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구매, 전자제품, 옷, 장난감 같은 재미로 하는 지출 줄이기’, 스콧 리킨스의 저서 ‘파이어족이 온다’는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확실성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청년 부부의 바람이 담긴 지출 계획 목록을 공개했다. 조기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으로 새 출발을 결심한 이 부부는 지출 계획 10개 항목 중 ‘재미’로 하는 소비 줄이기를 첫 번째 목록에 올렸다.
2, 30대 청년층은 선택의 시대,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이들 앞에 펼쳐진 선택과 풍요가 실은 사막의 신기루에 불과하다. 현재의 ‘재미’를 저당 잡혀 미래를 꿈꾸는 파이어(FIRE ;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이든, 현재를 직시하지 않고 의욕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며 무기력하게 일상을 보내는 니트(NEET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든 현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일상은 ‘코로나 블루’ 체감도를 높인다.
사회학자 제니퍼 M. 살바는 그의 저서 ‘커밍업 쇼트’에서 “현재는 희망이 없고 미래는 의심스럽다”라며 “(청년들은) 성인기로의 이행 및 성인기 그 자체가 지연되고 불안정하다. …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불확실이라는 밀물이 종래의 성인기 지표들을 휩쓸어 버린 것이다. … 노동계급 청년들은 자신이 ‘현재라는 감옥에 갇힌’ 처지라 그 어떤 유의미한 방법으로도 삶을 개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21세기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불안을 설명했다.
‘커밍업 쇼트’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작성됐지만, 책에 기술된 청년들의 인터뷰는 2021년 현재 청년들과 다르지 않다. 한국 역시 코로나로 취업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취업 중인 이들도 이직을 유예하는 등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없게 됐다. 또한, 임금 삭감 등 물리적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으면 직장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현시대는 청춘들에게서 ‘모험’ ‘도전’이라는 단어를 삭제해버렸다.
누군가는 언택트(Untact) 시대에도 온라인을 통해 여전히 콘택트(Contact) 일상을 이어가는 청년들의 삶에서 진보적인 도전의 가능성을 찾는다. 그러나 이들의 일상이 진보를 이끄는 에너지원으로써 ‘재미’가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지하는 ‘평가’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대중문화의 바로미터인 패션계를 보면 청년들의 과거와 현재가 명확해진다. KBS JOY ‘이십세기 힛트쏭’의 지난 2일 방영분인 ‘이건 못 참지 포인트 댄스 힛-트쏭’은 90년대 활동한 유명 댄스 가수들의 안무를 담당한 스타 안무가 홍영주가 나와 90년대를 되짚었다.
그는 지금과의 차이를 묻는 MC 김희철의 질문에 현재 아이돌 그룹들의 춤이 ‘퍼포먼스’라면, 90년대에는 특정 동작의 ‘반복’이라고 차이를 설명했다. 이는 2020년대와 1990년대를 산 청년들의 삶의 지향성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패션은 춤만큼이나 흥미롭다. 특히 나미 ‘인디안 인형처럼’, 철이와 미애 ‘너는 왜’는 개성 강한 유니크한 의상이 춤과 어우러져 시선을 떼지 못하게 했다. MC 김민아가 “지금 봐도 패션과 춤이 예사롭지 않다”라며 감탄하자, 김희철은 “나미 선배가 헤어스타일, 복장에 기본적으로 신경 쓰고 노래 리듬에 맞춘 춤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라며 과거 인터뷰 내용을 소개했다.
97년 외환위기로 한국 경제가 장기 불황에 접어들기 전 패션계는 절정의 성장기를 구가했다. 이는 댄스 가수들의 의상에서도 읽을 수 있다. 라벨을 때지 않고 입는 스웨그로 힙합 패션 유행을 선도했던 ‘서태지와 아이들’, 토크쇼에서 노팬티 코드를 당당하게 밝히고 시스루 등 늘 파격적인 섹시 콘셉트 의상으로 무대에 올랐던 박진영, 댄스와 패션 완벽한 시너지를 보여줬던 ‘클론’ 등 이들에게 ‘음악, 춤, 패션’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였다. 이들은 2021년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개성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90년대에는 댄스 가수들조차도 솔로가 많고, 듀오와 트리오가 주를 이뤄 개개인의 ‘개성’과 ‘흥’에 더 집중됐다. 반면 지금 무대에 오르는 아이돌은 구성원 개개인이 아닌 전체에 초점이 맞춰진다. 절도 있는 군무와 유니폼화한 무대의상은 집단의 가치를 높이는 도구로 기능한다.
대중문화의 흐름은 청년층에게 고스란히 전이된다. 온라인으로 연결된 콘택트 시대를 사는 청년층은 주관적 ‘재미’에서마저도 객관적 ‘평가’에 압박당한다. 현재를 즐기는 ‘재미’는 현실에서 사라지고 누군가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재라는 감옥이 청년들의 삶을 감싸고 있을 뿐이다.
최고 명문대를 졸업한 20대 청년은 코로나19 팬데믹 악재에도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최소 규모의 소비를 유지한다. 재력이 우선인 그는 불편해질 수 있는 대인관계를 ‘돈 쓰지 않는’ 허세로 대응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취업 관문을 뚫지 못한 또 다른 한 명문대 졸업생은 친구들에게 속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그는 좀처럼 밖에 나오지 않고, 집안에서 ‘혼자 놀기’를 즐긴다. 대신 가끔 혼자 노는 일상 사진을 친구들과 공유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 주인공 요조는 현재의 청춘들과 접점을 이룬다. 요조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게 ‘익살’ 맞게 행동하지만, 이는 내면의 음울하고 자기 파괴적인 속성을 감추기 위한 가면이다. 이는 SNS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실은 다른 어느 시대보다 우울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은 현 청년층 모습과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공개한 국가지표체계에 따르면 20대(19~29세) 우울감 경험률이 2007년 9.7%에서 2019년 13.0%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 조사가 코로나19 팬데믹 전이라는 시점을 고려할 때 청년층의 우울증 증가 폭은 더욱 클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청년층은 C 세대로 정의된다. 새로운 세기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C 세대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충만했다. 당시 구글이 정의한 C는 연결(Connection), 창조(Creation), 사회(Community), 전시(Curation), 4가지 키워드로 압축되는 긍정적 가치의 창의 세대였다. 그러나 2021년 지금의 C는 ‘Crisis’로 축약되는 위기의 세대다.
제니퍼 M. 살바는 특정 계층의 청년층만이 ‘선택의 시대’를 누릴 뿐 다수의 청년층은 ‘선택의 부재’ 상황에 놓여있다고 지적한다. 또, 청년 개개인에게 너무 많은 정서적 짐을 지우는 것이 현대 사회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는 한 청년을 예를 들어 “자신의 삶이 가치 있음을 증명해줄 사람이 자기 외에는 없다.… 자아를 관리하고 변형하고자 감정을 가동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좌절과 배신뿐이다”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청년층, 그것도 20대들이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미래를 꿈꾸지도 못하는 현실은 막막하기만 하다. 청년층의 우울은 소비 시장을 무력화했다. 특히 역동적이어야 할 패션은 청년층과 함께 빛을 잃었다. 기초 생필품과 과시적 장식품으로서 기능성만 남은 패션은 재미가 사라진 사회를 직시하게 한다.
* 타이틀 사진=영화 ‘인간 실격’
[* 본 글은 외부에 기고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