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종일 집안일에 매달려 있었다. 주말의 다음날이면 항상 바쁘다. 아이들과 남편이 들쑤셔 놓은 집안의 갖가지 영역들을 정리정돈 해야하기 때문이다. 루틴에 따라 기계적으로 몸 노동을 하고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어디냐, 뭐하냐'와 같은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 갑자기 "그런데, 혜림아. 엄마는 참 속상하다."라하셨다. 놀라서 무슨일이냐 물었다. "티비에 네 또래 젊은 여자가 나왔는데, 의류 쇼핑몰로 60억을 번대. 내 딸은 대체 뭐가 부족해서 저렇게 돈을 못버냐" 하셨다. "나도 교육시킬만큼 시켰고 너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는데.." 하셨다.
'너는 뭐가 부족해서'와 '너에게 기대가 참 컸는데' 레파토리는 워낙 빈번히 듣던 말이여서 예사롭게 넘기고는 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엄마의 말에 무감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엄마의 그 말에 크게 휘둘리는 사람이었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았다.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엄마가 나와 견준 그녀들과 얼추 비슷한 삶을 살았다. 내 목표와 엄마의 욕망은 뒤엉켜 있어서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나를 위함인지 엄마를 위함인지 언제나 모호했다. 엄마의 희망이 내게 덧씌어진 것을 부담스러워했지만 이해하려 애썼다. 엄마의 삶은 무척 고되었고, 나는 그 서사에서 무고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주 듣던 그 말에 여느때처럼 "엄마, 조금만 더 기다려봐. 내가 대박날께!" 라며 웃고 넘겼더라면 좋았을텐데. 터져나오는 설움을 감추지 못하고 악악하며 소리를 내질렀다.
깊은 상처를 받았다. 엄마의 그 익숙한 비교는 칼날이 되어 마음을 저몄고 나는 새삼스레 아파했다. "엄마, 나는 엄마가 끊임없이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고, 항상 더! 더!더! 를 요구했기 때문에 만족감을 모르고 살았어. 목표를 이루든 못 이루든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목표를 이뤄도 곧장 불안해했어.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내가 현재를 행복하게 여기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았던 이유는 엄마가 있는 내 모습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이제 좀 그만해. 이제는 하다하다 60억 버는 쇼핑몰 사장까지 비교해야 해? 엄마 때문에 내가 불행했다고!!" 라고 소리 질렀다. 전화를 끊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고 어깨를 들썩이며 오랫동안 울다가 잠이 들었다.
서러움이 한계 수위에 다달았고, 눈물로 서러움을 방류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겨울에 만성적으로 겪는 무기력과 우울에 벗어나려 갖은 애를 쓰고 있었는데, 한 통화의 전화로 와르르 무너져버린 것만 같았다. 서러움은 눈물 대신 한숨으로 방출되었다. 제어되지 않는 우울함을 떨치기 위해, '박박쓰기' 모임을 함께 하는 언니가 올린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열살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이다.
유민아, 엄마가 겪은 일들 가운데 어떤 이야기는 떠올릴 수록 기분 좋아지기도 하고, 또 어떤 이야기는 마음 아프기도 해. ''' 그런데 말야, 이런 특별한 이야기로만 우리 삶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더라. 인생의 많은 부분이 기억에 남지도 않는 평범한 순간들로 채워져. ''' 자, 오늘도 밥 잘 먹고, 숙제하고, 목욕하고, 피아노 연습도 조금 하고 그렇게 잘 살아보자.
나는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매우 슬퍼졌다. 유민이라 쓰여진 이름을 내 이름으로 바꿔서 읽고 또 읽었다. 행복하지 않았던 엄마를 보며 나는 일상에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엄마는 불행한 것들에 보다 예민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던 사람이었고, 그 불행들로부터 나를 감추려 노력하셨다. 불행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더 잦게 불행을 상상하며 경계했던 나는 행복보다는 불행이 더 친숙한 사람이 되었다. 행복하려면 '정상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삶은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곳에 취업하고,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해야하는 것으로 이미지화 되었고, 이런 척도에 따라 살아야만 행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나는 그렇게 '좋은' 것들을 쫓느라 '평범'한 것들을 소외시켰고, 희박하게 찾아오는 행복과 찰나의 행복에 과장된 동경을 품게 되었다.
다행히 이제는 행복이 희박하거나 극도로 짧은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태도에 관한 것 임을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배웠다. 일상에 반짝이는 순간들이 곳곳에 박혀 있는 것을 보았고, 나는 지금 대체로 행복하다. 적어도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산다. 그런데 왜 나는 엄마에게 그토록 모진 말을 퍼부었을까. 엄마때문에 불행했다는 지독한 말을 퍼부을만큼 화가 난 이유가 무엇일지 스스로 납득되지 않았다.
종일 집안일을 하다 전화를 받아서일까. 나는 주부의 돌봄 노동을 속으로 폄하하면서 내가 하는 일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분노하며 공격적 태도를 취한다. 속으로는 주부인 나를 수치스럽게 여기지만 그 감정의 근원은 숨긴다. 엄마 못지 않게 나도 주부로만 사는 내가 못마땅하다.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 "네게 기대가 얼마나 컸는데.."와 같은 말을 듣자 공격적으로 군 것일수도 있다. 그런데 화가 나는 감정보다 더 짙게 오래간 것은 서러움이었다. 엄마에게 인정 받고 싶었지만 그 욕구는 대부분 거부 당했고, 또 엄마를 실망시킬까 불안해했다. 나는 엄마를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는데, 지금도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슬펐다. 60억을 벌지 못해도 나는 지금 행복한데, 60억을 벌지 못하는 딸을 보며 행복해하지 못하는 엄마를 보는 일은 큰 아픔이다. 아픔으로부터 더 이상 무력해지지 않기 위해 나는 필사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엄마를 비난하면서 자기 방어를 했던 것 같다.
갈구, 불안. 이 오랜 감정에 매달려 있는 것을 그만 두기로 한다. 나는 엄마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온전히 나를 위해 행복하고 싶다. 엄마는 나와 가장 친밀한 사람이지만 나의 욕망과 엄마의 욕망은 일치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엄마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대상은 영원히 되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엄마와 나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 까닭은 없다. 엄마와 나 사이에 뒤엉킨 것을 풀어 분리해야 한다. 분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엄마는 섭섭해하거나 괘씸해하거나 한탄하시겠지만 엄마의 몫을 드리고 한 발 물러설테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서 다정히 다가가 나의 행복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조곤조곤 말씀 드리고 싶다. 미숙한 태도로 상처 입혀드린 것을 함께 사과하며 이제는 내 행복과 내 삶에 온전히 뛰어들고 싶으니 응원해달라고 말씀 드릴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