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아웃팅 한 유명인들을 기준으로 동성애에 대한 관념을 형성한다. 김조광수, 홍석천 등 연예계 아웃팅 1세대들은 투사거나 희생자거나 극단적 이미지이지만, 이들 모두 대중들에게는 주류에서 밀려난 아웃사이더로 인식된다. 영화와 드라마는 동성애를 폄하 혹은 개그 코드로 설정해 동성애자들의 아웃사이더 이미지를 강화했다.
동성애는 과거나 지금이나 일탈과 방종의 과정과 결과로써 비난과 응징의 대상이다. 동성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바뀌고 있지만, 이성이 아닌 동성에 대한 사랑은 가정과 사회에서 불온한 행위로 치부된다. 동성애는 이성애와 달리 윤리적, 법적 평가에서 부정적이며, 개개인들은 동성애에 대해 배타적이다. 그러나 사회는 동성애에 대해 수용적 관점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 같은 사회의 수용적 분위기는 대중화된 매체로서 드라마 속 동성애 설정 변화를 통해 확인된다.
동성애는 사회 인식의 변화에도 가정과 사회에서 버려진 이반의 사랑이라는 음울한 하위문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드라마는 동성애를 하위문화가 아닌 상위문화로 끌어올린다. 물질적 정신적 풍요를 누리는 자들의 정체감에 초점을 맞춘 상위문화의 영역으로 이동한 동성애는 가진 자들의 공허를 대변하는 코드로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이 같은 동성애의 문화적 위치 이동은 구별 짓기 방식을 달라지게 했다. 하위문화로서 동성애가 시각적 구별 짓기에 집중했다면 상위문화로서 동성애는 정체감에 초점을 맞춰 시각적 구별 짓기의 무용성을 인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과거 하위문화로서 동성애는 성적 전복을 드러내는 의상을 통해 이성애와의 차이를 부각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유지, 강화하는 이 방식은 이성애자들이 동성애를 시각적으로 인식함으로써 그들과 섞이지 않고 거리를 두고 살 수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또한 동성애를 하나의 스낵 컬처와 같은 가벼운 이미지 상품으로 소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성적 평등을 받아들이는 진보 취향인 듯한 자만을 갖게 한다.
신학자이자 상담심리학자인 정동섭은 ‘상담심리학자가 본 동성애’에서 동성애자를 정형화된 이미지의 상품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태도가 대중이 만들어낸 망상인지, 동성애자들의 인정 욕구 때문인지 구별이 쉽지 않음을 지적했다. 그는 “동성애자 세계의 대부분이 동성애자를 하나의 상품으로 보고 표면적 특성에 의해 판단하기 때문에 그는 곧 자신에 대해서 똑같은 관점을 발전하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홍석천이 디자이너 쁘와송으로 등장한 MBC ‘남자 셋 여자 셋’(1996~1999년)은 당시 사회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동성애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과 거부감을 드러냈다. 쁘와송은 패션 디자이너와 게이 이미지를 연결했던 사회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무엇보다 그의 여성스러운 말투와 옷차림은 동성애의 희화적 부분만을 즐기고 싶은 대중의 심리를 적확하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최근 드라마에서는 특정 인물의 내면에 대한 궁금증을 높이는 요소로 동성애를 활용한다.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으로써 시각적 관습을 벗어나지 않는 인물이 실은 내면에 동성매력지향이라는 성적 지향을 감추고 있다는 설정은 시청자들의 심장을 멈칫하게 한다.
최상위 상류층인 효원가의 파멸을 그리고 있는 tvN ‘마인’은 성골 귀족 정서현(김서형)의 비밀을 공개하면서 긴장감을 높였다. 재력과 지력을 모두 갖춘 서현이 이혼남에 아이까지 있는 한진호(박혁권)와 결혼한 이유는 호사가들은 물론 효원가에서 조차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 비밀을 오래 묻어두지 않는다. 도우미의 휴대폰 속 영상을 보고 불안에 떨던 서현은 엠마 수녀(예수정)의 최면 요법을 받으면서 그동안 힘들게 감춰온 자신의 비밀스러운 사랑과 고통스럽게 마주하며 눈물을 쏟아낸다.
‘마인’ 속 상류계층의 동성애 설정은 2019년 방영된 SBS ‘시크릿 부티크’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니장(김선아)은 데오가 김여옥(장미희)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장남 위정혁(김태훈)과 결혼을 강행한다. 그는 결혼으로 복수에 바짝 다가서지만, 위정혁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우연히 위정혁의 성적 정체성을 알게 된 후 그와 이성의 사랑이 아닌 유일무이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된 제니장은 그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복수 위기마저 감내한다.
극 중 정서현과 위정혁에게서 시각적 구별 짓기로서 동성애 코드를 발견할 수 없다. 정서현은 과거 연인과 애틋했던 상황을 회상하지만, 그가 흔히 알려진 남성 역할로서 부치인 여성 역할로서 팸인지 짐작케 하는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정서현의 회상에서 그와 연인은 화이트 셔츠를 입고 있다. 화이트 셔츠가 남성성의 상징이자, 섹시한 여성을 상징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고, 동성애 묘사에서 이는 부치와 팸을 구별 짓는 장치로 사용된다. 그러나 ‘마인’은 전형에서 벗어난다. 그보다 화이트 셔츠는 이들의 순수를 상징한다. 또, 물감이 묻은 셔츠를 입은 서현의 연인이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 지망생이라고 추정하게 하는 동시에 색색의 물감이 동성애의 상징인 무지개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이들의 사랑이 성적 요소보다는 예술이라는 정서적 요소가 우위에 있음을 암시한다.
위정혁 역시 외양에서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읽어낼 수 없다. 정서현과 마찬가지로 사회 관습을 벗어나지 않는 외양은 동성애자를 특이한 외양으로 구별 짓고자 하는 이성애자의 망상을 깬다. 게이는 여성보다 희화된 외양 묘사의 희생자다. 하늘거리는 실크 셔츠에 단추를 서너 개를 풀어헤친 옷차림을 늘 게이 이미지와 연결된다. 이는 최근까지도, 지금도 드라마에서 묘사되고 있는 게이의 전형으로서 외양이다.
1999년에 방영된 MBC ‘슬픈 유혹’은 이미 이 같은 편협에 정면 도전했다. 중년 남자와 젊은 남자의 사랑을 그린 이 드라마는 내 아버지, 내 아들이 사회가 죄악시하는 동성애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각성케 했다.
창립 멤버이자 회사 중역인 정문기(김갑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의심해본 적 없다. 사회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는 자신을 구태의연한 퇴물 취급하는 신준영(주진모)에게 모멸감과 패배감을 느끼며 위기에 맞닥뜨린다.
반듯한 슈트 차림의 이 두 남자는 사회적 엘리트 계층으로, 동성애로 판별한 할 만한 어떤 시각적 구별점이 없다. 그러나 준영에게 과거 연인이 찾아오면서 그의 성적 정체성이 드러난다. 준영은 문기에게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고, 문기는 “난 이런 감정이 뭔지 잘 모르겠다”라며 준영에게 끌리는 혼란을 그대로 드러낸다. 문기의 성적 혼란은 그의 외양이 아닌 준영의 손을 잡으며 읊조리듯 토로하는 고백을 통해 드러난다.
드라마가 사회적 위반인 동성애를 다루면서도 불특정 다수의 비난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육체적 쾌락으로써 동성애와 정서적 공감으로써 사랑을 다르게 인식하는 사회적 변화가 근간이 됐다.
정동섭은 동성애에 대해 타당한 수용적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부끄러운 정욕에 빠져서 상대를 바꾸어 가며 쾌락을 즐기는 ‘타락한 동성애자들’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동성에 끌리는 ‘타고난 동성애자들’을 구분한다.
‘마인’ 정서현은 최근 사회가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타고난 동성애’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연인에 관한 기사가 실린 것을 보고 비밀스럽게 그의 작품을 구입하고 자신의 직접적 도움 없이도 그가 인정받는 예술가가 될 거라 확신한다. 또, 연인과 꿈꿨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복합 문화 공간 사업을 실행한다.
정동섭은 타락한 동성애자들은 정죄 받아 마땅하지만, 타고난 동성애자들은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고쳐지지 않는 동성애 경향과 싸워 온 ‘내면의 전쟁’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라며 동성애자 모두를 하나의 카테고리에 묶어 주류 밖으로 밀쳐내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동성애의 자극적 묘사가 드라마의 흥미를 높이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자극적 묘사는 이제 드라마에 관한 관심을 떨어뜨린다. 상위문화로 이동한 동성애는 자극적 묘사의 변형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화려한 생활을 하는 이들이 정체감 혼란을 통해 보여주는 공허가 되레 거부감을 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인’이 정서현을 통해 지금까지 보여준 동성애는 사회적 이반이 아닌 일반으로서 동성애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사회 인식의 변화를 체감케 한다.
* 타이틀 사진=tvN ‘마인’ 김서형
[* 본 글은 외부에 기고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