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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현 Sep 18. 2018

예술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기

첫번째 제언

나는 영화를 볼 때 감독이 누군지, 스토리가 어떤지, 배경지식이 전무한 상태로 극장에 가곤 한다. 시놉시스와 해석을 알고 보기보다는 이미지 그 자체로 감각하고—이미지를 감상하는 동안 어떤 해석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게 싫다—, 모호한 부분은 감독의 의도대로 모호함을 느끼고,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의문의 상태를—영화 보는 순간만큼이라도, 왜냐면 영화가 끝나는 즉시 감독의 의도와 평론가의 해석들을 찾아볼 것이기 때문에—느끼는 게 좋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영화뿐 아니라 다른 모든 예술에도 적용된다. 책, 그림 등 어떤 작품을 보더라도 배경지식을 갖지 않은 무지의 상태, 작품을 마주한 나의 감각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태로서 맞닥뜨리는 것. 그것이 내가 인상적인 예술을 마주할 때마다 원하는 것이다.


분석과 해석은 한 번 시작하면 얼마든지 더 파고들 수 있지만 작품을 아무런 영향 없이 스스로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기회는 한 번 밖에 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상태를 답답해하거나 불편해하고 심지어는 두렵게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작가의 이력이나 배경 지식을 알고 작품을 해석하는 것으로 그 불안함을 지우고 싶을 수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당신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고 생각해보자.

"안녕하세요. 제가 당신이 어떻게 태어나게 됐는지 미리 조사를 좀 해봤습니다… 당신의 부모님은 20대에 가난하게 예술 생활을 하다가 30대에 어떤 작품을 보고 그것에서 어떤 영감을 받아 당신을 탄생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당신은 필연적으로 그 작품의 특징인 분열하는 자아를 갖고 있으며… 당신의 성격은 겉으로는 밝아 보이지만 실제 내면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 당신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의 애착의 부족 때문입니다… 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요? 아닙니다. 제가 조사를 많이 해봐서 아는데 이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더라고요…."




우리는 작품이 작품 그대로, 자유롭고 독창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도록 허락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의 목적이 알고 보는 것의 이로움을 격하시키는 것은 아니다. 특정 시기 예술은 형식과 사조가 미술을 감상하는 데 중요할 것이다. 사회적 활동을 포함하는 예술은 그 시대의 배경을 아는 게 중요하다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작품이라도 '좋은 예술 작품을 여러 번 보고 분석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좋은 작품은 반복해서 보는 것이 명백히 이로우며, 반복해서 봐야만 한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무지의 상태로 예술을 마주하기, 그리고 감상을 말하기가 '초짜 같은, 대중적인, 비전문적인' 인상을 줄 지라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때로는 중세 예술에서도 미술의 형식보다는 보는 나의 감각이 중요하다. 때로는 정신분석을 기조로 하는 작품에서도 정신분석보다 작품의 표현을 감상해보는 게 중요하다. 그 생각들이 단순하고, 모순적이고, 혼란스럽고, 완벽하지 않다고 해도 중요하다.


따라서 감상자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의 역사와 지식이 아닌 감상자 스스로가 좋은 예술을 사유하고, 공감하고, 감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방식이 예술 전반에 깔려있는 엘리트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예술에게 다가가길 꺼리게 하며 예술을 다른 세상 이야기로 느끼게 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예술 주변에서 풍기는 엘리트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작품이, 아무것도 숨기고 있지 않다고 가정해보자. 작품이 스스로를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다고, 해석해야 할 숨겨진 비밀 따위는 없다고, 작품을 보이는 그대로 느끼기만 해도 된다고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 예술 작품의 가치를 탐색해나가고 그로부터 영감을 받는 일을 그 누구에게도(저명한 학자에게도, 비평가에게도, 심지어는 작가에게도)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대 안에 있는 모든 책들을 불태워 버려라.
감각으로 먼저 느껴보지 못한 일체의 지식이 내겐 무용할 뿐이다.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36쪽, 39쪽





이어지는 글 예술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기어떻게 사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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