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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이상 Jan 14. 2021

젠더 뒤집기로 들춰진 ‘패션 비평등주의’

JTBC ‘런 온’ 최수영,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 마리-소피 페르다느, 뱅상 엘바즈

사회적 약자는 강자들의 차별에 맞서 때로는 혁명마저 불사하며 계층 간 차별의 간격을 좁혀왔다. 패션 선진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유럽에서 지배자에 맞서는 피지배자의 혁명은 차별 철폐의 외형적 전리품인 ‘패션 민주주의’로 이어졌지만, 젠더는 차별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채 ‘차이의 문화’로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질 리포베츠키(Gilles Lipovetsky)는 그의 저서 ‘패션의 제국’ 중 ‘열린 패션’에서 “패션은 그것이 민주화되는 다양한 형태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적어도 성이 관계하는 곳에서는 비평등주의적이다. … 현대사회는 인간들의 사이의 평등 원리만이 아니라 이성이라는 비평등주의 원리에도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라며 패션이 계급 철폐를 주장하는 혁명의 외적 표현 도구로 기능해왔음에도 여성과 남성의 ‘정교한 차이’를 재생산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패션의 ‘성적 비평등주의’는 젠더 불평등 양 끝에 있는 남성과 여성을 각각 가해자와 피해자로 규정할 수 없게 하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여성은 패션에서 상대적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남성 우월주의를 지탱해 온 여성성 상징에의 천착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이를 적극적으로 즐기고 있기까지 하다. 남성은 질 리포베츠키의 언급대로 여성성의 상징을 채택할 수 없는 혹은 하지 않는 엄격성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

    

‘젠더 뒤집기’에서 출발한 JTBC ‘런 온(RUN ON)’, 프랑스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I AM NOT AN EASY MAN)’은 페미니즘에 근간을 두고 기존의 ‘남성성’ 규범의 틀을 깼다. 두 극 중 남성 인물은 시선을 보내는 자에서 여성들의 시선을 받는 자로 대상화됐다.     

  

극 중 남자 주인공 기선겸(임시완), 다미엥(뱅상 엘바즈, Vincent Elbaz)은 극 중 여성 인물에게 “예쁘다”는 칭찬 세례를 받는다.     


술에 취해 기선겸을 등에 들쳐 메고 귀가한 오미주(신세경)는 룸메이트인 선배 박매이(이봉련)가 따가운 시선을 보내자 “오다 주웠어. 예쁘지”라며 겸연쩍게 웃는다. ‘런 온’이 상대의 성을 대상으로 한 외모 평가를 일상적 대사로 처리했다면, ‘거꾸로 가는 남자’에서 알렉상드라(마리-소피 페르다느, Marie-Sophie Ferdane)는 다미엥에게 “웃으니, 예쁘네”라며 성적 뉘앙스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거꾸로 가는 남자’는 성적 대상이 된 남성들의 반전된 사회적 입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남성들의 성적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여성적인 노출’ 패션을 시도하며 젠더 뒤집기를 한층 더 깊이 파고든다.  


마초남 다미엥은 여성 중심주의 사회에 순응하는 코드로 ‘마이크로미니 쇼츠’를 활용한다. 다미엥은 가슴 털로 인해 여성에게 거부당하자 자신의 자부심이었던 가슴 털을 비롯해 전신 제모를 감행하고 엉덩이만 가까스로 가린 마이크로미니 쇼츠에 로퍼를 신고 유명 여성 작가 알렉상드로 사무실로 출근한다. 그는 자신의 몸을 떠나지 않는 알렉상드로의 노골적인 시선을 받으며 비서 업무를 수행한다.      


절친한 친구의 10대 아들은 데님 쇼츠에 허리가 노출되는 크롭트 티셔츠를 입어 가냘픈 몸매를 드러내고, 몸매 관리를 위해 피자조차 마음 놓고 먹지 못한다. 이뿐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성적 모독을 당한 고민을 다이엥에게 털어놓으며, 사랑해서 자신에게 그런 거라며 현실을 부정하려 애쓴다.     


‘거꾸로 가는 남자’에서 성적 대상으로 섹시한 남성을 표현하는 전시 도구로 뒤집기 된 쇼츠는 기원으로서 과거와 유행으로서 현재, 두 시대에 모두 존재한다는 점에서 ‘패션 비평등주의’ 관점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역사성과 현재성이 있다.     


프랑스 혁명은 상퀼로트로 상징될 만큼 과거 귀족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퀼로트와 극 중 쇼츠가 유사점을 갖는다. 퀼로트는 착 달라붙는 반바지를 의미하는 프랑스어로 당시 다리에 꼭 맞는 타이츠 위에 착용한 귀족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등장한 상퀼로트는 민중 세력을 지칭하는 단어로, 이들은 귀족의 상징이던 퀼로트가 아닌 품이 넉넉한 긴바지를 입어 귀족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현재는 유행이라는 키워드 아래 남성과 여성이 혼재된 ‘혼성’이 패션 시장을 주도해 성적 대상화의 주체와 객체를 남성과 여성으로 이분화할 수 없게 됐다. 산업혁명 이후 여성들의 패션은 사치와 반기를 오가며 다양해진 반면 남성들의 패션은 실용성에 근거해 단순화돼왔다.     


소스타인 베블런은 그의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남성들의 부의 과시가 아내인 여성들의 화려해지는 패션으로 표현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남성들 역시 자신들의 성적 섹시함을 과시하기 위해 외모 관리에 시간과 돈을 쏟아 붇는다.      


‘거꾸로 가는 남자’에서 남성성 포기로 여겨지는 제모가 영화 밖 현실에서는 매너로 인식됨은 물론 노브라를 혐오한다면 남성들도 유두가 도드라져 보이지 않게 감춰야 한다는 압박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주장으로서 변화뿐 아니라 남성들도 셔츠 단추를 풀러 가슴골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3부, 5부 쇼츠는 물론 마이크로미니 쇼츠를 입기도 한다. 무엇보다 쇼츠는 단순히 입혀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선미 관리가 필요한 성적 대상화의 시선 안으로 남성들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상징성을 갖는다.      


질 리포베츠키는 남성들의 극단적 여성화 경향은 디자이너들이 대중을 자극하는 ‘도발’의 방식으로 한계를 긋고, 이를 수용하는 남성은 타인의 조롱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최근 스트리트 패션의 변화는 좀 다른 관점의 해석으로 이끈다. 각각의 성을 특정화하는 패션이 성적 대상화를 유도하기보다는 패션과 시선의 상호작용에 의해 사회적 인식으로서 ‘불편한 성적 대상화’가 결정된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JTBC ‘런 온’ 최수영


‘거꾸로 가는 남자’가 여성을 향한 부적절한 성적 시선에 대한 반기로서 젠더 뒤집기를 통해 남성들을 성적 대상화하는 반면 ‘런 온’은 탈코르셋 패션 코드를 젠더 뒤집기 식 대사에 자연스럽게 녹여내 각성 효과를 준다.     


‘런 온’은 패션 비평등주의에 대한 반기로서 래디컬 페미니스트(급진주의 페미니스트, radical feminist) 들의 ‘탈코르셋’ 주장을 따르되 리버럴 페미니스트(자유주의 페미니스트, liberal feminist)의 선택적 혼용 방식을 동시에 취한다. 이를 통해 작위적인 미러링(mirroring)이 아닌 주어진 환경 혹은 상황으로 인해 탈코르셋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2021년 현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혼란과 좌절 무겁지 않게 그려내 오히려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극 중 기선겸의 엄마, 국회의원 기정도의 아내이자 칸의 여왕으로 불리는 육지우(차화연)는 전형적으로 남성들의 전유물로 인식된 잔혹 범죄극의 살인범 역할로 유명한 톱 배우로, 아들과 딸 인생에는 어떤 간여도 하지 않은 채 배우로서 자신의 삶에만 충실 한다. 엄마가 아닌 철저하게 배우로만 살아왔음에도 정치를 하는 남편을 위해 마뜩치 않아도 ‘탈 코르셋’을 잠시 내려놓는다.     


그는 선거를 앞둔 기정도의 대외 언론 홍보 인터뷰 현장으로 자신을 에스코트하기 위해 찾아온 남편 보좌관에게 “가다가 숍에 좀 내려줘요. 사진 찍힐 텐데 코르셋 좀 조여야지”라며 자조 섞인 대사를 던진다. 이처럼 정치인 남편을 둔 배우인 아내로서는 ‘우아한 이미지’에 충실하지만, 촬영장에서는 피를 뒤집어쓴 채 살인범 역할에 몰입한다.      


단 에이전시 대표 서단아(최수영)는 육지우보다 ‘탈코르셋’을 능동적으로 실행한다. 육지우는 직업으로서 ‘거침없는 배우’와는 다른 정체성을 보여줘야 하는 ‘우아한 배우’ 이미지의 아내 역할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하지만, 서단아는 서명그룹의 유일한 적통이자 단 에이전시 대표로 자신을 남자의 자리를 넘볼 수 없는 ‘여자’로 경계 짓는 가족의 부당한 대우에 공격적으로 맞선다.     


서단아는 ‘여자의 자존심은 하이힐’이라는 불편한 여성성에서 탈피해 어떤 옷차림에든 운동화를 신는다. 최수영은 쇼츠 슈트, 원피스, 타이트 미디스커트와 같이 여성성을 애써 부정하지 않는 럭셔리하면서도 격을 갖춘 옷차림을 하지만, 신발은 운동화로 마무리해 어떤 상황에도 물러서지 않는 ‘합리적 공격성’을 가진 서단아 스타일을 완성한다.   


래디컬 페미니스트 쉴라 제프리스는 그의 저서 ‘코르셋’에서 하이힐에 대해 “남성성이라는 남자의 성 역할을 여자가 보완하게 만드는 것이 하이힐이다. 하이힐이 연약한 여성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남자들은 상대적으로 두 발을 딛고 서는 것만으로 강인해 보인다. 그렇게 남성성은 공고화된다”라며 하이힐을 여자를 낮추는 요소로 해석했다.     


이처럼 페미니즘의 정치적 성취 코드로서 탈코르셋과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거부 대상인 강요된 여성성 상징 코드를 모두 받아들이는 육지우와 서단아는 질 리포베츠키가 언급한 “미는 하나의 속성이자, 여성의 특정한 가치”라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패션에서 비평등과 평등은 각자의 이데올로기를 더욱 공고히 해주는 보완 역할을 한다. 여성적 상징을 거부하면서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과정을 거치는 ‘거꾸로 가는 남자’ 다미엥, 여성성의 상징을 애써 거부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런 온’ 서단아는 패션 비평등주의가 결국 평등주의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질 리포베츠키는 양성의 인류학적 차이에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없다고 전제하며 “이것이 우리를 동일성이 아니라 불확정으로 인도하고 서로 다른 것을 친근한 것처럼 병렬하며, 끊임없이 성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평등의 놀라운 힘”이라며 패션 비평등주의 역설을 강조했다.    


[* 본 글은 외부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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