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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결된 봄 Sep 23. 2020

골목길에서 만난 '나'와 지금의 '나'

평범을 넘어 특별함을 준 당신.

골목길에서 만난 '나'와 지금

 

 간만에 골목길을 지나다가 십대때의 '나'를 만났다. 아픈 기억은 철저히 묻어버리는 방어기제로 살았던터라 정말 오랜만에 만난 아이다. 반갑게 인사하려는데 아이는 저 앞에서 인생의 무게를 터질듯이 넣은 책가방을 매고 신 뒤를 질질끌며 땅을 향해 걷고 있다. 멀쩡한 앞코에 비해 신 뒷꿈치는 안감이 드러날만큼 닳아빠진게 주인이랑 꼭 잘어울린다.


 그때의 내가 살아낼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좋아질것같은 기미라곤 도무지 없었고 그저 내 광대에 덕지덕지 붙은 주근깨에 스스로가 더 못나보였다.


 그렇게 나는 사막 한가운데서 겨우 물 한모금 마시듯 죽지 않을만큼만 살아있었다.


 그 발걸음이 향한 곳이 어디였든 아무 의미없었다. 어딜가든 죽어다녔고 어딜가도 살지 못했다. 나은 미래를 그려보지 못했기에 뭘 해도 의미없었다. 그래서 열심히 해본것도 없고 잘하는것도 없었다.


 나만큼 힘든 사람을 보지 못했으니 남들이 날 볼 때 어떨까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평범보다 조금 못하겠거니 생각하며 살았던것 같은데 어쩌면 참 다행이다.


 중학생의 나이로 가족 몰래 피자배달을 했었다. 나는 피자집에서 서빙을 한다고 거짓말을 해왔었다. 배달 중 화진마트 앞 피해갈 수도 없는 좁은 길에서 만난 어머니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듯 조심히 잘가라고 했다. 말려도 책임질수 없는 무능 앞에 혼낼 논리조차 찾을수 없으셨겠지.


 '아직 애'가 등굣길을 나서며 부모 머리맡에 천원짜리 몇장을 놓고 나오는 그 마음은 아무도 모르겠지. 이 마음을 아는 이가 있다면 힘껏 안고 울어줄것이다.


 늘 최악은 최악을 경신했다. 아무일도 없으면 아무 일이라도 생겼고 좋아진다싶을땐 더 큰일로 비극적인 드라마를 완성했다.


 대로변을 만나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의 내가 보인다. 뜻대로 되는게 하나 없던 내가 이젠 가고자 했던 길에 서있다. 신 뒤도 깔끔하다. 평범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어딜가든 의미가 있고 무얼하든 발전한다.


 스스로를 파괴시켰던 내 자아는 이제 없고, 수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 말하는 당신으로 인해 오늘도 새롭다. 평범함을 넘어 특별한 내가 되었다. 당신과 함께 이룬 모든것들이 초단위로 소중하다. 자꾸 꺼내어보고싶은 기억이 쌓이기에 이제부터라도 일기를 써야겠다.


 꺼져가는 불씨에 손을 모아 바람을 막아주는 당신과, 나를 더 빛나게 하는 당신과 오늘도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싶다. 길을 가다가 당신이 좋아하는 대체 언제부터 얼마나 끓였는지도 모를만큼 잘 졸여진 붉디 붉은 떡볶이를 어묵위주로 포장해달라고 했다. 이건 무조건 사야한다. 이 작은것에도 기뻐하는 당신이기에 나 또한 사랑받을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고맙고 사랑한다. 두려말라 붙들리라 약속하신 창조주의 마음으로 늘 함께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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