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가 궁금한 이에게 권하는 영화 <레미제라블>

2030세대, 그들은 왜 지금 분노하는가

by 한량바라기
IE002803331_STD.jpg 영화 포스터 ⓒ (주)영화사 진진


지난 4월 재보궐 선거 패배 이후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대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권재창출을 하기 위해서는 이번 선거에 드러난 민심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모양새다.


특히 그중에서도 2030세대에 대해서는 더욱 난감해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현 정부의 강력한 지지그룹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2030세대가 이번에는 야당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생각하지도 못한 젊은 표심의 반란.


문제는 이런 2030세대의 표심에 대해 민주당이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그들이 보수화 된 것인지, 아님 더욱 철저한 개혁을 원하는 것인지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덕분에 오락가락하는 정책들. 그 난맥상을 보고 있노라면 현 집권세력이 젊은 세대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야당이나 보수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구미에 맞춰 현상을 분석할 뿐, 2030세대가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에 대한 불만으로 반사이익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건의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과연 2030세대들이 그런 야당을 지지하겠는가.


여당이나 야당이나 2030세대가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에 대해 불만인지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답답한 현실. 그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최근에 개봉했던 프랑스 영화 <레미제라블>이다.


참담함 프랑스의 현실

IE002803332_STD.jpg 이민자의 자식들 ⓒ (주)영화사 진진


영화 <레미제라블>은 시작과 함께 2018년 월드컵 우승 당시 파리를 보여준다. 피부색깔과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삼색기를 들고 하나 되어 프랑스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고, 결국 승리하자 환호하는 모습들. 그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러워했던 우리와 같다.


그러나 영화는 곧바로 그것이 한낱 착각임을 보여준다. 하나의 팀, 하나의 국민은 아주 잠깐 벌어지는 정치적 이벤트일 뿐, 프랑스 내부가 얼마나 분열되고 찢겨져 있는지 프랑스의 민낯을 까발리기 시작한다.


영화의 배경은 '몽페르메유'. 소설 <레 미제라블>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곳은 이민자들이 가득한 곳으로서 굉장히 열악하고 가난한 곳이다. 프랑스 하면 그래도 똘레랑스와 박애, 평등 등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영화 속 프랑스는 그 어떤 곳보다 차별적이고 절망적이며 전혀 프랑스답지 않다.


하루하루 생존하기에 급급한 이민자들. 그들에게 프랑스 사회는 너무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다. 더 이상의 계급 상승은 불가능하다. 아이들은 교육을 받지만 꿈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며, 점점 커지는 계급 격차 앞에서 무기력할 뿐이다.


그리고 이민자들에게 국가는 경찰이라는 공권력으로 치환된다. 국가는 이민자들을 결코 같은 국민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순찰이 필요한 2등 국민일 뿐이다. 따라서 경찰은 이민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불법적이고 반인권적으로 대하며, 그런 자신들의 모습에 하등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 집단으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분노하라 그리고 저항하라

IE002803333_STD.jpg 경찰이 곧 국가다 ⓒ (주)영화사 진진


이민자들에게 희망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프랑스 사회. 영화는 이런 참담한 현실 속에서 분노하고 저항하는 젊은 학생들의 반란을 보여준다. 그들은 오랫동안 반인권적이고 과도한 폭력을 써왔던 경찰을 공격한다. 자비라곤 전혀 없다.


물론 사건의 발단은 학생의 절도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공권력의 과도한 진압과 폭력은 구조적인 문제이며, 이민자들을 대하는 국가의 근본적인 태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들은 경찰뿐만 아니라 그런 공권력에 붙어 지역 내 권력을 유지했던 기득권 모두를 응징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분노할 대상은 단순히 경찰뿐만이 아니라 현재 체제를 유지하는 모든 것들이기 때문이다. 자본, 종교, 국가, 지역 등 그들에게는 그 어떤 성역도 없다.


이런 영화 속 이민자 학생들은 현재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2030세대의 모습과 비슷하다. 날이 갈수록 빈부격차는 심각해지고, 계급상승의 사다리는 끊어진지 오래인 사회.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의 방법으로서 당연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야당과 보수언론들은 2030세대들이 반 여당으로 돌아섰다며 환호작약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다. 그들에게 지금의 여당이나 야당, 586세대 정치인들은 모두 기득권으로 한 통속일 뿐이며, 분노의 대상이다. 이번 선거는 하나의 방법이었을 뿐, 2030세대는 또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폐쇄적이고 정체되어 있으며, 특히 2030세대들에게 가혹하기 때문이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이미 너무 옛날이야기 아니던가.


감정이입의 대상

IE002803334_STD.jpg 빈부격차가 심한 프랑스의 현실 ⓒ (주)영화사 진진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면서 뜨끔했던 사실은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경찰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소신민적인 모습을 보이며 경찰을 주인공처럼 그린 감독의 의도도 있었겠지만 이민자들보다는 본래의 프랑스 국민, 흑인보다는 백인, 빈자 보다는 부자를 더 높게 생각하는 나의 편견 역시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경찰이 과잉진압을 할 때도 그럴 수도 있다고, 이 모든 건 학생들의 절도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40대 '꼰대'의 생각일 뿐이었다. 학생들이 마지막까지 타협하지 않고 저항했던 것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희망이 없는 사회에서 타협은 곧 죽음이요, 적응은 굴종일 뿐이다.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도 결국 우리인 것을.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다시 영화 제목의 뜻을 찾아봤다.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비참한 이들'이라는 뜻이다. 2030세대의 분노가 궁금하신 분들은 꼭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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