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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결된 봄 Sep 06. 2020

해결된 봄:남편의 임신_ 삶이 멈춰버린 것 같아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임신 20주차>

내 삶이 멈춰 버린 것 같아.

 임신 20주. 아내는 '멈춰진 시간'이라는 표현으로 마음을 말했다. '산전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하지만 아내는 한 끝 차이로 우울과 무기력 그 어딘가에서 수렁으로 빠져 들지 않으려 조용히 발버둥 치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임신 중에는 몸과 외부 환경에 대한 변화, 또 급격한 호르몬의 변화와 출산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울감을 호소할 수 있다고 들었지만 우리의 일은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아내는 모든 임신 증상을 교과서처럼 겪고 있으니 역시나 감수성이 풍부해졌고 감정 기복이 심할 때도 있다. 다행인 것은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 맞닥뜨려 제대로 들여다보려는 의지적 모습이다. 그리고 나도 이런 상황을 결코 팽개치지 않을 것이다.  


 아내는 스스로의 삶이 멈춰진 것 같다고 하며 간혹 무기력과 우울감을 호소하는데, 우리가 살아왔던 배경을 알면 이를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둘의 공통점은 열심히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열심히 산 게 아니라 열심히 살아야만 했다는 것이다. 뜨거운 사막 길을 끝없이 걷는 한 짐 실은 낙타처럼, 걸어지는 걸음이 아니라 걸어야 하는 걸음을 이어오다가 만나게 된 우리다. 삶이란 게 참 노곤하다는 것을 서로 완벽히 공감했기에 서로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었나 보다.


 누가 열심히 살지 않았겠냐마는 '열심히 살았다'라는 말에는 양자가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열심'을 선택해서 달리지만 우리는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열심'으로 달려야만 하는 이들이었다. 마치 종료 버튼이 고장난 빠르게 돌아가는 러닝머신 위에 있는 것 같았다. 달리지 않으면 떨어진다. 떨어지면 다시 오를 수 없을지 모른다.

 이렇게 끊임없이 달리는 것은 생산적인 무언가를 계속 발생시켜 지금의 우리가 있게 했다. 그리고 이렇게 달리는 게 오히려 편안한 경지에 올랐다. 그런데 이제 아내의 삶이 바뀌었다. 임신 초기, 일을 계속하게 되면 위험할 수 있다는 주치의의 소견에 따라 하던 일을 포기하고 집에서 소위 '눕눕'하기 시작했다.(눕고 또 눕고의 줄임말이다) 쉼 같지 않은 쉼이 찾아온 것이다. 그 쉼을 '쉼의 노동'이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쉬는 것은 곧 아내 본인의 몸과 태아를 향한 '돌봄'의 행위였다. 그 쉼이 이어져 임신 20주를 맞이했다. 아내의 '전진'이 '정지'가 된 지 석 달째다. 학생 때는 등하교로, 졸업 후엔 출퇴근으로 도배된 삶에 익숙했던 아내는 이제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내는 삶이 멈춰진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열심히 달리던 러닝머신에서 내려오면 내 몸의 느낌이 되게 이상하지 않은가? 선택한 쉼이 아니라 선택당한 쉼이라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할 상황이니 답답도 하겠다. 다른 20주 임산부들은 이제 운동을 해야 하고 여행도 가능하다던데. 조금만 더 참으면 우리에게도 안정기가 올 것이다.




 아내는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졌다.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 때문에 입에서 단내 나도록 외롭기도 할 것이다. 가끔 손님이 찾아와 아내의 말동무가 되어 주기는 하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인간관계일뿐, 여전히 자신의 하루는 멈춰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아내는 무기력과 우울 그 사이 어딘가에 서있다.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다.

 그렇게 아내는 스스로 멈춰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럴 땐 분명한 사실을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평소와는 다르게 단호하게 말해줬다.


당신은 절대 멈춰 있는 게 아니야.
당신은 매일 예쁨이를 성장시키고 있고 엄마로서 엄청난 일을 해내고 있는 중이야.
 당신의 시간은 전보다 더 의미 있게 가고 있어. 힘내!
백무산 시인 '멈춤' (글씨 - 타타오)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그러면서 왜 임신과 출산을 도맡는 '엄마의 자격'은 이력서에 들어가지도 않고 경력으로 쳐주지도 않냐며, 군필자 이상의 처우를 해달라고 정부에게 쓴소리를 날렸다. 방구석 개인 청원이라고나 할까.

 임산부의 시간은 누구보다도 더 뜨겁게 달리고 있다. 고귀한 생명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뜀박질이다. 이제 더 이상 무기력과 우울 사이가 아닌 나와 아이의 사이에서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고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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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이 끝난 줄 알았을 텐데 아니다. 아내가 이 사진들을 보면 100% 미소 짓게 될 것이다. 사실 아내의 기분에 있어서는 개가 나보다 낫다.

 -임신 20주의 아내는 배가 급속도로 불러오고 있다. 앞으로 계속 나온다. 자고 일어나면 더 나와있다. 체중도 조금씩 늘고 있다. 당연한 건데 스트레스 받아 한다. 오늘부턴 간식을 끊겠다고 한다. 그래놓고 친구 만나러 갔다. 분명 밥 이외의 무언가를 많이 먹을 것이다. 카드 승인 문자가 왔다. 마트에서 무언가를 샀다.

 -나는 틈틈이 튼살크림으로 아내를 마사지를 하고, 가능하면 매일, 잠들기 전 유튜브에서 배운 임산부 마사지를 해주고 있다. 아킬레스건부터 종아리 뒷면, 허벅지 측면과 둔부, 허리와 날개뼈, 어깨, 목 순으로 올라간다. 배가 커짐에 따른 골반 통증이 있을 수 있다고 하여 그것 또한 유튜브에서 배운 스트레칭을 실시해준다. 요즘 부종이 없다니 더 보람이 있다. 이렇게 마사지를 마칠 쯤이면 아내는 반수면 상태에 돌입한다. 편안하다는 증거겠지. 

 -예쁨이는 요즘 신나게 놀고 있다. 오늘은 아내가 핫초코를 마시고 나니 예쁨이가 파티를 한다고 했다. 아내는 태교 놀이에도 성공을 했으나 난 아직 예쁨이의 태동을 직접 느끼지 못했다. 내 손이 둔한 건지 계속 실패한다. 밀당의 황제 예쁨이다. 이렇게 폭풍 태동으로 엄마에게 안도를 주는 우리 효자 예쁨이는 이제 23cm 정도에 도달했다. 몸무개는 360g 정도 된다고 한다. 고환이 자리 잡고 있는 등 생식기관이 발달하고 있다. 짜식. 그밖에도 빛의 자극을 알 수 있는 시각, 소리가 들리는 청각, 양수의 맛을 느끼는 미각, 양수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후각 등 뱃속에서 오감을 발달시키고 있다. 그리고 솜털이나 눈썹, 속눈썹이 돋아나고 머리숱도 많아지는 시기.. 와.. 

 임신 20주. 임신기의 반이 지났다. 정말 애 많이 썼어.. 점점 아름다워지고 있는 당신. 점점 완성되어가는 예쁨이. 다 좋을 거야. 잘될 거야. 그럼, 그렇고 말고!




밀당의 고수


 대략 15-16주쯤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태동이 태동했다. 말 그대로 뱃속에서의 태아의 움직임이 순산을 알리는 기운을 싹트게 했다. 긴가 민가 할 정도로 약하게 시작한 태동은 금세 배가 살짝 오를 만큼이나 강해졌다. 아쉽게도 나는 아직 아내가 찍은 영상으로만 확인했다. '보올록' 하고 예쁨이가 엄마 배를 미는 것을 말이다. 


 태동은 엄마의 마음도 태동하게 한다. 태동이 있기 전에는 병원에 가지 않는 한 아기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는데 이제는 아기의 움직임이 엄마에게 안도가 되고 위로가 된다. 아내 또한 태동을 느끼며 우리 아이가 잘 있구나 확신하며 이전보다 더 안정적인 마음으로 임신기를 보내고 있다. 태동은 태아 건강의 신호이기 때문에 아기가 부모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아직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태동이 강했다며, 한참을 뱃속에서 놀았다며 말하는 아내의 말을 들으면 오늘은 나도 느낄 수 있겠지 기대를 하게 된다. 아내 또한 나도 같이 느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 태동이 느껴지면 우리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된다. 아내는 갑자기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크게 뜬 눈으로 나에게 신호를 준다. 살며시 아랫배에 손을 가져다 대라는 것이다. 잘 놀고 있는 아기가 놀라지 않게, 계속 움직일 수 있도록 최대한 조심하자는 것이다. 그럼 나는 정말 조심스레 아내 배에 손을 가져다 대고 모든 감각을 손바닥과 손가락에 집중시킨다. 그렇게 하면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내 맥박을. 손끝에도, 손바닥에서도, 아내 배에서까지 맥박을 느끼는 경험은 당연한 건데도 괜히 원망스럽다. 맥박이 꽤 강한 진동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는 태동보다 내 맥박을 더 크게 느끼는 건지, 아내가 태동을 느낄 때에도 나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손만 가져다 대면 예쁨이는 얼음 놀이를 하듯 잠잠해지기 일쑤였다. 제대로 밀당 당하고 있었다.


 함께 태동을 느끼고 싶은 아내는 배와 맞닿아 있던 본인 허벅지도 태동을 느꼈는데 왜 당신은 못 느끼냐며, 내가 둔하다고 구박을 준다. 나도 느끼고 싶다고요…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밀당의 고수인 예쁨이는 계속해서 나에게 쉽게 태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여느 때와 같이 함께 소파에 앉아있는데 아내가 또 눈을 크게 뜨고 신호를 보내왔다. 이제 눈만 봐도 아는 나는 조심스럽게 아내 배에 손을 가져다 댔고, 아내는 내 손의 위치를 태동이 있는 쪽으로 살며시 옮겨주었다. 여전히 내 맥은 잘 뛰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는데 맥의 패턴과는 다른 움직임이 내 중지 약지 끝을 "턱"하고 쳤다. 그리고 아내와 눈을 마주쳤고 아내는 놀란 내 눈빛에 그게 태동이 맞다고 눈으로 대답했다. 처음 예쁨이의 태동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저 "오..오.. 오!!!"밖에 말이 안 나왔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 최고급 감탄사이다. 오오 하고 있는 나에게 아내는 말한다. 이번엔 정말 큰 태동이었다고. 큰 태동이었기에 내 손도 배 속에 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몇 주나 밀당 놀이로 아빠를 우롱한 것이 미안했는지 큰 선물 하나를 안겨준 것 같다. 낚시에만 손맛이 있는 줄 알았는데 태동을 느끼는 손맛은 그에 비길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감동이었다. 사실 아직까지는 정말 작은 움직임이지만 내 손엔 지진이었다.

 주위에서 들어보니 만삭이 다가올수록 태동도 커지고 손바닥으로 누른 건지 발바닥으로 누른 건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보고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땐 아이와 더 실감나게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야만 교감을 하고, 아이가 내 눈에 보여야만 교감이 가능한 줄 알았다. 하지만 교감이라는 것은 뱃속에서 생명이 시작될 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은 임신의 순간부터 부단히 아내와 아이에게 관심하고 공감해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게 될 것 같다.

나였다. 아빠.  


 그 선물 같은 태동을 느끼고 며칠이 지났다. 나는 매일 조용히 손을 가져다 대며 태동을 원하지만 예쁨이는 안에서 피식 웃으며 아빠에게 '움직여주지 않는 장난'을 치고 있는 듯하다. 조용히 손을 가져다 대고 팔이 저릴 정도로 부동의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해도 그렇다. 그럼 작전을 변경해 "예쁨아! 하이파이브!!"를 외치며 태동과 내 손의 만남을 간절히 원하지만 여전히 예쁨이는 다시 밀당의 최고수가 되어 나에게 쉽사리 태동을 허락하지 않는다. 예쁨아 잘 생각해봐. 목말 태워줄 사람이 누구인지. 몰래 용돈 줄 사람이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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