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은 꿈을 현실로 만드는 판타지 재현의 공간이다. “산업에 의한 사치가 만들어낸 새로운 발명품인 이들 아케이드는 … 하나의 도시, 축소된 하나의 세계” 발터 벤야민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백화점의 전신이자, 쇼핑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아케이드를 ‘사치의 결과물’ ‘상품화된 도시’ ‘축소된 세계’로 정의했다.
2021년 2월 27일 토요일, 주말에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여의도 빌딩 거리 한복판에 마치 주중 출퇴근 시간처럼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상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십에서 수백 미터를 늘어선 차들과 사람들 모두 새빨간 기둥이 장식된 건물로 향했다.
“온라인 시대에 웬 오프라인? 백화점들이 다 망해가는 판에 그것도 유통 블랙홀 지대, 여의도에?” 차 안에서 주차장 진입을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을 24, 25일 프리 오픈을 거쳐 26일 그랜드 오픈한 ‘더현대 서울’의 무모함에 관해 대화하면서 흘려보냈다.
좀 아는 사람들 특유의 ‘아는 척’ 회의주의적 시각은 주차장에서 잠시 멈칫했다. 더현대 서울은 백화점의 규모가 무색하지 않게 수많은 차들에도 주차공간이 넉넉해 주차가 쉽게 끝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6층과 6층에서 내려다 본 5층의 전경은 다시 한번 ‘멈칫’하게 했다.
더현대 서울은 개별 브랜드 매장이 아닌 브랜드 중심의 편집매장으로 차별화 한 갤러리아 백화점과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넓은 여유 공간이 특징인 롯데백화점 애비뉴엘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신세계 백화점의 경쟁우위로 인식된 식품 및 식당가는 정원과 산책길이 더해진 공간 구성으로 인해 더현대 서울만의 차별점으로 재구성됐다.
엄밀히 더현대 서울은 백화점이 아닌 쇼핑몰이다. 신세계 스타필드의 도심형 버전에 비견될 수 있는 규모와 구성으로 먹고 마시고 쉴 수 있는 휴게 기능이 강화됐다. 신세계가 보다 넓은 공간 확보와 소비층 확장을 위해 서울 밖으로 뻗어나갔다면, 현대는 한강 최근접지이자 유통 대기업이 진출해있지 않는 도심 한가운데에 가장 큰 터를 잡았다.
서울 지역 최대 규모라는 홍보가 무색하지 않게 더현대 서울은 지하 7층에서 지상 8층까지 총 15개 층에, 영업 면적만 8만 9,100㎡(2만 7,000평)이다. 주차장은 지하 6층부터 지하 3층까지 총 2,248대의 동시 주차가 가능하다. 이는 개점과 주말 특수로 인해 끝없이 몰리는 차량에도 일단 진입하면 빠르게 주차가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다.
백화점 부문에서 롯데와 신세계의 아성을 넘지 못하던 현대는 더현대 서울로 역전극을 도모했다. 사람이 아닌 빌딩이 주인인 도시 속의 빌딩섬, 여의도에서 빨간 기둥의 더현대 서울은 단번에 랜드마크로서 자격을 확보했다. 무엇보다 이례적인 대규모 군중이 집결돼 서울에서의 정공법을 시도한 현대의 역공 전략은 성공을 거둔 듯 보인다.
테라스와 정원을 끼고 있는 5, 6층 식당가는 당분간 가지 못할 유럽 분위기로 대리만족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뿐 아니라 플랜테리어로 인해 발터 벤야민이 언급한 산책 공간으로서 아케이드의 매력을 떠오르게 한다.
그는 “억수같이 내리붓는 비가 내게 심술을 부린다. 그러면 슬쩍 아케이드로 들어가 비를 피한다. … 이러한 아케이드의 일부는 아주 우아하게 지어졌으며 악천후나 이처럼 휘황하게 빛나는 불빛으로 한껏 밤의 정취를 돋우는 밤이면 이곳을 찾아와 한번 산책하고픈 욕망을 부추긴다”라며 소비보다는 산책자를 위한 공간으로 아케이드 역할에 관해 기술했다.
실제 더현대 서울은 전체 면적의 49%를 실내 조경과 휴식 공간에 할애하는 ‘자연 친화형 미래 백화점’이라는 콘셉트에 충실했다. 이 같은 차별화 전략에도 빌딩섬을 소비 중심지로 탈바꿈하려는 현대 야심이 쉽게 충족되지는 못할 듯하다.
수많은 인파가 몰리기는 했으나, 호기심으로 방문한 구경꾼을 제외하면 서울 지역 최대 규모인 더현대 서울의 매출을 이끌어 줄 충성 고객이 얼마나 될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은 식당이 밀집한 5, 6층과 지하 1층으로, 윈도 쇼핑객이 몰리는 일부 라이프 스타일 편집매장을 제외하면 그나마 의류 매장은 고급스러운 연출에도 불구하고 이들마저 뜸해 썰렁했다.
이미 온라인으로 떠나 버린 군중들을 되돌리기에 오프라인의 웅장한 인테리어는 공허하기까지 하다. 산업이 발달하고 사회가 진보하면서 백화점은 닿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몽환’보다는 현실적 ‘접근성’으로 군중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왔다. 더현대 서울 역시 플랜테리어로 연출된 자연 친화적 공간으로 백화점이 제공하는 환상에 현실적 색채를 덧칠했다.
더현대 서울은 2021년 버전에 맞춰 자연 친화적 환상을 재현했지만, 군중의 호응이 이어질지 알 수 없다. 군중은 백화점이 제공하는 ‘상업화된 환상’에 익숙해지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바대로 현실을 꿈의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판타지의 기계적 모방이 아닌 자신만의 판타지를 구현하려는 군중들은 오프라인 백화점이 아닌 온라인을 배회한다. 더현대 서울이 개점일조차 제품 구매 공간으로 들어서지 않는 군중을 소비자로 끌어들일 묘안이 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공식 개점 이틀째인 6시간의 긴 시간을 머물면서 코로나19 집단 감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식당마다 3, 40명을 훌쩍 넘게 늘어선 대기자와 거리두기 푯말이 무색하게 촘촘하게 붙어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나마 앉아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느라 자리를 박차고 나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이틀간 집안에서 수시로 체온을 재며 자체 격리해 코로나19 감염 불안을 해소했다.
이제 막 오픈한 대기업의 야심작이 씁쓸하게 느껴지다 흥미를 잃어갈 때 쯤 동행자는 “공항 가기 전 관광객 풀어놓고 쇼핑하라고 하면 좋아하겠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이라며 전혀 다른 평을 내놨다. 더현대 서울이 위치한 빌딩섬 여의도는 김포공항은 물론 인천공항 접근성이 좋은 최적의 도심 쇼핑몰로, 코로나19 집단면역이 이뤄지고 여행이 정상화되면 쇼핑 관광지로서는 최적의 장소다. 더욱이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플랜테리어로 구성된 공간은 꽉 막힌 실내공간에서 숨통을 트이게 한다.
문학평론가 한민주는 그의 저서 ‘불량소녀들 ; 스펙터클 경성에서 모던걸은 왜 못된걸이 되었나’에서 “대형 백화점은 도시의 소비자는 물론이고 지방에서 올라온 구경꾼들에게도 문화 공간이자 오락장이었다”라며, “(백화점은) 참으로 도회인의 향락장이오, 오락장”으로 기술한 1932년 11월 22일 동아일보에 게재된 기사를 인용해 소비 이전에 문화 공간으로서 군중을 끌어들이는 백화점의 ‘유혹’에 관해 기술했다.
1930년대, 경성의 대형 백화점은 도회인들의 삶을 동경하는 지방 구경꾼들에게 더 큰 판타지 재현 역할을 했다면, 2021년 서울의 대형 백화점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서울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판타지 압축 공간으로서 기능이 중시되고 있다. 이 같은 측면을 고려할 때 낙관과 회의를 오가게 했던 더현대 서울은 코로나19로 퇴색된 아시아 허브 서울을 향한 희망을 품게 한다.
또한, 개점 시점이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현 상황 역시 낙관도 회의도 아닌 모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세계 최초 백화점 ‘봉마르셰’, 한국 최초 백화점 ‘미쓰코시 백화점’이 개점한 1852년, 1930년은 프랑스, 한국 모두 정치적 경제적 혼란기로, 2021년 서울지역 최대 규모 백화점 ‘더현대 서울’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한민주는 “1920년대 중반 이후 식민지 도시 사회에서 소비문화가 확산된 것은 삼일운동과 그 이후 열렬하게 전개된 민족개조 운동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물이었다”라는 김백영의 말을 인용해 “자본주의가 생산해낸 문화 상품들이 식민지인들에게 현실의 박탈감과 무력감으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날 수 있는 환상을 제공했다”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는 집 안이 아닌 집 밖 활동을 제안해 군중은 우울 불안 공포 등 정서적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처럼 난공불락의 상황에서 개점한 더현대 서울은 역사적으로 백화점이 그랬던 것처럼 ‘현실의 박탈감과 무력감’의 해소 창구 역할이 기대된다. 실제 거주지에 묶여 옴짝달싹 못 했던 군중들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일시에 더현대 서울로 밀려들어 갔다.
더현대 서울의 개점은 규모만큼이나 웅장했다. 더현대 서울이 백화점 역사에 코로나19를 전환점으로 삼은 유통으로 기록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 사진=더현대 서울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 본 글은 외부에 기고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