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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이상 Sep 15. 2021

‘갯마을 차차차’ 홍반장의 재구성, 미니멀리스트로 살기

사회 권력은 소수의 기득권층에 집중돼있고 다수에게 소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입한다. 이 허황한 기대에 의지한 다수는 소수가 되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하고 광적으로 소비한다. 팩트를 지향하는 뉴스, 픽션의 장막을 치는 드라마, 사실이든 허구든 미디어는 계층 차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프로파간다 기능을 충실히 행한다. 이들은 소수의 부정을 고발하는 듯하지만,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고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소수를 향한 다수의 열망을 부추긴다.      

   

계층 사다리를 타고 오르려는 열망과 지배 계층의 무지는 상보 관계를 이루며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욕망의 이데올로기를 양산한다. 이처럼 자본을 향한 획일적 욕망에 세상이 침식당하는 시대에 소수를 열망하지도, 그들을 향해 분노하지도 않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가 출연했다.    

   

자본의 허상을 직시하는 미니멀리스트는 물질적 과잉 풍요의 시대에서 적극적인 일탈을 감행한다. SBS ‘갯마을 차차차’는 최근 청년층 사이에서 일고 있는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에 관한 이해와 실천을 반영한다. 극 중 홍반장이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은 그가 철저하게 고수하는 시급 8720원이 자학이 아닌 미니멀리스트들이 지향하는 삶의 존중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사진2. tvN ‘갯마을 차차차’ 김선호, 영화 ‘홍반장’ 김주혁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는 과거를 알 수 없는 인물로 철저하게 최저 시급만 받고 동네 대소사를 처리하는 원작인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하 영화 ‘홍반장’) 두식의 기본 설정을 유지한다. 그러나 ‘갯마을 차차차’가 방영 중인 2021년 현재는 영화 ‘홍반장’이 개봉한 2004년과 17년의 간극이 있다. 지나온 시간만큼 홍반장의 미니멀 라이프는 영화와는 조금은 다른 결의 여정으로 현대 청년층의 갈등을 담아낸다.         


무표정하지만 믿음직한 아우라의 김주혁이 연기한 홍반장은 97년 외환위기를 떠맡은 청년층의 냉소주의가 깔려있었다. 반면 장난기 어린 선하고 맑은 미소를 띤 김선호가 이어받은 홍반장은 종착점 없는 경쟁에 지친 청년층의 허무주의가 배어있다.      


드라마는 두식이 벗어나지 못하는 악몽을 통해 그의 소년 같은 미소 뒤에 아픈 어른의 삶이 깔려 있음을 암시한다. 두식의 집은 시급 8720원을 받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각박하지 않다. 빈티지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언제든 읽힐 준비가 돼 있는 책, 동네 곳곳을 담는 빈티지 카메라, 직접 손으로 만든 물건 등이 두식의 현재를 설명한다. 그러나 그가 벗어나지 못하는 악몽의 밤은 낮의 정서적 풍요와 대비되며 여전히 끝나지 않은 두식의 과거를 소환한다.      


치열한 밤과 온화한 낮이 대비되는 생경한 듯 낯설지 두식의 삶은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현실에 안주하거나, 힘들게 감행한 변화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끊임없이 갈등하는 현 청년층의 불안과 닮아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자신의 저서 ‘월든’에서 주어진 경험이 하닌 직면해가는 미지의 체험으로 축적되는 경험의 가치를 기술했다. 그는 “여기에 인생이라는, 내가 아직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실험이 있다. 하지만 예전에 누군가 손을 댄 적이 있다고 해서 내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만약 내게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나의 지도자들이 한 번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라며 누군가의 경험이 아닌 내 경험의 가치를 강조했다.       


자급자족 생태주의자 소로가 스스로 개척해가는 경험의 가치를 역설했지만, 과연 사회의 보편타당한 규준에서 이탈한 ‘자기만의 가치’ 개념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실제 소로는후원자가 무상으로 제공한 땅에서 거주하고 그의 지원이 없었다면 자급자족의 삶이 불가능했다는 점 때문에 진정성 논란이 따라다닌다. 당시 부유층의 작가 후원이 많았던 점 등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진정성 수위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도 시대를 막론하고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가 지속 가능한지에 관한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두식은 사회가 부여하는, 혹은 타인이 인정하는 가치가 아닌 자신이 끌리는 가치에 충실한 삶을 산다. 그러나 그의 알 수 없는 과거는 현재가 과연 자력에 의한 선택인지 의문을 품게 한다. 그가 선택한 미니멀 라이프가 과거의 아픔을 치유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의 과거가 현재 삶의 의미를 뒤바꾸거나 혹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할지 알 수 없다.      


tvN ‘갯마을 차차차’ 신민아, 김선호


이 같은 불확실성에도 두식의 미니멀 라이프가 공감의 대상인 이유는 이데올로기 식 주장이 아닌 선택한 삶에 대한 자연스러운 충실성 때문이다.      


삶에 대한 충실성이 긍정적 자아상으로 향할 때 어떤 방향이든 변화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충동적으로 시골 어촌 마을에 치과 병원을 차리게 된 맥시멀리스트 윤혜진과 고향으로 돌아와 시급 일을 하는 미니멀리스트 홍두식의 삶은 혜진의 말대로 외견상 사회적 지위(social position)가 다르다. 그런데도 이들은 삶에 대한 책임감과 충실성 때문에 다른 극점에 있음에도 상대를 향한 연민과 애정을 갖게 된다.      


그는 사회적 지위의 다름을 강조하는 혜진의 생각에 기분 상해하거나 바꾸려 하지 않고 자신의 삶이 ‘틀림’이 아닌 ‘다름’임을 설명한다.      


혜진은 “정직하게 노력만큼 성취를 이루면서. 난 현실주의자야.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나와 줘야 된다고”라며 서울대 공대 학력을 썩히며 사는 홍반장의 삶을 공격한다. 이에 홍반장은 “그 아웃풋이 돈과 성공이면 치과 눈엔 내가 대단히 비효율적인 인간이겠구만. 그러니까 치과가 안 되는 거야. 시야가 좁아도 너무 좁아. 세상에는 돈, 성공 말고도 많은 가치 있는 것들이 있어. 행복, 자기만족, 세계평화, 사랑. 여하튼 인생은 수학 공식이 아니라고. 미적분처럼 답이 딱딱 나오지도 않고, 정답도 없어. 그저 문제가 주어졌고 내가 이렇게 풀기로 결심한 거야”라며 물리적 성공이 아닌 정서적 충만함을 채우는 경험의 가치에 대해 말한다.       


맥시멀리스트 혜진과 미니멀리스트 두식은 닿을 수 없는 극과 극이다. 그러나 열망과 분노가 결국 욕망이라는 하나의 지점을 향해가듯 그들의 맥시멀과 미니멀 역시 삶의 충실성을 공유한다. 이들 가치관의 대립은 잘 살고 싶지만, 잘 사는 기준과 잘 사는 방법을 알 수 없는 청년층의 최근 혼란을 대변한다.      


현대는 노출 사회다. 소수 지배계층의 삶이 팩트와 픽션이 뒤섞여 실시간 생중계처럼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면서 긍정이든 부정이든 지배 계층의 모든 삶은 다수의 무의식 속에 성공의 지표가 됐다. 혜진은 빈한했던 과거를 보상하듯 명품 옷과 가방, 외제 차 등 성공의 전리품을 축적한다. 그러나 혜진의 전리품은 그가 열망하는 도시에서도,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택해 들어온 시골 공진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공진에서 그의 이기적 전리품은 도시와 달리 우상시 되지 못한다. 물질적 성공을 좇는 혜진은 정서적 가치에 충실한 삶을 사는 두식에게 밀린다. 도시에서 그는 계천의 용일 뿐이고, 공진에서는 아등바등하는 안쓰러운 청년일 뿐이다.        


미니멀 라이프의 교과서와 같은 책 ‘미니멀리스트 ; 홀가분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을 저술한 조슈아 필즈 밀번, 라이언 니커디머스는 ‘성공한 바보’라는 흥미로운 키워드를 제시했다. 이들은 극 중 혜진처럼 사회적 성공의 전리품을 축적했지만, 물질적 풍요를 접고 정서적 풍요의 길을 향해 주체적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불행하게도 대중매체와 문화를 통해 널리 퍼진 터무니없는 기준에 집착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뭐라 말하건 우리는 성공한 ‘successful’이 아니었다. 우리는 바보였다. 성공한 줄만 알았던 바보 ‘success fool’이었다”라며 미니멀리스트 이전의 삶을 기술했다.      


두 저자는 미니멀리즘을 인생에서 넘치는 것들을 없애고 행복과 성취감, 그리고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하는 도구라고 정의했다. 두려움으로부터 자유, 걱정으로부터 자유, 부담으로부터 자유, 죄책감으로부터 자유, 우울증으로부터 자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소비문화로부터 자유.      


이들이 설파하는 미니멀리즘은 두식이 언급한 행복, 자기만족, 세계평화, 사랑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누군가는 배부른 청년들의 헛된 망상쯤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갯마을 차차차’는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이 시대 한국 청년들의 고민을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게 풀어낸다. 


* 타이틀 사진=tvN ‘갯마을 차차차’ 김선호 

[* 본 글은 외부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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