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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이상 Feb 13. 2021

‘싱어게인’ 이승윤 정홍일, 의상으로 완결된 정체성

“예술의 역할은 사람이 무엇이 될 수 있고 또한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상을 물질적 매체 속에 실현하는 것이다. … 예술 가운데 금세 우리 눈에 눈물이 맺히게 하는 것, 우릴 벌떡 일어서게 만들거나 혹은 우리에게 사랑과 창조성의 정점을 향한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JTBC ‘싱어게인’ 무명가수전은 인간 삶의 지향으로서 예술, 천재성의 영역으로서 예술인 음악을 설명한 ‘의식혁명’ 저자이자 정신과 의사 데이비드 호킨스의 관점을 떠올리게 하는 감흥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최종 우승 후보에 오른 정홍일, 이승윤은 경연 내내 자신의 음악적 색채를 적극적으로 드러내 한국 대중음악에서 비주류로 밀려난 밴드의 매력으로 대중을 끌어들였다.  

     

이날 최종 경연에서 들국화 ‘해야’를 선곡한 정홍일은 정통 헤비메탈 밴드 DNA를, 이적 ‘물’을 선곡한 이승윤은 인디밴드 특유의 거침없는 자유분방함을 발산하며 그들에게 집중된 강력한 팬덤의 타당성을 입증했다.       


이들은 ‘싱어게인’에 밴드 멤버가 아닌 솔로 가수로 참가했지만, 오랜 밴드 활동으로 몸에 밴 무대 장악력으로 예술 분야 중 유독 음악이 한 세대의 문화적 반향이 된 이유를 보여줬다. 특히 경연 내내 의상과 음악의 지향성을 연결해 대중에게 각각 장르에 대한 이해도와 몰입도를 높였다.   

    

지난 1월 4일 김준휘와의 라이벌전에서 들국화 ‘제발’을 선곡한 정홍일은 자신이 무대 공연에서 자주 입었다는 골드 패턴의 블랙 셔츠와 블랙 가죽 스키니 팬츠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이에 MC 이승기는 "29호님 정체성에 가장 부합하는 의상 같다"라며 정통 헤비메탈 밴드로 활동했다는 그의 이력을 상기하게 했다. 이후 이어지는 무대마다 록커 특유의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화제의 인물로 급부상했다.       


이승윤은 독특한 음악적 해석만큼이나 의상 역시 인디밴드로서 정체성과 매력이 돋보였다. 마지막 회에 영상을 통해 방구석 음악인으로 자신을 소개한 그는 방 한 켠 벽에 걸린 옷들을 가리키며 연극룩, 주단룩, 치뱅룩 등 경연 당시 입었던 의상을 위트 넘치는 이름으로 소개했다. 이승윤의 의상은 힙한 스트리트룩으로 그의 자유분방한 음악적 색채가 그대로 묻어나 방송 내내 관심을 끌었다.      


JTBC ‘싱어게인’ 정홍일, 이승윤

 

이날 최종 경연 무대에서 정홍일과 이승윤은 각각 카멜색 가죽 코트, 로브 스타일의 블랙 코트를 입고 등장해 어떤 무대를 연출할지 기대를 높였다.      


정홍일의 가죽 코트는 와이드 피크드 라펠과 더블 버튼의 무릎길이 디자인으로, 1930, 40년대 하위문화의 상징이던 주트 슈트(zoot suit)의 재킷을 떠올리게 한다. ‘패션의 문화와 사회사’의 저자이자 사회학자 다이애너 크레인은 주트 슈트가 발생지인 미국에서는 노예 계급의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아프리카계의 차별에 대한 저항을, 프랑스에서는 독일 점령에 대한 프랑스 청년층의 저항을 함축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또한 주트 슈트가 이후 하위문화에서는 없는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는 견해를 덧붙였다.      


하위문화가 유행의 생성과 소멸의 중심이 되면서 다이애너 크레인의 견해대로 초기의 사회적 정치적 의미는 퇴색됐을 수 있다. 그러나 하위문화 요소가 반영된 정홍일의 빈티지 가죽 코트는 비주류 헤비메탈 밴드 활동을 20년 넘게 해온 그의 정체성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이승윤은 “저는 다양한 걸 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데 틀을 깨는 음악인이라는 틀에 또 갇히고 싶지 않다”라는 자신의 말에 책임이라도 지듯 의상부터 콘셉트를 달리했다. 그는 별 혹은 바람개비를 연상하게 하는 표창 문양의 블랙 로브 스타일의 코트를 입고 등장해 전혀 새로운 무대를 예고했다.  

     

스트리트 패션 아이템으로서 로브는 유럽에서 유행이 시작된 일본 기모노를 빼놓고 서술할 수 없다. 아시아의 신비한 기운을 함축한 코드로서 일본 스타일은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이어진 자포니즘(Japonism)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던 일본 미술과 합류해 유럽 주류문화를 파고들었다. 그 중심에 기모노가 있었다. 기모노가 현재는 로브 즉 가운의 형태로 단순화된 디자인과 다양한 패턴의 모던한 디자인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과거 유럽에서는 일본을 상징하는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져 특권 의식이 강한 귀족들의 이국적 취향을 드러내는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었다.   

     

로브는 이처럼 기존 주류 문화와는 다른 새로운 문화적 코드의 혼용을 함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승윤의 로브 역시 고정된 이미지를 거부하는 음악인으로서 의지의 반영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복식사 연구가 후카이 아키코는 그의 저서 ‘자포니즘 in 패션 ; 바다를 건넌 기모노’에서 성적 상징 작용을 해체한 패션으로 기모노의 특이점을 설명했다. 그는 “(일본 패션은) 의복이 성적인 대상으로서 여성을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의복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냈다. 서구의 기본적인 사고와 같이 여성의 신체를 조소(彫塑)하는 의복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기모노와 같이 형태다운 형태를 갖지 않는 의복이 인간에게 착용돼 형태를 만들어낸다”라며 “의복을 제어하는 것은 인간이며 또 그것이 극히 관능적이면서 멋지기도 하다는 것의 발견이었다”라고 일본이 패션 선진국 유럽에 끼친 영향에 관해 설명했다.

       

이승윤 역시 로브 안에 광택이 도는 투톤의 블랙 셔츠와 초커를 더해 성적 경계를 넘나드는 스타일로 무대의상을 완성했다. 비주류인 인디밴드 멤버로서 이승윤의 로브 의상은 익숙함에 매몰돼가는 주류를 자극하는 비주류의 새로운 시도를 함의했다는 점에서 록커들의 가죽 의상과는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정홍일은 1998년부터 지난 2020년까지 22년간 하드록밴드 바크하우스 멤버로 활동하다 탈퇴 후 같은 해 11월 개인 음반을 발표하고 솔로로 데뷔했다. 이승윤은 현재 인디밴드 ‘알라리깡숑’ 멤버로 활동하면서 솔로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정홍일과 이승윤은 각각 40대, 30대지만, 세대의 경계를 허무는 음악의 사회적 가치를 공유해 나이 차를 무색게 했다. 무엇보다 단지 음악성에 그치지 않고 문화적 반향으로서 음악의 다면적 매력을 대중과 교감했다.       


다이애너 크레인은 “대중음악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여러 장르의 음악이 있는데, 문외한은 대개 각 장르의 코드들을 모르지만, 팬들은 잘 알고 있다. 이 코드들이 팬들에게 사회적 정체성 형성을 위한 기본 원칙을 제공하고 있다”라며 문화적 반향으로서 음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싱어게인’ 무명가수전은 이승윤의 승리로 끝을 맺었지만, 대중은 록커로서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 정홍일의 마지막 무대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싱어게인 모든 참가자들의 무대는 “가장 하고 싶은 일 하되, 자신의 가진 능력의 최선을 다해서 하라”라는 천재의 비범한 창조성을 천재의 평범성으로 설명한 데이비드 호킨스의 말에 깊게 공감하게 한다.   


[* 본 글은 외부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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