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와 잡풀들만 무성한 땅이었지만 이곳에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2022년 3월, 땅을 소개받고 용인에서 서울까지 한걸음에 달려갔다.
이야기를 들어본즉, 기존에 작은 집이 있었지만 지금은 나대지 상태로 있다고 했다.
집은 지은 지 40년이 되었고 거주할 사람도 없어 10여 년 전에 집은 철거되었다고 했다.
땅에 대한 정보는 그뿐이었다.
"10년 동안이나 팔리지 않고 나대지 상태였다고?"
이런 상태의 땅이라면 둘 중 하나로 땅의 상태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실제 집 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이거나 아니면 일반인들에게는 잠재력을 드러내지 않은 진흙 속 보물이거나.
건축가로서 처음 땅을 만나러 가는 시간만큼 가슴이 조리는 일도 없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이 땅이 후자 쪽이면 좋겠다며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다 보니 어느새 차는 땅이 있는 도로 모퉁이에 도착해 있었다.
"이제 50미터만 더 가면 모습이 드러날 텐데, 아! 기분이 묘하네."
근처에 주차를 하고, 주변 골목을 걸어 다니며 땅의 주변 상황부터 파악해 보았다.
땅은 지은 지 30년이 넘은 3~4층 빌라와 5층 아파트 그리고 2층 단독주택이 뒤 섞여 있는 곳에 있었다.
낡고 허름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주변 환경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80년대 감성의 골목 풍경은 마치 어릴 적 뛰놀던 그 시절을 되돌려 놓은 듯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주변에 고층 빌딩을 찾아볼 수 없고, 골목 모퉁이만 돌면 높지 않은 산과 공원이 있어서 좋았다.
만약 이곳에서 집을 짓고 살 수 있다면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할 만한 조건들을 갖춘 동네였다.
땅을 살 때는 주변 상황을 세밀하게 살피는 것도 땅을 분석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여러 가지 장애물들에 대해 적절한 해결책을 고민하지 않고 집을 짓는다면 자칫 고립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은 주변 상황에 잘 맞게 계획되어야 한다.
외관이 화려하고 예쁜 집을 짓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오래된 동네에서 새 집이 너무 도드라지게 되면 오히려 위화감을 주기 십상이다.
마치 재개발 지역에 들어선 고층 아파트가 오래된 주변의 환경과 절대로 조화를 이룰 수 없듯이 말이다.
주변 환경은 그리 나쁘지 않았기에 땅 컨디션만 괜찮다면,
매입하고 그다음 집짓기 순서를 진행하면 될 터였다.
주변 환경은 나쁘지 않으니 땅에만 문제없으면 소박하게 집을 지어 이웃과 조화롭게 살면 되는 것이었다.
주변을 돌던 발걸음은 서서히 땅을 향해 옮겨지고 있었다.
땅에 도착했을 때 솔직히 말해 땅에 대한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왜 10년 간 나대지로 방치되었었는지 알 것 같았다.
땅에 인접해 있는 집은 지은 지 40년이 넘었고,
땅의 경계에 놓여 있는 담장 또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옛 성벽과 같이 낡아 있었다.
조금만 힘을 주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이 불안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잡풀들과 주변에서 버린 온갖 쓰레기들로 인해 땅의 경계조차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땅 모양도 반듯한 직사각형이 아니라 윗변이 짧고 아랫변이 기다란 마치 장화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땅에 대한 선택을 주저하게 만든 것은 옆집과 뒷집의 방위 상 위치와 건물의 높이였다.
두 집은 남쪽과 서쪽에 위치해 있고 3층 높이였다.
만약 이 땅에 집을 짓게 되면 남서향의 햇빛을 받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재생해 보았다.
'남쪽의 풍부한 자연광을 집 안으로 끌어오려면 창문이 필요하다.
하지만, 창문을 설치하면 불과 2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옆집과의 프라이버시(사생활) 확보가 어려워진다.'
땅 위에 한 참을 서서 머릿속으로는 계속해서 플러스 요인과 마이너스 요인을 짚어보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땅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보였다.
그때 또 다른 단점이 눈에 들어왔다.
"땅의 경사가 생각보다 심하네!"
경사지는 평지에 집을 지을 때보다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건축 예산이 빡빡한 나로서는 넘어야 할 커다란 장벽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면적이 작은 땅인데 3미터나 되는 레벨차이가 있다니!"
"아! 포기해야 하나?"
부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이 많이 기울어졌을 때,
마지막으로 경사를 따라 땅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보았다.
그때였다.
"우와~아" 나도 모르게 환호가 터져 나왔다.
물론 속에서 나온 탄성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탁 트인 시야가 눈에 들어왔다.
도심지에서는 주변의 건물 때문에 전망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
남쪽과 서쪽은 기존에 있던 집 때문에 시야가 가려지는데,
동쪽과 북쪽을 통해서는 저 멀리 북한산 봉우리가 또렷이 보일 정도로 뷰가 좋았다.
이때부터 처음부터 자리 잡았던 부정적인 생각은 서서히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긍정은 부정을 이긴다'라고 했던가.
긍정적인 요소 하나를 발견하게 되니 부정적인 요소들까지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두움을 물러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빛을 투과하는 것이다.
내 마음에 빛이 들어오자 어두운 생각들은 자연스레 물러나게 되었다.
도전해 보기로 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얘기했다.
"여보! 나 이곳에 집을 짓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
다음글...
(3) 어떻게 지을 것인가? 집 짓기는 건축주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