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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난 Feb 29. 2020

남편, 난 당신의 엄마가 아니야.

당신 엄마의 방식을 내게 기대하지 마

미우새에 나온 오민석 배우편을 보다가 화가 났다. 평소 재벌 2세 역을 맡던 이미지와는 다른 그를 보며 출연자들이 한탄과 탄식을 금치 못하던데, 나는 속으로 '내 남편보다는 낫네' 생각했다. 마흔이 되었다는 그는 엄마의 옆집 원룸에 살며 무상 제공되는 룸서비스를 받으며 살고 있었다. 그의 일상은 대략 이랬다. 아침에 일어나 엄마 집으로 건너가 냉장고에서 반찬들을 꺼내고, 재워둔 불고기를 굽고, 김치찌개를 데워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다 쓴 팬, 설거지 거리들을 싱크대에 넣어두고 다시 집으로 건너가 주섬주섬 빨래를 할 거리들을 추려 다시 엄마 집으로 왔다. '헌 옷 줄게 새 옷 다오'를 하듯 빨래 바구니를 놓고, 엄마가 개워둔 옷을 들고 다시 집으로 자연스레 되돌아갔다. 다시 엄마 집으로 돌아와 엄마의 TV로 유료 영화를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 후배가 찾아왔다. 그가 사는 모습을 보고 놀란 후배가 "뭐야. 기생충이야? 기생충이네!"라는 말을 하자 그는 "나갔다 오면 항상 깨끗이 청소가 되어 있고 그래."라는 말을 하며 멋쩍게 웃었다.


남편은 게으른 사람이다. 혼자 밥을 먹어야 할 경우 반찬을 꺼내 상을 차리기 귀찮아 라면을 주로 끓여 먹는데 라면 봉지, 뜯다 흘린 수프, 계란 껍데기 등의 흔적을 일절 손대지 않는다. 밥은 차려 주면 먹고, 밥그릇은 개수대에 넣을 때도 넣지 않을 때도 있다. 상을 치우라고 하면 반찬 뚜껑은 닫지 않고 싱크대 위에 그냥 올려두는 게 상을 치우는 전부이다. 벗어놓은 속옷, 양말, 수건 바닥에 아무렇지 않게 팽개치고, 모아서 빨래통에 넣는 일은 매우 희박하다. 옷을 찾지도 않고 "그거 어딨어? 찾아줘"라고 말하거나 직접 찾으라고 하면 개워 놓은 옷가지들을 손으로 휘저어 놓는다. 세탁기를 돌리는 방법은 아직도 모른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식사를 도와줘야 하지만 네 식구가 함께 밥을 먹어도 남편은 본인 밥만 딱 먹고 일어선다. 객관적으로 남편의 저지레 습관은 7살 난 첫째 아들보다도 더 하다.


관대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편은 시어머니가 무상 제공해준 룸서비스가 여전히 이어질 것이라 기대했지만, 나는 응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가사, 육아는 부부가 함께 공동 책임져야 한다고 선포하고 강수를 두었다. 남편만 쓰는 화장실을 분리해 몇 달을 청소하지 않기도 하고, 남편의 옷만 따로 모아 빨래를 돌리지 않았다. 남편의 밥은 차리지 않고 아이들과 따로 밥을 먹었고, 남편이 쓴 식기 역시 따로 모아 설거지를 미뤘다. 능청스럽고 천연덕스러운 남편은 나의 초강수 대응에도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다. 마지못해 집안일을 할 때면 '매우 번거롭게', '매우 느리게', '매우 실수가 잦게' 했다.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성의 없는 태도를 일관했다. 육아와 살림은 속도가 중요하다. 특히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여성은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며 산다. 남편의 소극적인 자세로 울화통이 치밀지만, 날 향해 웃는 아이의 얼굴에 모성애가 작동하자 전투력은 사그라들었다. 아이를 위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내 손은 더 빨라져야만 했다.


남편을 단지 '게으르다'고만 할 수 있을까. 유치원에서 배워 "스스로" 하기 습관을 기른 첫째 아들보다도 못한 남편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남편이 직장이 없고 내가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상황에서도 남편은 집안일을 꺼려했다. 당시 사내 어린이집에 아이를 입소시키기 전 시터 이모가 아이를 보셨고, 시터 이모 비용을 시어머님께서 도와주셨다. 남편은 "엄마가 돈 주잖아. 너 고생 안 시킨다고 엄마가 돈 주는데, 내가 꼭 해야 해?"라고 했다. 속상한 마음에 엄마에게 한탄했다. 남편에게는 쉼터인 가정이 내게는 전투적인 일터라고, 결혼이 이런 거라면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울며 말했다. 함께 내 얘기를 듣던 이모는 어깨를 쓰다듬으며 "아들,, 그것도 성한데 없는 모지리 아들 하나 더 키운다고 생각해. 이모는 그렇게 생각하고 지금도 살아."라고 하셨다.


결혼 7년 차. 이제는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보다 명확히 안다. 그의 행동이 주는 메시지들도 파악했다. 남편은 집안일이 귀찮기도 하지만 '남자가 집안일을 하는 것은 수치'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남편의 성 전략은 구태의연하지만 유구한 역사를 지닌 가부장의 구조 안에 있다. 완고할 수밖에 없다. 보고 배운 것도 가부장 시스템이고, 살아보니 편한 것도 가부장 시스템이니 본인의 안위를 위해서는 가부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을 테다. '남자는 가족을 부양하고, 아내는 살림을 맡는다.(가족 구성원의 모든 뒤치닥거리도 한다.) 만약 아내가 원할 경우 일을 해도 좋으나 살림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와 같은 근대적인 마인드가 장착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육아와 살림은 여성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족의 요구와 나의 요구 사이에서 분열했고, 상충하는 두 가지 요구를 한데 가져가면서 과열되었다. 결국 몸도 마음도 탈탈 털렸다. 내 인생에 그 정도로 방전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진이 다 빠졌다.  모든 게 무너진 것 같은 그 자리에서 나는 과히 놀라운 것을 깨달았다. 나의 위기는 그저 '나'의 위기이고, 나의 고통도 그저 '나'의 고통이라는 점이었다. 나의 위기와 고통은 남편에게는 무관한 것이었고, 위기와 고통을 '우리'의 것으로 가지고 갈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혼을 할까 퇴사를 할까 고민했다. 남편은 "힘들면 회사 그만둬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남편의 메시지는 '여자의 숙명을 그냥 받아들이고 고분고분해지면 우리는 행복해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혼 대신 퇴사를 결정했다. 주부가 되자 아이들은 더욱 안정감 있게 보인다. 아파서 고열일 때 옆에 있어줄 수 있고, 출근과 퇴근을 같이 하던 어린이집 사회생활을 보다 느슨하게 할 수 있어 좋다. 확실히 육아에 있어 마음 편한 부분은 많다. 남편도 마음이 편해진 건지 그나마 보던 눈치도 보지 않고 대놓고 말한다. "이제는 집안일하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이들에게는 잘 하지만 나에게 잘하는 것은 아니잖아? 집에서는 그냥 좀 쉬게 해 줘"라고 말한다. 나는 합의 한 적 없는데, 집에서는 오직 쉬기만 해도 되는 '권리장전' 이 통과된 듯 보였다. 그러니까. 남편에게는 본인의 원하던 이상적인 환경을 갖게 된 것이다. 권위 있는 생계부양자와 따르는 가족 구성원들의 조합.


덫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유능한 주부도 아니고, 유능한 주부가 되고 싶지도 않다. 남편이 바라는 성 이데올로기 (바깥일을 잘할 수 있게 내조를 하고, 손이 가지 않게 집안일을 하고, 칭찬할 거리가 많은 아이들로 키워내는)는 타고난 나의 성향을 거스르는 일이다. 돌보는 일은 여자가 잘한다는 통념을 저주한다. 나는 누군가를 살피고 돌보고 이끌어줄 재간이 없다. 아이들을 사랑하니까 살피고 돌보지만, 숨이 턱턱 막힌다. 어서 아이들이 자립했으면 좋겠는데, 아이들이 자립할  때 즈음이면 나의 유능함이 모두 소멸되어 내가 자립할 수 없는 상태가 될까 항상 두렵다.


오민석 배우보다도 더 경악스러운 습관을 가진 남자와 살면서 우리가 이상적인 혹은 정상적인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의문한다. '고분고분해지면 우리는 행복해질 것'이라는 등식은 나의 체념과 노력을 전제한다. 남편을 향한 분노를 추스르는 것도 큰 노력이 필요하고, 남편을 모지리 아들로 생각하며 체념하는 일도 큰 노력이 필요하다. 타협과 조율과 노력은 오로지 나의 몫처럼 보이는데, 내가 고분고분해지면 나를 포함한 우리가 행복 해 질지 의문스럽다. 남편과 아이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저 등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소름 끼친다. 남편의 행복과 아이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될 수 없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행복은 가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불행은 은폐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나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대로 살아야겠다. 진짜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나는 내 불쾌와 불행을 지금처럼 감추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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