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는 권위 상실의 시대다. 기형적으로 성장한 힘과 달리 한없이 초라해진 권위, 힘만 키운 권력은 대중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계층 사다리가 무너져 계급이동이 어려워지면서 대중은 권위를 삭제 처리하는 방식으로 권력층과 대치하며 그들의 무능을 비웃는다.
권위 없는 권력을 혐오하는 대중은 영웅을 원한다. 과학과 이성의 시대를 역행하는 마블 어벤져스 영웅 시리즈 영화의 인기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영웅의 꿈을 허구로나마 충족하고 싶은 열망의 결과다. 대중의 열망이 출산한 허구의 영웅은 악마적 힘과 신성으로서 권위의 양립이라는 비현실적 이중성으로 귀결된다.
tvN 주말 드라마 ‘악마판사’는 선과 악이 자웅동체처럼 공존하는 강요한(지성)을 통해 대중은 선의 느슨함보다 악의 통쾌함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적당한 선의로 포장되면 결말이 제아무리 악마적이라고 해도 괘념치 않는 대중의 심리를 적확하게 파고들어 현재성을 띤다.
강요한의 공개재판 주심 판사 의상은 백색의 수단과 그 위에 걸친 검은색 영대로 구성된다. 법복의 디테일을 유지하지만 성직자를 연상하게 하는 구성이 악마적 힘으로써 법과 신성으로서 신의 권위를 양립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낸다. 선의로 포장된 악의는 이 의상으로 대중을 현혹한다.
판사 출신 문유석 작가는 강요한이라는 인물을 통해 대중이 원하는 악의 통쾌함이 선의 명분을 전제해야 한다는 모순적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고발하는 듯하다. 공개재판 무대에 선 강요한의 이단 교주 같은 옷차림은 대중의 모순된 비논리성을 파고들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이름이 세례명 요한인 것도 성직자 제복 같은 법복과 연결된다.
‘악마판사’는 한없이 가벼운 조연배우 출신 대통령과 비서에게 조롱당하는 사회적 책임재단 이사장을 축으로 한 무능한 권력층, 이들에게 분노하는 비행 청소년 출신 판사를 대치해 극단으로 치닫는 현 시국을 재현한다. 여기에 대부호의 비극적 상속자이면서 가정 폭력 희생자인 서자를 재판장으로 내세워 권력층이면서 동시에 하층민이기도 한 자본주의 사회의 ‘계층 혼혈아’가 벌이는 화려한 적폐 청산 쇼를 보여준다.
강요한은 무능한 권력층을 암매장하듯 가장 세련된 말로 가장 거칠게 단죄한다. 그러나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처럼 전개되는 공개재판은 통쾌한 단죄가 권위를 포기해 수치심을 모르는 권력층에게는 재판마저도 그저 쇼일 뿐 사멸은 없다는 결말을 암시하는 듯해 공허하다.
드라마 시작은 식상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재현하듯 보여준다. 이종격투기처럼 오프닝 멘트를 치는 사회자, 이단 교주처럼 등장하는 주임판사,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처럼 공유되는 실시간 여론 집계 현황. 시청자들은 과한 설정이라는 지적과 함께 화려한 화면 전개에도 지루함을 호소했다.
시청률도 드라마 실시간 댓글 반응과 다르지 않았다. 첫 회에서 5.6%로 민망한 수준은 면한 듯했던 시청률은 2회에서 5.1%로 하락했다. 다소 산만하게 전개된 1, 2회가 지나 공개 재판이 이어지고 등장인물들의 서사가 시작되면서 3회 시청률이 5.5%로 회복해 4회에서는 6.3%까지 올랐다.
‘악마판사’는 2년째 팬데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 시국을 빗댄 듯 가상의 디스토피아를 무대 배경 삼아 이뤄지는 공개재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악마판사’라는 제목에 걸맞게 주심 판사인 강요한(지성)의 의상은 판사복의 디테일을 차용했지만, 전체적인 아웃피트는 성직자를 연상하게 한다. 권위는 상실했지만 거대한 괴물 같은 힘을 가진 법, 상징일 뿐 이지만 법이 인정받지 못하는 권위를 가진 신. 강요한은 법복을 통해 법의 힘과 신의 권위를 모두 행사하는 공개재판의 절대자로 군림한다.
강요한은 밤과 낮이 다르고, 과거와 현재가 다르다. 밤에는 거리에서, 낮에는 판사로 재판정에서 악을 응징한다. 과거에는 자신의 추악한 면을 투사하며 학대하는 아버지에게 자발적으로 등을 내주고, 현재는 아버지와 형의 잇따른 죽음 이후 비운의 상속자라는 후광 효과를 안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셀러브리티 판사의 삶을 살고 있다.
공개재판 무대에 선 강요한은 현재의 재판관이라기보다는 원시민족사회에서 제의를 관장하는 부족의 지도자처럼 행세한다. 폭력과 비폭력을 양 손에 쥐고 대중을 쥐락펴락하면서 자신의 의도가 마치 대중의 바람인 것처럼 죄인을 가장 거친 방식으로 단죄한다.
폐수를 방류해 인근 주민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장은 피해자 47명 각각의 형량을 합친 금고 235년, 폭력으로 고소당한 법무부 장관 아들에게는 태형 공개 집행을 선고한다. 그러나 극 중에서 암시된 것처럼 235년 형은 그저 숫자 놀음일 뿐 감형이나 사면을 배제할 수 없다. 태형은 그저 우는 아이 달래는 수준일 뿐이다.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선고는 공개재판은 어차피 대중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막간극일 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듯하다. 막간극은 본 막이 오르는 순간 순식간에 무대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시선을 압도하는 주심 판사의 의상은 이 무대가 본 막을 위협하는 권위를 가지기 시작했음을 알리고 힘뿐인 권력 전복의 반전을 암시한다.
공개재판 판사 복장의 스탠드칼라는 일제강점기 법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한참을 스탠드칼라의 블랙 가운 형태가 유지되다 제 3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일제 잔재가 남아있는 법복이 폐기되고 칼라가 없는 풍성한 가운 형태의 미국식 법복이 도입됐다.
강요한 재판장의 스탠드칼라는 일제 강점기의 재현과는 다르다. 카톨릭의 성직자 의상인 수단의 형태를 차용한 선의 상징이다. 또, 현재 법복의 앞판 일부에 덧댄 색이 다른 무궁화 문양이 들어간 양단을 무궁화 단추로 여미는 영대 형태로 재해석해 수단 위에 걸쳐 법복임에도 성직자 제복 같은 아우라를 완성한다.
주심 판사의 백색 수단과 검은색 영대의 컬러 조합은 공개재판의 퍼포먼스 효과를 높인다. 수단의 백색은 가장 일반적인 제의 색상 중 하나로 축제에, 영대의 검은색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장례 미사 때 사용한다. 이는 ‘축제와 같은 비열한 권력층의 사멸식’이라는 함의와 연결된다.
주심 판사와 대비되는 우배석 좌배석 판사의 홍색 영대는 순교차 축일과 성금요일에 사용하는 사랑과 피를 상징한다. 극에서 홍색의 함의는 검은색과는 달리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핏빛 선홍색은 김가온 판사(진영)가 앞으로 선과 악의 혼혈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 의문을 남겨두고 있다.
문유석 작가는 드라마 제목이자 타이틀롤이기도 한 ‘악마판사’에 대해 법정을 무대로 법을 무기로 하는 판사라고 정의했다. 전 세계를 공황상태에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이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한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사회라면 국민들의 불만과 분노를 배경으로 화려한 재판쇼를 벌이며 영웅으로 떠오르는 악마판사가 등장하기에 적절한 무대 아닐까”라고 화두를 제시했다.
문 작가는 ‘난세의 영웅’을 ‘디스토피아 시대의 악마적 영웅’으로 해석했다. 악마는 대중을 이용할 뿐 신뢰하지 않는다. ‘악마판사’의 악마적 응징은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지만, 결국 대중도 권력층처럼 혐오스러운 존재일 뿐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 타이틀 사진=tvN ‘악마판사’ 지성
[* 본 글은 외부에 기고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