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올해는 5·18 41주년이다. 10살에 부모를 잃은 아이는 50세를 넘겼고, 10살 아이를 잃은 부모는 80세가 될 만큼 세월이 흘렀다. 이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5·18 광주민주화항쟁은 교과서에서나 배울 수 있는 역사다.
그럼에도 5·18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까지 신군부의 만행은 전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며, 피해자들은 1980년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여전히 5·18의 역적들은 잘 먹고 잘 살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고, 적지 않은 이들이 5·18을 폄훼하며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
다행히 올해에는 몇몇 사람들의 증언으로 5·18의 북한 개입설 자체가 거짓이라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5·18을 광주사태로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들에게 그 모든 것은 가짜뉴스일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직 우리 사회에서 5·18과 관련된 작품들을 대하는 태도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광주 학살의 후예들이 큰소리 치고 있는 현실인 만큼, 그 작품을 만드는 것 자체가 용기가 필요한 일이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역사를 채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올해에도 극장에서 5·18과 관련된 영화를 봤다. 비록 코로나19였지만 5·18과 관련된 책임감이 더 앞섰다. 안성기 주연의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이었다.
엉성한 영화
영화는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개연성은 떨어졌고, 액션은 어설펐으며, 편집은 엉성했다. 조명이나 화질은 또 왜 이렇게 조악한지. 아무리 독립 영화라고는 하지만 수준 미달이었다. 최근에는 <소공녀>나 <벌새>등 소규모 자본을 가지고 잘 만든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 하필 5·18을 소재로 만든 영화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다니.
개인적으로 가장 실망한 부분은 영화의 개연성이었다. 예컨대 극중 안성기가 분한 주인공 오채근이 권총을 갖게 되는 경위를 보자. 어느 날 그가 자주 가는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윤유선)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정신병을 가진 채 시한부 삶을 사는 그녀의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남자친구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다.
오채근은 이에 응하고 연기를 하지만 알고 보니 그녀의 아버지는 5·18로 인해 얻었던 정신병이 다 나은 상태였고, 오히려 5.18 전남도청 사수대로부터 전해져 온 권총을 꺼내 수상한 오채근을 겨냥한다. 이후 두 사람은 오해를 풀고 아버지는 5·18의 역적을 처단하고자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그 총을 오채근에게 주며 자기 대신 복수를 해달라고 한다.
아무리 영화라고 하지만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설정이란 말인가. 차라리 공수부대 소대장 출신이었던 오채근이 전역하면서 권총 한 자루를 몰래 빼돌리는 것이 더 현실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내용전개에 대해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 보인다. 이것 말고도 대부분의 스토리가 우연의 연속에 기대어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눈물
5·18을 다루었기 때문에 더더욱 잘 찍었어야 하지만, 오히려 총체적 난국이었던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그러나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볼만하다고 생각했으니, 그것은 바로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공부수대 소대장 오채근의 사과 때문이었다.
그는 거사 직전 5·18 광주민주화항쟁의 가해자로서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비록 아버지를 책망하던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자 그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그의 진심어린 사과는 말을 잃었던 피해자의 말문을 트이게 하고, 5·18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영화는 그동안 피해자 중심으로 5.18을 바라보는데 익숙했던 관객들에게 가해자들의 삶을 환기시킨다. 아주 극소수만 빼고 자신이 5.18 당시 광주에 있었다는 것 자체를 숨기고 살았을 그들의 신산한 삶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런 가해자의 눈물에 너무 무관심하다. 정작 학살의 책임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그 근간을 이루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가 권력 중심으로 서술되다 보니 정작 그 시대를 살아 낸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영화에서처럼 가해자 중 한 명이 TV에 나와 아주 상세하게 5·18에 대해 이야기하고 직접적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어찌 될까?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이들의 한을 풀어줄지도 모른다. 결국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그 아픔을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가 가지는 함의는 적지 않다. 영화는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가해자의 눈물을 처음으로 다뤘으며, 이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아, 마지막으로 이번 영화에 참여한 모든 배우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총체적으로는 엉성하고 어설픈 영화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을 또다시 언급했다는 면에서, 시대의 아픔을 잊지 않고 상기시켰다는 면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객으로서 고마울 뿐이다. 역사는 결국 잊지 않고 기록하는 자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