교는 ‘학원 뺑뺑이’를 막기 위해 초등 1~2학년에게 매일 2시간씩 무료 방과후 수업을 제공했는데, 덕분에 학원에 가는 학생들이 줄었다는 것이다. (끝)
혼자 윤석열 전 대통령의 늘봄학교 정책 효과로 사교육비가 줄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교육계 분석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누가 분석한 건지 한마디도 없습니다. 해석을 하려면 충실한 근거를 가지고 하라고 지난주에 얘기했죠.
제목에 등장한 '늘봄학교' 내용은 저게 전부입니다. 전문가 인터뷰는커녕, 교육계 분석이 어디 출처인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늘봄학교는 초등학생 대상 정책입니다. 늘봄학교 대상이 아닌, 중·고등학교 사교육비도 줄었는데 그럼 이건 어떻게 해석하실 건가요? 늘봄학교 정책 때문이 아니란 걸 본인들도 아니까 물음표를 찍는 저 치졸한 스킬까지.. 이렇게 뇌피셜로 기사를 쓰다뇨. 이건 이번 주 나쁜 기사 중 하나로 뽑겠습니다.
다양한 언론 해석을 환영합니다. 각자 주목하는 포인트가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상식 선은 지킵시다. 당신 스스로의 해석 말고, 진짜 전문가와 교육계 해석을 담아주세요. 그게 기사여야 하고, 그게 기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