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셋째 주
끝에 단어 3개만 좀 바꿉시다. '볼 수 있다'가 아니라 '매우 보여 진다'로.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명대사입니다. 흔히 '언론 권력'을 대표하는 말로 자주 인용되곤 합니다.
이른바 '언어 프레임'입니다. 마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했을 때, 코끼리가 어쩔 수 없이 생각나는 것처럼요. 그렇게 '볼 수도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언론과 함께 '매우 보여'지기 시작하니까요.
영악하다고 해야 할까요.
'아' 다르고 '어' 다른 이번 주의 이야기를 꺼내보겠습니다.
법원은 판결을 합니다. 땅땅땅.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우리나라는 이렇게 총 3단계에 걸친 재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걸 흔히 3심제 라고 합니다.
지방법원인 1심에서는 사실과 법리 다툼을 합니다. "내가 보니까 내용은 이렇네. 그니까 이렇게 판결할게~" 하죠.
2심인 고등법원에 가면, 사실과 법리다툼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봅니다. 이때, 기존에 해왔던 주장을 반복하거나 다른 증거를 제출해서 사실관계와 법리를 치열하게 다툴 수 있습니다. "전에 이런 내용을 이렇게 봤던데, 다시 보니까 내용이 이렇게, 이렇게 판결하는 게 맞는 것 같아"하는 겁니다.
대법원은 다릅니다. 대법원은 법률심입니다. 쉽게 말해, 사실관계는 더 이상 따져 묻지 않습니다. 법을 잘 적용했는지만 따져 묻습니다. "전에 두번이나 따졌으니까, 이번엔 법이 잘 적용됐는지만 따져볼게~"하죠.
헌법재판소는 완전히 다릅니다. 헌법재판소는 딱 한번 결정합니다. 심지어 '이게 헌법에 맞는지 안 맞는지'만 봅니다.
자,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지난 1월 여당 주도로 사법개혁 3법이 통과돼 3월 12일부터 시행됐습니다. 이 법안에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포함돼 있었죠.
논란이 되는 내용은 이겁니다.
①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不行使)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다른 법률에 구제절차가 있는 경우에는 그 절차를 모두 거친 후에 청구할 수 있다.
③ 제1항에 따라 청구된 헌법소원심판 중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은 확정된 재판을 그 대상으로 하며,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 한정하여 청구할 수 있다.
1. 법원의 재판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하는 취지로 재판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2. 법원의 재판이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3. 법원의 재판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명백한 경우
쉽게 설명하면 이겁니다.
(대법원 판결이) 헌재 결정과 다르거나
(대법원 판결이) 절차를 지키지 않았거나
(대법원 판결) 자체가 다른 법을 위반한 게 명백하거나
+그래서 기본권이 침해됐을 때
헌법재판소에 가서 다시 판단해 달라고 할 수 있다.
는 겁니다. 어렵죠?
더 쉽게 말해볼까요? 대법원이 잘못하면 헌법재판소에 갈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굳이 굳이 어려운 법얘기를 길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20260319 조선일보 <[사설] 李정권 ‘사법 보복’이 부른 弱者들의 고통>
아침 출근길에 이 사설을 정독했습니다. 첫 문장부터 읭?했죠.
사실상 4심제인 재판소원 제도 시행과 함께 예상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범죄자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했다”며 잇따라 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을 청구하기 시작했다. 피해자 입장에선 날벼락 같은 일이다. 3심을 통해 확정된 가해자가 갑자기 확정되지 않은 가해자로 바뀌면서 끝난 줄 알았던 고통이 되풀이 된다.
조선일보가 사설로 지적한 내용의 핵심은 '애꿎은 피해자가 생긴다'는 겁니다.
겨우 대법원까지 가서 정당한 판결을 받았는데, 가해자가 또 헌법재판소까지 끌고 가서 또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곤 쯔양의 사례를 댑니다.
먹방 유튜버에게 수천만원을 뜯어내 징역형이 확정된 유명 유튜버가 “대법원이 위법 수집 증거로 유죄를 확정했다”며 재판소원을 청구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돈을 갈취당한 이후 대법원 판결까지 걸린 3년 동안 피해자는 고통과 불안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 형 확정으로 이제 겨우 고통에서 벗어나는가 했더니 가해자의 무죄 주장을 헌재가 다시 검토하게 된 것이다. 한 나라의 사법 질서가 이래도 되나.
이런 범죄일수록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온갖 구실로 사법 심판에서 벗어나려 하기 때문이다. 재판 자체를 피해자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재판소원 제도가 이들에게 피해자를 괴롭힐 기회 하나를 더 준 셈이다.
파렴치한 가해자, 4심까지 감당할 수 있는 돈 많은 범죄자, 재판을 오래 끌어야 유리한 정치인일수록 제도를 악용하려고 할 것이다. 반대로 약한 피해자일수록 무한 재판의 굴레에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 권리 확대’가 아니라 ‘범죄자의 권리 확대’인 것이다.
없어도 될 법을 만들어서 일어나는 일이다.
재판소원과 법왜곡죄 신설은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재판을 뒤집은 대법원에 대한 대통령과 민주당의 보복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그들의 싸움에 왜 약한 국민이 피해를 입어야 하나.
여기, 빈틈이 보이십니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들어야 하는 생각은 이거겠죠. "그 가해자가 진짜 나쁜 사람 아니야?"
쯔양을 괴롭힌 구제역(이준희), 파렴치한 가해자, 4심까지 감당할 수 있는 돈 많은 범죄자, 재판을 오래 끌어야 유리한 정치인 등. 제도를 악용하려는 사람이 나쁜 거 아닌가요?
전제가 잘못됐습니다.
조선일보는 가해자들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정작 나쁜 사람은 쏙 빼고, 그 너머에 있는 대통령과 민주당을 공격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당신들은 취재하고 기사를 써야 합니다. 언론의 순기능인 여론을 형성해서 그런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게 도와야 합니다. 범죄자가 '권리'라는 명목으로 제도를 악용하는 짓을 보도해야 합니다. 먼발치에서 게으르게 민주당, 대통령만 하며 혀만 끌끌 차면 안 된단 겁니다.
논리적 비약은 또 있습니다. 재판소원을 '막연한 악법' 취급한다는 겁니다.
정말 그런가요? 되묻고 싶습니다.
사설에서 주장한 논리대로라면, 반대 논리로 깨부술 수 있겠죠.
2014년 전북 전주에서 2400원을 횡령한 혐의로 버스기사 A 씨가 해고됐습니다. 800원씩 총 3번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이 버스기사를 해고하는 게 정당하는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16년간 일하던 베테랑 버스 기사는 소송비용도 없어 절망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분들이 '마지막에 마지막'으로 헌법소원을 해볼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모든 정책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걸 공평하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유튜버의 사례로 부정 사례들을 언급했다면, 반대로 긍정 사례도 함께 언급해주어야 정당합니다.
2023년 대법원이 한일 간 강제동원 피해자 합의 협상문서를 비공개하는 게 정당하다고 했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대법원 판결 앞에 눈물 흘리지 않겠습니까? 반대편에도 눈물 흘리는 약한 국민이 있습니다.
이상한 지점은 또 있습니다.
법 시행 이후 이틀 동안 헌재에 접수된 재판소원은 36건이다.
앞으로 이런 경우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헌재는 재판소원이 연 1만~1만5000건 제기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헌재가 재판소원을 1년에 1만 ~ 1만 5천건으로 예상한다고 합니다. 단순 계산을 해보겠습니다. 그럼 하루에 27.397건 ~ 41.095건이 접수돼야 합니다.
그러면 이틀 동안 54.794건 ~ 82.19건이 접수돼야 하는 거 아니었나요?
실제 헌재에 접수된 재판소원이 36건이면, "실제로는 예측치의 절반에 불과했다~"라고 써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예상치의 절반 밖에 안 되는데요?
20260319 조선일보 <파렴치범까지 ‘재판소원’... 일주일 만에 100건 넘어> 기사입니다.
19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제도 시행 첫날인 지난 12일부터 전날(18일)까지 접수된 재판소원 사건은 총 107건으로 집계됐다.
일주일에 고작 107건이네요? 예측치처럼 일주일 동안 191.779건 ~ 287.665건이 접수됐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절반 밖에 접수가 안 됐는데, 숫자로는 말하지 않는다뇨. 제가 어려운 계산을 했습니까. 단순한 나눗셈, 곱셈인데요.
예측치와 실제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최소한 수습하려는 노력이라도 합시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거 다 아시는 분들이 그러니까 더 화가 나는 겁니다. 적당히 합시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