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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이상 Apr 19. 2021

“연령차별에 反하다” 윤여정의 도전과 응전

영화 ‘미나리’ 스틸컷, tvN ‘디어 마이 프렌즈’


최근 문화 예술계는 오랜 기간 고착화해온 차별과 폭력에 저항하고 있다. 극단적 대립 양상을 띠는 페미니즘은 기득권층인 남성들의 공격을 받고 있지만, 저항정신을 늦추지 않는다. 그러나 연령차별은 긴 저항의 역사를 가진 인종차별, 성차별과 달리 순응주의에 머물러 있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가사의 인기는 사회적 저항으로서 메시지보다 노년층의 한 서린 푸념 수준이다. 페미니즘(Feminism)은 이를 이끌고 있는 주도층과 독려하는 지지층이 있어 현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고질적 병폐로 인지되고 개선안이 적극적으로 개진되고 있다. 이에 반해 에이지즘(Ageism), 즉 연령 차별주의는 개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빈약하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법학자 솔 레브모어와의 공동 저작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에서 모든 형태의 지배가 그 지배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밀의 말을 인용해 “인종차별과 성차별도 마찬가지로 그 차별이 본성에서 비롯되는 믿음으로 합리화됐다. … 아직까지 현대사회는 연령에 따른 불평등한 대우를 차별로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성이니까’. 그 말은 합리적 규칙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주로 정년퇴직의 형태로 이뤄지는 연령차별은 합리적 규칙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을 근거로 한다”라며 은퇴가 허용되는 연령과 반드시 은퇴해야 하는 연령을 신중하게 구별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성차별, 연령차별이 관행으로 굳어진 현 사회에서 배우를 ‘여배우’ ‘노배우’ 등으로 세분화하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기대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압력이 깔려있다. 특히 연령차별은 배우가 하고 싶은 역할에서 ‘은퇴’ 해야 한다는 의미로, ‘나이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함의와 연결된다.      


페미니즘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여배우는 점차 호칭과 텍스트에서 사라지고 있다. 배우를 성별로 구분하는 데 대한 사회적 거부감은 이처럼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중년배우’ ‘노배우’ 역시 마찬가지만 양상은 전혀 다르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역 배우들조차 ‘나이값’ ‘나이다움’에 자신을 가두는 등 연령차별에 대한 사회적 저항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윤여정은 ‘여배우’도 ‘노배우’도 아닌 ‘배우’로 대중과 교감하고 있다. 또한, 나이와 도전 정신이 반비례 관계라는 사회적 인식을 뒤엎고 배우 활동 영역 전반에서 ‘에이지즘’을 거부하는 에이지리스(Ageless) 세대의 상징으로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익숙함과 성취의 경험은 성공한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특히 배우는 자신의 이름과 얼굴로 대중과 직접 대면하는 만큼 ‘안정된’ 경험에서 벗어나 ‘불안한’ 도전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윤여정은 ‘윤여정 영화’라는 수식어를 만들지도, ‘노배우’로 자신을 한정 짓지도 않고,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며 배우로 살아가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센스8’, 영화 ‘미나리’

      

2015 리나, 릴리 워쇼스키 감독의 넷플릭스 드라마 ‘센스8’ 출연하며 미국 진출의 물꼬를  윤여정은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 4 4 27 미국 배우 조합상, 13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해 응전에 대한 대가를 받았다. , 오는 25 예정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에이지리스 흐름을 선도하는 윤여정은 일상에서 때로는 소년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시사회 같은 편안한 공식 석상에서 블랙 5부 팬츠와 그레이 스웨트셔츠에 에코백을 들고 나오는가 하면 공항 패션에서도 기본 피트의 데님 팬츠와 블랙 풀오버 차림으로 ‘무심한 듯 시크한’ 스타일을 연출해 패피와 나이는 상관계가 없음을 입증한다.         


배우이자 두 아들의 어머니이기도 한 윤여정은 이런 사회적 조건을 가진 이들에게 요구되는 ‘배우다움’ ‘엄마다움’ ‘할머니다움’과는 거리가 있다. 이는 작품으로도 이어진다. 윤여정의 필모그래피에는 혈연관계를 지켜내기 위해 분투하는 희생으로서 모성애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외유내강, 까칠하지만 실은 촉촉한 속내를 가진 인물로 등장해 혈연이 아닌 이들을 가족으로 끌어안는 새로운 형태의 모성애가 중심을 이루는 작품을 끌어간다.      


    

tvN ‘디어 마이 프렌즈’, 영화 ‘죽여주는 여자’ ‘찬실이는 복도 많지’ ‘계춘할망’ (왼쪽부터 시계방향)


그의 필모그래피는 영화 ‘하녀’(2010년)의 병식, ‘돈의 맛’(2012년)의 백금옥 등 욕망하는 인물 외에 영화 ‘죽여주는 여자’(2016년)의 성매매 박카스 아줌마 소영, ‘디어 마이 프렌즈’(tvN, 2016년)의 독신자 충남, 영화 ‘계춘할망’(2016년)의 해녀 계춘,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년)의 까막눈 할머니 등 기득권층으로서 주류에서 벗어나 있지만, 누구보다 충실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이 또 다른 한 축을 이룬다.   

     

 작품들은 남보다 못한 가족이 아닌, 남들과 가족보다  끈끈한 공동체가 중심을 이룬다. 이를 통해 비혈연 공동체가 배타주의로 비틀린 현대사회에서 전통 가족주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대안이   있음을 시사한다.          


‘디어 마이 프렌즈’ 충남은 어린 시절부터 얽히고설킨 선후배와 희로애락을 나눈다. ‘죽여주는 여자’ 소영은 허름한 집에 얼기설기 모여 사는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이들과 끈적끈적한 인연을 맺고 급기야 거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아이를 데려온다.      


‘계춘할망’ 계춘은 손녀라는 거짓말로 집에 눌러앉은 혜지를 모른 척 끌어안고,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까칠한 집주인 할머니는 영화만 사랑하다 영화에서조차 배신당한 이찬실(강말금)과 임대인 임차인 관계가 아닌 같이 밥 먹고 공부하는 가족보다 더 쓸모 있는 동거인이자 친구가 된다.      


 

tvN ‘디어 마이 프렌즈’, 영화 ‘죽여주는 여자’


네 작품에서 윤여정의 모습은 다 다르다. ‘디어 마이 프렌즈’ 충남은 윤여정의 일상이 그대로 옮겨왔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말투며 의상이며 배우 윤여정이 아닌 카메라 밖 윤여정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윤여정은 이런 줄 알았으면 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을 정도로 ‘죽여주는 여자’의 구체적인 성매매 묘사는 관객에게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그는 헤어스타일과 의상으로 과거의 빈한한 ‘청춘’에 멈춰져 있는 소영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얼굴에 새겨진 나이테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파마, 빨아서 다려 입은 듯 뻣뻣한 데님 재킷은 젊게 보이기 위한 설정이었지만, 소영에게서 되레 젊음의 흔적을 삭제해버렸다. 데님 재킷 안의 블랙 시스루 스팽글 상의는 성을 파는 자로서 직업의식에 충실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여겨져 시선을 끌었다.        

영화 ‘계춘할망’ ‘찬실이는 복도 많지’

      

충남과 소영이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바와 전혀 다른 이미지라면, ‘계춘할망’ 계춘과 ‘찬실이는 복도 많지’ 집주인 할머니는 보통의 할머니 이미지다. 그 나이의 할머니들이 그렇듯 거친 삶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있지만, 그렇게 해서 지켜내야만 했던 가족이 더는 남아있지 않다.  

      

계춘은 허리도 제대로 펴기 힘든 나이에도 입고 벗기 힘든 잠수복을 입고 여전히 차갑고 사나운 바닷가에 나가는 해녀이고, 집주인 할머니는 절대 겸상하지 않고 지정한 방에는 얼씬도 못 하게 하는 음험한 분위기를 풍긴다.      


싸늘한 일상을 보내는 이들은 아무 상관관계도 없는 비혈연 타인을 받아들이면서 달라진다. 무엇보다 노년에도 은퇴하지 않는 해녀 계춘, 늦은 나이에 글을 배우는 할머니, 두 캐릭터에는 나이의 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는 배우 윤여정의 현재가 녹아있다.      


“왜 하필 윤여정?” 윤여정이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연기상 후보로 지명되고 영국, 미국에서 잇따라 수상 소식을 알리는데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다. 윤여정은 ‘멋있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지만, 누군가에는 그 연령대 배우 혹은 어른과는 좀 다른 ‘까칠한 성격’ ‘직업이 배우인 사람’ 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윤여정에 대한 부정적 반응은 ‘노배우 전형에서 빗나간 낯섦에 기인한다.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 같지 않아요라고 항의하는 손자 데이빗(앨런 )에게 순자(윤여정) “할머니 같은  뭔데라고 묻는다. 배우 윤여정의 필모그래피는 대중에게 이렇게 되묻는 듯하다. “ 나이에 맞는 배우 같은  뭔데?”     


윤여정은 75세에 70세의 종심(從心)의 여유로 15세와 같은 지학(志學)을 펼치는 배우로, 세대 전반에 걸쳐 기대와 지지를 받고 있다.      


* 타이틀 사진=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 본 글은 외부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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