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서 다행이다

실패가 실패로 끝나지 않을수 있는 비결

by 해결된 봄

타카타카. 타카타카. 유난히 걷고 싶어서 집을 나선 어느 날, 타카심 박는 소리가 내 고막을 때린다. 사색의 시간을 방해 받은 마음에, 불만스러운듯 고개를 삐뚤게 꺾어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마른 근육질 체구에 정리되지 않은 수염을 가진 아저씨 한 분이 네다섯 평 남짓의 작은 상가 하나를 짓고 있었고, 그새 그 매서운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싸우면 질 게 뻔해 살포시 눈을 깔고 티 안나게 힘을 뺐다. 난 싸울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전달하고 슬며시 눈을 들어 짓고 있던 건물을 보니 완성도 한참 먼 것 같은데 벌써 ‘임대’ 종이가 벌써 붙어있다.


그곳은 경암동 철길마을이라 부르는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철도길 중간쯤이었다. 철길과 오래된 집들은 닿을듯 말듯 아슬아슬한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그 때문에 기차가 이곳을 지날 때면 10km이하로 달렸다지. 이 기이하고 운치있는 광경에 가끔 이곳을 타박타박 걷곤 했다.


생계를 뒤로하고 꿈을 쫓겠다며 호기롭게 대학원에 입학했었다. 조금만 더 공부를 하면 내 삶이 분명 나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도 미세먼지 가득한 날 저 멀리 실루엣만 보이는 아파트처럼 앞날이 희미했다. 누가 봐도 실패자의 구부정한 자세로 땅을 걷고 있던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임대’딱지에 붙은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이미 마음속에 ‘창업’이라는 단어가 들어와 있던 것이다. 아저씨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니 이 건물은 한 달 뒤쯤이면 완성이 될 것이고 임대료는 1년에 200만원이라고 한다. 철길의 가치를 알고 있는 나에겐 아주 반가운 금액이었다. 그 자리에서 구두 계약을 했고 상가가 완성되면 꼭 연락을 주기로 했다.


그렇게 한 줄기 희망을 창업에 걸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200만원도 없고, 장사를 혼자 감당할 자신도 없다. 그 때 친구 한 놈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혼의 동반자였던 그 친구는 나와 같은 실패자였다. 얼마 전 다니던 회사에 학을 떼고 퇴직 한 후 백수 신세였기 때문이다. 월급이 최고다 생각하고 있던 그 친구를 설득하는 데에만 보름의 시간이 걸렸고 마침내 그 친구의 퇴직금과 나의 대출로 필요한 금액을 만들어 최종 계약 후 우린 동업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서로를 홍사장, 김사장이라 부르며 사장 놀이에 재미를 붙였다. 그렇게 [땅콩역]이라는 땅콩만한 땅콩아이스크림 가게가 탄생했다.


그런데 어쩌나. 사람들이 많이 다녀도 사먹는 사람이 없다. 망한 기운이 파리 두 마리와 함께 가게 안팎을 맴돌았다. 그렇게 한 달을 둘이 붙어 장사하고 결산을 내보니 마이너스 15만원. 둘 중 누구도 한 달 동안의 수고를 토닥여줄 급여를 땡전 한 푼 받지 못했다. 제대로 실패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레몬보다 비타민C가 30배 많다는 신의 열매 깔라만시를 주력으로 음료 장사에 나섰다. 거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수준으로 호객을 했고 꽤 잘 팔렸다. 게다가 아이스크림보다 만들기가 수월했고 마진이 좋았다. 우린 생각했다. 아이스크림 망해서 진짜 다행이다.


땅콩역


우리 인생에도 한 줌 햇볕이 쬐이는 듯 했다. 우리는, 곧 깔라만씨 퓨레의 가격이 대폭 오른다는 수입원의 소리를 듣고 백만원어치의 퓨레를 구입해놓았다. 그런데 시청에서 단속이 나왔다. 이곳에서는 먹을 것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며 계속 음식 영업을 할 경우 처벌이 있을 수 있다고.. 우리의 첫 실패는 실패의 시작의 불과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우리가 죄지. 모든 기계와 식자재를 헐값에 팔아치우고 다시 구부정한 등짝으로 나란히 앉아 이제 무얼 먹고 사나 궁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예전에 즐겨하던 뽑기가 생각났다. 스템플러가 박힌 종이를 뜯어 펼치면 그 안에 등수가 쓰여 있고 그에 맞는 상품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추억의 뽑기판을 주문했고 추억의 장난감도 사들였다. 황금 설탕엿 틀도 사서, 설탕엿을 만들었다. 이 엿을 만드는 설탕과 물, 물엿의 최고 배합을 찾는 데에는 거의 한 달이나 걸렸다.


[땅콩역]의 간판은 내리고 나무 판자에 [우리문방구]라고 큼지막하게 써 붙인 후 새 출발을 했다. 그리고 하루만에 대박이 났다. 우리 둘로는 부족할 정도로 바빴으며 순이익도 껑충 뛰었다. 재밌게 하던 사장놀이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었다. 음료를 만들 필요도 없이 도매로 사놓은 물건을 좀 더 비싸게 판매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우린 또 말했다. 음료 장사 망해서 진짜 다행이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을 하니 계도장이 가게 문 앞에 떡하니 붙어있었다. 이 건물은 국유지에 지은 불법 건축물로써 기한 내에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철거를 집행하겠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무식이 죄였다. 등기부등본 그런 단어 알지도 못하던 때다. 당장 건물주에게 찾아가 따지니 겁만 주는 것이지 절대 강제철거 당할 일 없으니 호들갑 좀 떨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몇 번 더 계도장이 붙었고 우린 하루하루 불안의 시간 속에 살고 있었다.


2015년 12월, 첫눈이 내렸다. 차 유리에 영롱히 떨어지는 첫 눈송이를 바라보며 가게에 도착할 무렵 몇 대의 중장비들이 보였고, 싸한 느낌으로 가게에 다다르니 가게를 둘러싼 사람들이 보였다. 내려서 보니 예감이 맞았다. 담당 공무원은 단호한 어조로 짐 뺄 시간은 주겠다고 한다. 눈물을 틀어막으며 하나하나 짐을 뺐고 용달차를 불러 적당한 곳에 옮겨두었다. 이내 포크레인은 인정사정없이 건물을 눌러 내렸고 조립식 가게는 내 마음처럼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첫 눈도 내렸던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우린 또 망했다.


강제철거


자주 가던 분식집에서 김밥과 쫄면에 서로 얼굴을 박고 실패자의 표정을 감췄다. 다음 날, 남은 재고는 없애자 생각하고 접이식 테이블을 펼쳐 철거된 그 자리에서 노점상을 시작했다. 날씨까지 혹독했다. 철길을 양 옆으로 둘러싼 집과 집 사이를 스켈레톤 하듯 타고 온 냉기는 피부를 베어내고 뼛속까지 파고 들었다. 우리의 행색은 누가 봐도 거지 두 명이 나와 구걸을 하고 있는 모습 같았다.


노점


누군가는 이정도가 겨우 ‘실패’냐고 하겠지만 내 손톱 밑 가시가 남의 다리 부러진 것보다 아프다고 했다. 그렇게 우린 하루하루 추위와 오줌을 참으며 부러진 모습으로 한 겨울 노점상을 계속 했다.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우릴 불쌍히 여기던 철길 이웃은 미리 보증금을 주면 본인 건물을 고쳐 가게를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했고 우리는 영혼까지 끌어 모아 500만원의 보증금을 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다시 가게를 얻을 수 있었다. 다시 정신 차리고 장사를 했고 어느 정도 이전 매출을 회복할 쯤 주변에 생기는 모든 가게들이 우리가 판매하고 있는 물건을 똑같은 방법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사업 아이템을 제대로 카피 당했다. 그 때부터 사회적 기업이 되었다. 철길마을의 모든 가게가 우리의 수익을 나눠먹기 시작했다.


우리문방구


하지만 이제 노련해졌다. 실패 냄새를 맡은 우리는, 이번엔 망하기 전에 선수를 쳐 새로운 도전을 하자며 새 사업 아이템을 찾아보았고 답은 ‘사진’이었다. 영상 전공이었던 홍사장이 촬영을 하거나 관광객들의 스마트폰 속 사진을 편집 했고, 그 사진으로 특별한 기념품을 만들어주니 가게를 들르는 모든 이들이 행복해 했다. 그렇게 장사를 하다가 더 큰 공간이 필요해서 모든 이들이 눈독들이고 있던 건너편 빨간 창고로 이사를 갔고 지금은 [사진고]라는 이름으로 성업 중에 있다.


사진고


나는 반복되는 실패와 성공 가운데 배웠다. 성공이 성공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실패가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실패 앞에서의 반응이 내 인생을 결정한다. 내 반응에 따라 성공이 실패로 끝날 수도 있고 실패가 성공으로 끝날 수 있다. 또 망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 하지만 실패와 성공은 분명히 순환적 구조속에 있고 그 순환의 끝은 결국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일 것이다.



우물에 빠진 당나귀


좋아하는 그림이 있다. 이솝우화의 [우물에 빠진 당나귀]이다. 농부가 기르던 나이 많은 당나귀가 빈 우물에 빠져버렸고 농부는 당나귀를 살릴 방법을 찾지 못했다. 농부는 결국 애처롭게 우는 당나귀를 뒤로하고 이웃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내 당나귀는 나이도 많고 이제 일도 하지 않으니 죽어도 상관없소. 이 빈 우물도 위험하니 함께 흙으로 메워 없앱시다.” 사람들은 빈 우물에 흙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당나귀는 생매장의 위기에 놓여있다. 당나귀의 등에 흙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죽음 앞에서 더 목 놓아 울었다. 그런데 점점 당나귀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묻혀 죽었나 하고 내려다 본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나귀는 자기 등에 떨어지는 흙을 털어 바닥에 떨구고, 발로 밟아 올라갈 기반을 다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본 사람들은 더 힘차게 살리는 흙을 채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죽이려 던진 흙이 당나귀의 포기를 모르는 반응으로 인해 살리는 흙이 된 것이다. 결국 당나귀는 살았다. 그 이후 이야기는 농부와 함께 여생을 행복하게 살았을 거라고 추론되지만 내가 당나귀였다면 주인과 이웃사람들을 다 뒷발로 걷어차 빈 우물 안에서의 흙 맛 좀 보게 했을 것이다.


지금 나는 결혼을 하고 새로운 곳에 둥지를 터, 실패가 실패로 끝나지 않음을 믿고 매일 새로운 도전 중에 있다. 내 실패는 하마터면 트라우마로 남을 뻔 했다. 하지만 나를 망하게 하기 위해 쏟아 붓는 흙은 결국 살리는 흙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열심히 털어 발로 다져 오르고 있다. 출생부터 실패로 여겨졌던 내 삶은 나만의 영웅담이 되어가고 있다. 돌아보니 모든 망함이 다행인 일이었다.


[사진고]는 홍사장이 아주 잘 운영하고 있다. 여전히 운영하는 부분에 있어서 돕고는 있지만 이제 동업자가 아닌 조력자이다. 도는 소문을 듣자 하니 철길마을에서 가장 잘 나가는 가게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러니 사랑하는 친구야, 이제 내 돈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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