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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결된 봄 Sep 01. 2020

해결된 봄:남편의 임신_ 커피와의 전쟁

참지 말고 지혜롭게 디카페인으로 <임신 19주차>

(목차 축소를 위해 아랫글과 중복)

 아내에게 커피는 일종의 에너지원이었다. 커피 한 잔에 피로를 날리기도 하고 아메리카노와 달달한 디저트의 조합으로 기분을 전환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신 이후 삶이 달라졌다. 임산부에게 좋지 않은 카페인을 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커피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카페인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실제로 임산부가 섭취하는 카페인 성분은 태반을 쉽게 통과하여 태아에게 전달된다. 태아는 이 카페인을 분해하거나 몸 밖으로 내보내기 어려워 임신 중 지나친 카페인 섭취는 태아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아내에게 카페인을 참기란 눈 앞에 치킨, 또는 구워지는 삼겹살을 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혹시나하고 의사 선생님께 임산부가 커피를 마셔도 되느냐고 물으니 인자한 표정을 지으시며,


하루 한 잔 정도의 커피는 마셔도 됩니다

 

 라고 하신다. 마치 커피 한 잔의 카페인을 내가 허용해 주노니 금일부터는 자제치 않아도 된다는 신의 하사 같았다. 하지만 임산부는 그 한 잔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좋다는 걸 먹어도 모자랄 판에 안 좋다는 것을 들이키는 것은 정말 간절하지 않고서야 힘들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자연스레 임산부와 카페인의 관계를 찾아보게 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자료에 따르면 임산부의 경우 카페인을 하루 300mg 이내로 섭취할 것을 권고했다. 300mg은 캔커피 4개의 함량이나 된다.

제품별 카페인 함량(출처:식품의약품안전처)

 

 아내는 커피는 물론, 콜라도 멀리하고 초콜릿도 멀리하며 카페인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그러다가 정말 먹고 싶을 땐 내가 먹는 커피를 입에 적시는 정도였다. 그 정도로도 눈이 뜨인다며 행복해했다. 좀 과감할 땐 스타X스에서 디카페인 커피 가장 작은 사이즈를 주문해 물을 더 넣어 엷게 마시기도 했다. 우린 그때까지만 해도 디카페인 커피는 아주 엷게 탄 커피인 줄 알았다. 처음엔 디카페인 커피가 일반 커피만큼 쓴 맛이 강하고 맛있어서 카페 직원에게 디카페인이 맞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아오 창피해. 나중에 안 것인데 디카페인은 원두에 있는 카페인을 90% 이상 추출하여 맛과 향은 최대한 유지시키고 카페인 함량은 확 낮춘 커피였다. 와, 진작에 알았더라면..

디카페인의 카페인 함량


 그래서 나는 아내를 위해 좋은 디카페인 원두를 공수하기로 했다. 이제 가끔은 편안하게 마시길 바라며 열심히 검색을 시작했다. 너무 저렴한 건 찜찜했다. 임산부 아내가 먹을 거니까. 오랜 검색 끝에 이거다 싶은 제품을 찾았다. 아내는 산미가 강한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에티오피아 디카페인 원두를 주문했다. 1kg에 3만원 초반대인데 이것을 200g씩 소분 포장을 요청하게 되면 옵션 금액이 추가되고 배송비까지 하면 3만원 후반대의 금액이 나온다. 용도에 따라 분쇄 정도를 골라 주문할 수도 있었다.

.

  나는 홀빈으로 주문했다. 핸드드립을 하면 뭔가 장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갈아져 오는 원두는 향을 금방 잃는다. 이틀 후, 주문한 디카페인 원두배송이 완료됐다. 이날은 아내에게 맘 편히 먹을 수 있는 커피를 직접 대령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디카페인 원두


 이 디카페인 원두로 말하자면 스위스 워터 프로세스 방식으로 물을 이용하여 카페인을 제거했다고 한다. 화학 성분을 사용하지 않았고 햇콩만 사용하여 안정성과 커피 본래 맛을 유지하였다고 한다.(대부분의 디카페인 원두가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 원두보다 맛과 향이 오래가지 않으며 오래 보관 시 원두에서 오일이 새어 나오는 약간의 단점도 있다고 한다. 이러나저러나 먹을 수 있는 커피가 있다는 게 다행인 부분이다. 

 

 일반 커피에 비해 1/10 수준의 카페인 함량이 있다고 하니 디카페인 커피 한 잔은 임산부에게도 전혀 무리가 되지 않겠다. 우기자면, 의사 선생님은 일반 커피 한 잔 정도 마셔도 된다고 했으니까 디카페인 10잔을 허용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겨우 디카페인 한 잔의 카페인은 아무 지장 없겠다. 게다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먹는 음식 중에 들어있는 카페인 함량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거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실험을 해봤다. 난 원래 저녁에 커피를 먹으면 그 날은 잘 못 잔다. 카페인에 예민한 몸이기 때문에 늘 오전이나 점심 직후에만 커피를 즐겼었는데 이 디카페인 커피 한 잔을 저녁에 마셔보았다. 밤에 자는데 문제가 없었다. 임상 실험을 성공리에 마쳤다.

  



 아내가 겪는 첫 임신은 변화무쌍의 연속이었다. 그 변화는 참아야 할 과제들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아내는 그것들과 매일 전쟁하며 체력과 마음을 소모해버리는 중이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카페인이었다.(비슷한 류의 전쟁으로 주류를 참고 있는 분들도 많을 텐데 무알콜 맥주도 알코올 성분이 있긴 있다고 하니 주류와의 전쟁에 있어서 무알코올 맥주는 대안이 되지 않습니다) 쉽게 참아진다면 문제없겠지만 매일 그 감칠맛 나는 쓰디쓴 목 넘김을 그리워한다면 그것은 침이 바싹바싹 마르는 고통일 것이다. 몸의 건강만큼 정신의 건강도 중요한 이때, 디카페인 커피는 천국의 계단과도 같은 존재이다. 가끔 커피 한 잔은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임산부의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다. 디카페인 커피를 구매한 것은 내가 요즘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다. 여보 참지 말고 편하게 먹어. 곱게 갈아 풍미 가득 내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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