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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결된 봄 Jul 31. 2020

해결된 봄:남편의 임신_ 돌봄의 연속성

해결된 봄을 향한 그 위대한 순환 <임신 14주차>

 우리는 결국 어떠한 패턴 안에 살아가게 된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연속성 안에 살아가게 된다. 가끔 '일탈'이라 불리는, '패턴에서 벗어난 행함'도 패턴 중 하나이다. '벗어남' 또한 인생을 크게 보았을 때 일반적인 연속성 안에 간헐적 연속성의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행함의 패턴이 있는가 하면 정서(緖)적 패턴도 분명히 존재한다. 내가 어떤 것에 에너지를 쏟게 되면 분명 어떤 것으로부터 다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만 한다. 마치 심장처럼 말이다. 쏟은 만큼 채워져야 몸과 마음이 계속 살아 숨 쉴 수 있는데 이를 정서(emotion)적 패턴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정서적 패턴이 무너지면 우리의 삶은 완전히 흔들릴 것이다. 정서적 패턴이 무너지면 결국 행함의 패턴도 무너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정적인 정서를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는 꾸준히 공급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구성원들 간의 '돌봄의 연속성'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 우리 가정의 분업은 이렇다. 아내는 예쁨이(뱃속의 아기)를 돌보고, 나는 아내를 돌본다. 그럼 나는 누가 돌보나? 아내가 돌본다. 우리는 돌봄의 연속 안에 살고 이 연속성은 소진될 때마다 서로 채워나가는 위대한 순환을 만들어 낸다. 위대한 순환의 한 예로, 아내가 얼마 전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 있었는데 바로


애써줘서 고마워


 라는 한 마디였다. 모든 수고와 피로가 다 증발되고 새 힘이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애는 쓰는데 여전히 부족하고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미안함이 컸는데 애써줘서 고맙단다. 그 말을 듣고 난 후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가 아니라 '더 잘해야겠다'라는 마음이 생겼다. 아니 더 잘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지금 생각하니 마치 조련당한 느낌이긴 한데, 결론은 서로를 향한 '돌봄'의 연속성으로 인한 '위대한 순환'은 생각보다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일어나더라. 




 임신을 한 아내를 위한 내 모든 노력은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를 위함이다. 물론 내 안위의 문제도 분명히 있다. 시시때때로 내 생존의 본능이 발현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내가 임신의 때를 생각하는 게 서운함, 혹은 분노를 끌어올리는 일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임신의 시기가 불안함과 두려움만으로 가득 차 있다면 훗날 분명 다신 걷고 싶지 않은 길, 또는 상처로만 얼룩진 기억으로 남아 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이 재생될 때마다 스스로와 상대에게 수시로 화살을 쏘아 올릴 것이다. 

 아내가 임신의 때를 생각하는 게 행복한 기억을 소환하는 일이 되었으면 한다. 아내가 임신의 때를 생각할 때마다 스스로가 존귀한 존재라고, 새 생명은 무엇도 비길 수 없는 축복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마음으로 품는 아이도 분명 행복할 것이다. 내 욕심이겠지만, 지금 이 임신기뿐만 아니라 엄마로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감사라는 색으로 진하게 채색되길 원한다. 


 아내가 부엌 한편에 쪼그려 쉼을 청하는 것이 유일한 평화가 되지 않도록, 시원한 냉수 한잔이 해갈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충분히 행복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름다운 가정의 남편으로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성장해야 한다. 춥고 고된 겨울에 웅크린 채로 그저 상온의 날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더욱더 해결된 봄을 맞기 위해, 더 나은 내일을 누리기 위한 부지런함으로 매일을 살아가야 한다. 바로 이 마음이 아내와 태어날 아기가 나에게 준 큰 선물이다.




우리 아내가 달라졌어요


 임신 초기를 무사히 넘기고 임신 중기를 달리고 있다. 임신 14주 빠밤! 임신 초기를 이제 막 마친 입장에서 시간을 뒤돌아보니 마치 처음 플레이해보는 게임에서 첫 미션의 왕까지 가는 길 같았다. 온통 위험이 도사리는데 나는 조작법이 낯설다. 필살기를 쏴야 하는데 키가 헷갈려 엄한 것을 누르고 난리다. 딱 총 하나 들고 길을 가자니 너무 두렵기도 하고 갑자기 튀어나온 돌발 상황에 이거 뭐야 쒸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 관문을 잘 통과하고 다음 판으로 넘어갔다.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다음 판을 건강하게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게임은 1인용이 아니라 2인용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1P(아내) 혼자 수행하는 미션이 아니라 2P(남편)가 함께 동맹(부모)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의지하고 지원하며 위험을 물리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임신 초기의 임산부는 조심해야 할 것이 무수히 많다. 입 밖에도 내기 싫은 단어인 '유산'은 거의 대부분 임신 초기에 일어난다. 그래서 임신 초기가 끝나는 12주가 마치면 안정기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이제 주변에 아이가 찾아왔음을 알려도 되는 시기라고 말한다. 12주가 넘게 되면 유산율은 1% 후반대까지 떨어지고 17주가 넘으면 그보다 더 낮은 확률이 된다고 하니 임신 초기가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임신 초기의 임산부는 임신하자마자 개복치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조심하기 시작해야 한다. 




 사실 임신 초기뿐만 아니라 임신 중기, 후기, 그리고 출산 후 까지도 조심해야 할 것들은 지천에 널려있다. 남편은 아내만 조심하면 되는데 아내는 먹을 것부터 시작해서 늘 해왔던 일상에서의 모든 것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 실제로 아내의 삶은 큰 변화가 생겼다. 그렇게 즐겨 먹던 커피 한 잔, 허브티 한잔도 맘 편히 마실수가 없고(하루 한 잔 정도는 괜찮다지만 좋을 건 없을 것 같아서 자제한다) 평소처럼 좋아하던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도 없다. 눈 앞에 해야 할 일이 보여도 무리가 될 것 같은 일들은 할 수가 없고, 능숙히 하던 운전도 모두 나를 공격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생겨 불안하기만 하다. 멋진 곳으로의 여행은 아예 마음 저편 ‘언젠가는’이라는 시간 속에 접어두었다.  


 살이 붙어도 살이 빠질 만큼 다이내믹하게 운동하지 못한다. 식단 조절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며칠 전 아내와 산책을 하는 중에 아내는 너무 뛰고 싶다고 했다. 뛸 수 있는데도 뛰면 안 되는 상황이 임신인 것이다. 먹을 수 있는데도 먹으면 안 되는 상황이 임신인 것이다. 옮길 수 있는데도 옮기지 못하는 상황이 임신인 것이다.

 평상시엔 아무 문제없이 잘하던 일을 혼자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즐겨 먹던 무언가를 더 이상 즐기지 못할 때 아내에게 찾아오는 감정적 무력감은 임신이라는 시간을 더욱더 더디게 만들고 힘들게 만든다. 그리고 호르몬의 변화와 뱃속에 태아가 잘 자라고 있을지에 대한 조바심으로 인해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한 상태에 노출된다. 새 생명이 찾아온 임신은 분명한 축복이지만 아내의 삶은 커다란 변화로 인해 환희만 존재하진 않는다.

 하지만 남편의 생활은 큰 변화가 없다. 늘 먹던 것 먹고, 늘 하던 것을 한다. 조그마한 변화라면 아내가 임신으로 인해 하지 못하는 몇 가지 가사 일들을 지원할 뿐이다. 하나 더 있다면 조금 더 일을 열심히 하게 된다는 것 정도. 어깨가 무겁지만 내리누르는 정도는 아니다. 어쨌든 내 삶을 잘 들여다보니 임신 전이나 후나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살만 뒤룩뒤룩 찌고 있어 만삭 임산부의 체형에 다가가고 있다. 삶의 변화가 별로 없는 게 죄는 아니겠지만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는 아내와 동맹을 맺고  한 목표를 위해 각자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임신은 아내 혼자 싸우는 1인용이 아니라 남편과 함께 미션을 수행하는 2인용이다. 그리고 이 2인 동맹관계에서 남편이 할 수 있는 고작의 일은, 아내의 심정을 더욱더 공감하고 혼자 걷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수시로 상기시켜주고 할 수 있는 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임신에 대해 공부하고 임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아내와 공유해야 할 것이다.




 임신 관련 책을 보니 임신 초기에 조심해야 할 부분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몇 가지 참고하여 임신 초기 대표적인 주의사항에 대해 정리해보았다.(삼성출판사 임신출산육아 대백과 참고) 임신에 있어서도 분명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것이 위로이다. 아는 것이 공감이다. 아는 만큼 힘이 된다. 아는 만큼 위로할 수 있다. 아는 만큼 공감할 수 있다. 아는 만큼 행할 수 있다.


1.카페인 섭취에 주의한다 : 인스턴트나 가공식품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조미료나 염분이 혈압과 당뇨, 영양상태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이 카페인인데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물질이기 때문에 많이 섭취하면 인체와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식품에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성분을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커피가 너무 간절히 먹고 싶다면 디카페인 커피를 소량 섭취하자.

2.음식은 양보다 질이다 : “임신부 잘 먹어야 한다는 옛말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임신부의 하루 권장 칼로리는 임신 전과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러니 양을 늘리기보다 단백질이나 비타민 등을 주로 섭취 할 수 있도록 하고 고기의 살코기나 등 푸른 생선, 신선한 제철과일과 채소를 즐겨 먹는 게 좋다. 또한 입덧 중에 있다면 음식 섭취가 어려울 수 있으니 자주 여러번 나누어 음식을 섭취하도록 노력하고 특히 입덧이 심한 아침 공복 중엔 크래커나 신선한 과일을 먹는다. 더운 음식보다 찬 음식이 냄새가 적고 위 점막을 자극하지 않으므로 먹기가 수월하니 참고하자.

3.조금씩 천천히 먹는다 : 임신 초기에는 소화가 잘 안된다. 또한 중기에 들어서고 배가 커지기 시작하는 것은 자궁이 커지는 것인데, 이때 다른 장기들에 자궁에 밀리게 된다. 이에 따라 소화기능은 떨어지고 조금만 먹어도 과식한 것 같은 과한 포만감이 찾아온다. 그러니 조금씩 천천히 먹기를 권장한다.  

4.빈혈 예방 음식 섭취 : 임신부에게 가장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가 철분인데 철분의 결핍은 빈혈이 되기 쉽고 이로 인해 난산의 위험이 커진다. 영양제도 효과가 있겠지만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철분이 풍부한 식품으로는 돼지 간, 쇠고기 간, 등 푸른 생선, 어패류(익혀먹자), 콩류, 녹황색 채소, 달걀, 해조류 등이 있다.  

5.태아의 뇌 발달을 위한 음식 섭취 : 호두, 잣, 땅콩, 아몬드, 밤 등의 견과류와 참깨, 호박씨, 해바라기씨, 등의 종실류를 항상 준비해놓고 수시로 먹는 것이 좋다. 잘 보이는 곳, 자주 오가는 곳에 열기 쉬운 용기에 담아두면 더 잘 섭취할 수 있다.

6.생선회나 덜 익은 고기 자제 : 모든 음식은 완전히 익혀 먹는 게 안전하다. 덜 익힌 고기를 통해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음식은 과감히 버리고 의심되는 음식은 입에 대지 않는다. 탈이 나도 약 먹기가 쉽지 않다. 태아에게 영향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탈이 난다면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을 섭취해야 한다.

7.면 소재 흰색 속옷을 입는다 : 배를 따뜻하게 해 줄 넉넉한 사이즈의 통기성이 좋은 면소재의 옷이 좋고, 질 분비물과 출혈을 확인할 수 있도록 백색 속옷을 입는 게 좋다.  

8.집안일을 무리하게 하지 않는다 : 배의 무리는 자궁의 수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조금이라도 배가 뭉치거나 무리가 된다 싶으면 절대적 안정을 취한다.

9.성관계는 되도록 피한다 : 임신 11주까지는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감염의 우려가 있으며 임산부의 몸은 예민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1주 이후는? 임산부의 컨디션과 남편의 열정에 따라 결정되겠다) 가능하면 많은 대화로 부부간의 관계를 돈독히 하자.

10.사람 붐비는 곳엔 가지 않는다 :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게 되면 배에 충격이 갈 수 있고 몸의 피로가 가중된다. 전염성이 있는 질병에도 노출이 되니 요즘은 특히나 더 조심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11.편안한 음악을 듣는다 : 어느 정도의 주차가 되면 태아의 청각기능이 발달하기 때문에 엄마가 듣는 소리를 태아도 그대로 들을 수 있다. 편안하고 조용한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다고 억지로 들으면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분야의 음악을 기분 좋게 듣는 게 중요하다. 

12.낮잠을 조금씩 잔다 : 임신 초기엔 시도 때도 없이 졸음이 찾아온다. 이것은 태아가 건강히 자라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니 너무 염려하지 말고 졸릴 땐 낮잠을 조금씩 잔다.(낮잠을 많이 자면 밤잠을 못 잘 수 있고, 불안정한 수면 패턴은 심리적으로도 영향을 끼친다) 직장 등의 이유로 낮잠이 어려울 땐 주변의 양해를 구하고 20여분이라도 낮잠을 청하면 한 결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졸음이 쏟아지는 이유는 태아로 가는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물 박사가 된 이유


 지금껏 우리는 생수를 사다 먹었다. 생수를 사 먹기 위해 튼튼한 카트도 구입하였고, 날 잡고 잔뜩 사다 놓은 생수를 베란다 한 켠에 테트리스하듯 멋지게 쌓아 올려놓으면 그만큼 든든한 게 없었다. 아주 어릴 적 날이 서늘해지기 시작하면 연탄 아저씨가 리어카에 연탄을 가득 실어와 집 창고에 까마득히 쌓아 올려주던 기억이 난다. 그걸 보고 있자면 올 겨울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이 설렜는데 생수를 수십 개 쌓아놓고 볼 때의 기분이 그때와 조금 비슷하다.

 이렇게 열심히 생수를 사다 먹은 지가 꽤 되었다. 2인 가구이기 때문에 물을 많이 소비하지 않아 생수를 사 먹는 게 효율적이었다. 그런데 임신 초기, 아내의 양수가 부족하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는 그때부터 물먹는 하마가 되었다. 임신부의 하루 물 섭취 권장량과 더불어 성인 남성의 하루 물 섭취 권장량까지 알게 되면서 하루 2리터 이상을 목표로 서로 물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물 참 안 마시고 살았구나를 새삼 깨달았다. 임신 후 아내가 먹는 물은 기존에 먹던 생수가 아닌 삼*수나 평*수. 백*수 등 조금 더 비싸고 믿을만한 생수를 먹도록 따로 구매했다. 아내가 좀 더 좋은 물을 마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실 어떤 생수는 물 치고는 너무 비싸다 생각될 정도의 가격이기도 하지만 이제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아내가 좋은 물 먹고 건강하면 그만이다. 아기가 좋은 양수에서 행복하게 수영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좋은 물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알아봐도 생수라고 다 똑같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생수마다 칼슘, 칼륨, 마그네슘 등 영양소 함량이 다 다르고 특히 불소 함유량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기왕이면 임신부는 좋은 생수를 먹는 것이 작은 차이일지라도 건강한 양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불소 이야기를 했는데 불 소시지나 불고기 소시지가 아니다. 플루오린이라는 원소인 불소는 치아에 유익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마시는 물의 불소가 비교적 많이 함유된 마을 사람들의 치아 건강과 마시는 물의 불소 함유가 비교적 적은 마을 사람들의 치아건강에 차이가 있다는 연구 보고가 있었다. 이 불소가 치아우식증, 즉 충치 발생을 억제시키기 때문이다.


 지금은 안 할 테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땐(국민학교로 입학하고 초등학교로 졸업했다) 월요일마다 불소하는 시간이 있었다. 반별로 수돗가에 모여 불소 용액을 입에 한참 머금고 있다가 뱉어내는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불소를 뱉어낸 후에 입에 남아있는 불소를 삼켜내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불소 후엔 강박적으로 침을 뱉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침을 뱉어도 혼났다. 삼키라는거야 뱉으라는거야 적당히 먹으라는거야… 이렇듯 이 불소가 체내로 들어가게 됐을 땐 오히려 해가 된다는데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은 불소치약 20개를 한 번에 먹어 삼켰을 때 유해한 작용을 한다고 하기 때문에 소량이 체내로 들어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찜찜한 건 사실이니 생수의 불소 함량을 체크하게 됐는데 생수마다 함량이 달랐다. 치아 건강을 위한 불소 사용은 다시 뱉어내고 입을 헹구기까지 하니까 전혀 거리낌이 없는데 생수는 그대로 몸에 들어가고 흡수된다. 그렇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다. 불소의 함량들을 보니 신기하게도 생수의 가격이 비싸면 비쌀수록 불소의 함량이 적은 것을 볼 수 있었다. 

평*수 영양소 표(무기물질함량)


마**터 영양소(무기물질함량)

 그리고 위 사진엔 없지만 삼*수는 불소 함량이 0이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그 생수 위주로 사다 주었고 마침 마트에 그 생수가 떨어졌을 땐 불소 함량이 있긴 있지만 거의 없다시피 한 수치의 평*수를 사 왔다. 이 생수는 다른 미네랄 함량이 다른 생수들에 비해 우수했다.


수돗물과 정수기, 각 생수의 무기물질

 이렇게 생수와 친하게 지내다 보니 서로 화장실 가기에 바빠졌다. 보통 일상 언어로는 ‘오줌을 싼다’라는 표현을 하지만 많은 양의 물을 먹고 보는 소변은 ‘물을 싼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았다. 대체 생수가 내 몸에 흡수가 되기는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신만큼 싸는 기분은 마신 양과 배출한 양을 측정하고 싶은 더러운 욕심까지 들게 했다. 물을 싸고 난 후 변기 레버를 내릴 땐 아까운 생각까지 들었다. 이번 달부터 수도 요금이 많이 나올 것이다. 그렇게 아내와 나는 필사적으로 물 마시기를 반복했고 마침내 아내의 양수는 적정량이 되었고 나는 여전히 오줌싸개로 산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와서 이어 써야겠다. 




 생수를 열심히 먹다 보니 생수로 인해 나오는 쓰레기의 양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분리수거의 수고 또한 늘어났다. 우린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는 편이다. 생수통 안의 물을 최대한 건조하고 생수통 상단을 두른 비닐 라벨을 떼어 낸 후, 생수 주둥이에 있는 개봉 시 뚜껑과 분리되어 홀로 남아 있는 플라스틱 링을 가위로 잘라서 버린다. 환경 광고에서 그 플라스틱 링에 물고기의 주둥이가 걸려 입을 열지 못하는 장면을 본 후로는 꼭 그렇게 한다. 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자체가 어류들에게 굉장히 위협적인 쓰레기라고 한다.

 여하튼 생수로 인한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이 많아지고 생수를 사 먹는 비용 또한 늘어 아이가 태어나면 설치하자던 정수기에 대한 이야기가 조기에 언급되었다. 그래서 나는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하지만 각자 본인들의 정수기를 홍보하느라 죄다 좋은 이야기이다. 그래서 지역 카페에 정수기 추천글을 올리니 수십 개의 쪽지가 과자 부스러기에 모인 개미처럼 몰려들어왔다. 대체 어디서 나타나신 분들일까. 일단은 감사했다. 무언가 약정이 있는 제품을 구매할 땐 내가 사겠다고 찾아 나서는 것보다 ‘저에게 구매해주세요’ 하는 제안들을 비교 견적하여, 한마디로 간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많은 쪽지들 중 몇몇 영업사원께 연락을 취해 정수기에 대한 정보와 혜택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검색을 통해 어떤 정수기가 대세인지, 어떤 정수기가 논란이 없는지 충분히 알아본 후 모델을 어느 정도 결정했는데 연락하던 임신출산육아 선배 지인이 임신 중에는 생수가 더 낫다고 말을 해서 잠시 스톱이 되었다. 팩트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수기 물에는 미네랄이 없어서 아주 중요한 임신부의 좋은 양수 만들기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의 팩트에 대해서는 곧 다시 이야기 하겠다. 




 여기서 미네랄이란 무엇인가? 살짝 욕 같기도 한 이 미네랄은 어감과는 다르게 뭔가 건강한 느낌이라 좋은 게 좋은 거다 생각하고 살았다. 스타크래프트를 하면 플레이 내내 소처럼 일만 하는 일꾼들은 미네랄을 가져다 나르기에 바쁘다. 그래서 나에게 미네랄이라 하면 처음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게임의 자원이었다. 

 대략 알아보니 일꾼들이 캐내던 비생물의 광물질도 미네랄이라 하지만 생체 성분으로서 무기질도 미네랄이라 하며 무기영양소라고도 한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생수의 미네랄은 생수 라벨에 적혀있는 무기물질 함량(칼슘,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불소 등)이라는 것이다. 지식이 +1 향상되었다. 

 어쨌든 지인의 미네랄 언급은 한순간 내 반나절의 노력이 허공에 날아가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난 확인 전까진 누군가의 말을 100% 신뢰하지 않는다. 그 지인의 말이 진리도 아니고 허당 냄새 풀풀 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래서 나는 다시 정말 지인의 말이 맞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처음 안 사실, 정수기도 두 가지 방식의 종류가 있었다. 

 

 바로 역삼투압 방식의 정수기와 중공사막 방식의 정수기였다. 역삼투압 방식에서의 삼투압은 학교 다닐 때 삼투압 현상이라는 이름으로  배운 기억이 있기 때문에 낯설지 않은 단어이다. 하지만 그 개념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 건 비밀이다. 중공사막 방식은 중동 사막에서 물을 얻는 방식인가 싶을 정도로 낯설고 어렵게 다가오는 단어이다.

 거두절미하고 먼저 역삼투압 방식의 정수기에 대해 알아보니 역삼투합방식의 정수기는 물을 아주 깨끗하게 정화해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수분만을 배출하는 방식이다. 순수한 물이라고 하니 엄청 좋은 물이 나올 것만 같은데 또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그랬으면 고민도 안 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 강력한 정제력이 우리 몸에 필요한 미네랄까지 걸러버린다는 것이다. 미세물질, 세균들을 잘 거르는 장점이 무기물질까지 걸러버리는 숨겨진 단점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역삼투압 방식으로 정수된 물은 중금속, 세균까지도 잘 걸러지며 물맛까지 좋은 반면, 우리 몸에 필요한 미네랄까지 다 걸러버리는 단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PH라는 단위를 어디선가 많이 보았을 텐데 정수된 물의 PH는 5.7~6.0 정도가 된다고 한다. PH는 물의 산성이나 알카리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단위이다.

 어떤 이들은 물에서 섭취하는 영양소를 일반 음식물에서도 섭취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우린 물을 많이 마실 작정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노릇이 아니다. 게다가 역삼투합 방식의 정수기는 버려지는 물이 생기게 되고, 결정적으로 비용과 공간면에서 경제적이지 못한 단점이 있다. 미네랄을 섭취하려 비싼 생수를 먹는 것인데 미네랄이 없는 물이라니.. 적당히 알아본 선에서는 매력을 못 느끼겠다.

 다행히도 우리가 렌탈 하려고 했던 정수기는 중공사막 방식의 정수기였다. 보통 가정집이나 영업소에서 사용하고 있는 정수기는 거의 중공사막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중공사막 방식의 정수기는 공간면에서, 그리고 경제적인 면에서 역삼투합 방식보다 우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큰 장점은 미네랄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배출하기 때문에 물에서 섭취할 수 있는 무기물질을 그대로 마실수가 있다. 하지만 이도 단점이 존재한다. 어느 정도의 중금속과 각종 세균 및 불순물을 걸러주긴 하지만 역삼투압 방식에 비해 중금속이나 미세물질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한다. 정수 수준이 떨어짐으로 인해 미네랄을 많이 섭취할 수 있지만 그와 함께 안 좋은 물질도 섭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역삼투합 방식의 정수기와 중공사막 방식의 장단점을 알아보고 난 후에 그냥 생수가 제일 나은 걸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하지만 어느 글에서 본 생수 공장의 위생 환경과 수도 없이 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들, 그리고 이제 여름인데 배송 중 엄청 뜨거워졌다가 다시 식기를 여러 차례 반복할 생수를 생각하니 다시 정수기로 마음이 기울었다.

 정수기는 접근성이 좋고 미네랄을 많이 섭취할 수 있다는 중공사막방식의 정수기를 선택했다. 중금속이나 세균이 잘 걸러지지 않는다는 단점은 못 본 채 하기로 했다. 평생 이런 물을 마시고도 건강하니 이미 내성이 생겼으리라. 지금도 각 지역 카페나 맘 카페에서는 역삼투합방식과 중공사막방식의 정수기에 대해 찬반이 크게 갈린다. 그 대안으로 나노 정수기도 많이 쓰나 본데 난 중공사막 방식 정수기를 쓰기로 마음먹고 적당히 넘어가기로 했다.  




 이제 우린 결정했다. 그런데 또 결정할 것이 남았다. 난 정수기면 당연히 냉수와 온수가 나오는 정수기를 생각했는데 정수, 냉정수, 냉온정수가 나뉘어 뒤로 가면 갈수록 렌탈료가 비싸지는 것이다. 게다가 글을 찾아보니 냉온정수가 되는 정수기는 정수기 내의 결로로 인한 곰팡이 번식의 문제가 빈번하게 있었다. 몸에 좋은 물 마시려다가 오히려 건강을 잃는 게 아닐까 싶었다. 매번 정수기 열어서 곰팡이가 생겼는지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태어날 아이를 위해 온도 조절이 가능한 정수기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아기들에게는 정수물을 한번 더 끓여서 주는 게 안전하다는 글들을 보니 어차피 한번 끓일 거 온수가 나오는 정수기가 필요할까 싶었다. 물론 그냥 정수기 물 줘도 큰 문제없겠고, 또 그렇게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문제지만 가능하면 아주 아기일 땐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최고의 것만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우리를 좀 더 까다롭게 만들고 있다.

 정수기는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바로바로 공급해주는 장점으로 여기고 있던 나는 고심하기 시작했다. 아내에게도 이런저런 장단점을 말해주니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결국엔 편의성을 택했다. 냉,온,정수가 되는 제품으로 결정을 한 것이다. 곰팡이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내와 태어날 아이를 위해 하나하나 준비하는 과정은 먼 여행을 떠나기 전 짐을 싸는 것과 같다. 캐리어가 채워지는만큼 마음이 든든한 것도 그렇고, 챙겨야 할 목록에 체크 표시가 더해질 때마다 여행이 실감 나기 때문이다. 오늘은 물을 챙겼다. 덕분에 나는 이제 물박사가 된 것 같다. 일반인치곤 꽤 전문적인 지식까지 갖추는 경지에 이르렀다. 처음엔 중공사막방식의 정수기를 생각하면 낙타도 생각나고, 중동 사막에서 얻을 수 있는 오아시스가 생각이 나는 정도였는데 지금도 그렇다.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계절마다 창조된 모든 것들이 새 옷을 입듯, 살에 닿는 온도가 때마다 달라지듯 우리의 임신기도 매일매일 새로운 시간들을 만나고 있다. 다만 저마다의 계절은 삼십여 년 동안 어김없이 반복되었기에 추워질 때가 오면 따뜻한 옷을 꺼내고, 더워질 때가 오면 가벼운 옷을 걸치고, 태풍이 오면 단도리를 하게 되는, '계절을 맞는 능숙함'이 생겼지만 이번 생에 임신은 처음이라 봄만 돼도 폭염 같고 서늘한 가을바람만 스쳐도 한겨울이 온 것 같다. 눈 앞에 또르르 흐르는 물줄기가 폭포수 같이 크고 유별나게 느껴지는 이유는 임신이 처음이고, 임신을 책으로 배웠기 때문인가 보다.  

 이런 이유로 14주에 병원을 찾았다. 12주 검사를 마치면 한 달 뒤인 16주에 다시 내원을 하게 되는데 잘 참다가 여러 증상들에 대한 궁금증으로 14주차에 병원을 예약하고 찾아가게 된 것이다. 이번엔 함께 동행하지 못했다. 병원에 함께 가지 못한 아쉬움은 아내만큼이나 나도 크다.


 아내가 병원에 도착한 후 나의 모든 정신은 휴대폰에 쏠려 있었다. 바쁜 업무 가운데에서도 아내의 연락이 오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두근거림은 더 성장해 있을 예쁨이에 대한 기대와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운전하며 병원을 가던 아내의 심정은 이보다 더 했겠지 생각이 든다. 이 긴장의 시간이 꽤 길어졌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응급수술이 생겨서 예약시간보다 두 시간 가까이 진료가 딜레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생명이 오가는 일일 테니 그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마침내 진료를 마친 아내는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참 많은 내용을 순식간에 전달하는 아내는 상처를 치료해 줄 사람 어디 갔나의 속사포 래퍼 수준이다. 딕션이 좋아서 다 잘 알아 들었다. 결론적으로 예쁨이는 아주 건강하고 주차에 맞게 잘 성장하고 있다고. 그리고 아내의 몸 상태 또한 다 정상적인 임신의 반응들이었다고 한다. 그 반응들은 예쁨이가 잘 자라고 있는 것의 증거들이었던 것이다.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감사가 쏟아진다. 




 우리는 이번에 병원에 가면 혹시 성별을 알 수 있을까 기대했다. 인터넷에 글들을 찾아보니 진짜 빠르면 13-14주에 성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태아의 자세가 좋은 경우도 있었다. 반면 20주가 다 되도록 확인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태아가 다리를 꼬고 있거나 초음파상으로 구별할 수 없는 자세로 있는 경우이다. 하지만 빠른 주차 검사에서 확인되었던 성별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초음파가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기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은 16주 2차 기형아 검사를 받으러 내원할 때에 성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각도법'이라는 방법으로 임신 초기부터 성별을 짐작하기도 하는데 이 방법이 확실하다는 의학적 근거는 없지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한다. 5:5확률이니 우연히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많겠다. 부모들의 때 이른 궁금증 앞에서 뭐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 것에 만족할 정도로 여겨진다. 누구나 그렇듯 우리도 아기의 성별이 미치도록 궁금했다. 그래서 아내는 의사 선생님의 진료 결과 말씀이 거의 마칠 때쯤 여쭸다.

선생님, 혹시 성별은...

 여전히 초음파를 이리저리 돌려보던 의사 선생님은 아직 성별을 구분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초음파에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완전한 무언가가 보였다. 나도 아내가 보내온 사진과 임신 어플의 초음파 영상에서 확인해봤는데 예쁨이의 자세는 "엄마 아빠 저 아들이에요"하며 자랑하고 있는 듯했다. 아래 초음파는 예쁨이의 엉덩이 쪽을 바라본 사진이다. 앉은 자세가 너무 사랑스럽지 아니한가.  

 의사 선생님은 절대 아들이라고 하지 않았고 "보이시죠?" 정도로 힌트만 주셨다. 그리고 아내는 그 힌트를 받지 않아도 아들임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추후 성별 반전은 없을 것 같다. 명.확.하.다. 역시 우리 아들. 잘 될 잎은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던가. 훌륭하다.

 그런데 우리는 내심 예쁨이가 딸일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아내의 당황스러움 앞에 의사 쓰앵님은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아마 요즘 많은 부모님들이 딸을 원하나 보다. 실제로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은 성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딸이 귀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들이던 딸이던 우리에게 찾아와 주었다는 자체만으로 기쁘고 감사하다. 성별에 대한 아쉬움은 크나큰 사치이며 오만이다. 아내는 이 일들을 내게 설명하며 

"아들이야 아들!"을 외쳐댔다. 그 외침은 드디어 성별을 알게 된 기쁨과 딸이 아님에 대한 약간의 미련, 그리고 아이를 향해 한 발 더 나아갔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들의 표출이었다. 나 또한 그 마음이었다. 예쁨이는 이미 엄마 뱃속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살아 숨 쉬고 있는 우리 자녀인데, 성별을 알고 나니 또다시 새 생명을 만난 것처럼 임신에 대한 사실이 놀랍고 새롭고 신기하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와 비길 만큼 생명의 탄생에 대해 다시 바라보게 된다. 임신에 대해 익숙해질 만할 때에 다시 한번 이렇게 예쁨이의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선물 같았다. 




 유독 늦게 퇴근하고 유독 피곤했던 그날 밤. 샤워 후 침대에 뻗어버렸다. 샤워하며 양치까지 마쳤다는 것은 더 이상 무얼 먹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정신을 붙들고 아내를 축복하고 예쁨이를 축복했다. 얼마 전 아내가 태교 영상에서 보여준 "00가 00이를 사랑해!"를 말하며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가 예쁨이를 사랑해, 아빠가 예쁨이를 사랑해, 예수님이 예쁨이를 사랑해, 또르가 예쁨이를 사랑해, 갑돌이도 예쁨이를 사랑해. 세상 모든 것이 예쁨이를 사랑해. 축복해!" (또르와 갑돌이는 아내와 내가 결혼 전 본집에서 기르던 반려견의 이름이다)
  

좌-또르, 우-갑돌

 아내도 틈 날 때마다 이 태교를 하고 있다. 옆에서 보면 정말 엄마의 모습이다. 그냥 그런 모습들이 뭔가 짠하게 다가온다. 아내도 아직 애 같은데…

 이제 예쁨이는 아내의 감정을 통해서만이 아닌 실제로 청각이 발달하여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태교의 시작인 것이다. 청각으로 들려진 소리가 뇌까지 전달되기까진 20주 정도가 지나야 한다고는 하지만 개인차가 모두 있을 것이다. 벌써 성별을 알려준 예쁨이는 아마 천재가 아닐까 싶은 마음에 태교를 더 서두르고 싶다.

 성별을 알고 난 후의 작은 변화가 있다면, 예쁨이의 정체성이 오로지 '예쁨이'일 땐 굉장히 부드러웠는데 아들임을 확인하고 예쁨이를 대하는 내 모습에 온도차가 생겨버렸다. '아들은 강하게 키워야지' 하며 와일드해진것이다. 자제해야겠다. 여전히 가장 큰 사랑으로 탯속에서부터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려주고 싶고, 이로 인해 정말 행복한 아이가 되길 기도한다. 사랑을 많이 받은 자가 사랑을 나눌 줄 안다. 사랑 많이 받고, 그 사랑 전할 수 있는 우리 아들 되길.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남편의 임신을 기억하며 어려움을 나눠 들 수 있는 아내의 믿음직스러운 배우자가 되어야지.




선한 누설자


 임신가정 남편들의 시금석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길고 험한 경주의 대장정을 시작한 아내의 수고 가운데에서의 남편은, 놀고먹다가 출산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뛰며 물을 건네고, 길을 안내하고, 땀을 닦아주며 함께 임신한 마음으로 그 경주에 동참하는 남편의 모습을 그려왔다. 임신은 남편도 함께 하는 것이다. 태아는 아내에게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남편의 임신]이다.

 내 나름의 노력을 담은 이 [남편의 임신]이 바람직한 남편의 순도를 결정하는 상대적 비교 가치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내 나름의 꿀팁을 담은 이 글들이 슬기로운 남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얻어내기 쉬운 보석'이 되길 원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오만과 경솔들이 걷히고 최소한 '이 정도면 최악은 아닐 거예요' 정도의 기준선이 되어 가고 있다. 시금석 말고 시금치라도 되길.




 임신은 '탄생의 비밀'이다. 정말 비밀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살면서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고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이 '탄생을 위한 임신의 시간'은 말 그대로 잘 숨겨져 있던 비밀스러운 시간이었고 우리는 이 비밀을 파헤쳐가며 알아내고 있다. 이 비밀을 몸소 경험하고 있는 아내와 세상의 모든 임산부들의 위대한 항해에 경의를 표하게 되고, 이미 이 비밀을 맞닥뜨리고 클리어했던 모든 부모님들이 점점 크게만 느껴지는 시간이다. 덧붙여, 난 이 비밀에 대한 단서로 [남편의 임신] 기록을 남겨서 다음으로 이 길을 걷는 누군가에게 선한 누설자가 되기를 바란다.



 임신 초기를 지나 예쁨이의 성별도 알았고 이젠 임신 15주를 맞았다. 태아의 크기에 따라 임신 주수가 결정된다는 것은 머리털 나고 처음 알았다. 당연히 임신 시작 기점부터 임신 예정일이 결정되고 주차가 결정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태아의 크기에 따라 예정일과 임신 주차가 바뀌어가더라. 아내는 이제 조금 더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임신 이전과는 크게 다름없는 가정의 풍경이다. 그래서 더 내가 부족함을 느끼는 것일까.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모든 일을 담당하고 있다. 미안함과 동시에 어느 정도 아내가 안정되었음에 대한 신호로도 생각된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조마조마하다.



 임신 15주의 아내는 계속해서 변화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가끔 아내의 몸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아내의 임신 15주 증상과 그 밖의 일반적인 증상에 대해 정리해본다.



 1. 배 당김 : 아랫배가 지속적으로 당기고 때론 콕콕콕 찌르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교과서적인 임신기를 겪고 있는 아내이기 때문에 이 증상은 임신 14~15주에 느낄 수 있는 당연한 증상이다.

 2. 배 나옴 : 아직까진 누가 봐도 임산부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아랫배가 단단해지고 배의 두께가 두꺼워지고 있다. 배가 나온다기보다는 배가 커지는 느낌이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배가 나올 거라고 하고, 그 속도는 매우 빠를 것이라고 한다.

 3.아름다워지는 엄마 : 이 시기엔 에스트로겐의 증가와 혈액의 증가로 피부는 밝아지고 윤기가 더해진다고 한다. 머리도 덜 빠지고 오히려 풍성해진다고 한다. 내 아내는 이미 밝고 윤기 있는 피부였고 풍성한 모발 모발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 부분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이마에 자잘한 트러블들이 생기는데 이 또한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한다.

 4.튼살 : 지금 시기부터 배가 열심히 나올 테니 튼살을 주의하자. 튼살크림을 정성스럽게 발라주는 남편이 되길 원하며 포스팅했었다. 살성의 개인차로 인해 아무리 잘 관리해도 튼살이 생길 수 있는 반면 관리를 딱히 안 해도 튼살이 생기지 않는 이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 살성은 나도 모르니 무조건 선관리/후기대를 해보자.

 5.빈뇨 : 임신부는 소변이 자주 마렵다. 임신해서 소변이 자주 마렵기도 하고 적당한 양수를 위해 권장량의 물을 마시려 노력하기 때문에 따따블로 소변이 자주 마렵다. 그리고 소변 후 개운하지 않은 잔뇨감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6.약해진 잇몸 : 잇몸이 유독 약해진 것 같다고 한다. 잇몸의 색깔도 미세하게 변한 것 같다. 풍치와 같은 잇몸 질환이나 치은염이 생길 수 있는 이때! 더욱더 치과 질환을 조심하며 관리하자.

 7.입덧의 완화 : 완화라고 쓴 건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입덧은 임신 12~14주차 정도에 점점 완화되며 끝난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차로 인해 더 짧게, 혹은 더 길게 입덧을 가져간다고 한다. 아내의 경우는 아직 입덧이 2% 남아 있는 느낌이라고 한다. 끝까지 놔주지 않으려는 입덧이지만 점점 좋아지는 비위에 안도하고 있다.

 8.태동 : 태동은 태아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것이다. 아내는 14주부터 약간의 태동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으나 확실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지금은 일반적으로 태동을 느낄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고 말씀하셨고 책이나 어플에서도 태동은 20주 정도부터 잘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개인차가 있어서 빠르면 15~16주에도 작은 태동을 느끼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아내는 14주 때에 콕콕콕, 꼬르륵하는 느낌의 태동일지 아닐지 모르는 애매한 무언가를 느꼈지만 15주를 맞이한 지금은 이전과는 달리 '툭'하는 느낌의 태동을 느낀다고 한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이게 정말 태동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9.우울감 : 산전 우울증, 산후 우울증이라는 단어에는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그것이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는 잘 모른다. 최근 아내는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나는 이직으로 인해 매일 꽤 긴 시간 집을 비우게 되었다. 호르몬의 변화로 인함인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일로 얻던 활력을 잃어서 그런지.. 아니면 이 모든 게 결합되어 그런지 가끔 침울해지는 모습을 본다.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아내의 마음을 밝게 해 줄 시간과 능력이 한정되어 있음에 거대한 미안함만으로 밖에 위로의 마음을 내색할 방법이 없다.

 10.육체피로 : 어느 분께서 임신 중 아내의 체력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시길, 체력이 떨어진 게 아니라 밖으로만 쓰던 에너지를 태아를 위해 안으로도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게 인상적이었다. 아내가 작은 일에도 쉽게 지치고 힘들어하는 것은 이미 내적으로 큰일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로 임신 중에는 수시로 잠이 쏟아지고, 그것은 자야 한다는 신호이기에 낮잠을 자주는 게 맞다. 임산부는 수면시간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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