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시 해파랑길 33코스
아이들과 함께 동해시 한섬해변부터 하평해변까지 걷습니다.
눈이 시리게 파란 동해를 옆에 끼고 천곡항과 고불개 해변, 가세해변을 지나 걷는 해파랑길 33코스입니다.
지도만 보면 얼마 되지 않는 거리기에 선뜻 나선 발걸음이지만, 한섬은 ‘섬’이 아니라 조그마한 산의 이름이요, 꽤 경사가 있는 산책로입니다. 천곡항은 그 가파른 한섬 밑에 자리한 아주 작은 항구입니다. 드라마 <웃어라 동해야>의 촬영지라고 하네요.
한섬을 따라 펼쳐지는 굽이굽이 바닷가 절경은 아름답습니다. 처음에는 바닷가에 와서 뭔놈의 산을 타느냐고 불평불만이던 아이들도 금세 할 말을 잃어버리네요.
결코 짧지 않는 산책길의 절정은 고불개 해변입니다. 해변을 지나 가파른 협곡계단을 내려가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풍경이 눈앞에 드러납니다.
마치 고생대 시간탐험을 하는 듯 한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시퍼런 겨울바다가 철썩철썩 들이치고 있지요. 요 근래 봤던 영화 <올드>의 배경 같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그런 바다가 처음인지 그 앞에서 각자의 상상을 풀어놓습니다. 이제는 굳이 바닷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나이. 그렇게 겨울바다의 매력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고불개 해변을 지나 하평해변까지 걷는 길은 기찻길 옆입니다. 기찻길을 건널 수 없어 부득불 걸어야 하는 길이지요. 그러나 그 수고로움이 마냥 힘들지는 않습니다.
가끔 지나가는 바다열차 승객들에게 손인사를 건네고, 저 멀리 묵호항을 바라보며 시원한 동해 바람을 맞다 보면 어느새 하평해변의 건널목에 도착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또 한 번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지요.
동해시를 갈 기회가 있다면 한 번쯤 걸어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