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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따로 자란다>, 안담

응시의 사각지대에 놓인 소녀

by 희구

초등학교는 정글과도 같다. 적어도 내가 다니던 학교는 그랬다. 돌아가며 왕따를 시키는 문화가 있었고, 다음 당사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방관을 일삼아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왕따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당연하게도 나 역시 무리에서 쫓겨난 때가 있었다. 아마 약 일주일 정도. 그 어린 나이에는 혼자라는 감각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일주일 동안은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이 가장 싫을 정도였다. 입맛이 없다며 밥 먹으러 가지 않았던 날도 있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나에게는 쫓겨날 수 있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쓰던 소녀였다. 그렇기에 무리 밖의 소녀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부끄럽게도 그들의 존재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혼자였던 친구들이 참 많은데. 그들의 이름까지 모두 정확하게 기억나는데.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또래집단을 바라봤을까. 집단에 속한 소녀들은 그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그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을 떠올렸다. 동시에 보통,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쓰던 초등학생 소녀, ‘나’를 떠올렸다. 나는, 내 안에 있는 엉뚱한 상상을 삼키기 위해, 못된 생각을 감추기 위해, 다른 친구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남들과 달라지는 게 두려워 얼마나 괴로웠는가.


시 수업을 들었을 때, 교수님께서 “길에서 빗겨 난 것,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것, 비가시화된 것을 주목하는 게 바로 문학”이라고 말해주신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좋았고 내가 문학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그때 깨달았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이 책이 좋다.





“나는 매일 똑같은 가죽 재킷 속에서 잠을 깬다. 실은 내 머리가 아주 길고, 심지어 내게도 밝은 색의 옷, 리본 머리띠와 머리 방울 따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아무도 나를 놀리려고 하거나, 괴롭힌 뒤에 제발 울지 말라고 사과하거나, 대걸레를 빠는 일에서 면제시키지 않는다. 괴롭혀지기, 또는 제외되기. 그런 게 없다면 이 작은 사회에서 나는 여자애가 아니다. 그렇다면 남자앤가? 아니다. 그럼 중성이거나 무성이었나? 그럴지도. 하지만 그보다는 대개 아무도 나를 성별로 표시할 필요를, 분류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들은 대체로 내게 말을 걸지 않다가, 이따금 상기된 얼굴로 집에 데려다달라고 부탁하곤 내게 비밀을 보관한다.”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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