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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결된 봄 Oct 07. 2020

해결된 봄:남편의 임신_ 꿈이 말한다

임신 중 악몽과 불안, 그리고 출산에 대해 <임신 31주차>

(목차 축소를 위해 아랫글과 중복) 

새벽 네 시. 악몽에 시달리는지, 아내는 몹시 괴로워하며 앓는 소리를 낸다. 얼른 허벅지를 살살 흔들어 깨웠다. 잠귀 어두운 내가 아내의 신음을 알아차린 것은 대단한 일이다. 아마 그 악몽에서 어서 깨워주라는 하늘의 계시였나 보다. 이런 일은 결혼하고 나서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아내가 악몽을 꾸는 일도 거의 없으니 흔치 않은 일이다. 악몽에서 깨어난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몇 마디 다정하게 건넸다. 물을 찾는 아내에게 냉수 한 컵을 떠다 주었다. 잠에서 깬 아내는 아직 악몽의 여운이 남았는지 푸 하고 숨을 내쉰다.


 저녁에 물어보니 꿈이 상세히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꿈에서의 새로운 경험은 실제 삶에서 겪어 본 적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뇌가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럴 땐 참 다행이다. 아내는 꿈에 대해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귀신이 나오는 꿈이었고 자기의 턱을 양 옆으로 흔들리게 했었던 것 같다고 한다. 가끔 개꿈도 있지만 대부분의 꿈은 마음, 곧 본인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 꿈의 해석을 믿진 않는다. 하지만 어제 아내의 악몽은 임신 8개월을 넘긴 아내의 마음, 또는 누르고 있던 출산에 대한 공포감이 표출된 것 같았다. 꿈이 말한다. 불안하다고.


 임신 31주, 이제 출산 예정일이 두 달도 남지 않았다. 아내는 임신의 주차가 늘수록 출산에 대해 많이 찾아보기도 하고,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출산에 대해 많이 접하게 된다. 하지만 일관되게 하는 말이 있다. "난 출산이 그렇게 무섭진 않아."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더 강해지려는 아내의 모습처럼 보인다. 어찌 안무서울수가 있을까. "무섭지 않아"라는 말이 "무서워하지 않을 거야"라는 말로 들린다.


 자주 이용하는 임신 어플에서는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고 있다. 어떤 말풍선은 '출산은 엄마도 걸어온 길, 무섭지 않아요.'라고 하다가 어떤 말풍선에서는 '출산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두려워하라는 건지 두려워하지 말라는 건지. 출산은 목숨을 건 일이지만 두려운 감정으로 기다리지는 말라는 정도로 이해해야겠다.

 여하튼 임신과 출산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본인과 아기의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라는 것에 전혀 이견이 없다. 이 목숨을 건 엄청난 일이 오롯이 아내의 몫이고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내 마음은 복합적으로 심란하다. 복합적인 감정을 들여다보니 미안함과 두려움, 막막함과 겁 같은 감정들이 얽혀있다.


 아내의 임신에 있어서는 함께 임신하는 마음으로 아내를 지원하고 모든 일에 함께 애쓰며 임신기를 보내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덜고 있지만 출산의 상황에서는 기도 외론 그 아무것도 함께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내의 육체적 고통이 내 육체의 고통이 될 수 없고, 아내의 목숨 대신 내 목숨을 걸고 출산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 두려움이 아내의 두려움과 비길 수 없고, 출산의 흔적이 내 흔적이 될 수 없다. 노답인 상황이기에 내 마음의 발은 계속 동동거리기만 한다.




 내 휴대폰에 저장된 옛 사진들을 함께 꺼내어 보았다. 지금보다 15kg 가까이 덜 나갔던 몇 년 전 아내의 사진들이다. 그 사진들을 보며 정말 말랐었다며, 참 예뻤었다며 인생 끝났다는 식으로 말하길래, 그때보다 지금이 예쁘고, 하나도 살쪄 보이지 않는다며 지금 이 각도로 셀카를 찍어도 똑같이 나올 거라며 카메라를 켰다. 여기까지.




 우리 아기의 태명은 '예쁨이' 이다. 아들이다. 효자다. 새 생명에 대한 기쁨과 기대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정도로 크다. '크다'라는 단어로 표현되지 않을 만큼 크다. 우린 그 벅찬 기다림으로 하루하루를 살지만 새 생명을 만나기까지 감당해야 할 연단은 쓰다. 이 과정에서 남편이 할 수 있는 것은 참 없지만 어거지로라도 찾아보자면. 늘 아내의 마음에 공감하고, 늘 '잘'하는 것이다. 임신의 기간에 잘하고, 출산 후에도 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활짝 피었다고 생각했던 그때보다 더 화사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포기했던 것들을 다시 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지원하는 것. 이것이 남편인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불안함은 잊고 오로지 행복할 수 있도록. 꿈에서 조차 그 기분이 이어질 수 있도록. 그래서 기분 나쁜 꿈들이 차지할 공간을 허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남편의 임신]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혹시나 아래 글이 단 0.1%라도 위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남긴다. 다만 산과 전문의가 아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말이라서 백퍼 신뢰가 가진 않는다. 산과 전문의의 글을 찾아 나서야겠다.

 출산에 대한 두려움은 너무나 당연한 마음입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는 산모와 아이 모두에게 생사를 넘나드는 큰 일이었고, 지금도 상당한 고통과 많은 변수를 수반하는 일생의 사건입니다. 다만 산전 진찰을 비롯한 산과적 의학이 상당히 발전을 하여 출산 과정이 산모와 아이 모두의 위험이나 부담이 많이 줄었습니다. 또한 무통분만(필요시)이나 제왕절개와 같은 술기 등의 발전으로 예전보다는 산모의 고통과 부담을 덜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불안은 또 다른 불안의 씨앗을 낳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네이버 포스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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