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를 개인의 성패를 가늠하는 강력한 사회적 경쟁력으로 인식하는 한국은 수요 과잉이 공급의 질을 높여 성형 기술 강국으로 급성장했다. 그런데도 ‘꾸미지 않음’을 넘어 ‘전략적 구태의연함’의 틀을 고수하던 정치계가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달라졌다. 정권 교체를 기점으로 후광효과로서 외모 정치 효과를 확인한 한국 정치계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들을 통해 다시 한번 효과 검증에 나선 모양새다.
여성 정치인을 대표하던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그간 자신에 앞에 붙은 ‘여성’이라는 단어를 떼어내고 보수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입지를 굳건히 했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돌연 ‘어머니’ 카드를 꺼내 들고 헤어스타일도 ‘로우 포니테일’로 바꿨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정치를 시작한 이후 줄곧 스타 IT 개발자이자 경영인으로서 ‘천재적 어눌한’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서울시장 선거전에 나서면서 단호한 인상으로 변신해 놀라움을 안겼다. 그의 깔끔하게 정리된 눈썹은 ‘눈썹 문신’을 연관 검색 키워드에 올릴 만큼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제19대 대통령 업무 시작과 함께 비서실장, 민정수석, 외교부 장관에 임종석, 조국, 강경화를 임명해 ‘외모 정치’의 본격적인 서막을 열었다. 외모가 전략인 시대지만 보수적 권력 중심 사고가 우선하는 한국 정치계에서 외모는 개인의 정치적 역량에 역효과를 내는 경박함 정도로 인식돼왔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외모 정권’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문 대통령 체제 아래 오는 4월 7일 진행되는 ‘2021년 재·보궐 선거’에서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제38대 서울시장 보궐선거 국민의당 예비후보 안철수, 국민의힘 예비후보 나경원의 ‘외모 바꾸기’는 전 서울시장 故박원순의 추문을 잊게 할 만큼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두 예비후보의 변화된 모습은 문재인 대통령 당선 당시 참모진들의 ‘잘난 외모’와는 다른 ‘전략적 외모’라는 점에서 ‘외모 정치’의 방향성을 달리한다. 이들은 집안 학력 직업 모두 엘리트 지배계층 상위 1%에 속하는 소위 특권층으로 정치계에 입문한 후 주도 그룹이 됐으나, 권력의 최정점을 향한 길은 쉽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이 그간 자신의 이미지에서 180도 방향을 튼 외모 바꾸기가 성공을 거둘지 여부는 본인들만큼이나 대중 역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큐멘터리 ‘익스플레인 : 세계를 해설하다’의 ‘아름다움이란’ 편에서 ‘아름다움의 진화’ 저자이자 조류학자인 리처드 프럼은 “인간은 문화적 생명체입니다.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고 그 환경에 변화를 주며 우리 자신에게 결합하죠. 인간의 미적 신화는 심리적으로 확립됩니다. 발달이나 노출, 개인적 혁신을 거치면서요”라며 미의 기준이 고정된 것이 아닌 세대와 함께 달라진 문화와 함께 변화함을 주장했다.
미의 기준은 결국 당시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경쟁력 우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리처드 프럼의 이론에 따르면 이들 중 누가 서울시장의 자리에 오를지는 현 한국사회가 어떤 형태의 미를 선호하는지 알 수 있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이 같은 측면에서 나경원의 ‘어머니’ 전략은 다소 당혹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여태까지 온 것을 보면 대한민국 어머니의 헌신적 리더십이 있어서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60년대 어머니들이 본인 안 먹고 자녀들 계란 하나 더 먹이려는 정신으로 헌신해, 대한민국에 훌륭한 인적 자원이 생기고 나라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에도 여성을 넘어 어머니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뉴시스, 2021년 1월 25일)라며 ‘여성’ ‘어머니’를 전면에 내세웠다.
현시대는 여성과 남성, 어머니와 아버지를 나누는 시대가 아니라 그녀와 그가 아닌 ‘그’,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닌 ‘부모’의 관점을 요구한다. 따라서 그의 ‘어머니’ 전략의 현재성에 의문이 일고 있다. 일부 청년층은 그의 로우 포니테일을 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 이미지를 떠올리는 등 부정적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지적인 이미지의 세련된 단발은 나경원 전 의원이 성공한 여성 정치인임을 각인하는 역할을 했다. 현세대가 남성과 여성의 편 가르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드러운 여성적 어머니 이미지를 호소하는 로우 포니테일은 정치인으로서 그의 행보를 부정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준다. 물론 기본적으로 세련된 에티튜드를 갖춘 나경원 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과거 왕조를 연상하게 하는 인위적인 올림머리가 아닌 ‘무심한 듯 시크’한 자연스러운 스타일로 연출해 그가 진부한 과거 정치사로 복귀하려는 의지는 아닐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전략적 ‘외모 바꾸기’는 그리스 신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주신(主神)인 제우스는 모습을 바꿔 인간들과 사랑을 나눠 자녀들을 나은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 영문학자로 다양한 인문학 교양 도서를 출간한 디트리히 슈바니츠는 ‘남자 ; 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에서 ‘외모 바꾸기’를 주신 제우스와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상황극으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제우스는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있는 인간에게 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인간 여자를 찾아간다는 설정으로 희극이 시작된다. 제우스는 테베의 왕 암피트리온의 아내 알크메네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 암피트리온을 전쟁터에 묶어 두고 암피트리온으로 변신하기 위해 전신 성형수술을 감행한다.
헤르메스는 “암피트리온은 애당초 세계의 모든 남자와 너무나 비슷합니다. 약간의 뉘앙스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 그에게는 하나의 표시가 있습니다. 그의 몸에 흉터가 하나 있습니다”라며 수술로 암피트리온의 사타구니 흉터까지 만든다.
제우스의 외모 바꾸기를 주도하는 헤르메스는 굳이 의사복장을 한 이유를 묻는 제우스에게 “이 복장은 필수적입니다. 주신께서는 제가 헤르메스로서 그렇게 어려운 수술을 할 수 있다고 신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불가피하게 의사로 변장했습니다. 그래야만 저는 권위를 갖게 됩니다”라며 자신 역시 ‘외모 바꾸기’를 통해 의사로서 권위를 확보하고자 했음을 역설한다.
헤르메스의 외모 바꾸기는 상징성을 강조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의학의 정신은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 핵심은 제대로 된 연출입니다. 그리고 연극무대에서처럼 의상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히포크라테스의 비밀입니다”라며 외모 바꾸기를 연극무대에서의 역할 수행에 선행돼야 하는 필요충분 요건임을 피력한다.
안철수 대표의 외모 바꾸기는 코로나19 의료봉사활동이 시작이다. 안철수는 지난 2020년 1월 코로나19 초창기 집단감염으로 의료진이 부족했던 대구에 보름간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해 대중에게 의사로서 자신의 이력을 시각적으로 입증했다. 당시 의사 복장을 하고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는 마블 히어로보다 더 믿음직스러운 모습으로 불안한 대중의 구원 판타지를 충족했다.
선거에서 질 때마다 탈당을 반복했던 안철수는 탈당과 창당을 반복해 대중의 신망을 잃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화려하게 복귀한 안철수는 서울시장 선거전에 나서면서 눈썹을 가지런하고 또렷하게 정리해 다시 한번 외모에 의한 후광효과를 보고 있다. 의료봉사활동 당시 파란색 의사 복장으로 영웅 이미지를 구축한 그는 가지런한 눈썹으로 단호한 인상을 갖춰 정치인으로서 시각적 권위에 쐐기를 박았다.
외모 정치는 관점에 따라 다소 부정적 뉘앙스를 내포하기도 한다. 이는 외모를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현대사회의 비틀어진 이면이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하는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데 따른 거부감이다. 그러나 리처드 프럼의 이론처럼 미가 사회적 문화적 현상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외모정치’가 함의하는 이면의 메시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나경원 전 의원과 안철수 대표의 외모 바꾸기는 전혀 다른 전략 아래 이뤄진 만큼 서울시장 선거에서 누가 성공적인 결과를 끌어낼지에 따라 현 한국 사회가 중시하는 삶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타이틀 사진=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VOTE KOREA 2020’ 김지훈, 작품명 : Iceberg
[* 본 글은 외부에 기고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