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치매는 인과응보의 결말에 등장한다. 가해자가 입원한 요양병원을 찾은 주인공은 초점을 잃은 멍한 눈의 얼굴을 보고 인간의 용서가 필요하지 않은 신의 형벌에 씁쓸해하며 돌아선다. 치매는 인간이 아닌 신에 의한 단죄로 가장 완벽한 복수의 클리셰를 완성한다.
성숙한 감정이 사라진 미숙한 표정의 얼굴과 함께 환자복은 신에 의한 복수의 완성으로써 치매를 시각적으로 상징화한다. 치매가 신의 형벌이 아닌 자아 정체감을 완성하는 인간 삶의 과정에서의 통과의례로 다뤄지면서 이를 상징화하는 드레스코드 역시 바뀌고 있다. 환자복을 입고 아이와 같은 퇴행적 행동을 하는 모습이 아닌 변함없이 담담하게 일상을 살아가거나 때로는 승화를 통해 자아실현을 완성하는 긍정적인 뉘앙스가 부상하고 있다.
‘심리학으로 말하다’ 시리즈 ‘패션’에서 패션 심리학자 캐럴린 메어는 매슬로의 동기 이론을 근거로 자아 정체성과 사회화 과정에 기여하는 의상의 역할을 설명했다. 그는 옷이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를 충족할 뿐 아니라 사회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향상할 때 소속감과 애정 욕구, 존경 욕구를 충족한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자아실현 욕구’ 충족으로 옷의 역할을 해석한 일부 연구자들의 견해를 제시했다. 단, 이는 패션의 힘을 과장하는 것일 수 있다고 중도적 태도를 취했으나, 삶의 여정으로 치매를 다룬 작품에서 의상은 자아실현의 도구로서 제 역할을 다한다.
인지기능 장애인 치매는 알코올성 치매를 제외하면 한 사람이 살아온 행적과는 무관한 뇌 질환이다. 그러나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인간의 심리는 신의 저주라는 결말에 안도한다. 의학과 의식의 진화는 드라마에서 전개되는 현실 왜곡의 시대착오적 위안의 효력을 약화해 신의 응징이라는 치매의 서사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악마의 현현처럼 인식되기도 했던 치매가 자아 정체감 완성의 관점으로 전환되면서 열심히 사는 자신과 무관한 신의 저주라는 인간의 원죄 망상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로써 온전한 노년을 위한 준비의 필요를 자각게 하고 의식의 삶을 잃어버리는 대신 낯선 무의식의 삶과 대응하는 삶의 전환점으로서 긍정적인 효과를 끌어낸다.
지난 4월 27일 종영한 tvN ‘나빌레라’는 마지막 12회에서 심덕출(박인환)이 치매로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백조의 호수’ 듀엣 발레 무대를 무사히 끝내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렸다.
해남(나문희)은 공연 날 아침,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채 잠에서 깬 덕출을 발레 연습을 하던 스튜디오로 데리고 간다. 다그치지 않고 무엇이든 기억해내기를 기다리던 해남은 덕출의 기억이 조금씩 소생하자 발레하기에 충분치 않다며 불안해하는 아들 성관(조복래)을 설득해 발레 공연장으로 남편을 안내한다. 채록(송강)은 해남의 확신 배턴을 이어받아 덕출을 결국 무대 위에 세운다.
‘나빌레라’는 갈라 무대를 앞두고 기적처럼 기억이 소생하는 전개가 아닌 발레리노에 대한 열망으로 잃어버린 기억의 한계를 극복하고 온전한 무대를 완성하는 덕출의 모습을 담아낸다. 덕출은 발레 연습을 하며 자신에게 늘 되뇌던 “바보가 돼가는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하도록”을 떠올리듯 채록이 내민 손을 잡고 의식 너머 저 높이 날아오른다.
채록의 시선은 의식에서 무의식 저편으로 밀려들어 간 발레 동작이 덕출의 몸으로 체현되는 스위치 효과를 낸다. 덕출은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는 친구의 유언과 같은 말 한마디로 발레를 시작한 후 치매로 위기를 겪지만, 오히려 자신은 물론 가족을 비롯한 주변과 더욱더 단단한 관계를 맺게 된다.
‘눈이 부시게’(tvN, 2019년)는 김혜자의 치매를 시간 여행으로 그렸다. 20대 혜자(한지민)는 어느 날 아침 70대 노인 혜자(김혜자)의 모습으로 잠에서 깬다. 마지못해 떠밀리듯 홍보관을 찾은 혜자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사기를 목격하고 단체로 탈출을 감행한다. 이들과 함께 도착한 해변에서 혼란스러운 기억으로 공황 상태에 빠지고 엄마(이정은), 아빠(안내상)가 자신을 향해 “어머니” “엄마”라고 외치며 달려오자 시간여행에서 깨어난다.
시간여행을 떠난 혜자는 너무 일찍 자신의 곁을 떠난 남편 이준하(남주혁)와 만나고 그의 죽음에 얽힌 응어리를 풀어낸 후 70대 노인의 현재 모습으로 돌아온다. 엄마가 돼준 며느리, 손자가 아닌 철없는 현실 오빠로 매 순간을 즐겁게 한 영수(손호준)는 시간여행이 끝난 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 혜자 곁에 남아 있다. 아들은 자신을 혹독하게 키운 엄마 혜자가 실은 자식이 불편한 다리 때문에 행여나 다칠까 봐 겨울 아침마다 남몰래 눈을 쓸었다는 사실을 알고 울먹이며 마음 한편에 남아있던 원망을 쓸어낸다.
두 편의 드라마에서 의상은 덕출의 발레리노 꿈 실현, 혜자의 20대 청년기로의 여행을 과거로 밀어낼 수 없는 시각화된 기억으로 남겼다. 이미지로 각인된 기억은 과거가 아닌 현재에 생생하게 재현돼 치매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덕출은 발레 동작을 기억해내지 못한 채 채록이 내민 ‘백조의 호수’ 발레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른다. 소매에 화이트 프릴이 달린 은장식의 블랙 뷔스티에, 타이츠와 토슈즈는 과거 극장 앞에서 홀로 춤을 따라 하며 행복해하던 소년을 현재로 소환한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된 그는 완벽한 무대의상과 소년 시절의 열정으로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든다.
공연이 끝난 후 덕출은 채록의 매니저로 복귀한다. 그는 더는 발레를 하지 않지만, 발레 의상을 입고 올랐던 무대의 기억은 그의 얼굴에 지울 수 없는 행복의 영원한 흔적을 남긴다.
혜자는 70대 노인의 외양이지만, 20대 혜자의 옷을 입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선배 준하와 가슴 설레는 썸을 이어간다. 혜자는 핑크 후드 스웨트셔츠와 프린트 스커트, 데님 셔츠 원피스 등 25세 혜자가 입을 법한 옷을 입는다. 또, 잠에서 깬 새벽녘 잔잔한 프린트 원피스 위에 청재킷을 걸치고 집을 나서는 혜자는 청년의 옷차림을 한 채 혼란스러운 정체성, 사랑 등 청년의 고민을 한다. 이 같은 설정은 혜자가 치매로 인한 퇴행이 아닌 25세 혜자가 알 수 없는 시간 속으로 빠져들었다고 믿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앞서 캐럴린 메어는 자아실현으로서 의상의 역할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으나, 현대사회에서 비언어적 소통 방식이자 사회적 표현의 도구로서 패션의 역할 증대는 부정할 수 없는 사회 현상이다. 문화 비평가 엘리슨 밴크로프트는 그의 저서 ‘패션과 정신분석학’에서 프로이트 승화 이론을 예술 창작 과정과 연결했다. 그는 예술작품을 창작자의 무의식 증상으로 해석하고, 승화가 창의적 충동임을 언급했다. 또 “승화는 예술작품 창작 동기일 뿐 아니라 보편적 발달 과정을 가리키는 말로도 통했다”라고 설명했다.
덕출과 혜자는 혼란스러운 기억의 숲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애쓰기보다 그 안에서 잊었던 바람과 기억을 마주하고 보다 온전한 자아를 획득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노인의 몸이지만, 자신의 심경을 드러내는 의상을 통해 시청자들을 극 안으로 끌어들여 함께 교감하며 치매에 관한 열린 시각을 공유했다.
마사누스 바움과 솔 레브모어의 공동저작 ‘나이 듦에 대하여’에서 마사 누스바움은 ‘나이 듦’은 일반화의 위험이 높고, 보편화한 사회적 낙인의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또,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 가운데 가장 유해한 것 한 가지는 노인들에게 주체성이 없다는 것이다”라며 주체성 부정의 문제를 언급했다.
치매가 걸리지 않아도 노인은 나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 퇴행 이미지의 ‘치매 걸린 노인’ 취급을 받기 일쑤다. ‘나빌레라’ ‘눈이 부시게’는 치매를 통해 혹은 나이로 인한 노년의 물리적 퇴행을 주체성 상실이 아닌 자아로의 온전한 복귀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기한다. 이뿐 아니라 노년의 몸에 걸맞은 사회적으로 관습화된 의상이 아닌 자신이 바라고 확신하는 자아에 맞는 의상을 입고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 타이틀 사진=tvN ‘나빌레라’ 박인환
[* 본 글은 외부에 기고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