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성 서울시장 선출 여부에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2021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도쿄에 아파트 가진 아줌마’라고 지칭해 성 이념 논쟁이 일었다.
성 인지 감수성 부족은 국민을 대표해야 하는 정치인으로서 안 대표의 자질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일부는 공식 석상에서 ‘아줌마’를 거론한 정치인들 사례를 들며 안 대표를 향한 비난이 과하다는 견해를 제기했다. 그러나 안 대표의 아줌마 발언은 정치인과 정치인 간 대결 상황에서 다수가 아닌 특정인을 ‘아줌마’로 지칭해 폄하의 의도가 짙게 배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정치인들에게 성 인지 감수성이 필히 갖춰야 하는 덕목임을 부각했다. 그러나 특정 정치인들의 성 인지 감수성의 부족을 탓하기 전에 ‘아줌마’로 상징되는 ‘혐오 이미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존칭과 호칭이 많은 한국에서 특히 호칭은 사전적 의미뿐 아니라 사회적 의미를 함의하고 있어 논란을 동반하기 일쑤다. 여러 매체에서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지적을 반복할 필요는 없지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아줌마를 아주머니를 ‘낮춰 부르는’ 말로 정의한다. 단어 자체가 폄하의 의미가 내포됐기 때문인지 아줌마는 ‘혐오 이미지’와 연결된다.
소설 ‘자기 앞의 생’ 한국어 번역본은 ‘아줌마’ 호칭에 담긴 감정적 뉘앙스를 이해하는데 의미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로자 아줌마에 대한 모모의 감정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모모는 소설 초반에 ‘로자 아줌마’를 듬성듬성한 머리카락을 감추기 위해 외출할 때마다 가발을 쓰는 ‘혐오스러운’ 외양으로 묘사한다.
그는 “로자 아줌마의 잿빛 머리카락도 떨어져 내리는 석회덩이처럼 자꾸 빠지고 있었다. 뿌리가 약해서 머리통에 제대로 붙어있지 못했다. 그녀는 대머리가 될까 봐 몹시 걱정했다”라며 “일요일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한 후 다갈색 가발을 쓰고 볼리에 광장으로 가서 몇 시간씩 우아하게 앉아 있곤 했다”라고 로자 아줌마에 관한 기억을 끌어낸다.
로자 아줌마의 혐오스러운 외양은 그의 과거와 연결돼 있다. 유대인 신분인 그는 살기 위해 젊은 시절에는 창녀로, 나이 들어서는 창녀들의 아이를 돌보며 근근이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이 같은 질박한 인생이 어색한 다갈색 가발과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차림을 한 억척스럽고 드센 이미지를 갖게 했다.
로맹 가리가 1975년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이 소설 속 로자 아줌마와 비슷한 시기에 근대사를 지나온 한국 아줌마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할머니가 된 그 시기 한국 아줌마는 복붙(복사, 붙여넣기)한 듯 똑같은 ‘뽀글이 파마’에 화려한 색과 패턴의 ‘몸빼’까지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개성 없는 획일화된 헤어와 패션으로 상징됐다.
당시 로자 아줌마, 한국 아줌마, 모두 전쟁 세대로, 그 시기는 생존이 절대적이었다. 그들은 찬란하지 못했던 젊은 시절에 대한 보상인지 회한인지 화려하게 몸치장을 했다. 풍족하지 못한 이들 세대의 ‘시대착오적’ 화려함은 부자연스럽고 세련되지 못해 젊은 층의 비웃음을 사며 아줌마에 대한 ‘혐오 이미지’의 시작이 됐다
이후 경제부흥기 땅 투기로 재산을 불린 복부인과 연결되는 아줌마는 자신의 몸의 2배는 됨직한 값비싼 모피를 걸친 ‘과시’로 상징된다. 이어 2021년 현재 ‘부동산 세습 재벌’ ‘과잉 교육열’과 연결되는 ‘강남 아줌마’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명품으로 치장한 ‘사모님 패션’으로 과거 복부인 이미지를 이어간다.
한 20대 여성은 ‘강남 아줌마’로 연상되는 이미지에 대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명품 브랜드로 전신을 휘감은 스타일을 꼽았다. 덧붙여 주변에서 마주친 이런 외양의 사람들 다수가 상대를 평가할 때 입고 있는 옷의 브랜드와 가격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 같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현재 정치적 사회적으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강남 아줌마’는 ‘과시’로, 이를 추종하는 계층 사다리 하층부에 있는 흉내 내기에 몰두한 아줌마는 ‘허세’로 혐오 이미지를 상징한다. 영화 ‘정직한 후보’, ‘기생충은 각각 특권층의 과시, 추종 층의 ’허세‘로서 아줌마 이미지를 시각화 해 몰입도를 높였다.
’정직한 후보‘에서 4선에 도전하는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은 거짓으로 포장된 정치인, 과시하는 부유층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주상숙은 평소 집에서는 S컬 옆머리의 미디움 단발로 우아한 ’사모님 머리‘를 하고 있지만, 집 밖에서는 두피 부위에 볼륨이 들어간 쇼트단발로 보수적 국회의원이 된다. 주상숙의 집 안팎 모습 모두 2021년 현재 버전의 혐오로서 아줌마 이미지를 연상하게 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연교(조여정)의 집, 도우미 문광(이정은)은 상류층을 추종하는 이들의 ‘허세’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문광은 연교 부부를 제외한 모두를 깔보듯 내려다보며 주인행세를 한다. 문광의 태도뿐 아니라 패션도 인상적이다. 두피 부위에 볼륨을 잔뜩 넣은 올림머리, 간결한 디자인의 원피스, 스커트 정장 등 클래식 페미닌룩, 줄을 건 안경까지 허세로 가득한 속내를 드러낸다.
이처럼 시대마다 혐오로서 아줌마 이미지 역시 조금씩 변했다. 그러나 돈이 많든 아니든 실제 자신의 모습보다 더 화려하게 보이고 싶은 욕망은 시대를 관통해 공유되고 있다. 이는 이뤄질 수 없는 젊음에 대한 허황된 집착, 좁힐 수 없는 계층에 대한 비현실적인 동경 등으로 읽혀 더욱더 거부감을 키운다.
젊은 층의 이러한 반응의 기저에는 ‘늙음’을 ‘추함’과 연결해 자신도 언젠가 혐오스러운 아줌마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깔려있다. 조화롭지 못하고 부자연스러운 아줌마들의 화려함과 호사스러움에 대한 혐오의 깊이는 “설마, 나도”라고 자문하게 되는 불안의 정도와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앞의 생’은 외양의 추함은 주관적 판단 기준에 따라 그 외양에서 읽어내는 이미지는 달라질 수 있음을 지적한다. 모모는 병색이 완연했던 로자 아줌마를 회상하며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있는 것이다”라며 어린 시절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감정을 끌어낸다.
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의 ‘혐오’에 관한 해석은 아줌마를 혐오 이미지로 인지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혐오와 수치심’ 중 ‘혐오 배척 문명화’에서 “우리는 인생의 덧없음과 퇴화를 두려워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끌어안아야 한다. … 우리가 삶의 유한성과 벌이고 있는 복잡한 투쟁의 자연적 결과로 혐오를 갖는 것이라면, 우리는 삶에서 혐오를 완전히 없앨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이는 혐오가 결국 유한의 인간에게 내재한 어쩔 수 없는 방어기제로. ‘혐오 이미지’로서 아줌마 역시 결국 자신의 부끄러운 욕망이 투영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 타이틀 사진=영화 ‘용길이네 곱창집’ 이정은
[* 본 글은 외부에 기고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