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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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모든 문장이 아름답다. 번역이 잘 되어있어서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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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은 플롯이 중요한 소설이 아니다. 감정을 아주 세밀하게 조각내고 다시 재구성한다. 작가는 한 사건에서 받은 인상과 감정을 책의 여러 부분에 잘게 나눠 배치한다. 주인공에게 상대를 만나는 순간이 너무 강렬했던 나머지 만남의 순간, 아니 만나기 직전의 순간을 반복적으로 조금씩 다르게 말하기도 한다.
연애 소설보다 자전적 소설에 가깝기 때문에 일반적인 연애 소설과는 달리 그들이 어떤 만남을 가졌는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는 몇 가지 장면과 몇 마디 대화로만 전달된다. 따라서 독자가 '연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어떤 순간의 장면들 뿐이다. 화자가 모른 척 슬쩍 열어놓은 문 틈으로 흘긋 볼 수 있는 찰나 같은 순간. 그러나 그 순간은 둘의 내밀한 관계와, 분위기와, 평소의 습관까지도 알아챌 수 있는 순간이다. 하나의 영원을 보는 섬광 같은 순간이며,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이해해버리는 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들키는 순간이다. 단 몇 마디의 문장으로 상대를 깊이 이해해서 오히려 나를 들키게 되는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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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작가)가 분석하는 주변 인물을 감상하는 것도 이 소설의 큰 즐거움이다. 잠깐 나오는 친구와 주변 인물마저도 모두 매력적으로 묘사되고 강한 인상을 남긴다. 가장 집요하게 묘사되는 건 그녀의 가족이다. 신경증 때문에 히스테리와 광기를 보이며 주인공에게 상처를 주는 엄마, 그리고 그녀의 차별적인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폭력적이고 문제적인 큰 오빠, 큰 오빠의 폭력에 눌려 사는 약하고 착한 작은 오빠.
"뒤라스의 작품에서는 죽음과 고통이 텍스트의 거미줄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검은 태양>
뒤라스의 진정한 매력은 독자 자신이 과거에 느꼈던 섬세한 감정들을 되살려 준다는 데 있다. 그녀의 문장들은 … 독자 자신과 주인공을 동일시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작품 해설 (옮긴이 김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